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81)
유학(1)
증거인멸이라는 말을 아는가?
흔히들 착각하지만, 대한민국의 법 기준으로는 ‘자신의’ 범죄행위의 증거를 인멸하는 것은 증거인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범인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증거를 인멸하려 하는 행동은 상식적으로 누구나 당연히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성립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걸 법학적으로는 ‘기대가능성이 없다’고 하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증거인멸을 진짜 하면 형사사건에서는 증거인멸죄가 적용이 안 되더라도 가중처벌에 구속수사는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데다 초범이라도 ‘개전의 정이 없다’면서 기소유예 따위 없이 실형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건 대한민국 기준이고, 영미법을 적용하는 국가들의 경우에는 자기 증거인멸도 증거인멸죄로 처벌된다.
반대로 증거인멸죄가 반대의 경우로 적용되는 경우도 있는데, 타인의 형사사건에 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하거나 그걸 사용한 자 역시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쉽게 말해서 조작사건을 만들어내려고 검찰이나 경찰 차원에서 증거를 조작해도 증거인멸죄가 된다는 거다.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고?
내가 지금 하려는 게 그거라서 그렇다.
“체면 때문에 도난당했다는 걸 인정하지는 못해도, 이 유물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게 밝혀지면 빼도박도 못하고 내가 교토 사변의 배후라는 걸 인정하는 일이지.”
“그래서 없애겠다고요?”
“없애는 건 좀 그렇고, 세탁을 좀 해야겠다 이거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원형을 없애버리는 게 나을까?”
“아니면 전혀 생각지 못한 데에 둘 수도 있겠죠.”
도가니 앞에 쭈그려 앉은 조이가 입을 열었다.
“뭐, 그리 어렵지는 않은 주문이네요, 이게 어디서 나왔는지, 아무도 못 알아보게만 해주면 되는 거잖아요?”
“그래.”
“그러면 저한테 맡겨줘요.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돌려드릴 테니까요.”
그녀는 자신있다는 듯 미소를 비었다.
….. 진짜 믿어도 되나?
***
영국, 런던, 외무성.
“…… 그런 관계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일본에서의 공작은 중단했습니다.”
“이해합니다. 공작님. 그럴 만 했죠.”
“내각이 프로젝트의 재개를 원한다면 개역된 조슈 번 대신 사쓰마 번에서……”
“아니오, 그 부분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내각의 방침이 바뀌었거든요, 차라리 실패한 게 잘 된 일입니다.”
장관은 헛기침을 했다.
“우선 내각의 방침은 더 이상 프랑스에 대한 견제가 아닌, 독일을 중점적으로 압박하는 것입니다. 물론 프랑스가 너무 크게 놓아두어서도 안 되겠지만, 통합된 독일은 그 이상의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내각의 결론입니다.”
“제게 말해주셔도 되는 부분입니까? 저는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공작위를 받았습니다만.”
장관은 곧장 무슨 실없는 소리를 하느냐는 듯 답했다.
“그리고 여왕 폐하께 기사작위를 받았고, 백작위를 물려받으실 당사자이시며 황금 박차 훈장을 받아 교황청에서 기사작위를 받은 당사자이기도 하시죠.”
그러니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작위는 3개국에서 받은 거다.
영국에서 받은 기사작위 하나, 교황청에서 받은 기사작위 하나, 오스트리아에서 받은 베네치아 공작위 하나.
내가 국적은 영국인데 작위는 오스트리아 작위가 제일 높긴 하지만, 그래도 타국의 작위를 받은 건 명예로우면 명예로운 일이지 정치 활동 등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당장 은퇴하기는 했지만 아직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계시는 웰링턴 공작만 해도 합스부르크랑 스웨덴,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에서 각각 포르투갈의 빅토리아 공작위, 스페인에서는 시우다드로드리고 공작위, 네덜란드에서는 워털루 공작위를 받았는데도 영국 정치인으로써 멀쩡히 활동했다. 타국의 정치인이지만 자국을 위해 공헌을 크게 했으면 작위를 내려주는 게 딱히 이상할 일까지는 아닌 거다.
물론 내 자식 대에는 좀 문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영국에서 받은 기사작위랑 교황청에서 받은 기사작위는 다 내가 죽으면 끝인 단승작위인데 오스트리아에서는 세습작위를 줬거든…
“이제는 독일을 견제할 시기입니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 그냥 프로이센이라고 하죠. 프로이센은 해외 진출의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빈 합의도 그다지 지킬 생각이 없는 듯 하고요.”
“프랑스는 어떻게 대응하고자 한답니까?”
“필요하다면 일본에 군을 파견할 모양입니다. 물론 베트남에서는 손을 떼기로 결정했고 말입니다.”
루이 나폴레옹은 자리를 유지했다. 슬슬 프로이센을 견제할 필요성을 느낀 내각에서 그의 타협안을 받아들인 덕이었다.
루이 나폴레옹이 두 손을 들자 9개월을 끌던 유럽의 대전쟁은 순식간에 끝이 났고, 총성도 멎었다.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저항하는 잔당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미 대도시들은 모조리 탈환되는 등 상황은 명료했다.
황금여명회는, 혁명은 끝이었다.
“그럴 돈은 있답니까?”
“어떻게든 마련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그는 국내에서의 인기는 아직 유지하고 있으니 불가능하지는 않겠죠.”
