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sword emperor RAW novel - Chapter 65
65화. 스위트 스위트 홈 (4)
파밧.
수평으로 휘두른 조은조의 철퇴가 놈의 어깨를 스쳤다.
녹귀대주 놈이 재빨리 몸을 뒤로 뺐으나,
카강!
최지수가 세운 강철벽이 놈의 후퇴를 가로막았다.
놈이 다급하게 양 팔을 들어 이바름이 쏘아낸 화염탄을 막았으나,
박명칠이 형성한 빙검이 놈의 무릎에 직격했다.
“쥐새끼들이!”
빡친 놈이 도끼를 거세게 휘둘렀다.
검게 일렁이던 암독이 도끼가 지나간 길을 따라 공기를 가르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조은조가 재빨리 뒤로 물러서고,
최지수가 그 자리를 빠르게 메꿨다.
조은조에게 다가간 하하민이 암독 해독을 시작했다.
‘…많이 컸네?’
은영단 애들은 내 염려보다 훨씬 잘 싸우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애들이 녹귀대주 놈을 박살내기를 기다려 주고 싶을 정도로.
-우리가요? 대주 하나를 상대하라고요?
조은조는 조금 놀란 듯했다.
-헐… 대표님. 드디어 은영단을 믿어주시는 거시와요! 이 하하민, 이 한 몸 바쳐… 악! 절대 바치지 않고 존나 열심히 살아남겠습니다!
하하민은 잔뜩 들떴고,
-가능할까? 지난번에 지수가 그렇게 무리했는데도 이기지 못했는데. 강산이는 다른 데 붙인다며.
-…맡겨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명칠은 염려했고, 이바름은 결의를 표했고,
-방법이 있는 거지, 림아?
최지수는 방법을 물었다.
-당연히 있지.
-그래. 방법이 뭐냐?
나는 비스듬히 웃고는, 가볍게 대답했다.
-죽어라 훈련하는 거.
오랜만의 특훈이었다.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고 팔이 날아간 특훈의 결과를 바라보며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애들은 승기가 왔을 때 확실히 몰아붙이면서도 절대로 무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공세를 이어갔다. 덕분에 차근차근 놈의 마력을 소진시키는 중이었다.
아마 계속 싸우면 결국 은영단 애들이 승리할 터.
‘좀 아쉽지만, 다음에 기회가 있으니까.’
최지수의 검을 피하려 놈이 비틀거리는 사이,
나는 여유롭게 취원보를 운용해 놈의 뒤를 잡았다.
검지로 몇 개 혈도를 짚자,
딱딱하게 굳은 녹귀대주 놈이 나무토막처럼 옆으로 스러졌다.
“상황 끝나고 한꺼번에 처리하자고.”
녹귀대주 놈이 손쉽게 제압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졸개놈들이 주춤주춤 도망칠 각을 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멈춰 섰다.
분수처럼 쏟아진 삼반공의 3절 산(散)이 놈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기 때문.
내력을 절제했으나 놈들의 발목을 잡기에는 충분한 위력이다.
월영검을 검집에 넣는 나를, 최지수가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거의 끝났구나.”
“그러게. 난 혈왕 잡으러 갈 테니까, 여기 정리해.”
“그래, 림아. 걱정 마라.”
계룡에 침입한 혈귀단의 무리는 이제 거의 제압되었다.
남은 건…….
거악놈들의 대가리, 혈왕(血王).
자고로 별호에 혈(血)자 들어간 놈치고 제정신인 놈 없고, 왕(王)자 들어간 놈치고 주제파악 하는 놈이 없다.
그 두 개를 합쳐놨으니 과연 거악놈들의 대가리답다.
‘혈왕 이 새끼. 목 닦고 기다려라.’
***
채앵! 챙!
빙화신녀가 형성한 빙검과 얼음창, 얼음화살과 얼음송곳은 번번이 혈왕의 대검에 가로막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빙화신녀의 공격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끈질긴 년!”
“어머, 칭찬 감사요!”
얼굴이 파리하게 질린 빙화신녀가 짐짓 발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사실 빙화신녀는 진작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이미 엄청난 마력을 소모했다. 빙화신녀는 피부로 침투하는 암독을 막는 것도 포기한 채 공격에 모든 마력을 쏟아 붓는 중이었다.
‘이 씹새끼를 놓칠 수는 없지!’
부산성 함락의 원흉.
백 명이 넘는 길드원의 시체를 무너진 성벽 뒤에 남기고 돌아서게 한……!
재앙이나 괴물에 의한 죽음이었다면 그토록 애통하지는 않을 터였다.
겪을 필요 없었던 죽음이었다는 사실이 더욱 빙화신녀를 그날의 기억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빙화신녀가 무거운 팔을 가벼운 척 들어 앞으로 내뻗었다.
