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79)
종식(1)
제네바, 스위스.
“나를 프랑스로 돌려보내 주시오.”
포로로 잡힌 뒤 독방에 박혀서 꼬박 72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내게 면담을 신청해 온 루이 나폴레옹은 그래도 정신을 좀 차린 모습이었다.
아니, 이런 소리를 뻔뻔하게 할 정도로 정신이 나간 건가?
“……. 지금 적대국의 국가원수를 아무 조건 없이 풀어달라고 한 겁니까?”
“당신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소.”
“….. 뭐, 어디 말해보십시오, 대신 판단은 제가 합니다.”
어차피 풀어줄 생각은 없지만.
“지금 내가 잡혔다고 파리가, 프랑스가 항복하리라고 생각하오?”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알지만, 그게 당신을 풀어줘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카를 마르크스, 조지프 프루동, 프리드리히 엥겔스, 이 이름들을 아시겠소?”
왜 모르겠냐.
“내가 숙청한 이들이오, 죽이지는 못했지만 해외로 도피하게 만들었지.”
물론, 내게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반응 외에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그들은 극렬 분자들이오, 나폴레옹 시대를 꿈꿨지.”
으음…… 마르크스가 나폴레옹 시대를 꿈꿔? 아무리 들어도 개가 물구나무서서 오줌싼다는 소리 같은데.
“그들은 혁명을 다른 지역에도 전파하고, 우리 프랑스가 그들의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소. 그러나 결국 내 손에 숙청되었지.”
“당신은 다르다는 겁니까?”
“물론, 나는 처음부터 무능한 루이필리프만 타도하면 족했소. 그리고 내 지지층도 똑같지, 굳이 독일이나 영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러시아에 끼어들어서 유혈사태를 일으킬 생각은 없었단 말이오.”
“그걸 지금 믿으라는 겁니까?”
아니, 뭐 이 양반의 원 역사의 행보를 봐서는 신빙성이 없지는 않긴 한데.
“내가 파리로 돌아가서 정권을 확실하게 잡으면 즉시 모든 전투를 중단하겠소, 문자 그대로 이 전쟁에서 빠지겠다는 의미요. 당신들은 어차피 이탈리아와 독일에도 적이 많지 않소? 굳이 프랑스까지 상대하면서 피해를 늘릴 이유는 없다고 보오.”
루이 나폴레옹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혁명 세력은 둘로 나뉜다고 한다.
첫째는 프랑스의 정권을 잡고 싶은 보나파르트파, 이들은 그저 자기들이 프랑스 내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자기들이 1인자 자리를 먹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둘째, 이들이 가장 골치아픈 이들인 세계혁명파다.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 등등이 복잡하게 얽힌 이들은 아무튼 간에 전 유럽, 더 나아가 전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고 싶어 하는 전쟁광들이며 전 세계의 모든 기존 정부체제를 파괴해야만 만족할 이들이기에 보나파르트주의자들과도 근본적인 양립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후자는 자신이 이전에 일으킨 친위 쿠데타로 프랑스 내에서는 거의 쓸려나간 상황이다.
그건 독일의 혁명세력도 비슷하다. 혁명을 외치는 공산주의자와 독일 통일과 게르만 민족 단결을 외치는 민족주의자까지 아무튼 간에 현 체제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인간들이 모조리 뛰어나온 게 이번 혁명이다.
당연히 입도 생각도 행동도 대부분 따로 놀 수밖에 없었다.
저들 중에는 입헌군주제 정도를 원하는 온건파, 참정권을 원하는 시민들, 국가적 복지를 원하는 빈민들, 왕정 폐지를 원하는 공화주의자, 모든 유산계급 철폐를 외치는 사회주의자, 거기에 모든 국가조직 해체를 원하는 무정부주의자들까지 죄다 섞여 있고, 그들 중에는 타협이 충분히 가능한 이들도 있다.
아니, 내 시각에는 그런 부류가 절대다수다. 당장 영국에서 절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서 총칼로 진압된 시위대는 1인 1표를 요구했을 뿐이다. 심지어 여성 참정권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성인 남성에게만 달라고 했다.
그리고 독일의 혁명군도 대개는 그런 부류다. 가장 강력한 파벌이 헌법 제정을 요구하는 세력일 정도니까.
저들 전부가 공산당은 아니다. 문자 그대로 ‘일부 극렬 분자들’이라고 부르는 게 어울릴 판이기는 하다.
“하지만 제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통령님.”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당신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도 있고요. 당신은 저에게, 그리고 대영제국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당신을 신뢰하고 풀어주겠습니까? 당신이 그저 지금 당장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무엇으로 보증하시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펜을 들었다.
“물론 상부에 보고는 하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독단으로 당신을 풀어줄 수는 없습니다.”
“내가 빨리 풀려나지 않을수록 내가 정권을 수복하고, 극렬 분자들을 억누를 수 있을 가능성 역시 하락하게 되네.”
“그렇다고 해도 신뢰할 수 없는 상대에게 모든 걸 맡기는 것보다는 피를 덜 흘리겠죠.”
나는 그렇게 내뱉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런던에서의 답신을 기다리십시오, 포로로써, 규정을 준수하시면서 말입니다. 보나파르트 씨.”
***
황제의 이름으로 약속한 모든 개혁의 무효화.
베를린이 탈환되자마자 황제의 명의로 선포된 포고문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의회는 존속했으나 유명무실해졌고, 헌법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독일의 혁명은 실패로 돌아가는 게 분명했다.
단 한 가지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니까, 혁명 이전의 체제로 되돌리고 싶지만 혁명 기간 동안 가져간 영토를 포기하기는 싫다는 겁니까?”
