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66)
유럽 대혁명(1)
조슈 번에 덴노와 키리시탄들을 투기하듯이 내려놓은 뒤, 우리는 즉시 공작을 시작해야 한다는 핑계로 바로 출항했다.
물론 돌아갈 일은 없을 거다.
‘어쩔 거냐, 모리.’
밝히지 않는다면 사교(邪敎)와 손을 잡아 황거를 범한 조적이 되어 홀로 몰락할 것이고, 영국을 끌어들이려 한다면 그 누명은 프랑스에 뒤집어씌워질 것이다.
증거물은 애초에 남겨두지 않았다. 증인은 조작할 수 있다고 우기면 그만이다.
‘정 안 되면 프랑스 외방전교회에 뒤집어씌워야지.’
프랑스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했다는 게 더 그럴듯하긴 할 거다. 애초에 키리시탄들은 구교도니까.
성공회와 가톨릭 간의 갈등은 지금 영국에서도 상당히 뜨거운 감자인데, 성공회를 국교로 하는 영국이 키리시탄들을 지원했다는 게 그럴듯할까, 아니면 혁명 이후 그래도 제법 세속화됐다지만 여전히 ‘가톨릭의 장녀;인 프랑스의 파리 외방전교회가 시도했다는 게 더 그럴듯하겠는가?
일본 내의 여론이야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지 몰라도, 내가 신경써야 하는 건 유럽의 여론이다.
프랑스가 길길이 뛰든 말든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저거 사실 프랑스 자작극 아냐?‘라는 여론을 가지도록 조성하는 거니까.
반대로, 모리가 우리의 지원을 계속 기대하면서 진실을 밝히지 않고 버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손을 떼버리면 모리 가문의 힘만으로, 조슈 번의 힘만으로 막부를 무너트릴 수 있는가? 아무리 덴노를 손에 넣었다고 해도?
’어떤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은 불가능하다.‘
원 역사에서도 몇십 년 뒤 무진전쟁 시기에나, 그것도 영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가면서 사쓰마 번과 연합한 뒤에나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고, 그러고도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도쿠가와 최후의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전의를 상실하고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해버려서 전쟁이 손쉽게 토막파의 승리로 끝났을 뿐이다.
영국은 모든 관계를 부정할 작정이고, 사쓰마와의 연합은 현실화되지도 못했으며, 손에 넣은 건 덴노뿐인 상황에서 조적으로 찍힌 채로 막부를 상대해야 할 상황에서는 이기기는커녕 개역과 참수가 거의 확정된 거나 다름없는 신세일 거다.
물론 막부가 지금 쇠락한 건 사실이다. 이예요시도 건강 악화에 대기근으로 흔들리는 재정과 악화된 민심을 떠안은 상태고, 막부의 권위는 쇠락했으며 하나 있는 후계자는 각기병 나은 거 하나로는 도저히 수습이 안 될 정도의 중증 정신병을 안고 있으니까.
오히려 각기병이 나은 게 막부에는 더 나쁠지 모른다. 차라리 일찍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빨리 가신들과 가문원들이 논의해서 다른 사람을 세우기라도 할 텐데 이예사다가 지병은 나았는데 정신병은 그대로 앓고 있으니까 함부로 쫓아낼 수도 없고 미칠 노릇이겠지.
하지만 그게 조슈 번 하나 토벌 못 한다는 건 절대 아닐 거다.
’무엇보다 프랑스가 막부를 적극 지원하겠지.‘
현재 프랑스의 재정상태로는 군대를 보내기는 어려울 테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다.
그리고 막부가 엎어지고 새 정권이 들어설 경우, 그 정권이 지금 막부만큼이나 자기들에게 호의적인 조약을 맺어줄지도 의문이며, 조약의 승계를 거부할 경우 군대를 보내야 하는데 그게 또 다 돈이다.
생각이란 게 있으면 당연히 막부를 지원해서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을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지.
아예 일본에서도 손을 뗀다는 방법이 있긴 한데…..
