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sword emperor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낫지 않는 상처 (2)
쇄도해 들어간 내 발이 녀석의 바로 앞에서 방향을 바꾸었다.
취원보(取猨步)의 보법을 밟아 녀석의 뒤를 잡고, 어깨를 향해 의혼검을 내리그었다.
쉬익!
녀석이 왼쪽으로 회전하며 공격을 회피했다.
지금까지 몇 번 반복되었던 동작.
‘이 다음은, 하체에 속성 공격이 오겠지.’
화르륵!
예상했던 대로, 바닥에서 불길이 올랐다.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오는 열기.
재빨리 오른쪽으로 뛰어 불길을 피하며, 수평으로 검을 휘둘렀다.
의혼검의 검날이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공간을 갈랐다. 녀석의 허리를 동강낼 기세지만.
이정용이 그렇게 쉬운 상대는 아니다.
내 공격 못지않은 반응 속도로, 이정용이 검을 내리그었다.
두 검이 맞부딪치기 직전.
‘역시 반응이 빠르네. 근데 그거, 허초거든.’
휘두르려던 검을 회수하며 단번에 우하단을 찔렀다.
검끝이 향하는 곳은 녀석의 무릎. 하지만 이것도 역시 허초. 진짜 공격은 그다음…….
‘…응?’
콰지직.
손바닥 아래에서 뼈가 박살나는 느낌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내 뼈가 아니다. 이정용의 뼈다.
의혼검의 검끝이 이정용의 무릎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내가 검을 회수하기 직전, 이정용이 도리어 무릎을 올려차 자신의 무릎을 검에 찔러 넣은 것.
나는 이정용의 무릎에 박힌 의혼검을 재빨리 뽑아냈다.
아니, 뽑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검은 무엇인가에 붙들린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계룡을 공격했던 사혼삼살도 비슷한 수를 썼었다.
자신의 근육과 피부를 마력으로 굳혀서 상대방을 붙잡는 기술.
하지만 상당한 부상을 각오해야 한다 들었는데……?
‘아니, 이딴 비무에 왜 이렇게 진심이냐고!’
다른 생각을 할 틈은 없었다.
녀석의 검이 내 어깨를 향해 짓쳐들고 있었으므로.
호신강기만으로는 때울 수 없는 강맹한 공격.
이건 피해야 한다.
순식간에 판단을 마친 나는 검 손잡이를 놓으며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바로 그 순간.
‘으윽!’
이정용의 공격이 어깨에 격중했다.
가죽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었다.
통증의 강도를 보니 뼈가 부러진 모양이다. 피부는 통째로 녹아버렸겠지.
‘……이 검제 새끼가. 미쳤나?’
어금니 사이로 새는 신음을 꿀꺽 삼키며, 나는 기운을 일으켰다.
의지에 따라,
단전을 휘돌던 진기가 기맥을 타고 올랐다.
어깨뼈가 부러진 왼팔이 덜렁거렸으나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뼈를 내주었으니, 뼈보다 더 큰 것을 취해야 한다.
곧, 내 손이 흰빛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대충 형성한 적(積)으로는 이정용의 화염방어막을 뚫을 수 없다.
녀석에게 유의미한 상처를 입히려면 결(結) 정도는 되어야 한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정용의 공격이 이어졌다.
공격 타이밍은 정확했으나 검격에 실린 마력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비무라는 사실을 잊지는 않은 모양.
퍽! 퍼벅!
연환퇴(連環腿)로 검등을 쳐내고, 취원보(取猿步)로 공격을 회피하며,
진기의 운용에 정신을 집중했다.
흘러나간 내기(內氣)가 외기(外氣)와 뒤엉켰다.
한 몸처럼 얽힌 내기와 외기가 다시 단전으로 흘러들어왔다.
불어난 강물처럼 거세게, 두 기운이 단전을 휘돌았다.
‘되었다.’
삼반공의 3절, 결(結).
비스듬히 내리그은 검격을 회피하며,
깊숙이 오른발을 내디뎠다.
의혼검이 꽂힌, 이정용의 피 흘리는 무릎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발 디딘 모양을 보니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의 큰 부상이다.
이대로 반대쪽 무릎을 결(結)로 박살내면 녀석이 아무리 비무를 계속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될 터.
콰아아아!!!!
오른손에서 발출한 결(結)이 녀석의 남은 무릎에 격중했다.
검기(劍氣)의 결(結)이 아닌,
권기(拳氣)의 결(結).
날카롭게 꿰뚫는 대신, 부수고 으스러뜨리는 권기가 녀석의 무릎뼈를 단번에 아작냈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이정용의 몸이 비스듬히 기울었다.
불썽사납게 넘어지지는 않았다.
…아쉬워라.
