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75)
혼돈(2)
베네치아에 있는 도제의 궁전이었던 곳은 사령부 겸 숙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여러 사람들이 도착했다.
“소장님. 베네치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조지라고 불러주십시오, 자작님.”
“이쪽은……?”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입니다.”
“총리님?”
나는 뜨악해서 벌떡 일어났다.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메테르니히 총리님.”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이군요.”
다른 데서는 본 적 있단 말인가.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홈즈가 죽었을 때 항의 편지를 보낸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 아, 네.”
“평시라면 홈즈 이야기로 한담이라도 나누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시간이 없군요, 바로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아, 물론입니다.”
나는 지도실로 손님들을 안내했다.
“내각의 결의에 따라 저지대는 현상 유지를 할 정도만 남겨두고, 대부분의 병력은 우선 이탈리아 방면으로 재배치하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크게 셋이 있습니다. 첫째는 러시아 정부의 요청입니다.”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러시아 제국에서는 이번 기회에 영토를 넓히고 싶어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발칸 지역과 체코 지역을 요구해왔죠.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토 말입니다.”
“발칸은 몰라도 체코 지역에는 아직 어느 정도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제권이 미치지 않습니까?”
“그것도 시간문제입니다. 보급도, 병력 충원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고립된 군대가 얼마나 가겠습니까, 결국 러시아 제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메테르니히 각하께서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이셨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렇습니다. 러시아와 합스부르크의 분쟁이 끝이 안 보이자 대영제국 정부가 개입하여 양측을 중재했고, 대신 북부 이탈리아 지역에서 영토를 넓히고 스위스까지 받아오는 것으로 중재되었습니다.”
대충 지도 위에 그려진 판도를 본 나는 속으로 욕을 했다.
‘국경 꼬라지 진짜.’
물론 뭘로 보나 오스트리아의 일방적인 손해지만, 타협 안 하면 진짜로 나라 잃은 왕조가 될 판이니 메테르니히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리라.
영국이 가져다준 타협안까지 걷어차면 그때는 진짜 유럽에 손 벌릴 곳이 단 하나도 안 남을 판이니까.
“다음 문제는 뭡니까?”
“루이 나폴레옹이 협상을 제안해왔습니다.”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루이 나폴레옹,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이 극렬 세력을 숙청했다고 비공식적인 루트로 연락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는 아직 없으며, 공식화된 것도 아니고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일 뿐이니 만일 프랑스군이 눈에 띌 경우 주저하지 말고 격퇴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만일 협상이 맺어진다면 루이 나폴레옹은 자신의 권좌를 인정받고 전쟁에서 빠질 예정입니다. 물론 영토나 그런 세부적인 사항들 때문에 아직 타협에 이르지는 못했으니 특별한 연락이 없다면 프랑스에 대한 공격은 필요하고 가능해보인다면 지속하십시오.”
“사르데냐 왕국은 어쩌시겠습니까?”
“영국군이 맡을 것입니다. 앞으로 이탈리아 반도에서의 군사작전, 구체적으로 아펜니노 산맥 이남에서는 영국군과 오스트리아군이 모든 작전을 수행할 것입니다.”
이탈리아 반도의 경계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다.
이탈리아 반도를 자연스럽게 규정해보자면 제노바-베네치아 라인 정도로 생각해야 할 텐데, 우습게도 지리학적으로 이탈리아 반도로 규정되는 범위는 제노바를 기점으로 아펜니노 산맥을 따라 루비콘 강이 바다에 닿는 하구 지점까지로 계산된다.
그런 지리학적 기준으로 보면 베네치아는 물론 현 최전선인 포 강도 이탈리아 반도 밖이라는 논리가 성립되며, 실제로 그렇다.
“저희 병력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전력이 충분하다면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탈환을 맡길까 고려했습니다만, 이 정도 병력으로는 여러모로 무리겠죠. 북서쪽의 이탈리아 내 반란 도시들을 진압하고 프랑스 국경을 경계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
파리, 튈르리궁.
