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76)
혼돈(3)
“프리드리히, 살아있나?”
“죽은 거였으면 좋겠군. 카를.”
“자업자득이네, 자네가 우겨서 그 피난민들을 배에 태운 거잖나.”
“그럼 그걸 두고 가나?”
학살당할 게 뻔한 상황에서, 배에 자리도 있었는데 그걸 버리고 가는 놈이 사람 새끼냐는 엥겔스의 힐난에 마르크스는 무시로 답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존경스러워지는군.”
“듣기로는 이 병원이 이 나라에서 제대로 된 병원으로는 거의 유일하다더군. 나머지는 거의 민간요법 수준이고 말이네.”
“…….. 그런가.”
“무슨 생각하는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응?”
“이렇게 멀리까지 도망오게 될 줄 생각이나 했나?”
“그건 자네 때문 아닌가, 자네가 좀 문명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우기지 않았나.”
“그래서 딱히 머무를 만한 장소는 있었나? 죄다 식민지 아니었나. 우리가 아프리카 쪽으로 갔다는 정도는 유럽에서도 지금쯤 파악했을 테니 수색대가 들이닥쳤겠지.”
“원래 계획대로 베트남으로 갔으면 좀 나았을까.”
베트남에 상륙하려던 이들은 즉시 베트남 관헌에 의해 퇴짜를 맞았다, 유럽 정부에서 발급된 허가장 없이 상륙하려 하면 스파이로 간주해 발포하겠다는 베트남 측의 위협에 혁명가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이 그런 제한은 없는 상하이 조계지였지만, 그 상하이 조계지가 태평천국의 난으로 인해 위험해지자 조선으로 도망온 참이었다.
“아까 조선인들과 이야기하다 들었는데, 일본도 지금 내전으로 난리라는군, 조슈 번이라는 곳이 반란을 일으켰었다는데.”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는 거지.”
“……..”
“적어도 10년 20년간은 유럽에서 우리 동지들은 뿌리뽑힐 걸세, 모든 전황이 최악만 가리키고 있었으니. 그런데, 우리는 너무 좁은 틀 안에 갇혀 있었어.”
엥겔스는 벌떡 일어나 말했다.
“카를, 우리는 너무 바보같았네, 여기에도 문명이 있어. 여기에도 미래가 있다고, 다시 시작하면 되네, 황금여명회? 우리 조직? 재건하면 되네, 재건하면 그만이야!”
“프리드리히, 진정하게.”
“내가 진정할 수 있겠나?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이들이야, 공장은 있지만 부르주아들이 아직 제대로 뿌리박지 못한 이 시대, 이 장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어. 가르치면 돼, 저들을 차근차근 계몽하면 된다고! 학교는 있지만 선생은 없어, 그래, 우리가 선생이 되면 돼. 우리가 가르치면 된다고! 알고 있지 않나, 이들에겐 문명을 꽃피울 잠재력이 있어! 이들은 잃어버린 형제들이란 말이네!”
마치 접신이라도 한 것마냥 폭주한 엥겔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람들은 그들을 몽상가, 불온분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꿈을 꾸었다.
신도, 주인도 없는 새로운 세상을.
무언가를 위해 죽이거나 죽을 필요 없는 세상을.
종교도 필요하지 않은 세상을.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무지개에 닿기 위해 쉴 새 없이 노력한다.
항해도 그리 편한 길은 아니었는데, 오자마자 같이 온 사람들 병수발을 든답시고 병원 일을 거든 탓에 쌓인 피로로 인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마르크스는 신음하며 돌아누웠다.
“조선인들이 잃어버린 10지파의 후예든 프레스터 존의 후예들이든 간에 상관없네, 난 잠이 필요해.”
“그 미인 아가씨, 이곳 원장이라고 했지?”
“그래, 그리고 애 딸린 유부녀지.”
“지금 그게 중요한가? 당장 그녀를 만나야겠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겠어,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알겠단 말이네! 아니, 프루동 선생과 같이 가야겠군, 그 사람 어디 있지?”