“프랑스가?”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동쪽을 바라보던 시선을 떼었다.
“인천항에 다 왔나 보군.”
“1시간 내에 항구가 보일 겁니다. 이 속도로 볼 때는요.”
“한성으로 바로 들어간다. 밀린 소식이 많겠군.”
나는 눈을 감았다.
잠깐만이라도 눈을 붙여둬야 할 것 같았으니까.
항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경악할 만한 소식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채로였다.
***
영국, 런던.
“정숙! 정숙하시오!”
총리가 노호성을 질렀다.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좋단 말입니까!”
“프랑스로는 안 끝납니다. 지금 런던 시내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에 주재하는 외교관들도 하나같이 급보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병사들의 동요가 극심하고 국내 사정도 좋지 않아서 군 출동이 근시일 내에는 불가능하다고 알려왔습니다. 상황이 심각할 정도로 좋지 않습니다!”
이 혼란의 모든 이유는 단순했다.
프랑스의 정계와 재계가 함께 쌓아올린 거짓의 장막이 무너졌다.
거짓의 장막이 무너지자, 댐이 붕괴하며 쏟아져내린 물이 주변에 있는 마을을 통째로 쓸어버리고 생존자 하나 남기지 않고 초토화시키듯이, 어마어마한 여파가 전 유럽을 휩쓸었다.
제일 먼저 루이필리프 정권이 대홍수에 쓸려나가는 마을들처럼 깔끔하게 쓸려나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댐 공사가 실패했고, 기업들은 막대한 채무를 짊어진 채로 문자 그대로 파산 직전의 상태이며, 그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국고가 유용되고 유령 회사가 설립되어 투자금을 어떻게든 끌어모아 파산을 모면해왔으며, 막대한 뇌물을 받은 정부 요인들은 이를 은폐해왔다는 사실이 한 기자의 폭로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 투자로 손실을 입은 프랑스인은 100만에 육박했고, 그 중 전재산을 날린 사람들이 상당수, 10억 프랑에 달하는 손실액이 추산된다는 보도까지 이어지자 즉시 어마어마한 군중이 의회로 쳐들어갔다.
루이필리프는 퇴위와 망명을 선언하고는 그대로 해외로 줄행랑을 쳤고, 내각의 요인들 중 적잖은 수도 그 뒤를 따라 뺑소니를 쳤다.
당연하지만 그 정도로 분노한 프랑스 시민들이 진정할 리 없었다.
이 사건에 유대계 자본이 깊숙이 얽혀 있다고 보도된 직후 유대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린치가 일어나는 등의 대혼란 속에서, 한 조직이 꿈틀거렸다.
혁명 세력, 황금여명회가 다시금 빛을 받았다.
보나파르트주의에 경도된 군 병력은 적기를 치켜든 채 파리 시 외곽에 집결해 그들의 영원한 주군이자 프랑스 제국의 정당한 계승자인 루이 나폴레옹의 귀환을 환영했다.
그러나, 이는 프랑스에서 끝나지 않았다.
“어제, 베를린에서는 표현의 자유 보장, 의회 설립 등을 요구하는 시위대에게 프리드리 빌헬름 4세가 굴복, 신헌법 제정을 선언했습니다. 프로이센군이 시위대의 진압과 베를린 탈환을 시도했지만 격퇴당했다고 합니다.”
“빈에서도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고, 헝가리에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메테르니히는 사퇴했고 페르디난트 1세도 개혁을 약속하며 시위대를 달래는 데 주력한다고 합니다.”
“러시아에서 철도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러시아군 내에서도 동요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런던 시내에 4만 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운집해서 선거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폭동이 시작되면 런던 주둔군은 물론이고 인근 연대를 총동원해도 진압할 수 없습니다!”
아니, 진압이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군까지 반란에 참여했다.’
‘레드코트는 신뢰할 수 있는가?’
저들이 총구를 반대로 돌리지는 않을까.
