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sword emperor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또 다른 꿈 (4)
-내력? 그거 소설에서나 나오는 거 아님?
-그렇게 따지면 마력도 마찬가지지!
-아니, 그래도……. 말이 되냐? 내가 세상 망하기 전에 무협소설 매니아였거든? 그거 완전 개허풍 개구라 찐상상이라고!
-내력이 그렇게 대에단하면 무림고수는 왜 검신밖에 없음? 각성자들처럼 수두룩 빽빽하게 무림고수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님?
-맞어, 맞어. 1차 블랙데이에는 각성자들도 다 조밥이었는데 그때도 무림고수가 괴물 잡았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다 들린다. 이놈들아.
관중들은 혼란에 빠져 서로서로 속닥거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비무대 위로 관중들이 조잘대는 소리가 두서없이 날아들었다.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다고 했는데. 봐도 못 믿는 놈은 ㅈ되어야 마땅하다.
왜 보여줘도 믿지를 못하니. 균열이 열리고 손에서 불 뿜는 게 현실인데 왜 무림이 실재했을 거라고 믿지를 못하니.
답답해 뒈지겠는 내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당연히 사실이지! 못 믿는 새끼들 누구야? 엉?
대체 어떤 놈이 이런 명민한 소리…….
그럼 그렇지, 하하민이다.
-헛소리? 지금 림이 형이 헛소리를 했다고? 헛소리는 네놈의 혓바닥이 지껄였는데. 이 혓바닥을 잘라… 악!
이건 김강산이다.
나는 한숨을 삼키며 탄지공을 쏘아내 김강산의 대가리를 맞췄다. 김강산이 이마를 문지르며 불만스럽게 씩씩거렸다.
윽박지른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고. 이 성질 급한 은영단 놈들아. 대체 니들은 누구를 닮아서 그렇게 성질머리가…….
음. 말을 말아야겠다.
“이제 시작해도 되겠나?”
“아까부터 계속 됐었거든요?”
“생각이 많아 보이던데.”
“내가요? 설마요. 길드장님이야말로 생각이 많았겠지요.”
비무대 위, 내 정면에 선 박민교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이나 던졌는데. 정말이었냐.
“한 번 졌는데 재도전하시다니 그 사이 새로운 경지라도 개척하셨어요?”
“자네 정도의 고수와 비무를 할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말아야지.”
“이야. 태도는 이미 고수십니다.”
“가르침을 부탁하네.”
박민교가 포권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패배를 시인했다.
“……내가 졌네.”
차고 넘치도록 가르침을 받은 녀석의 두 팔이 결(結)과 산(散)에 얻어맞아 너덜너덜했다.
오늘 내가 날 잡았거든.
내력 바닥나서 내상을 입는 한이 있어도 이 십만 관중 앞에서 길드장들을 대상으로 내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는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뒤이어 무등우협 유재이가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더 많이많이 배우고 가세요. 기껏 계룡까지 오셨는데.”
***
최지수는 비무대 위를 올려다보았다.
무등우협 유재이가 생성한 화염벽이 십여 미터 높이로 솟구쳤다.
한참 떨어진 자신에게까지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맹렬한 청염벽이었으나.
‘저런 실력으로 림이의 상대가 될 리가 없지.’
스촤앗.
흰 검기가 화염벽의 중앙을 꿰뚫었다.
몇 번이었을까.
열여섯 번? 열여덟 번?
한층 발전한 최지수의 동체시력으로도 확신하기 어렵도록 빠른 연격.
순식간에 불길을 가른 서림이 불꽃 사이로 걸어 나왔다.
고개를 좌우로 까닥이며 서림이 말했다.
“숨겨둔 수가 있으면 다 꺼내지? 나중에 징징거리지 말고.”
유재이는 화염술사.
바로 따라붙어 거리를 좁히면 쉽게 이길 수 있을 텐데 서림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력의 존재를 증명하겠다고 했지. 사람들이 믿으면, 세상에 내력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서림에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초월자와 필멸자.
마력과 내력.
염화검제와 청룡을 잡고 돌아온 서림이 은영단을 모아 놓고 세상이 멸망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을 때.
처음에는 서림의 설명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설명의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서림의 말은 고장난 라디오처럼 곳곳이 가려져 있었다.
모든 내용을 이해한 것은, 대가리를 후려 맞으면서 서른 번쯤 반복해서 들은 후였다.
하지만 최지수는 그 내용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 최지수의 귀를 잡아끈 이야기는…….