“그 사람도 지금 자기 방에서 피곤해서 자고 있잖나, 프리드리히, 제발 잘 때는 좀 자고 이야기하세나…..”
마르크스가 죽어가는 소리를 하든 말든 엥겔스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숙소에서 뛰쳐나간 뒤였다.
‘근데 조선인, 아우렐리아인이 잃어버린 10지파라는 건 증명된 게 아니라 어디 소설 내용 아니었던가….? 황인치고는 키도 크고 얼굴도 하얗기는 하더만.’
홀로 남겨진 마르크스가 피로로 인해 기절하듯 잠들기 전 마지막 생각이었다.
***
러시아-영국, 영국-러시아 동군연합.
정식명칭 그레이트브리튼-러시아 연합제국.
러시아의 현 차르가 사망하는 대로 형성될 이 나라가 정식으로 발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진통이 있었다.
군주는 어디에 머무를 것인가? 이것만 해도 런던으로 결정되기까지 수 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식민지와 영향권까지 다 합치면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중동, 페르시아, 인도, 발칸, 아나톨리아를 아우르는 거대 제국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의회는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
의원을 선출한다고 하면 의원의 비율은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성공회, 정교회, 가톨릭이 뒤섞인 두 나라에서 국교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건 결혼식만으로, 회의 몇 번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우선 법령도 여러 가지 개정하거나 새로 통과시켜야 하고, 두 국가의 법 중 괴리가 있는 부분을 중요한 대목에 한해서 일치시켜야 한다.
러시아의 귀족들을 영국의 상원에 받아들이자니, 이번에는 귀족의 범주가 문제가 되었다.
영국과는 달리 러시아에서는 공작의 자식이면 장남이든 차남이든 삼남이든 다 공작이다.
영국은 작위를 가진 당사자가 살아 있는 한 법적으로는 1순위 후계자가 되어도 작위를 가진 당사자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귀족은커녕 평민이라는 걸 생각하면 괴리감이 있어도 한참 있다.
단순한 동군연합이라면 이런 것은 필요치 않다.
하지만 이 작업은 그걸 넘어서 이중제국을, 연합제국을 만들기 위한 대공사였다.
그런 형태를 필요로 했으니까.
러시아는 영국의 기술력과 자본을 필요로 했고, 영국은 러시아의 무한한 자원과 영토를 원했기에 둘은 하나로 합쳐진다는 결정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을 한참 가속시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국제적 연대를 통해 거듭난 1848년의 혁명이었다.
혁명가들은 외쳤다. 자유를.
그들이 원한 것은 보통선거 단 하나뿐이었다.
1인 1표라는 원칙이 세워지기만을 원했다.
그러나 그 어떠한 구체제도, 그들과 타협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하나를 내어주면 결국 모든 걸 내어주게 된다는 공포는 군대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게 했다.
시위대 스스로도 결코 평화롭지 않았지만, 애초에 대화는 양쪽이 대화를 할 의사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발전한 국가와, 유럽에서 가장 권위주의적인 국가의 의견이 하나로 합치한 순간, 중무장한 군대가 북소리에 맞춰 온 유럽을 핏빛으로 물들이기 위해서 전진해나가고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우선 10만 명 정도의 병력을 1차로 헝가리에 파병하기로 했습니다.”
영국 육군 전군을 다 모아야 간신히 10만이 나온다. 그것도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병력이다.
그런 병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1차로 파병하겠다는 것부터가 전 유럽을 긴장시키고는 했던 러시아의 인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질은 떨어져도, 양은 양만의 질이 있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곰의 포효였다.
“프로이센 측에서는 베를린 탈환을 우선시해달라 요청하고 있지만, 보급선 확보가 더 우선입니다. 쾨니히스베르크와 단치히 방면으로, 해안을 따라 진격해야만 우리 군의 보급이 수월할 겁니다.”