영국 외무장관은 황당하다는 투가 가득했지만, 상대의 반응은 아주 담담했다.
물론 전례가 없는 일도 아니다. 애초에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에도 똑같이 있었던 일이다.
“그렇소.”
프로이센 외무장관은 뭐가 문제냐는 듯 태연히 대답했다.
“그렇다면 기존 국가들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황제 폐하께서는 독일인들의 황제 칭호 대신, 신성로마제국의 부활을 이야기하셨소.”
“…….?”
신성로마제국?
물론 빈 체제 당시에도 신성로마제국의 부활이 진지하게 논의되기는 했다. 여러 사안으로 인해 포기되기는 했지만.
그러나 오스트리아도 아니고 프로이센이 그걸 제안한 건 좀 생뚱맞은 느낌이 없지 않았다.
“신성로마제국을 부활시키고,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폐하께서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즉위하시면 모든 문제가 깔끔하게 풀리지 않겠습니까? 물론 기존의 모든 독일 소국들 역시 부활시키는 대신 신성로마제국에 가입해야겠지요.”
“오스트리아 제국도 마찬가지로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독일 연방을 개편하는 방식을 취하면 오스트리아는 이미 신성로마제국에 가입되어 있는 셈이니 큰 문제가 없습니다.”
전후처리는 사실 이 둘만 있으면 족했다.
러시아와 영국은 내실은 어쨌든 간에 형식상으로는 한 몸이 될 예정이고, 오스트리아는 거진 망했으니 프로이센과 영국-러시아의 의견만 일치하면 된다.
“러시아의 요구에 의해 상당한 희생을 요구받게 된 합스부르크에게 보상하는 차원에서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를 확대하고, 프랑스령 알프스 지역 일부도 떼어 보상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되면 합스부르크 가문은 황제를 칭하지 못하고 왕으로 강등된다. 불만이 없을 수가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센은 기왕 손에 들어온 오스트리아 영토에 덤이나 다름없는 헝가리를 놓을 생각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러니 신성로마제국이었다.
아예 독일 제국을 선포하는 것보다는 과거에 있던 제국을 복원하는 것이 훨씬 저항감이 덜할 테니까.
“프랑스는 어떻게 처리할 예정입니까?”
“이번에 새로운 제안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영국 외무장관은 나직이 말했다.
“아직 공표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스위스 방면에 파병되어 있던 우리 군이 프랑스군과의 전투 중 프랑스 대통령 루이 나폴레옹을 생포했습니다. 그런데 루이 나폴레옹이 자신을 파리로 돌아가게 해 주면 혁명 세력을 숙청하고 전쟁에서 빠지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들어주실 생각입니까?”
“격렬하게 저항하는 프랑스를 무혈로 항복시킬 수 있다면 좋은 일이기는 하겠습니다만…..”
이 부분은 아직 영국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배상을 어느 정도라도 받아내야 한다는 쪽과, 그렇게 따지면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배상을 받아내야 하는데 그게 말이 되느냐는 쪽.
어느 쪽도 루이필리프 왕정의 복고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이미 루이필리프는 국민들의 신망을 잃을 대로 잃어서 돌려보내봤자 권력을 얼마 잡지도 못할 게 너무나도 뻔했고, 프랑스가 너무 오랜 기간 동안 혼란에 빠져서 좋을 것도 없었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취약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독일 통일이 기정사실화된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아무리 러시아와 합쳐질 예정이라고 해도, 통일 독일이란 것은 프랑스를 되살려내서라도 견제해야 할 만큼 중요하지만……. 동시에 프로이센을 제외한 타 독일 국가들의 체제 취약성이 이번 혁명으로 여실하게 증명되어버린 만큼 독일 통일은 빠르든 늦든 이뤄진다고 봐야 했다.
그러니 1차적으로는 오스트리아를 이용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게 명백해진 지금, 그 다음으로 키워줘야 할 것은 다름아닌 그토록 견제해대던 프랑스라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오스트리아는 민족주의에 휩쓸려 프로이센에 편입될 수도 있지만, 프랑스가 민족주의가 강성해지면 프로이센과 정면충돌을 하지 타협할 리는 없으니까.
물론 언제든 불온세력들이 총 들고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건 영국이나 러시아도 마찬가지니까 별로 의미가 없다.
즉, 프랑스가 너무 과도하게 약화되는 것을 막아서 유럽의 균형을 다시금 맞춰내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영국과 러시아를 완전히 조화시킴으로써 그 스스로 유럽을 제패할 힘을 길러내야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아직 러시아는 그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기에는 힘이 부족하고, 두 국가 사이의 괴리감은 심하다.
“아, 그리고 이번에 교황령 문제가 대두되었지요, 교황 성하를 영국 정부가 모시고 있다고 했던가요?”
“예, 그렇습니다. 이탈리아 지역에 파병된 우리 군에 찾아오셨지요.”
“교황령을 신성로마제국에 편입시키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역사성을 따져보면 안 될 것은 없겠지만…… 가톨릭교회의 반발을 뚫는 게 가능할지가 일차적인 문제겠죠.”
물론 이곳에 있는 두 국가 모두 가톨릭과는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다.
프로이센은 개혁교회, 개신교 쪽이고 영국은 성공회, 러시아는 동방 정교회를 국교로 삼은 국가니까. 물론 이들 국가 안에도 가톨릭교도가 없느냐면 그건 아니기는 하지만, 적어도 국교는 아니다.
하지만 교황의 영향력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우를 범할 만큼 어리석은 이들은 열강의 외무장관 자리까지 오르지도 못한다.
“교황 성하께서 여러모로 협조해주시기를 바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물론, 교황 본인의 뜻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