비스듬히 물러서는 녀석을 향해 쇄도하며 기운을 일으켰다.
오른손 위에 형성한 기검(氣劍)을 녀석의 목줄기를 향해 겨누는 순간.
녀석이 드디어 약속된 말을 뱉었다.
“내가 졌네.”
조금 전까지의 기세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담담한 패배의 시인.
……이럴 거면서 뭘 그리 열심히 싸웠대.
처음부터 약속한 대로 적당히 하면 얼마나 좋았겠냐.
‘아파 뒈지겠네.’
내상이 아닌 외상으로 이 정도 통증은 오랜만이다.
호신강기를 뚫어낼 정도의 상대는 흔하지 않으니까.
약속된 비무라고 내가 마음을 놓지 않았더라면 이 지경은 되지 않았을 테지만.
오른쪽 어깨가 피로 범벅이었다.
비무대 아래 모여선 은영단 애들의 얼굴이 창백했다.
‘제발 그대로 가만히 있으라고.’
내 필살의 눈빛이 통했다.
특히 김강산은 당장 뛰어 올라와 염화검제 뺨다구를 갈기고 싶은 것을 필사적으로 참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애새끼들이 철이 좀 들었네.
나는 통증을 참으며 불끈, 멀쩡한 나머지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뒤늦게 승패를 깨달은 관객들이 귀 따가운 환호를 쏟아냈다.
“…천룡검신이 이겼어??!!!”
“마지막 봤냐? 봤어? 나 보이지도 않았는데?!”
“끼아아아아!!!! 멋있어요!!! 검신님!!!!!”
“싸!! 랑!! 해!! 요!! 천!! 룡!! 검!! 신!!”
나는 환호를 지르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회복술사가 재빨리 올라와 이정용의 무릎에 힐을 했다. 질질 흐르던 피가 멈추고 구멍 속 살이 실시간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천룡검신. 자네는 힐을 받지 않는가?”
이정용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계단을 내려가려던 계룡문의 회복술사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지금껏 나는 거의 힐을 받지 않았다.
몇 번 시도한 결과 효과가 미미하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
상처 회복은 안 되고, 철철 흐르는 피를 멈추는 정도였다.
딱 보통의 일반인이 힐 받는 수준.
회복술사 부르고 어쩌고 할 시간에 차라리 스스로 혈도를 짚는 편이 빨랐다.
“대표님, 힐 할까요?”
“…뭐. 해 보든지.”
익숙한 빛무리가 내 어깨를 휘감았다. 조금 따뜻하고 어쩐지 푹신한 느낌.
각성자들에게 듣기로는 마력이 반강제로 상처부위를 향해 끌려들어가고 몸속에서 슬라임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기묘한 기분이 든다던데.
물론 나와는 무관했다.
피는 멎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녹아버린 살이 차오르고, 부러진 어깨뼈가 으드득 으드득 재생성되는 기적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뼈가 드러난 내 어깨를 바라보던 회복술사 녀석이 꼴깍 침을 삼키고는 물었다.
“…대표님, 정말 각성자가 아니십니까?”
“아니라니까. 진짜 너네까지 입 아프게 할래? 한 번 더 말하게 하면…, 알지?”
“예! 아니죠! 아닙니다! 그럼요! 아니고말고요!”
녀석이 재빨리 사정권 밖으로 튀었다.
그 모습을 응시하던 이정용이 눈썹을 찡그리며 나지막하게, 하지만 커다랗게 말했다.
말하자면, 확인사살이었다.
“검신 자네.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군. 믿어지지 않지만……. 각성자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사실이군.”
감정 몰입 100퍼센트.
호흡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은 이정용의 독백조의 목소리가 비무대를 아스라이 울리고 관객석으로 퍼져나갔다.
연기대상은 가뿐히 거머쥐고도 남을 인생연기.
‘비무에 진심이 아니라, 연기에 진심이었던 거냐…….’
나마저 속여버린 이정용의 열연에 관객들은 모든 의심을 버린 채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레알로 각성자가 아니시구나.”
“그러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음. 그건 아마 안 될 걸.
환생한 검황에 전직 초월자인 나도 꿍쳐둔 영약을 사정없이 처먹고 죽기 직전까지 수련을 하고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겨우 이 정도 경지에 올랐으니까.
그래도.
‘작은 내력이야 가질 수 있겠지.’
무재(武才)는 타고나는 법.
하지만 삼류 무사의 수준까지는, 누구나 노력하면 가능하다.
모두가 두억시니를 잡을 수는 없으나, 누구도 구울에게 죽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내력이고, 그것이 무공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내력이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이유다.
***
“염화검제 그 사람 진짜 너무하네요. 대표님은 이거 힐도 잘 안 되는 거 뻔히 알면서 비무에서 이렇게 공격을 해? 양심 어디 갔대요?”