“그러니까 굳이 전투를 지속할 필요 없이 현상유지만 하면 충분할 거라고 보네만……”
“폐하, 폐하의 뜻과 국민들의 뜻은 다릅니다.”
명목상, 루이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대통령이다.
선거라는 절차 없이 집권했지만, 선거를 하나마나라고 할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기는 했다.
그리고 그의 측근들은 이미 그를 폐하라고 불렀다.
“국민들은 복수를 원합니다.”
나폴레옹 3세.
그가 불리고자 하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본디 대중이라는 것은 갈대와 같고, 인기라는 것은 연기와 같아 하룻밤의 꿈과 같이 사라질 수 있는 법.
포퓰리스트인 그는 그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발을 들이밀 곳이 있고 들이밀면 안 되는 곳이 있는 법 아니던가?
“짐은 백부님이 아니다.”
자기가 군재가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전쟁도 선동만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면 훨씬 쉬웠으리라.
하지만 전쟁은 국내 정치처럼 선동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국민들은 선황 폐하를 원합니다.”
그랬다.
국민들은 나폴레옹이 그러했듯, 루이 나폴레옹에게도 나가서, 싸우고, 이기기를 바랐다.
전쟁에서 무력하다는 명분으로 혁명파 좌익의 뒤통수를 쳤던 루이 나폴레옹으로써는 이 기대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형국.
결국,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소규모 전투, 소규모 전투 한 번이면 된다.’
선전전이 답이었다.
적대 병력과 교전해서 승리했다? 수십 배로 부풀려서 선전한 뒤에 전쟁에서 적당히 빠진다.
적대 병력과 교전해서 후퇴했다? 마찬가지로 상대에게 큰 피해를 줬다고 선전한다.
포위섬멸 같은 완패만 당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국민들에게 선전할 수 있으니까.
설마 한 번을 못 이기겠냐.
***
조선, 한성.
플로렌스는 급하게 뛰고 있었다.
“중증 외상 환자들은 얼마나 되죠?”
“현장에서 부상이 심했던 사람들은 오다가 대부분 죽어서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염된 물 때문에 콜레라에 걸린 사람들이 훨씬 많아요!”
“빨리 물 가져와요! 소금이랑 설탕도!”
경구수액법.
그 방법을 가지고 있던 미래인은 그 방법을 퍼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였다.
괜히 싸움에 말려들기 싫어서.
이 방법이 옳네 그르네 하고 기존 의학계와 다퉈야 하고, 또 그걸 증명해야 하고, 이러는 데 쓸 만큼의 의욕이 그에게는 없었다. 게다가 사실 정확한 비율과 얼마나 먹여야 하는지도 그는 몰랐다.
그러나 콜레라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1817년 이래 전 세계적으로 7차례나 대유행한 것이 콜레라였고, 당장 1846년에도 3차 대유행이 있었다.
그나마 당시에는 유럽 중심으로 퍼졌기에 플로렌스나 젠티안 공사 등이 횡액을 당할 일은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콜레라 자체는 유행하고 있었기에 젠티안 공사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경구수액법의 요체에 대해 알려주었다.
자신이 지휘하는 군대나, 자신의 가족이 걸린다면 경구수액법을 쓰겠지만 그걸 유럽의 기존 학계와 싸워 가면서까지 관철시킬 자신이 없었던 에드워드 젠티안은 그걸 플로렌스에게 알려주는 선에서 그쳤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 본래 나이팅게일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던 이 간호사는 효과적인 치료법이 있다면 절대 자기만 알고 끝낼 성품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서라도 경구수액의 효과적인 비율과 투여량을 알아낼 만큼 끈질기다는 점이었다.
펄펄 끓여놓은 물에 정량의 소금과 설탕을 타고, 간호사들이 동원되어 환자들에게 정해진 양을 정해진 간격으로 떠먹인다.
그 단순한 처방만으로도 환자들의 사망률은 폭락했다.
