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69)
유럽 대혁명(4)
뭄바이항. 인도.
배가 멈춘 직후, 코트를 화려하게 차려입은 신사 하나가 배에서 성큼성큼 걸어내려왔다.
근데…… 아는 얼굴인데?
“벤자민 디즈레일리 의원님?”
“굉장히 오랜만이군요, 젠티안 공사….. 아니, 이젠 공사가 아니시군요.”
디즈레일리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직접 오셨습니까?”
“일단 조금 고전적이지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어느 쪽부터 들으시겠습니까?”
“좋은 소식부터 듣죠.”
“우선 여왕 폐하께서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여왕 폐하께서는 당장 의회 해산을 선언하겠다고 압박하고 계시지만, 현 상황에서는 조기 총선 자체가 불가능한 데다 그 기약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뜻을 거두셨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여왕 폐하께서는 그간의 충성심과 해외에서 대영제국의 이익을 대변했으며 뛰어난 문학작품을 써낸 등의 여러 공로를 감안해 대영제국 훈장을 자작님께 수여하고 싶어하신다더군요. 귀국하시면 3등급이나 4등급 정도의 훈장을 수여받으실 것 같은데, 미리 축하드립니다.”
“제 요청 사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표는 정상적으로 수리되셨습니다. 사실 지금 외무성….. 아니, 영국 정부 대부분이 파업과 시위 때문에 마비된 상태입니다. 공무원들이 출근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니 어떻겠습니까? 여왕 폐하께서 직접 수리하셨습니다.”
“병력 수송 문제는 어떻게 됩니까.”
“영국 해군이 동원되어서 병력을 수송할 겁니다. 이 부분은 여야의 의견이 일치했고, 단 이틀 만에 의결되었습니다. 자작과 자작께서 모으신 병력은 영국 육군에 임시편제되시겠지만 사실상 거의 모든 권한을 이양받으셨습니다. 모든 의원들은 비밀유지를 서약하고 베트남군의 진상에 대해서 전달받았고요. 그 프랑스군을 일방적으로 대파한 병력이니 폭도들을 진압하는 것쯤은 문제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
너무 빠른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나쁜 소식을 이야기할 차례군요.”
디즈레일리는 인상을 구겼다.
“오스트리아 제국이 무너졌습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잉글랜드로 탈출했고, 헝가리는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발칸반도도 아수라장입니다.”
“거기에 더해 프랑크푸르트에 세워진 폭도들의 의회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전역을 포함한 대독일의 통합을 선포하고 자신들이 점거한 베를린의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게 ‘독일인들의 황제’ 칭호를 받아들이게 강요했습니다. 프로이센군이 베를린을 탈환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했고, 페르디난트 1세가 해외로 탈출하자 모든 희망을 잃고 프로이센 국왕마저 폭도들에게 굴복하고 군에게 해산 명령을 내렸습니다. 지금쯤 상황이 급변하지 않았다면 대관식이 있었겠군요.”
“………예?”
나는 뜨악해서 입을 벌렸다.
“프랑스는 더합니다. 루이 나폴레옹이 스스로를 프랑스 공화국의 총통으로 선언했고, 군이 보나파르트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도 이탈리아 통일을 부르짖는 세력들이 교황령을 침공했고요. 육해군 내에서도 혁명을 운운하는 불온분자들이 속출하는 바람에 대대적인 숙군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장교급 가운데에서는 거의 없고 병사들이나 하사관 수준에 불과한 게 불행 중 다행입니다만.”
아니, 대체 뭔 개판이야?
원 역사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벌어진 반오스트리아 반란은 러시아군의 개입으로 깨강정이 났고, 정치적으로도 반혁명파가 주도권을 회복했다.
프로이센에서는 베를린 탈환을 몇 번 실패했다가 절치부심한 융커들의 대대적인 반격에 프랑크푸르트 의회 세력이 분쇄되고 베를린이 융커들의 손에 탈환되면서 혁명파는 끝장이 났고.
그런데 뭐? 프로이센군의 참패?