‘5차 블랙데이가 기어이 시작된다는 것이지.’
1차 블랙데이와 2차 블랙데이 사이에는 6년의 간격이 있었다. 2차와 3차 사이에도, 3차와 4차 사이에도.
6년간의 간격.
하지만 4차 블랙데이 이후, 그 두 배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균열은 잠잠했다.
블랙데이가 완전히 끝났을까.
이제 균열에서 괴물이 튀어나오지는 않는 것일까.
지상에 자리잡은 괴물만 몰아내면 인간은 다시 이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이 조금씩 싹텄었다.
하지만.
서림은 모두 헛된 희망이라고 말했다.
-세상이 그렇게 마음대로 굴러가겠냐? 그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균열이 생기지도 않았겠지.
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번에 평양성에서 가져온 재료로 만들 각성제는 그 대비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
‘준비는 다 되었나?’
평양성으로 떠나기 전, 서림이 몇 가지를 지시했었다.
최지수는 머릿속으로는 서림이 그것들을 점검하며, 눈으로 비무대 위의 서림을 쫓았다.
콰가가가가!!!!!
서림의 적(積)이 유재이의 화염탄과 격돌했다. 사람 머리통만한 백염탄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유재이가 쏟아내는 불길의 청색은 이제 희미해져 있었다.
마력이 거의 바닥난 모양.
길드장들 중 가장 약한 축이라더니, 과연 그랬다.
‘저 정도라면 림이가 아니라 강산이에게도 승리를 거두기 어렵겠구나.’
최지수는 유재이의 경지를 가늠했다.
자신이 상대하면 어떨까.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렵겠으나, 무조건 패배하리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자신이 아니라 김강산이나 서은창이라면 유재이에게는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무적권왕과 해동검과도 비등하게 싸울 수 있을 듯했다.
‘우리 계룡문이 언제 이렇게 컸나.’
모두 서림 덕이었다.
서림을 따라서, 죽기 직전까지 훈련하고 죽어라 괴물을 잡은 결과였다.
최지수는 숨 가빴던 과거를 되짚으며 검을 휘두르는 서림을 응시했다.
가느다란 빛줄기 같은 검기가 폭음을 가르며 유재이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천룡검신의 무위가 대단하군.”
옆에서 말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인기척을 느낀 최지수가 고개를 돌렸다.
염화검제였다.
최지수의 옆에 있던 김강산이 세모눈을 한 채 염화검제를 노려보았다.
“새삼스럽게 무슨 개소리?”
최지수는 김강산의 발을 꽈악 즈려밟으며 염화검제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 왜!”
“어른한테 태도가 그게 뭐냐?”
“염화검제가 나랑 무슨 상관인데 어른이냐?”
어쩐지 머리가 아픈 기분에 최지수가 뒷목을 잡았다.
염화검제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마음 쓰지 말게. 계룡좌룡이 허례허식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감사합니다. 검제님께서 평양성 일을 도와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 역시 감사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염화검제가 서울성을 떠난 횟수는 손에 꼽혔다.
보육원의 원생이던 시절, 최지수는 그런 길드장들을 비판했었다.
자신의 성을 돌보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들. 성 밖의 야인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무책임한 인간들.
그러나 요즘 들어 최지수는 길드장들에 대한 평가를 바꿨다.
‘큰 조직을 이끌려면 어쩔 수 없었을까.’
서림이 제주행을 결정했을 때, 최지수는 선뜻 찬성하지 못했다.
그 도박이 계룡문에 가져올 위험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
하지만 최근 염화검제의 행보는 과거와 많이 달랐다.
그가 제주 대탈출 작전에 직접 참여한 것도 놀라웠지만, 그 이후는 더욱 놀람의 연속이었다.
서림과 함께 청룡을 소멸시켰고, 조선국과의 전쟁 위험을 무릅쓰고 평양성에 동행했다.
“계룡우룡. 자네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
최지수는 은영단이 모여 있던 곳에서 멀어져 염화검제를 따라 걸었다.
염화검제가 지나가자 빽빽하게 모여 있던 관객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림이가 검제님 덕분에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하더군요.”
“천룡검신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닐 텐데.”
최지수가 머쓱한 얼굴로 입가를 쓸었다.
실제로 서림이 한 말은,
-길드장들? 걔네들 없었어도 조선국 조밥이던데. 뭐, 시간은 좀 더 걸렸겠지만.
였으니까.
“림이가 속마음 표현하기를 어려워하는 편이지요.”
“그렇게 착각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네.”
