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84)
혁명(1)
요즘 세상 살기가 팍팍하다.
그러니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투잡 쓰리잡을 뛰는 거겠지, 따라서 나 역시 한 사람의 대영제국 시민으로써 일을 여럿 한다.
그리고 지금은 외무성 일을 할 시간이다.
“조선에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런던으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3개월 늦은 정보, 심지어 현지 영국 공사관에서도 조차지와 거류지를 침범하지 않는 한 개입하지 말고 대기하기로 결정하고 정보만 수집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5~6개월 전의 정보다.
근데 왜 그걸 이제 보고하냐고.
“초기에는 단순한 지역 민란이었습니다. 좀 규모가 크기는 했지만 조선 정부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규모라 판단했고, 공사관에서도 큰 비중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민란은 순식간에 규모를 키웠고, 중앙군까지 이들을 진압하러 파병되어야 했다.
문제는 그렇게 텅텅 비어버린 어수선한 한성에서 반정이 터진 것.
안동 김씨를 척살하고 근왕하자고 들고 일어난 놈들이 당연히 민중일 리는 없고 풍양 조씨를 위시한 안동 김씨들을 뺀 세도가들, 거기에 안동 김씨가 양이들과 붙어먹었다고 생각해 좋지 않게 보는 걸 넘어 밥그릇을 뺏길 지경인 여러 세력들이 합세했다.
그렇게 안동 김씨는 순식간에 깨강정이 났는데…. 이미 골골한 상태여서 제대로 업무를 보지도 못하고 있던 왕이 피를 토하더니 골로 가 버렸다!
반정의 밤에 도피에 성공한 안동 김씨 세력이 즉시 세력을 규합해 풍양 조씨가 시역을 저질렀다면서 세력을 결집해 반격에 나섰고,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안동 김씨의 영향권 내에 있던 세력들을 발악하듯 결집하자 해 볼 만한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상황이 진행될 때까지 걸린 시간, 딱 7일.
안동 김씨를 역적으로 몰아 관련자들을 모조리 쳐내기에도 촉박했고, 민란 진압군도 안동 김씨 라인이었기에 그 병력들마저도 철수시켜서 내란에 동원되었다.
당연하지만 우리 공사관도 공사관 수비대를 투입해서 한 몫 걸치고 이권을 뜯어내……지는 못했다. 아니, 나는 당연히 그랬을 줄 알았는데 전 부대 영내대기하고 런던의 훈령을 기다려? 니들 대영제국 외교관 맞아?
“공작님이 안 계셔서 주저한 거 아닙니까?”
“…….예?”
“공작님의 허가 없이 전쟁에 끼어드는 등의 일을 진행하려니까 현지 공사도 좀……”
“아니, 전 그 당시 아무 직책도 안 맡고 있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공작님의 대 아시아 영향력을 생각하면….. 현지 직원들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인도 동쪽의 아시아 지역에 대해서 공작님만큼의 이해도를 가진 사람은 문자 그대로 없으니까요.”
동아시아는 쉽지 않다.
잘못 발 딛는 순간 프랑스 꼴이 난다는 게 전 유럽에 광고되었는데-물론 거기에는 내가 지원을 해 준 게 크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극히 적다-외교관이 되어서 동아시아를 인도나 아프리카 토인 대하듯 막 대할 만큼 개념이 없는 인간은 많지 않다.
당연히 해당 국가 내정 문제에 함부로 끼어들 수도 없다. 유럽이나 오스만, 이집트만 같아도 이게 낄 데다 안 낄 데다 구분이 가능한데, 동아시아는 워낙 생소하니까.
“그러니까 저한테 물어보고 대처하려고 아무것도 안 했단 거군요?”
“리스크를 최소화한 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적어도 현지 입장에서는요.”
이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 어쩔 수 없다는 답을 돌려준 차관 나으리에게서 시선을 뗀 나는 보고서를 계속 읽었다.