“러시아는 뭐 한답니까?”
“철도노동자들의 동시다발적 파업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벌어진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대대적인 시위 탓에 그쪽도 적잖이 혼란스러운 모양입니다.”
그래, 대충 알겠다.
원 역사와 달리 영국이 러시아와 동맹했고, 영국 자본이 러시아를 잠식했다.
그리고 러시아인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외부의 사상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원 역사와 달리 수십 년 빠르게 자신들의 처우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된 거다.
그렇지만 그게 그렇게 깊숙하게 퍼졌을 리는 없으니 러시아가 개혁하는 계기가 되어줄 수는 있어도 러시아의 정권을 벌써 엎어버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
그러나 그 가능성만으로도 황실과 귀족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방비를 강화하는 등 군 병력을 분산시키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을 거고, 원 역사처럼 헝가리 출병은 꿈도 못 꿀 상황이 된 거다.
헝가리로 출병하지 못하게 되면, 오스트리아 제국 내 반혁명파가 혁명 세력에게서 주도권을 뺏기는 훨씬 어려워졌을 거고. 결국 버틸 수가 없었던 바보왕 페르디난트 1세가 겁먹고 도망쳐버렸다. 아니면 그 측근일 수도 있고, 아무튼 망명을 했다.
이렇게 되니 황제라는 구심점이 증발해버린 오스트리아 제국은 산산조각이 났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연쇄적으로 망해버린 데다 자기는 혁명파에게 잡혀있고 구출작전은 죄다 실패했다는 소식만 들어오며 영국과 러시아도 내부단속에만 눈이 돌아가 있으니 프로이센 왕이 좌절해 혁명파에게 굴복한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가고.
그 모든 게 합쳐졌으면…….
런던 분위기가 이미 짐작이 간다.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서 기세가 등등해진 노동자들은 당장이라도 폭동을 일으키기 직전일 거고, 정부 요인들은 책임을 서로 떠넘기며 공포에 질려 있겠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프랑스마냥 혁명파에게 넘어갔을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하겠고, 안에서 반체제분자들이 자꾸 걸려나오는 데다 전력도 충분하지 못할 육군 대신에 실력은 베트남에서 증명되었으며, 영국 내에 이해관계가 전혀 없어 반역에 가담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정예부대를 국가를 위해 지원해주겠다는데 그걸 거절할 이유가 있겠는가?
“제법 군기가 잡힌 듯 하군요.”
“베트남군이지만, 공식적으로는 구르카처럼 용병입니다. 대신 베트남과 조선에는 구르카를 따로 고용해 주둔시켰습니다. 물론 그거 가지고 전부 커버가 되진 않겠지만, 베트남 정부가 그래도 지방통제력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실히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야 합니다.”
“……….?”
“저 병력이 없으면 런던이 심각하게 곤란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의회에서는 본토까지 저 병력이 올 때까지 군자금, 물자, 선박 등을 무제한으로 지원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거든요. 이미 정계에서 자작님은 영웅입니다.”
영국 정부는 프랑스 대혁명이 런던에서 일어날 것을 진지하게 우려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인 디즈레일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온 겁니다. 의원과 내각 구성원들은 이 군대의 진실을 알지만, 그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세부사항을 다 아는 건 여왕 폐하와 총리, 내각의 장관들과 귀족원 및 서민원의 의원들뿐입니다. 다들 비밀유지 서약까지 마쳤음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그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 중 하나가 와야 하는데, 제가 자원했습니다.”
“그럼 저와 함께 돌아가시는 겁니까?”
“공사님, 그리고 군대와 함께 돌아갈 겁니다. 지금 내각에서는 일단 협상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만.”
“협상할 거라면 군대가 필요없지 않습니까?”
“베트남군, 아니, 용병들이 런던항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협상단에게도 시간을 끌라는 명령만이 하달되어 있습니다.”
아시아인들로 구성된 군대를 빌려 자국 시위를 진압한다니, 보통 막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일단 공식적으로는 이 병력은 영국군에 기간제로 편입된 용병들이다.