양의원이 주민들의 신뢰를 얻은 것도 다들 죽어서 나오겠거니 했던 환자들을 어떻게든 살려서 가족들에게 돌려보내는 성과를 내면서였다.
“중상자 없다면서요! 이 사람 뭡니까!”
“젠장! 언제 줄 풀었지? 원장님! 이 사람 팔 좀 잡아주세요!”
“이게 뭡니까?”
“중증 아편중독자에요! 저건 금단증상입니다! 배에 탄 동안 아편을 못 피우게 했더니…”
아편에 들어있는 모르핀의 금단증상 중에는 가려움증이 있다.
팔다리를 벅벅 긁어서 유혈이 낭자해질 정도로 긁은 모습을 보면 잔뼈가 굵은 플로렌스조차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묶어요! 그리고 저 손톱 좀 누가 깎아요!”
손톱이 누런 건 둘째치고 제대로 깎지도 않았다. 저러니 날카로운 손톱에 제 팔다리 살이 뜯겨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아픔을 모르는지 긁어댄다.
“아편이 사람을 망치는 약이라더니…..”
마취제로 쓰겠다면서 인도에서 아편을 좀 구해다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했을 때 남편이 딱 잘라 거부하면서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한 플로렌스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동안은 아편 중증 중독자를 볼 일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중국인?”
“맞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중국에 있던 조선인들, 그리고 일부 중국인들이 탈출해 왔답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지옥입니다!”
이들을 인솔해 온 조선인이 영어로 끼어들었다.
“영어 되나요?”
“예, 지금 청은 지옥입니다. 멸청흥한, 그걸 외치는 이들이 돌아다니면서 사방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죽여대고 있습니다. 저들의 수괴인 홍수전의 명령으로 서양인들은 건드리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닥치는 대로 죽입니다. 조선인들 중에서도 살해된 자가 여럿 있습니다. 저희들도 겨우 도망쳐나온 겁니다!”
“홍수전이요?”
“예, 저들은 스스로를 태평천국이라고 부른다더군요. 그 기세가 강맹하답니다.”
“저들은 이단적 광신도입니다.”
한 남자가 끼어들었다.
“누구신가요?”
“실례했습니다. 마담.”
미끈하게 잘 빠진 미남이 우아하게 인사를 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라고 합니다.”
“예, 그렇군요, 어디 아파서 오신 게 아니라면 여기 좀 거들어주실 수 있나요? 이 사람 팔다리 묶어놨으니 베키가 손톱 깎는 일 좀 도와주세요.”
그 말을 들은 옆의 짙은 수염을 한 남자가 낄낄대고 웃었다.
“이봐, 엥겔스, 자네 외모가 먹히지 않는 여자도 있을 수 있다고 늘상 그랬지 않나. 물론 우리 꼴이 제법 엉망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원래 여자 관계가 제법 복잡한 인물이었다. 마르크스가 인성 문제와는 별개로 남녀관계에서는 극도로 보수적인 입장이었던 것과는 반대로 결혼이나 일부일처제 자체가 기독교적, 부르주아적 관습이라면서 혐오했던 것이었다.
물론 엥겔스가 추파를 던지든 말든 플로렌스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지만.
“무슨 내가 시도때도 가리지 않고 여자에게 추파나 던지는 한량으로 보였나, 흠, 실례했습니다. 저희는 이들을 싣고 온 배의 책임자들입니다.”
“아, 그런가요? 그러면 항해일지 사본 하나만 주세요. 환자들의 신원확인도 도와 주시고요. 환자들이 언제부터 증상이 나타났는지를 확인해야겠으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아프리카에서도 마땅히 망명할 장소를 찾지 못하고, 싱가포르 주둔 영국군을 피해 중국 조계지로 찾아들어갔다가 태평천국의 난을 피해 다시 조선으로 도망친 사회주의 망명자들이 얼떨결에 제일 먼저 하게 된 일은 병원 허드렛일 돕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