“나는 염화검제 다리 박살냈는데?”
“그쪽은 각성자잖아요! 며칠 후면 펄쩍펄쩍 뛰어다닐 걸요? 대표님은 이거 낫는 데 보름은 걸린다고요!”
“악! 하하민, 아프다고! 살살 해!”
“다쳤으니까 아프죠.”
하하민이 투덜거리며 내 어깨를 소독하고 붕대를 칭칭 감았다.
손바닥만큼의 살점이 녹아버렸다.
어깨뼈가 박살나지 않고 부러지기만 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정용이 나름대로 힘 조절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김강산의 얼굴은 아직도 창백했다.
“형. 진짜 괜찮아? 진짜?”
“봐라. 멀쩡하…, 악!”
“시발! 염화검제 이 새끼! 내가 뒈져도 그 새끼 어깨뼈 부순다!”
“야! 김강산 잡아!”
서은창과 양범진이 양쪽에서 김강산을 붙들었다.
바닥난 내력을 겨우 끌어올려 김강산의 마혈을 누르고 나서야 녀석은 얌전해졌다.
“미리 이야기된 거라니까? 내가 각성자 아닌 거 사람들한테 보여주려고.”
“그러니까 그걸 왜 공개해!”
“아혈도 눌러줄까?”
내가 손을 들자 김강산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 대신 양범진이 물었다.
“림아.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굳이 각성자가 아니라고 밝힐 필요가 있었어?”
“대표님! 저도 이쪽에 한 표요! 사람들이 각성자라고 착각하는 편이 대표님 움직이기에 더 편하다고요!”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형. 사람들이 내력의 존재를 믿으면 내력이 돌아온다고 하셨지요?”
“그래.”
이번에 평양연구소에서 싹쓸이한 재료로도 최대 200개밖에 못 만든다.
그 옛 시대의 합성화합물을 만들려면 어마어마한 설비가 필요하다던데.
구광성에게 설명 듣다가 이해를 포기했다.
나는 확실히 이과 체질은 아니다.
“저는 사형께서 옳으신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행협멸악 구약보세를 행했는데 이 새끼까지 왜 이러냐.
“사람들이 내력의 존재를 얼마나 믿어야 될까요? 지구상에 남은 사람들 절반 이상? 바다 건너에 사람들 살아 있으면요? 그게 우리 생전에 가능할…… 악!”
서은창이 대가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부상 때문에 아프고 내력도 간당간당한데 이놈들이 자꾸 사람이 힘쓰게 만든다.
“가능성이 낮아서, 뭐? 그래서 때려치우라고?”
“……아뇨.”
녀석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땅속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지만 거기까지는 봐주기로 했다.
나도 녀석들이 나처럼 굴면……. 좀 빡칠 것 같으니까.
“위험하니까, 뭐? 하지 말라고?”
또다시 녀석들이 한목소리로 아뇨, 라고 대답하는 와중에 김강산 하나가 홀로 응, 이라고 했다.
그리고 대가리를 움켜쥐었다.
“김강산아. 나 안 다친다니까?”
“지금도 다쳤잖아!”
“이건 일부러 그런 거라니까?”
“구라치네!”
음.
녀석이 눈치가 생겼다.
“나 못 믿냐?”
“어…. 아니?”
아혈을 막 짚으려는데 녀석이 재빠르게 말을 바꿨다.
치료인지 타령인지 교육인지 모를 것이 끝나갈 무렵 최지수가 의무실의 문을 열었다.
“림아. 다 됐냐?”
“뭐, 대충. 그쪽은?”
“모두 모여 있다.”
나는 최지수와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의 둥근 탁자 주위로 길드장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염화검제. 불패도. 해동검. 무등우협. 무적권왕. 해룡의선. 그리고 전직 길드장 빙화신녀까지.
이야. 나 참 출세했네.
“길드장님들께서 이렇게 저를 애타게 기다려 주시다니. 제일인자가 좋기는 좋네요?”
내가 빈자리에 앉자 이정용이 말을 받았다.
녀석의 무릎에도 내 어깨처럼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어디 제일인자기만 한가. 각성제의 주인이기도 하지.”
“바로 본론입니까?”
길드장들이 눈으로 레이저를 쏘아댔다.
이 몸값 비싼 길드장들이 내가 치료받는 동안 얌전히 기다린 것은 다 각성제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부터 그 각성제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을 생각이다.
효과 좋은 무기를 손에 쥐었는데 야무지게 휘둘러야지.
방금 전 비무는 처음부터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길드장들이 무더기로 방문한 덕에 생긴 서브 퀘스트라고 할까.
‘메인 이벤트는 이쪽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