“뭐 그렇다 칩시다. 그런데…… 내전 끝에 풍양 조씨가 이기긴 했는데, 또 제 3세력이 개입해서 이들을 궤멸시켰다고요?”
“수는 많이 쳐도 수십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다만 이들 모두가 중무장했고 제법 훈련된 대상들입니다. 공사관 수비대와 비슷한 수준들인지라 공사관 수비대를 동원하면 쉽게 진압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공사관 수비대는 그 시점에도 영내 대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놈들이 한양으로 상경한 농민 반란군들과 합류하면서….. 아니, 그런데 풍양 조씨는 뭘 했답니까? 그 정도 수에 야포도 없는 놈들에게 무력하게 한성의 통제권을 잃었다고요? 그 와중에 경복궁까지 홀랑 태워먹고?”
“순서가 반대입니다. 경복궁 화재는 한양 시가전이 종결될 때 발생했으니 풍양 조씨 세력이 공격당하기 직전이었죠.”
“그리고 이들이 농민 반란군과 합류해 한성을 점거한 상태다?”
“그렇습니다. 또한 그들의 대표부는 어떠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조선과 대영제국 사이에 맺어진 조약의 효력은 유지될 것이라고 공사관에 약속했습니다.”
“…….. 그럴 리가.”
이 불평등조약이 조선의 경제를 파탄낸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데, 그걸 놔두겠다고? 서양에 대해 알 만큼 알 거라고 추측되는 이들이 영국과 조선의 조약 효력을 유지시키겠다고?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차라리 자기들이 정권을 안정시킬 때까지 시간을 끌려는 거라면 모를까. 당장 태평천국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이 가는 이유가 기존의 중국-유럽 간의 불평등 조약들을 폐지하거나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가 아닌가.
“유럽인들, 그것도 제법 고등교육을 받은 유럽인들이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겠군요.”
조선인들의 유럽에 대한 이해도가 갑자기 급증한 게 아니라면 그거밖에 없다.
나는 펜을 들었다.
“우선 공사관 차원에서는 수집할 수 있는 정보를 다 수집한 거겠죠?”
“그럴 겁니다. 저들도 견책을 당하기는 싫을 테니까요.”
“그럼 공사관 차원에서 수집하지 못할 정보를 알아봐야겠군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현재 대 조선 원정군을 편성할 여력은 없습니다.”
“설령 군사개입을 해야 한다고 해도 공사관 수비대나, 추가로 고용하는 용병 선에서 끝낼 테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아 주십시오.”
나는 한숨을 쉬었다.
***
“그러니까 카를, 지금 왕실을 폐지하고 농민들을 주축으로 한 공화국을 선언하기에는 너무 이르단 말이네, 전국적인 저항에 부닥칠지도 몰라!”
“혁명이 완수되었잖나. 다른 왕을 모시자니, 그런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네!”
“충분한 군사력을 손에 넣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네, 왕을 없애겠다고 하면 저 밖의 무수한 군중이 다 적으로 변할 거야!”
당장 왕정 폐지와 공화국 선포를 주장하는 마르크스와 아직 시기상조이니 실권을 장악해나가면서 때를 노리자고 주장하는 엥겔스의 말다툼을 듣던 프루동이 입을 열었다.
“왕을 세우고 싶어도 세울 사람도 없지 않나, 반란이 우려된다면 지원군을 받아오면 그만이지.”
“지원군……말입니까?”
“용병이든, 아니면 우리를 도와줄 타 국가든.”
“누가 우리를 돕겠습니까? 용병은 좀 그럴 듯 하군요,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좀 고용해오면 되겠습니다. 돈이 있다면 말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셈법을 우습게 보지 말게, 마르크스.”
조지프 프루동은 냉소적으로 말했다.