기간이 지나면 부대가 통째로 제대하는 방식으로 베트남으로 돌아가겠지만.
“다만, 내각에서는 단 한 가지 조건을 명확히 했습니다.”
“뭡니까?”
“자작님께 용병들의 지휘권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라고 합니다. 영국군의 지휘 하에 있지 않은 어떤 병력도 브리튼 섬으로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각의 결의입니다.”
“아, 그건 물론입니다. 육군의 통제에 따르겠다고 서약하면 되겠습니까?”
“그럴 건 없고, 지휘권 확보에 대해서만 확답해주시면 됩니다.”
하긴, 아무리 그래도 외국군을 대놓고 자국민을 진압하려고 끌어들일 만큼 영국 정부가 미치지는 않았겠지, 아무리 런던 시내가 초토화되고 육군을 믿을 수가 없어서 진압명령도 함부로 못 내리는 판이라지만.
“그런데… 이건 흘려들으십시오. 본토로 못 가실 수도 있습니다.”
“예?”
“아무래도 좀….. 음…… 열등한 황인종으로 구성된 군대가, 아무리 지휘권이 영국 귀족에게 있으며, 서류상 대영제국 육군이라고 해도 대영제국 본토에 발을 들이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기는 이들이 제법 있습니다. 제가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다수까지는 아니었지만, 시위가 좀 누그러지거나 타협에 정말 성공해버리면 언제든 의회의 여론이 뒤집힐 수 있습니다. 보수당은 그것 때문에 여론이 나빠져도 전부 다음 선거 때 자유당에 뒤집어씌우면 된다고 여기니 신경쓰지 않겠지만, 자유당 내각에서는 상황이 조금만 호전되어도 되물리려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겁니다.”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그 경우 유럽 대륙으로 투입되실 겁니다. 독일이나 이탈리아 쪽으로 가시게 되지 않으실지….. 일단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만 알아두십시오.”
“알겠습니다.”
***
불명확한 안개 낀 상황 속에서도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런던항 외곽에 도착했다.
런던에 입항하기 직전, 항구를 경비하던 소형함이 접근해 왔다.
“젠티안 전 공사님과 디즈레일리 의원님이십니까?”
“그렇소, 내가 젠티안이고…….”
“내각에서 명령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입항하기 전에 확인하시랍니다.”
그러자, 디즈레일리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멍청한 것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가장 큰 규모의 시위대가 며칠 전을 기해 해산되었다는군요, 따라서 여왕 폐하께서 유럽 본토로의 병력 파견을 명령하셨답니다.”
“어디입니까. 저지대?”
“아닙니다. 저지대에는 해군 육전대를 위시해 원정군이 이미 편성되었다고 합니다. 러시아에서도 폭동이 진압되는 추세라서 그쪽도 아니고요.”
“그럴 리가.”
디즈레일리는 냉소적으로 내뱉었다.
“자유당 놈들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드는군요. 그럴 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베트남군이 상륙하기까지 하면 자유당 내각은 문자 그대로 끝장이다. 당장 인종주의가 판치는 시대에 내각에 대한 여론이 어디까지 내려가겠는가.
물론 외국 정규군이 아니라 영국인이 지휘하는 용병이라지만, 그건 최소한의 면피용이다.
그랬기에 보수당은 위기감을 부추기면서 강대강 대치를 한 끝에 유혈진압을 위해 베트남군의 투입을 강요하려 했던 건데, 생각처럼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제가 인도에 다녀오는 그 짧은 사이에 상황이 극적으로 호전되었을 리가 없습니다. 원정 준비도 보나마나 엉망진창일 거고요. 게다가 무력진압을 했으면 놈들이 순순히 해산했겠습니까? 지방에서 난리를 치지.”
“자유당에도 바보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겠죠. 네덜란드 저지대의 확보 등 중요한 임무로 보이지 않는 곳, 그냥 조공이었다고 깎아내릴 만한 지역에 투입하면 어물쩍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랬을 겁니다. 아마도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디즈레일리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한답니까?”
나는 단답했다.
“이탈리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