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68)
유럽 대혁명(3)
“내일 떠나나요?”
“그래. 먼저 뭄바이에 잠시 들러서 조율을 한 뒤, 베트남에 가서 병력과 합류, 뭄바이에서 최종 허가를 받고 출발할 거야.”
“그러면 오늘이 한동안 마지막 밤이겠네요.”
“어쩌면.”
나는 한숨을 쉬고는 그녀를 내 몸에 기대게 했다.
물론 그 이상은 아니다. 아무리 부부에 침실이라지만 임신 중 아닌가. 단지 다독여줄 뿐이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잠옷 차림의 플로렌스가 피식 웃었다.
“아쉬워서 어떻게 해요?”
“내가 뭐 그런 인간으로 보이냐.”
그러나, 그 직후 플로렌스의 진지한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아니어도, 아쉬워할 사람은 있죠.”
“……….”
“안 따라간다는 건 알죠?”
“플로렌스.”
“…. 저보다 먼저 당신의 곁에 있었던 존재, 그리고 지금도 당신만을 바라보는 여자가 있죠.”
플로렌스는 조용히 내 어께를 감쌌다.
“저는 당신도, 제 아이도 소중하지만, 그녀도 제게 있어서는 소중한 친구에요.”
“넌…….”
“그녀를 잃고 싶지도, 당신을 잃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한 발자국 물러났어요. 당신을 조금 양보하면, 그녀도 나도 웃을 수 있을 테니까. 저만 행복하면서 친구가 고통받는 걸 외면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침대 옆의 끈은 살짝 당겼다.
본래 사람을 불러야 할 일이 있을 때 쓰도록 만든 벨은 은은한 종소리를 냈다.
잠시 뒤, 나는 너무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우리 거래 내용에, 상대의 인간관계에 대해 질투하지 않기가 있었죠.”
“……….”
“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했어요. 당신을 어떤 의미로 믿기도 했고요.”
“어떤 의미로?”
“당신에게 다른 연인이 있다고 해서 저와 앨리스, 이 아이를 내팽개칠 사람은 아니라는 믿음이죠.”
“………..”
“당신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니, 한동안은 이게 당신과 나, 그리고 라일라에게 마지막 기회겠죠. 그러니 셋이서 모인 지금, 그동안 쌓였던 기억이든, 감정이든 전부 털고 가요. 그것뿐이에요. 그 누구도 더 이상 울지 않도록 말이에요.”
***
인도, 뭄바이. 동인도 회사.
출항 전날 밤의 일을 잠시 상기한 나는 고개를 털어낸 뒤, 내 앞에 있는 남자가 내가 제출한 서류를 검토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자네 계획에 따르면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없긴 하네. 하지만….”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뭐가 문제입니까?”
“문자 그대로 전례가 없는 일이지 않소. 나폴레옹 시절의 선례가 있기는 해도 지금은 전시 상태도 아닌 걸로 아오만?”
“전시 상태가 아니라고 하셨습니까? 그러면 여왕 폐하의 신변에 위협이 가해질 것을 염려해야 하는 이유는 뭐고 각국 정부가 붕괴한 이유는 뭡니까? 아무 일도 없었는데 혼자 붕괴했습니까? 게다가 본토의 사태가 아니더라도 군 병력이 투입되어야 할 곳은 많지 않습니까.”
나는 유럽 지도를 펼쳤다.
“프랑스, 독일, 곳곳에서 정부가 붕괴해 무정부상태로 들어가고 있다는 연락은 받으셨을 겁니다. 게다가 이 불길은 저지대까지도 번지고 있죠. 벨기에인들이 독립을 요구하면서 또 다시 들고일어났으니까 말입니다.”
군 병력은 어찌되었은 필요하다.
“제 요청이 런던에 도착할 때까지 3개월, 오는 시간 3개월. 도합 6개월입니다. 즉시 출발할 수 있도록 병력을 미리 준비시키고 선박을 준비시키는 정도는 충분히 할 만한 일 아닙니까? 만일 본국에서 반대하면 그대로 해산하면 그만입니다.”
“그렇기는 오만……”
“여왕 폐하께서는 제 충정을 이해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당연하지.