암독에 중독되어 검게 물든 손가락 끝이 잘게 떨렸다.
혈왕의 눈은 그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역시… 무리하고 있군.’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서쪽과 북쪽, 남쪽에서 각각 공격해 들어간 각 대주들에게서 보고가 끊긴 지는 오래되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진작 계룡문 본부를 무너뜨리고 계룡을 떴어야 할 시간이다.
‘…내가, 실패했다고?’
혈왕이 대도를 움켜쥐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으나, 사실은 사실.
결단을 내린 혈왕이 마력을 끌어 올렸다.
“어쭈? 이 새끼가. 튀려고?”
빙화신녀가 빙글빙글 웃으며 빙환을 날렸다.
혈왕은 기묘한 각도로 날아오는 빙환을 대검으로 연신 쳐내며 계속해서 마력을 집중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혈왕대와 계룡문도들이 싸우고 있었다.
그들에게 암독창을 날리고, 그 틈을 타서…….
스팟!
3미터 남짓의 두꺼운 창날이 일순간 혈왕의 손을 떠났다.
“…이 씹새끼가!”
뒤늦게 목표를 알아챈 빙화신녀가 다급히 공빙(空氷)을 시전했다.
전투가 시작될 즈음이라면 방어할 수 있었겠지만, 바닥난 마력으로 거센 암독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콰아아아!
얇은 얼음층을 박살내며, 암독창이 허공을 절반으로 갈랐다.
그리고 혈왕이 은신을 시전해 어둠 속으로 스며들기 직전.
“용용아!!!!”
빙화신녀의 반가운 외침이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진심으로 기다렸다는 목소리.
‘…용용? 용용 죽겠지? 지금 나를, 이 혈왕을 놀리는 건가?’
***
암독창이 공빙을 박살내며 우리 애들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가는 곳마다 난리네, 아주.’
나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진기를 일으…….
키려다가 멈췄다.
내력이 간당간당하다.
하긴, 오늘 오후부터 어지간히 써제꼈어야지. 내 내력이 수도꼭지 틀면 나오는 상수도도 아닌데.
내력이 부족하면 손발이 고생하는 법.
망(網)을 시전하려는 마음을 돌이켜, 나는 몸을 날렸다.
챙!
월영검의 검끝을 타고 솟아오른 검기가 암독창의 뾰족한 끄트머리를 정확히 가격했다.
맑은 소리와 함께 암독창이 박살나고, 짙은 암독무가 대번에 주변으로 흩어졌다.
“대애표오니이임!!!!”
“야. 말할 정신 있으면 튀어. 괜히 암독 마시지 말고.”
계룡문 애들이 히죽거리며 암독의 범위를 벗어나 바깥에서 원거리 공격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반면 암독무를 벗어나지 못한 혈왕대 놈들은 암독무를 들이마시며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이 정도면 됐고.
“그러면 이쪽을 마무리해 볼까.”
바닥을 걷어찬 내 몸이 곽예린과 혈왕의 사이에 착지했다.
“용용아. 나 뒤질 뻔했잖아. 왜 이렇게 늦었어?”
“고생하셨어요. 바톤 터치하러 왔습니다.”
“너 지각했으니까 이번 데이트는 무효다? 다음에 한 번 더, 콜?”
“예, 예.”
곽예린은 얼굴이 새파래져서 피투성이를 한 채로 입을 나불거리며 물러났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혈왕님. 메인 퀘스트 등장이요.”
월영검의 끝이 혈왕을 겨눴다.
3미터 남짓 되어 보이는 큰 키.
창백한 피부.
핏방울이 맺혀 있는 새빨간 입술.
핏줄이 성성한 부릅뜬 눈.
피가 맺힌 새빨간 입술.
곧 달려들 듯, 혹은 달아날 듯 잔뜩 끌어올린 마력.
그 마력의 크기는…….
‘이정용보다는 한 수 아래. 하지만 곽예린과는 경지가 다르군. 고생했겠어.’
내 내력은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그건 혈왕놈도 마찬가지.
분명 방금 몸을 빼려 했다.
놈이 온 힘을 다해 튄다면, 잡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보험은 들어 놨지만서도…….
‘일단 이놈하고는 여기서 끝을 봐야지.’
나는 입꼬리를 비스듬히 끌어올리며 월영검을 가볍게 흔들었다.
“메인퀘가 이제 등장했는데 꼬리 말고 튀려고? 추혼마인 그거, 끌고 와도 안 될 걸?”
마혈을 짚힌 녹귀대주 놈이, 추혼마인만 완성되었으면 니들은 영혼을 빨아 먹혀 어쩌고저쩌고 해대는 걸 아혈까지 짚어놓고 오는 길이다.
