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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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전 (4)
수리가 끝난 제일 진법에 정적이 찾아왔다.
작동되고 있는 미로진은 오분지 일 정도였다.
갈사량과 흑표대 무인들은 미로진에서 모두 나갔고, 다들 화염진 설치에 한창이었다.
부서진 벽 근처에 아귀견들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진법 수리를 위해 흑표대 무인들이 치워둔 것들이었다.
그중 한 시체가 꿈틀했다. 앞서 다리를 긁혔던 무인이 치웠던 바로 그 시체였다.
시이이이익.
시체의 배가 세로로 길게 갈라졌다. 몸통이 벌어지면서 안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피를 뒤집어쓴 그는 바로 혈루였다.
앞서 아귀견들이 미친 듯이 싸울 때 그 혼란을 틈타 이곳까지 파고들었던 것이다. 엄청난 고수인데다 진법전문가였고, 그는 귀식대법으로 자신의 자취를 감출 줄 알았다.
사내의 다리를 긁은 것은 아귀견의 발톱이 아니었다. 시체 속에 숨어 있던 그가 시체를 옮기던 흑표대 무인에게 혈고(血蠱)를 집어넣은 것이다.
혈고는 혈맥을 통해 뇌에 침투해 상대의 의지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벌레로, 오직 혈루만이 사용할 수 있는 비기였다.
혈루가 남아 있는 미로진을 바라보며 뜻 모를 미소를 짓더니 이내 소리 없이 사라졌다.
***
제이 진법 내부에서는 송화린의 진두지휘로 화염진 설치가 한창이었다.
그녀는 이번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는데 비단 진법과 관련해서만은 아니었다. 여러 사람을 지휘하고 이끄는 지도력도 함께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힘내서 서두르죠!”
“네!”
송화린의 격려에 흑표대 무인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다들 요령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미로진이 아귀견의 공격을 막아낸 것에 모두의 사기가 높아졌다.
그들은 진법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만약 진법이 없는 상황에서 아귀견들이 곧장 자신들을 공격해왔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아찔했다.
과연 이 자리에 살아남아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를 생각하면, 진법은 자신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방패였다.
사실 흑표대 무인들이 열심인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송화린 때문이었다.
만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흑표대 무인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우선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것도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 물론 단지 아름답기만 했다면 이렇게까지 인기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름다움에 더해 그녀는 강했다. 무공실력으로 따져서 흑표대 무인들보다 확실히 한 수 위였다.
강함을 추구하는 흑표대 무인들에게는 그것은 아름다움보다 더 큰 매력이었다.
거기에 그녀의 성격도 한몫 했다. 자신들의 수장인 벽리단의 정혼자이니 아무리 재수 없이 굴어도 공손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관계인데, 그녀는 자신들을 아랫사람이라고 무시하지 않았고, 도리어 솔선수범하며 열심히 일했다.
이런 상황이니 누가 그녀를 싫어할 것이며 누가 일을 소홀히 할 것인가?
송화린이 갈사량에게 말했다.
“저 때문에 작업이 늦어질까 걱정이에요.”
아무리 갈사량이 뒤에서 돕는다고 해도, 직접 작업하는 것보다는 느릴 것이다.
그러자 갈사량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 덕분에 오히려 작업이 더 빨라졌네.”
흑표대 무인들이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하하, 아니네. 자, 어서 작업하세.”
“네!”
그렇게 한창 작업 중이던 흑표대의 무인이 옆의 동료에게 물었다.
“자네 괜찮나?”
동료의 물음에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앞서 시체를 치우다가 다리에 피가 났던 바로 그 사내였다.
“왜 그러나?”
“자네 눈자위가 벌건 것이 아주 피곤해 보여.”
“난 괜찮네.”
“그럼 다행이고.”
두 사내 모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긴 실전을 방불케하는 비무에, 잠 한숨 못 자고 수십 리를 무거운 짐을 지고 뛰어다니던 지옥훈련을 생각하면, 눈 좀 벌건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서 진법을 완성시켜야지. 그 무시무시한 개들 생각만 해도 끔찍하더군.”
동료의 말에 사내는 아무것도 못 들었는지 말없이 짐을 옮기고 있었다.
왠지 평소 같지 않은 동료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역시 피곤해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렇게 작업은 계속되었다.
***
나는 건물 지붕 위에 서서 저 멀리 담장 너머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숲 속 어딘가에 매혈상인이 우릴 노리고 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 나가서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쉽게 생각할 적이 아니었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자 천마가 내게 물었다.