국난을 맞이했을 때 귀족들이 자기 재산으로 사병을 끌어모아서 국가에 헌납하고, 그 대가로 그 사병들로 편성한 전투부대의 지휘관 자격을 받는 건 나폴레옹 시절에도 많았다.
다른 건 내가 끌어모은 병력은 기간제 용병이라서 정규군에 편입시킬 수는 없고 상황 종료되면 돌려보내야 하는 병력이라는 거지만, 큰 차이까지는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 영국 정부가 내 예상대로라면 찬밥 더운밥 가릴 상황이 아닐 거고, 아예 어느 지역에도 연고가 없는 용병들이라면 피아 구분이 어려운 이 상황에서 국내군보다도 신용 가능한 병력이다.
문제는 내가 그걸 끌어모은 방식과, 그 현장 조치 후 승인을 본국에 보낸 방식이다.
외무성과 의회를 패싱하고 여왕에게 직접 찔러넣었으니까.
그래서 트집을 잡을 수 없도록 사직서도 같이 동봉해뒀다. 국난을 맞아 국가에 헌신하려 하나 현재의 직책과 병행할 수는 없으니 부득이하게 사직하니 어쩌고저쩌고.
사실 후자가 메인이기는 하다.
왜냐고?
‘일본 저거 터지기 전에 튀어야 해.’
“그럼…….”
“뭄바이, 뭄바이에 병력을 집결시켜두겠습니다, 그 기간 동안 보급품과 선박을 준비해주시는 정도는 해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동인도회사 사장이자 사실상의 인도 총독인 델하우지 후작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아, 제길, 좋네, 좋아. 이 상황에서 뒤로 뺄 수도 없고, 본국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네. 쾌속선들로 준비해주지. 그런데 자네가 장담한 수준의 병력을 구할 수 있는 건가?”
“물론입니다. 베트남에 연락을 보냈거든요.”
“베트남?”
표정이 괴상해졌다.
“프랑스군을 격퇴한 그 병력을 빌리겠다는 건가? 물론 빌린다면 유럽에서도 제법 써먹을 만한 병력이겠지만, 그들이 내놓겠나? 베트남의 상황은 불안정해.”
“내놓을 겁니다. 사실 그래서 하나 더 부탁할 것이……”
“흡혈귀 공사님께서는 공사 임기 내내 우리 회사 주머니를 털어 썼으면서 내 주머니를 대체 얼마나 더 털어가려고 하나? 세포이라도 보태 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하겠네, 지금 인도 상황도 심상치 않아, 작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 봉기가 언제 터질지 모르네, 본국에서 당장 상황이 급하다고 난리인데 내가 병력을 못 내고 있는 이유 보면 알지 않나?”
“그런 게 아닙니다. 우선 베트남을 침략할 국가는 단 하나도 없고, 프랑스를 격퇴했다는 권위 덕에 베트남 내부도 안정되었으니 군대를 빼도 얼마간은 괜찮을 겁니다. 다만 베트남과의 거래 내용이 있었습니다.”
“뭔가?”
“유학입니다. 영국 본토에서 자국민 유학생들을 공부시키고 싶다더군요.”
“그건 자네 권한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저는 이번 일 관련해서 공식적으로 외무성에서 사직했습니다. 그러니 저 혼자만으로는 조금 부족하죠.”
“동인도 회사의 보증이 있어야겠다 이건가?”
“보증이라고 하기는 조금 그렇고, 추천서 한 장만 적어주시면 됩니다.”
“에휴, 알겠네, 아주 마지막까지 동인도회사를 쪽쪽 빨아먹는구만. 백지 추천서 한 장 적어줄 테니 이름은 알아서 적어넣게나.”
“다 이게 대영제국의 영광을 위한 일 아닙니까.”
“그걸 알고, 효과적인 방책이라는 것도 아니까 내가 달라는 거 다 줬던 거 아닌가.”
“항상 그래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뵙죠.”
“징글징글하니 다시는 뭄바이에 얼씬도 하지 말게나.”
질렸다는 듯 손을 내젓는 후작 앞에서 물러나온 나는 피식대고 웃었다.