“프로이센이 식민지 경쟁을 노린다면…..”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대규모 함대를 건함해야 할 텐데, 지금부터 부랴부랴 만든다고 해도 해군 전통을 쌓기에는 시간이 걸릴 테니 본격적인 식민지 경쟁에 나서기에는 시간이 걸리겠죠, 10년은 걸릴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후년에 저 유학생들이 조국으로 돌아가고, 베트남군도 철수할 때 다시 극동으로 가주시면 되겠습니다. 그곳에서 중국에 대한 대응방향을 검토해주시고, 프로이센의 대외진출을 저지할 방법 역시 강구해주십시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적당한 지역강국을 마련하는 거겠군요.”
일본에게 원 역사의 영국이 했듯이, 우리 대신 싸워줄 상대를 마련한다.
“그리고 가장 적당한 상대는 역시 조선이겠습니다.”
공장도 어느 정도 있고, 개항도 되어 있다.
“우리가 대규모 부대를 매번 파병하는 것보다는 현지인들을 무장시키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이미 베트남이 있습니다만.”
“그건 동남아시아고, 동북아시아는 또 따로 봐야 합니다. 동남아시아가 동북아시아까지, 반대로 동북아시아가 동남아시아까지 손을 뻗을 정도로 키워주면 언젠가 우리를 배신할 겁니다. 적절한 수준으로 키워야죠, 만약 문제가 생기면 이 둘을 상잔시키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조선이면 러시아를 통해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겠군요.”
“간접적인 지원보다는 저희가 직접 지원하는 게 낫습니다. 또한, 중국, 그러니까 태평천국을 붕괴시키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면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느 쪽입니까?”
“남부의 한족 향용들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청의 군사력이 사실상 붕괴되고, 민중의 불만은 이미 폭주하고 있었던 데다 열강들이 개입할 상황이 아니었던 등 여러모로 운이 따라줘서 봉기 후 불과 수개월만에 난징도 무너트리고 천하통일을 선언했겠지만, 황하 이북은 완전히 러시아에 넘어갔고 열강과의 불평등조약도 청산하지 못했다.
게다가 태평천국이 내가 아는 그 태평천국이라면 이미 내부 부패와 분열도 심각한 상황일 터였다.
이 상황에서 이미 원 역사에서 능력이 있음이 증명된 이들을 밀어준다면?
“남부 지역의 군벌들을 지원하면, 충분히 태평천국을 무너트릴 수 있습니다. 다만 황하 이북의 중국인들이 호응할 수 있어서……”
“그 부분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몽골 이남에 단 한 명의 중국인도 남겨두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예?”
순간 학살 이야기인 줄 알고 흠칫했지만, 강제이주 이야기였다.
“시베리아 개척뿐 아니라 이들을 동원해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철도를 부설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철도 부설이 완료되면 이들은 타 지역으로 이주되겠고요.”
“땅을 비워놓으면 타국인들이 들어가 살 가능성이 커집니다. 국경 전체에 빙 둘러 담을 쌓지 않는 이상 무의미합니다.”
“그래서 대대적인 개척과 이주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꾸린 이주민들뿐 아니라 이번 빈민구제법을 통해 해외 이주 대상이 된 인물들 중 상당수가 이 지역에 재정착될 것입니다.”
그 많은 인구를 다 이주시키는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일단 그렇게 할 예정이라니까.
“그래도 주둔군 규모를 늘리는 게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한 번 일어난 혼란이 러시아령까지 확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건 러시아 측과 논의할 사항이겠군요.”
나는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중국 인구가 4억 명쯤.’
그 중에서 지금 러시아 영토로 넘어간 영토에 사는 인구가 아슬아슬하게 1억.
그 인구를 다 강제 이주시키겠다고? 진짜? 한 100년 줘도 빡셀 거 같은데.
‘러시아 측에서 일을 너무 쉽게 보나 보네……..’
물론 내가 여기서 말을 꺼내면 그 문제까지 떠맡게 될 것 같으니 그냥 닥치고 있기로 결정했다.
***
집에 돌아왔을 때, 다락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으로 올라가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안 자고 뭐하나, 연?”
“악상이 떠올라서요.”
“어떤 악상이지?”
“들려드릴까요? 마침 작곡은 다 마쳤는데 말이죠.”
“…… 부탁하지.”
천천히, 현이 울리면서 선율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저 하늘로 날아올라 무지개에 닿을 정도로 들뜨게.
하지만 선율은 모두가 닿기를 원하는 무지개로 향하지 않는다. 그것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
때로는, 모두가 선망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무가치하니.
그것은 마음의 송곳이자 독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인생의 시작이다. 재산도, 지위도, 명예도 그에 비하면 먼지에 불과하다.
유리와도 같아서, 함부로 붙들거나 너무나 세게 쥐면 깨어져나갈 그것을 드러내는 것은 하나의 도박이다. 다 가지거나,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마저도 빼앗기거나.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한 사람이 있다.
소중한 사람, 잊고 싶지 않은 사람, 잊으면 안 되는 사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슴을 아련하게 아프게 하는 사람, 전해야 하는 것을 전하지 못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
옷깃을 스치는 것도 하늘이 정한 인연이니, 스쳐가면 인연이고 스며들면 연정이라.
“그런 건가?”
“그런 거죠.”
“연, 나는…..”
“알고 있어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그녀의 고운 손가락이 내 손등에 얹어졌다.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요, 동방에서는 능력이 있는 남자가 여러 여인을 안는 일, 흔해요.”
“내가 능력이 있나?”
“제 조국을 구해주셨죠, 그거 하나면 자격의 증명은 충분하지 않나요.”
그녀의 고운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인파 속을 천백번 임 찾아 헤매다가 문득 고개 돌리니, 그 님은 저쪽 희미한 불빛 아래 있도다.”
그녀는 빙긋 웃었다.
“드디어 찾았는걸요. 백아가 종지기를 찾았듯이. 저와 같은 피를 타고난 자매조차 알지 못하는 저를 알아줄 사람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