“우리의 행동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된다 여기면 서로의 뒤통수를 칠 이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내 이름, 에드워드 젠티안, 베네치아 공작이며 대영제국의 훈작사, 뭐 여기저기 명예박사나 그런 것도 많고, 작가로써의 명성은 전 유럽을 울리고 있으며 대영제국의 핵심 극동 외교통.
그리고 여기는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내각이 한데 모인 회의장.
근데 내가 왜 여기 있냐고, 난 야인이야, 야인이라고!
“우선, 현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브리핑해드리겠습니다. 프랑스에서 탈출한 불온분자들의 추적은 그간 별 성과가 없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극동, 조선에서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즉 이번 반란 사건은 프랑스 출신의 불온분자들이 조선에서 그 버릇을 못 버리고 다시 민중을 선동하여 일으킨 것으로 사료됩니다.”
“극동의 촌구석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굳이 신경쓸 거 있겠습니까?”
유럽 한가운데에서 혁명이 터지면 문제지만, 극동 촌구석이면 그러려니 하고 무시하기 충분하다. 대부분의 각료도 비슷한 생각인지 뭐하러 이런 문제로 소집까지 했냐는 표정이다.
“문제는, 여기에 프로이센이 개입한 정황이 있다는 겁니다. 배부된 자료 4페이지를 봐주십시오.”
종이를 넘기느라 사각거리는 소리가 회의장에 울려퍼진 뒤, 외무장관의 설명이 이어졌다.
“한양에 있는 나이팅게일 병원에 근무하는 본국 인원들이 수집한 자료입니다. 부연하자면 한양에 있는 나이팅게일 병원은 조선 유일의 근대식 병원이며, 조선에 장기 거주하는 외국인들 상당수는 나이팅게일 병원에서 근무합니다. 그리고 그 병원의 원장이 바로 이곳에 자리하신 젠티안 공작 각하의 부인이신 플로렌스 젠티안 여사님이시기에 공작님께서 협조를 구해 환자 명단을 빼왔습니다. 그리고 현장 근무자들 역시 독일인이고, 군인일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 다수 방문한 것은 사실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즉, 프로이센이 조선의 혁명을 지원했거나.”
“지원하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의 손에서 조선을 떼어낼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이거 분위기가 점점……..
“무작정 원정군을 꾸리는 건 하수입니다. 그럴 만한 재정도 없다고 듣기는 했습니다만, 괜히 군사작전부터 했다가는 현지의 반감만 사고 영향력만 상실한 채 실패할 가능성이 큽니다. 우선 현지 상황을 알아보고, 공사를 통해 내분을 유발하는 게 더 적절합니다.”
혁명에 성공한 놈들 사이에서 내분이 안 나는 일이 있나? 당장 프랑스 혁명에서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을 비롯한 나머지 세력들이 대립했고, 러시아 혁명이 끝나고 나니까 볼셰비키랑 멘셰비키가 대립했고, 볼셰비키가 이기고 나니까 또 내부에서 대립하다가 스탈린이 마지막에 이겼다.
조선 침공 같은 짓은 하지 말자,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당한 꼴을 우리 영국도 조선에서 당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자 분위기가 일변한다.
“그렇다면 공작님께서 이 일을 맡아주시는 게 가장 적절할 것 같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수상님, 잠깐만요, 네?
아니, 언제고 극동에 갈 생각은 있긴 했다. 내가 뿌려놓은 씨앗은 어느 정도 회수를 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닌데? 아직 유학생 문제라든가, 아무튼 간에 유럽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 많은데?
에드워드 스미스스텐리 총리의 말에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젠티안 공작은 다년간의 극동에서의 실무 경험을 통해 대영제국 최고의 대 극동 외교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충성심과 영향력 또한 부족함이 없습니다.”
재무장관,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얄밉게 입을 놀렸다.
설마 내가 극동에서는 좀 썼으면서 유럽에 오자 정작 셜록 홈즈는 내팽개쳐놓고 다른 일이나 하고 있는 거 때문에 그러는 거냐, 이 배신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