[무슨 생각을 이렇게 하나? 무슨 걱정 있나?] [일이 너무 잘 풀린 것 같아서.] [뭐? 일이 잘 풀려도 걱정이냐?] [그래서 의문이 하나 생겼거든.] [뭔데?] [매혈상인은 왜 이렇게 무작정 밀어붙였을까? 대형 아귀견이 죽었을 때만 해도 아귀견은 거의 반 가까이 남아 있었어. 지휘견들이 모두 죽었음에도 나머지 놈들을 그냥 다 쏟아 부었어. 왜 그랬을까?] [한 번 소환하면 다 사용해야 하나보지.] [만약 그렇다면 다음 공세를 아귀견에 가세하지 않았을까? 나 같으면 그랬을 것 같은데.] [나 같으면 그딴 개새끼들을 보내진 않았겠지.] [하하. 그래, 내가 상대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평가는 그만하시고. 그냥 나가서 이 피비린내 나는 것들 싹 쳐 죽여.]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내가 훌쩍 지붕에서 내려와 진법으로 들어갔다.
열심히 일하는 작업자들을 격려하며 진법을 둘러보았다.
***
그날 밤, 잠을 자던 흑표대 무인이 눈을 떴다.
앞서 다리에 상처를 입었던 바로 그였다. 그의 이마 가운데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밝은 곳에서 아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아주 작은 점이었다.
사내가 건물을 나왔다. 입구에서 번을 서고 있는 무인에게 뒷간을 가겠다고 말한 후 밖으로 나갔다.
사내가 향한 곳은 뒷간이 아니라 진법이 있는 곳이었다. 겉모습이나 말투는 그대로였지만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를 지배하는 것은 뇌 속에 들어간 혈고였다.
번을 서는 동료들의 눈을 피해 그가 진법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진법에는 공사에 사용된 자재들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내가 그곳을 지나 미로진으로 들어갔다. 첫날 시체를 치우기 위해 갈사량을 따라 나왔기에 생문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사내가 생문을 따라 미로진을 통과했다.
새로 수리된 미로진을 빠져나오자 밖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매혈상인과 이백 여명의 혈검들이었다.
“제가 밟는 곳을 정확히 밟으며 따라 오십시오.”
사내가 어눌하게 말하고는 다시 자신이 들어왔던 미로진으로 들어갔다.
매혈상인을 비롯한 혈검들이 그를 따라 미로진을 통과했다.
적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정확히 생문을 따라 움직였기에 미로진은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사내를 따라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은 혈검주였고 그 뒤를 혈루와 적요, 서불패 그리고 매혈상인이 들어갔다. 물론 이백의 혈검들도 줄을 지어서 그 뒤를 따랐다.
혈루가 잠시 대열에서 이탈했다.
매혈상인을 비롯한 적요와 서불패는 먼저 갔기 때문에 그가 이탈한 것을 알지 못했다. 다들 앞 사람이 밟는 바닥만 신경 쓰고 있었다.
혈루가 그들을 뒤따라가지 않고 한옆에 아귀견의 시체가 쌓여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뭔지 모를 위화감이 자꾸만 들어서 발길을 잡아끌었던 것이다.
그가 어제 자신이 숨어 있던 바로 그 시체더미에 왔다.
혈루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뭔가 달랐다. 어제 자신이 마지막으로 빠져나올 때와.
‘대체 뭐가 달라진 것이지?’
아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여길 건드렸다면? 대체 왜?’
다음 순간.
슁!
푸욱!
한 자루의 검이 혈루의 가슴에 박혔다. 너무나 빨라서 미처 피하고 말고 할 사이도 없었다.
혈루는 너무 놀라 두 눈을 부릅뜬 재 자신을 찌른 검을 내려다보았다. 정말이지 이렇게 빠른 기습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검은 자신의 앞에 놓여 있던 아귀견의 시체를 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혈루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파아아아악!
검이 뽑혀 나오면서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아슬아슬하게 즉사는 피했지만 치명적인 상처였다.
찌이이익.
아귀견의 배가 갈라지며 그곳에서 누군가 나왔다.
***
시체를 찢고 나온 사람은 바로 나였다.
경악한 혈루를 보며 내가 말했다.
“너였구나. 이곳에 숨어 있던 자가.”
그러자 혈루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내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았지?”
“숨어 있다가 나왔으면 시체를 치웠어야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에 꼼꼼히 진법을 살피던 차에 날카로운 비수에 배가 갈라진 시체를 발견했던 것이다. 누군가 시체 안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쉬이이이익!
푸우욱!