그리고 늙은 사자 역시 곰에 결코 뒤지지 않는 저력을 뽐내고 있었다. 로열 네이비는 단 한 번도 제해권을 빼앗긴 적이 없으며, 막대한 양의 보급을 감당해낼 수 있었다.
“그럼 동프로이센에 있는 융커들의 병력은 어찌하시겠습니까?”
“굳이 합류할 필요 있겠습니까? 베를린만 점령하면 상황은 끝입니다.”
프로이센이 실패한 것을 영국-러시아 연합군이 성공시키기만 한다면야 어마어마한 정치적, 외교적 이점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이를 위해서 피를 얼마나 더 흘려야 하냐는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피를 흘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알프스 산맥, 그르노블 남쪽.
“으으…… 추..추….추워요.”
이를 딱딱 부딪혀대는 조이를 본 나는 한숨을 쉬면서 코트를 벗어주었다.
“그렇게 껴입고도 추워?”
“공사님은 안 추우세요?”
“나야 뭐….. 워낙 추위를 안 타서. 체질이 그래.”
나는 슬쩍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하늘에 초승달이 떠 있고, 별들이 보석처럼 점점이 박혀 있었다.
“그런데 네 언니는 어디갔냐?”
“저쪽 바위 위에요.”
“………?”
그러고 보니 바위 위에 정좌한 사람 형상이 있었다.
“저기서 뭐 해? 점이라도 친다냐?”
“아무래도 지도가 잘못됐거나 표지판이 잘못됐거나, 둘 중 하나인 거 같다고 했어요.”
“뭐?”
“지형지물이 영 일치하지가 않는다고, 일단 현재 위도라도 확인해봐야겠다고 했어요.”
경도는 항해할 때 쓰는 정밀한 크로노미터라도 없으면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시계는 굳이 가져오지 않았다. 애초에 육지에서 쓰는 물건이 아니니까.
하지만 위도는 천문 관측으로 알아낼 수 있다.
잠시 뒤, 제법 큰 바위 위에서 그림자가 폴짝 뛰어내렸다. 단 한 번도 헛디디지 않고 미끄러운 바위를 날렵하게 내려오는 걸 본 나는 마음 속으로 곡예 솜씨 10점 만점에 10점을 준 후 농담이라도 한 마디 하려 했다.
그러나 조연의 표정은 영 심각했다.
“공사님, 문제가 있어요.”
***
“우리는 지금까지 론 강을 따라서 내려왔어요. 저희가 예정대로라면 더 전진해서 뇌사텔 호가 나오고, 그 다음이 로잔, 그리고 제노바여야 했죠.”
“맞아,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남쪽에 있어요.”
“잠깐, 뭐?”
“우리가 예상한 우리의 위도와 실제 위도가 대략 1.7도 정도 차이가 나요.”
“……. 마지막으로 우리 위치가 확실했던 곳이 어디였지?”
“베른이었죠.”
젠장.
“일단 하산하지, 위치가 명확하지 않다고 해서 병력을 산에 세워둘 수는 없어. 비전투손실이 말도 못 하게 늘어날 거다. 산맥에서 벗어나면 뭐가 되었든 간에 상황을 확인할 수는 있지 않겠어?”
“물길을 따라가면 하산하는 방향이긴 할 거에요. 물은 무조건 낮은 곳으로 흐르니까요.”
“그리고 강 하구에는 보통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지. 거기까지 가면 우리가 어디로 왔는지 알 수 있겠지. 보급 물자는 문제 없지?”
“좀 지나치게 넉넉하게 챙겨 와서 아직 충분합니다. 그리고 강폭이 넓어지는 걸 봐서는 제법 많이 내려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길어야 이틀이면 산맥 지대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평지로 나오면 북상해보자고. 운이 좋으면 제노바를 찾을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간단히 향후의 일정에 대해 합의한 우리는 한숨을 쉬었다.
여긴 어디냐. 우리가 누구인지는 아직 까먹지 않았지만, 여기가 어딘지를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