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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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사이로 잠시 비치는(3)
그녀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새 인생이란 말이 너무나 생소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듯 보였다.
“장난치지 말아요.”
“내가 지금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오?”
물론 그렇게 보일 리 없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잘 알고 있소.”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잖아요?”
내가 품에서 한 장의 봉투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봉투를 받은 그녀가 안에 든 내용을 확인했다. 그것은 바로 반서정이 내게 준 서학사에 대한 정보였다.
고개를 치켜뜬 그녀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이걸 어떻게?”
대번에 그녀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눈빛에 경계심과 의심이 깃들었다.
“내가 이 사람을 조사하는 것, 어떻게 알았죠?”
“나는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소.”
그녀의 동요가 느껴졌다.
“말해 봐요.”
하지만 그녀는 애써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와의 지난 관계가 없었다면, 그녀는 벌써 검을 뽑아들었을 것이다.
“나는 갈군사와 함께 무림맹주를 조종하는 배후조직과 싸우고 있소. 당신이 그 조직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소.”
“언제부터 알았죠?”
이제부터 내 대답에 따라 그녀와 나의 운명이 바뀌게 될 것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사람의 마음을, 더구나 여자의 마음을 내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다만 한 가지는 알고 있다.
판단을 내리기 힘든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돌파할 가장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한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것은 바로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반드시 최선의 결과를 만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선의 결과는 아니지만 적어도 일을 엉망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적어도 그 판단이 중간은 간다는 말이다.
일이 꼬이고 엉망진창이 되는 것은 거짓말을 시작했을 때부터니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요.”
칠호가 흠칫 놀라더니 더욱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까지 자신과의 관계가 모두 의도된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진실을 말했다.
“당신을 어떻게 할까 계속 고민했소. 죽여야 하나, 아니면 내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나?”
“왜 그런 고민을 했죠? 애초부터 나는 당신의 적이었는데.”
“적이지만…… 적같이 느껴지지 않아서요.”
역시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그녀를 보면 처음 만났던 순간이 떠오른다. 달빛 아래에 서서 연못을 바라보던 쓸쓸한 모습이. 그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으로 각인이 된 것이다.
그것이 남녀 간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인간적인 연민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이번에는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내가 적처럼 느껴지오?”
그녀는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스르릉.
그녀가 검을 뽑아들고는 성큼성큼 걸어와서 내 목에 검을 겨눴다.
나는 그녀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당신을 죽일 수도 있어요.”
“미안하지만…… 당신은 그럴 수 없소.”
내가 그녀에게 했던 말처럼, 나의 무공도 진실을 보였다.
파파팍.
빠르게 그녀의 손목을 잡아 꺾었다. 그녀가 반항하며 힘을 주었지만 그 힘을 이용해서 빠르게 반대로 비틀었다.
휘리리릭.
그녀의 검이 허공을 한 바퀴 회전한 후에 어느새 내 손에 들려졌다. 선학비술이 진가를 보인 것이다.
그녀가 경악한 채 나를 보며 말했다.
“무공을 숨기고 있었군요. 그것도 엄청난 무공을.”
이렇게 간단히 자신이 검을 빼앗길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당신들을 상대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거요.”
그녀는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왜 다 말해주는 거죠?”
“잊었소? 당신을 고용하고 싶다고 한 말을? 나는 당신을 속이고 싶지 않소.”
“정말 진심이란 말인가요?”
“그렇소.”
“왜죠? 왜 하필 나죠? 적 같지 않다는 시답잖은 말 말고, 진실을 말해 봐요.”
그녀답지 않게 말이 빨랐다.
내가 마음속에서 찾아낸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고 싶어서요.”
다른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냥 그러고 싶어서다.
다시 흐르는 침묵. 나와 그녀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묻고 대답하고, 침묵하고. 다시 묻고 대답하고 침묵하고. 마치 우린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것 같았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거절한다면 나를 죽일 건가요?”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오. 그냥 돌려보낼 거요.”
“내가 가서 이 사실을 보고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죽이지 않을 거요.”
철컥.
능숙한 손길로 그녀의 검을 검집에 넣어주었다.