허공을 가로질러 이번에는 제대로 그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었다. 시간을 주면 어떤 사술을 쓸지 모를 상대였다.
어떻게든 피하려고 손발을 휘젓던 혈루가 절명해 쓰러졌다.
다른 혈검들이 이쪽으로 뛰어왔다. 매혈상인을 비롯한 상당수는 이미 미로진 안으로 들어간 후였고, 남은 혈검들이 뒤따르고 있던 중이었다.
쉬이이이익!
내 검에서 검기가 발출되었다. 목표는 진법 한옆에 세워진 작은 기둥이었다. 이것이 바로 내 역습의 핵심이었다.
꽝!
기둥이 박살나면서 생문의 위치가 바뀌었다. 갈사량에게 부탁해서 생문의 위치를 바꾸는 장치를 바깥으로 빼내둔 것이다. 생문의 위치가 바뀌자 미로진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쉭쉭쉭쉭쉭쉭쉭쉭!
앞사람의 발걸음만 보고 뒤따르던 혈검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
매혈상인과 적요, 서불패, 혈검주와 삼십 여명의 혈검들은 미로진을 통과했다.
사내를 따라 걸어가던 그녀가 발걸음을 멈췄다.
“잠깐.”
“왜 그러시죠?”
적요의 물음에 매혈상인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에 두 번째 진법을 만들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왜 지금은 작업을 하고 있지 않지?”
“밤이라서 그렇겠지요.”
“이 급한 때에 밤이라고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그녀가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발하던 바로 그때였다.
쿠르르르르릉.
뒤에서 갑자기 진법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진법이 공격하는 소리가 나면서 비명이 들려왔다.
“갑자기 왜 진법이 발동한 것이냐?”
“누군가 실수로 생문이 아니라 사문을 건드린 모양입니다.”
바로 그때 진법에서 또 다시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바뀐 생문을 밟고 미로진을 빠져나온 바로 나였다.
상대가 나임을 알아본 그녀가 낭패한 얼굴로 말했다.
“함정이었군.”
미로진에 들어선 자들은 모두 저 안에서 죽을 것이다. 혈루는 죽었고 그나마 그들을 지휘할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이곳에 있었으니까.
뒤쪽에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던 자들도 결국은 무리를 해서라도 모두 미로진을 돌파하려 할 것이다. 자신들의 수장들이 모두 안에 있었으니까.
그녀가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더러운 예감은 언제나 정확하지.”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말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았음을.
뒤쪽에서 백표와 흑표대가 모습을 보였다. 반대쪽에선 아버지와 송우경이 각각의 검대를 데리고 모습을 보였다.
“죽여라!”
양쪽이 서로 맞불었다. 백표와 서불패가 붙었고, 적요와 아버지가, 혈검주와 송우경이 맞붙었다.
전체 숫자는 우리가 우세했지만, 고수들의 무공에서는 우리 쪽이 밀렸다.
나는 매혈상인을 이기어검술로 단번에 죽일 작정이었다. 그녀만 죽이면 남은 이들은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그녀였다.
휘리릭.
내 검이 허공으로 떠올라 그녀를 겨누던 바로 그 순간,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여기 있는 모두가 죽는다.”
“무슨 뜻이지?”
“당신을 보는 순간 폭혈귀천공(爆血歸天功)의 구결을 운용하기 시작했고 이미 준비가 끝났다. 내가 죽는 순간 내 몸이 폭발 할 것이고, 이 장원은 초토화될 것이다.”
폭혈귀천공.
정의각 기밀문서보관실에서 보았던 혈락여제의 정보에서 보았던 무공이었다.
혈종비연공에서 상대와 동귀어진(同歸於盡)할 때 사용하는 최후의 수법.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바뀌어 있었고, 그것은 폭혈귀천공이 발동했다는 증거였다.
“물론 당신은 살아남을 수도 있겠군. 당신과 함께 죽으려는 무공인데, 당신만 살아남는다면 그것 참 역설적인 일이군.”
다른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암시해서 이 위기에서 벗어나려 는 그녀의 의지가 느껴졌다.
내가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모두가 팽팽하게 싸우고 있었다. 시간을 더 끌다간 내가 아끼는 이들 중에 누군가 죽을 수도 있었다.
“원하는 것이 뭐지?”
내 물음에 그녀가 대답했다.
“우릴 그냥 이대로 보내라.”
그녀와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녀는 두 번 다시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 죽는 쪽은 이쪽이 될 것이다.
“싫다!”
내가 한마디로 거절하는 순간!
번쩍!
허공에 뜬 수라명왕검이 빛이 되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