“저 양반도 고생길이 훤하구만.”
동인도회사의 사장이 되기 전부터 업무상 이유로 얼굴을 보고 지낸 상대인데, 만날 때마다 이마에 주름이 늘어나 있었다.
저 양반은 솔직히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는 소리를 해도 인정해줘야 한다. 내 공작금 태반이 동인도회사에서 뜯어낸 거거든.
당연히 외무성 자본만으로 그 돈을 충당했을 리가 없으니까 동인도회사 주머니를 털어 써야 했고, 동인도회사는 가급적 증거를 안 남기고 나한테 무기와 물자를 공급하느라 그야말로 개고생을 해야 했다.
‘일단 한 가지는 끝났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
동인도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다시 쾌속선을 타고 바다를 달려다니다 보니 슬슬 바다라면 신물이 올라온다.
다만 얼마 정도는 배를 안 탈 수 있으니 그게 그나마 다행인가.
“요즘 배는 빠르니 며칠 안 타셨잖아요.”
“며칠 안 탔다고 해서 편한 건 아니거든?”
나는 투덜거렸다.
요즘 배의 예시를 하나 들자면, 얼마 전에 등장한 미국의 레인보우 호는 파나마 운하도 없이 희망봉을 돌파해서 뉴욕에서 광둥성까지 88일만에 주파했다.
“물론 클리퍼는 쾌속선인지라 화물적재량이 부족하고, 군대는 그거보다 더 느리죠. 그래도 이동해야 하는 거리는 더 짧긴 하지만 말이에요.”
“몇 달 정도 잡아야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인도까지는 병력을 미리 추진해놓을 생각이다. 답신이 돌아올 때까지 몇 달은 걸릴 테니까.”
“빨리 움직여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보급은 어차피 영국 정부에서 받아가면서 할 테지만, 병력의 도달이 며칠이라도 빨라서 나쁠 건 전혀 없다.
지금 영국은 군대가 없는 게 아니다. 혁명 세력에게 동요되지 않았으리라 확실할 만한 신뢰할 수 있는 군대가 없을 뿐이며, 자국의 활동범위 내에서 증원군에 보급을 못해줄 국가도 아니다.
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군대는 당신이 지휘하나?”
“저와 제 동생이요.”
“…… 믿을 만하기는 한데, 괜찮나? 본토는…….”
“처음부터 저희 자매가 가기로 되어 있었어요. 영국 유학도 저희와 다른 몇 명이 가기로 되어 있었고요.”
“음?”
“현재 저희가 없다고 국가에 큰 문제가 생길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는 전혀 아니에요. 몇 년 정도는 그곳에서 수학할 수 있어요. 아직 저희는 젊으니까, 그렇기에 경험은 부족하더라도 국가를 위해 더 오래 헌신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런 결단이라면 내가 뭐라 할 말은 없겠지만…… 정말 괜찮겠나? 병사들을 지휘하는 것, 그렇게 좋아하는 일은 아니지 않나.”
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다가, 문득 딴소리를 했다.
“유럽 사람들은 당신처럼 동방의 음악을 좋아하려나요?”
“이국적이라고 신기해하기는 할걸?”
“그렇다고 해도, 겉의 화려한 음색이 아니라 드러내지 않는 마음의 소리를 이해해줄 사람은 별로 없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그런 상대는 여기라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사실이죠.”
연은 웃음을 지었다.
“제 곡의 참뜻을 읽어내며, 이 악기의 진정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 지음은 정말 찾기 어려워요.”
연주는 계속된다.
“백아와 종지기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가슴 속 깊 언젠가 저의 지음을 만나기를 바랐어요, 언젠가 헤어지게 된다면 이 현을 끊어버리고야 말 만큼 소중하게 여길, 제 소리를, 제 마음을 알아주는 존재를, 그의 귀에 가 닿지 않는다면 제 연주에 담긴 다른 의미들을 모조리 퇴색시켜버리고야 말 그런 존재를.”
“만나게 될 거다. 그런 사람을.”
전장에 서는 것에서 재능을 발견했으나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여장군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을 뿐,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