혈왕놈이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박살나기 전에는 누구나 계획이 있는 법이니까.
“그깟 대주 몇 잡았다고 기고만장해졌군.”
“에이, 설마. 구미호가 구울 이겼다고 특별히 기분 좋을 리가 있겠어? 이건 기고만장이 아니라 사실 진술이라고.”
“문주는 아직 젊어서 세상 무서운 지를 모르는가본데, 그리 네 마음대로 세상이 굴러가지는 않아.”
“어, 그 말 오늘 세 번째로 듣는다.”
“무슨 소리냐.”
나는 놈을 따라 비틀린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아스팔트에 긁는 듯한 목소리를 흉내냈다.
“아직 젊어서 세상 무서운 지를 모르는가본데… 이거 말야. 그 말 한 놈들 모가지가 다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냐?”
놈이 가만히 입을 다물고는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설마 벌써 하고 싶은 말 다 떨어진 거냐.
그러면 곤란한데 말이지.
아마 최지수가 봤으면 내가 놈의 말을 끊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이미 이상함을 느꼈을 터.
하지만 이 새끼는 내가 선빵필승을 얼마나 즐기는지 모르지.
하하. 모르고말고.
단전을 휘돌던 진기가 느릿느릿 기해를 통과해 임맥을 타고 오르고 있다.
독맥을 타고 내려온 기운이 명문을 통해 단전으로 돌아오고 있다.
소주천(小周天).
물론 입도 눈도 귀도 닫고 하는 운기조식이 훠얼씬 효율적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겨우내 가물었던 논바닥에 내린 하루 저녁 봄비처럼 아쉽기는 하지만, 원래 티끌 모아 태산…….
까지는 과장이고,
티끌도 모으면 바가지는 채운다.
나는 계속해서 운기를 하며 놈을 가만히 응시했다.
-혈왕의 두 딸이 일반인에게 살해당했다고 들었어요. 대살육의 시기에… KKK단으로 몰려서… 아내는 그전에 총기사고로 사망했고요.
놈에게도 사연이 있었다.
대부분의 악인이 그러하듯이.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는 내뱉듯이 말했다.
“네놈은 어쩌고 싶은 거냐? 세상 사람들을 다 죽이려고? 그러면 만족할 거 같냐?”
혈왕놈이 입술을 짓씹었다.
새로 생긴 상처에서 몇 방울 피가 흘러나와 입술을 붉게 물들였다.
“만족? 내가 고작 만족 따위를 위해 이러는 것 같은가?”
“그러면 왜 이딴 짓을 벌이는데. 이건 원수를 갚는 것도 그 무엇도 아니라고. 계룡이 죽은 네 딸들과 대체 무슨 관련이…….”
아이 씨.
지뢰 밟았네. 딸 얘기가 지뢰라고 알려줬어야지, 서은창 놈아.
조금 더 시간을 끌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 끝인 모양이다.
혈왕놈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마력을 잔뜩 끌어올렸다.
짙은 암독이 일렁이는 대검이 휘둘러지기 직전.
탓.
내가 놈을 향해 쇄도했다.
“이 애송이가……!”
오른발을 깊숙이 내딛으며 월영검을 내지르자,
혈왕놈이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내 정수리를 향해 대검을 내리그었다.
희게 빛나는 월영검이 넘실거리는 검은 독무를 절반으로 가르며 대검을 가로막았다.
카앙!
두 개의 검이 백회의 위에서 맞부딪쳤다.
실로 어마어마한 힘이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렸다.
‘과연. 대주놈들과는 다르다 이거지.’
힘 대 힘의 대결로는 놈을 당해낼 수 없다. 그렇다면…….
손목을 비틀어 월영검을 비스듬히 누이자,
놈의 대검이 월영검의 검날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내가 이런 전투를 몇 번이나 겪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내가 놓칠 리 없는 틈.
놈은 바로 대검을 들어 올려 재차 휘둘렀으나,
월영검이 한 발 더 빨랐다.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월영검의 검날이 놈의 허벅지를 찔러 들어가…….
캉!
다가 가로막혔다.
카앙! 캉! 카캉!
대검과 월영검이 격돌할 때마다 흙이 튀어 오르고, 구덩이가 깊게 파였다.
구덩이 위로 내려앉은 암독이 모래를 찐득하게 녹였다.
진흙처럼 물컹한 바닥을 내리밟으며, 내가 왼쪽으로 크게 돌았다.
콰아아!!!
허공을 격한 대검이 바닥을 내리치고.
월영검의 검끝이 놈의 어깻죽지를 찔러 들어갔다.
‘…이게, 인간의 가죽이라고?’
두억시니에 가까운 단단한 피부.
검날을 가득 메운 검기는 놈의 어깨에 작은 생채기밖에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