최지수는 대꾸하는 대신 조심스레 이정용을 살폈다.
한반도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자.
한반도 최대 길드인 대한길드의 길드장.
길드 연합의 회장.
그 염화검제는 최근 들어 계룡문에 호의를 보이고 있었다.
물론 그 호의는 고마웠으나…….
“우룡은 무얼 그리 의심스럽게 보나? 이제 대한길드도 계룡문의 친구네.”
“염화검제께서 친구를 사귀신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요. 염화검제의 인간관계는 적과 아군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동안은 친구로 삼을 만한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지.”
그 말에 박힌 가시를 최지수는 놓치지 않았다.
이정용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속삭이는 목소리는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작아져 있었다.
“그리고. 블랙데이가 시작되면 친구가 많은 편이 대한길드에게 이익이 되지 않겠나?”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최지수가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블랙데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단어였다. 하지만 외면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림이와 함께 초월자를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만났다고 해야 할까? 나로서는 내 몸을 빼앗기는 기분이었네만.”
“빼앗긴다…는 말씀이십니까.”
“자네도 계약을 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걸세.”
이정용은 눈앞의 남자를 살폈다.
어떤 이들은 계룡좌룡이 계룡문의 2인자라고 말하지만, 이정용은 동의하지 않았다.
천룡검신이 계룡문의 심장이라면, 계룡우룡은 계룡문의 머리.
“계룡우룡 자네라면 계약하자는 초월자가 줄을 이을 걸세.”
계룡우룡에게 어떤 초월자도 계약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성장세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계약은 문이 열린 동안에만 이루어진다. 하지만 지난 블랙데이에 계룡문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4차 블랙데이까지는 일종의 튜토리얼이나 마찬가지.
본게임이 시작되는 5차 블랙데이부터는 훨씬 많은 계약자가 등장할 것이다.
지금까지 초월자들은 필멸자를 충분히 지켜보았을 터.
누가 계약자로 마땅할까. 어떤 필멸자가 이름을 널리 알려, 자신의 격을 더욱 높여줄까…….
지금도 그들은 이 세상을 주시하고 있다.
계룡우룡에게 침 발라놓은 초월자가 최소 다섯은 존재하리라는 데에 이정용은 자신의 검을 걸 수도 있었다.
파아아앗!
서림의 검기가 백염구를 두 조각으로 잘랐다.
그 사이로 쏘아져 나간 강기의 구슬이 화염벽을 뚫고 유재이의 가슴팍에 격중했다.
“우와아아아아!!!!”
“천룡검신이 또 이기겠네!!!!”
어떤 관중의 외침처럼, 비무는 거의 끝나가는 중이었다.
비무대 위 서림을 응시하며, 염화검제가 입을 열었다.
“계룡우룡.”
“말씀하십시오.”
“청룡을 소멸시키고 돌아온 뒤 천룡검신의 상세가 어떠했나?”
“예?”
“피를 토하거나, 고통을 호소하지는 않았나?”
그날, 청룡을 잡았을 때.
주시하는 예언자는 균열을 닫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 대가가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그 ‘대가’가 무엇인지 짐작가는 바가 있었다.
선천진기(先天眞氣).
‘대체할 수 없고 채울 수도 없는 것이라면, 그것밖에는 없지 않나.’
아마 서림이 이전에 현무의 둥지를 열 때에도 선천진기를 동원했을 터.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청룡의 둥지를 열고난 후였다.
미리 알았더라면 청룡을 소멸시키자는 제안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무의 둥지를 열었을 때는 꽤나 부상이 심했었지. 청룡의 둥지를 열었을 때는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으나……. 그 속을 어찌 알겠나.’
책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선천진기란 사람의 타고난 생명력이라고 했다.
어떤 책에서는 선천진기도 다른 내력처럼 다시 쌓을 수 있었으나 어떤 책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 이 세계의 선천진기는 후자일 것이다.
균열을 여는 대가가 가벼울 리는 없으니.
이정용의 머릿속에 여러 번 반복한 상상이 다시 떠올랐다.
서림이 쏘아낸 흰 빛무리가 균열과 격돌하는 광경.
괴물이 튀어나오던 균열이 사라지고, 생명력을 모두 소진한 서림이 균열이 사라진 땅바닥으로 추락하는 광경.
‘그렇다 해도 내가 무슨 상관일까.’
균열을 소멸시키고 서림이 죽는다면, 대한길드의 길드장 입장에서 그보다 더 좋은 결과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상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 한구석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