“당신이 거절해도 변하는 것은 없소.”
“내게 이름을 지어준 것도 이 때문인가요?”
오늘 나를 만난 이후 그녀의 목소리가 가장 떨리고 있었다.
“아니오. 그건 상관없소. 그냥 순수한 마음이었소.”
그녀의 시선이 날아들어 내 말이 진실인지를 파헤쳤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대답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나는 이제 마지막 계단에 다다랐음을 느꼈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제안…… 받아들이겠어요.”
“정말이오?”
“네. 기꺼이 당신 편이 되겠어요.”
“정말 고맙소. 후회하지 않을 거요.”
“그건 모를 일이지요.”
“하하하.”
나는 기뻐서 크게 웃었다. 내가 너무 기뻐하는 바람에 그녀는 살짝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부담스러웠는지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저 칠호라 불리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녀는 평범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내 눈에 띄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녀가 부담스러울까봐 나는 그 생각을 전하지 않았다.
“나 역시 평범한 사람이오. 그냥 평범한 사람끼리 모여서 당신네 조직 박살내 버립시다.”
내가 그녀를 향해 힘차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천천히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손이 따뜻하군요.”
“당신 손이 너무 차갑소.”
“제 손은 원래 차가워요.”
그녀가 빠르게 잡았던 손을 빼냈다.
“왜 허락했는지 물어봐도 되오?”
“당신의 고용조건이 마음에 들었어요.”
나를 향했던 그녀의 시선이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 저 멀리 달이 떠올라 있었다.
“새 인생을 살고 싶어졌거든요.”
* * *
다음 날 새벽, 임연정은 칠호와 함께 들판에 나와 있었다. 아침 산책을 하자는 칠호를 따라 이곳까지 온 것이다.
“여긴 다시 와도 좋네요.”
임연정이 손을 내밀어 바람을 느꼈다. 청량한 새벽바람은 사람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기분 좋게 새벽 여명을 바라보던 임연정이 묻어두었던 말을 꺼냈다.
“잊지 않았죠? 나를 구해주겠다고 했던 그 말.”
“물론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돼요. 그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건 오만이에요. 누굴 구해주겠다, 말겠다, 아주 건방진 행동이라 할 수 있죠. 아무도 대신 세상을 살아줄 수는 없잖아요?”
임연정은 그녀를 포기시키기 위해 일부러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그 일은 아주 현실적이었고 설득력이 있게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어요. 저를 위하는 좋은 마음으로 했다는 것 잘 아니까요.”
칠호는 말없이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임연정이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제 말대로 할 거죠?”
“네.”
“기분 안 나쁘죠?”
“네.”
“고마워요.”
임연정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것으로 되었어. 괜히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 필요는 없지.’
이번 일은 엄연히 자신의 일이었다. 어떻게든 서학사를 죽일 방법을 찾아내거나, 아니면 이번 일에서 빠질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물론 빠지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앞서 서학사에게 받은 책자의 대법을 볼 때, 자신 정도의 실력자가 아니라면 보조가 불가능해 보였다. 구하려면 구할 수야 있겠지만, 대법에 정통한 사람들을 구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조직에서는 자신이 이번 일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수를 내야지.’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칠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도 대신 살아주지 않지만…… 때론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할 때가 있죠.”
“맞아요. 그것이 이번이 아닌 것뿐이지만.”
그렇게 칠호를 다시 한 번 말렸지만, 사실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할 때가 있다는 그 말은 정작 임연정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그녀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다음 내용이 칠호의 입을 통해 나왔다.
“서학사를 죽일 거예요.”
임연정이 빠르게 칠호를 돌아보았다.
“아까 제 말대로 한다고 했잖아요?”
“할 거예요.”
“그런데 서학사를 죽이겠다니? 대체 무슨 말이죠?”
“대신 제가 죽이지 않을 거예요. 저 사람이 죽일 거예요.”
칠호가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쳐다보았다. 뒤따라 고개를 돌린 임연정이 깜짝 놀랐다.
저 멀리 벽리단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칠호가 그녀에게 말했다.