장교들이라면 모를까 병사들은 결코 부유층이 아니다. 오히려 빈민에 가깝다.
그리고 빈민층과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시위의 양상으로 보아…….
“최악의 경우는 군 내에서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바다 위에서도 비일비재한 일 아닙니까?”
영국 해군에서도 선상반란은 하루이틀 있었던 일이 아니다. 괜히 선상반란 진압용으로 해병대가 창설된 게 아니다.
물론 그 해병들까지 합심해서 들고 일어나서 선상반란을 성공시켜버리는 일이 제법 있었다는 게 문제기는 하지만. 아무튼 부대 내 항명에서 최악의 경우 반란은 영국인들에게 먼 개념이 아니다.
그런 반란이 지상에서라고 못 일어나겠는가?
“런던 시내의 노동자들이 죄다 폭동을 일으키면….”
“못 막습니다. 절대 못 막아요.”
“아일랜드의 폭동을 막느라 지상군 상당수가 아일랜드에 가 있는 판인데…..”
그 와중에 아일랜드는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아일랜드 대기근.
흉작을 불러온 것은 자연이었지만, 그것을 최악의 대기근으로 비화시킨 것은 다름아닌 현 집권당인 자유당이었다.
그 현재진행형인 대기근의 참상을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자유당은 자유방임주의를 외치면서 폭동에 대비해 영국 본토 주둔 지상군 상당수를 아일랜드에 집결시켰을 뿐 어떠한 구호 정책도 실시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장 병력 부족으로 이어졌다.
전 유럽에 걸친 자유주의적 봉기는 원 역사와 다르게 러시아와 영국을 비켜가지 않았다.
당시의 러시아는 국민들이 불만을 느낄 정도로 계몽되지 못한 상태였고, 영국은 차티스트 운동 선에서 끝났다.
하지만 영국과 러시아가 가까워지면서 영국은 러시아에 철도를 놓는 일에 적극 협력하고, 대량의 자본으로 대문이 활짝 열린 러시아를 침략했다.
그리고 그 자본들과 함께 스며든 것은 자유주의와 개혁적 사상이었다.
“시위대는 보통 선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인 남성에게 1인 1표를 달라는 겁니다.”
중산층 이상은 되어야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본래는 중산층도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었지만, 영국 의회는 10여 년 전 중산층에게는 선거권을 주는 방식으로 보통선거 요구를 순식간에 분쇄해버렸다.
그러나 빈민법을 시작으로 노동 계층의 불만은 쌓일 대로 쌓여 있었고, 황금여명회와 얽혀서 전 유럽과 함께 폭발해버렸다.
철저히 순서대로 매설된 폭약이 순서대로 터져서 건물을 무너트리듯, 유럽의 구체제 전체가 뒤흔들리고 있었다.
***
버킹엄 궁전, 런던.
“당장 군을 동원해 저 무엄한 것들을 진압하란 말이오!”
빅토리아 여왕의 일갈에 총리는 우물쭈물했다.
민중들은 그다지 실감하지 못하는 사실이었지만, 본래 빅토리아 여왕은 극도로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저 시위대는 자신들의 권리를 얻기 위해 탄원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정부에 감히 도전하는 무엄하고 불충한 이들이었다.
그 역도들을 당장 군을 투입해 분쇄하라며 길길이 뛰는 여왕 앞에서 총리는 군대가 없고, 그 군대마저도 신뢰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명백히, 유럽의 저 혁명 세력과 런던의 역도들은 한 묶음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들의 봉기는 철저히 계획적입니다. 폐하, 군을 투입하면 브리튼 섬 내에 있는 역도들을 쓸어내는 것만으로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 유럽의 국가들과 연합해 유럽 내에 있는 반역자들까지 완전히 뿌리를 뽑지 않으면 내년이면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지게 될 겁니다.”
“그럼 뿌리를 뽑으면 되잖소.”
“그만한 자금도, 그만한 군대도 없습니다. 폐하, 지금은 인내하셔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