“전 이미 조직을 배신하기로 결심했어요.”
“저 때문이었잖아요?”
“처음에는요.”
분명 그 첫 시작은 임연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은…… 저 사람 때문이에요.”
* * *
“서학사는 내가 죽일 거요.”
내 말에 임연정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칠호에게 임연정에게 우리 일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칠호는 내 말에 동의했다. 그녀 모르게 서학사를 죽이는 일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아니, 죽이는 일에는 그녀가 필요 없을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알려야 했다. 임연정이 누굴 그토록 지키려는지 알아야만 했다.
“대법이 시작되기 전에 그를 죽일 거요.”
“어떤 대법인지 알아야 하지 않나요?”
“그럼 당신이 위험해질 거요. 놈이 죽으면 다음 책임자가 올 거요. 적어도 함께 한 동료를 죽이는 놈이 또 오진 않겠지. 어떤 대법인지는 그놈을 통해서 알아냅시다.”
전적으로 임연정을 위한 배려였다.
처음 칠호가 그랬던 것처럼 임연정은 나를 경계하며 날이 서 있었다.
“여기 동생은 어떻게 설득했죠?”
“솔직히 말했소. 함께 하고 싶다고.”
“나는 어떻게 설득할 작정이죠?”
“역시 솔직히 말할 작정이오.”
“나를 아주 우습게 보는군요.”
그러면서 임연정이 칠호를 바라보며 정말 저런 말에 넘어갔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칠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혀 그렇지 않소. 그대를 우습게 여겼다면 애초에 이 만남은 없었을 거요.”
설득하기가 칠호보다 훨씬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임연정과 깊은 관계를 맺은 것은 무명대협이었지 벽리단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가 가능했던 것은 칠호 때문이었다. 이 설득의 중심에는 칠호, 그녀가 있었다.
“당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죠? 나를 믿게 할 뭔가가 있나요?”
“전혀 없소.”
임연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결국 피식 웃었다.
“적어도 솔직하긴 하군요.”
이런 모습이 임연정의 매력이었다. 그녀는 매사 긍정적인 모습을 잃지 않았다.
“당신이 만약 믿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이야기했다면, 나는 절대 믿지 못했을 거예요.”
“다행이군요. 설득할 무엇인가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
내가 자조적으로 대답하자 그녀의 표정이 더욱 풀어졌다.
“왜 저들과 싸우려는 거죠?”
그녀는 ‘우리’란 표현 대신 ‘저들’이란 표현을 썼다. 그녀 역시 속한 조직에서 마음이 떠나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나쁜 놈들이니까.”
“저들의 자리를 먹으려는 것이 아니고요?”
“내가 원하는 것이 돈과 권력 같소?”
“사람 속은 모를 일이죠.”
“그렇다면 똑똑히 말해주겠소. 아니오. 내가 저들과 싸우려는 이유는 놈들이 강호에서 사라져야 할 나쁜 놈들이기 때문이오.”
임연정은 나의 진심을 읽어냈다. 그녀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나는 조직을 떠날 수 없어요.”
나는 그녀가 조직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또한 알고 있었다. 그것이 조직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 아님을.
그녀는 누군가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려는 그녀들은 저 배후조직에 너무 과분한 사람들이다.
“이번 일은 조직을 떠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오.”
“그럼 뭐가 문제죠?”
“생존의 문제. 당신이 살지 못하면 당신이 지키려고 하는 사람 역시 살지 못할 거요.”
“하지만 내가 조직을 배신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죽는 것은 나만이 아니겠죠.”
“당신이 지키려는 사람이 누구요?”
임연정의 눈동자가 떨렸다.
나는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딱 한 걸음 차이일지도 모른다고.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만나는 것도 스쳐 지나는 것도.
나는 칠호를 선택했고, 칠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로 인해 모든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임연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를 선택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녀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게 될 것이다.
서학사가 어디에 있고, 얼마나 강한지 따위는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 손에 놈은 죽게 될 테니까. 내가 반드시 없애버릴 테니까.
지금 이 순간, 다시 한 번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당신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이 누구요?”
임연정이 나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내 아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