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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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란비화(2)
천소선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운기조식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변해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가장 큰 변화는 내부의 변화였다. 놀랍게도 자신의 피가 바뀌고 있었다. 물론 피 색깔이 바뀌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변화를 어찌 설명해야 할까? 가장 쉽게 말한다면 피가 살아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피에 생명력이 깃든다는 기분, 그 기분이 강해질수록 자신도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운기조식을 하는데 평소와 다르다는 기분이 들더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상한 곳에 서 있었다.
그곳은 전장이었다. 피가 발목처럼 차오른 그곳 사방에 시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천소선이 허리를 굽혀 발목까지 차오르는 피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진짜 피였다.
‘환상이나 꿈이 아니다.’
그녀가 습관적으로 두 손을 벌려서 피를 흡수했다.
스스스스스슷.
하지만 이내 그녀가 비명을 내질렀다. 피가 몸에 들어오는 순간, 온몸이 찢어질 듯 아팠던 것이다.
몸에 들어온 피를 다시 배출한 후 시체를 살펴보았다.
당연히 인간의 시체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인간 이외에도 생전 처음 보는 괴수들과 마물들의 시체들이 뒤섞여 있었다.
“젠장! 대체 이게 뭐지?”
그녀의 목소리가 비현실적으로 울려 퍼졌다.
졸졸졸.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피가 어디론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피를 따라 걸었다. 피가 자신을 안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피를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벽이 앞을 막아섰다. 시체가 우뚝 산을 이룬 것이다.
그 꼭대기에 누군가 서 있었다. 너무 멀어서 누군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시체를 타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쌓여 있는 괴수와 마물들이 너무 징그럽고 흉측해서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경공술로 날아 올라가선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르고 또 오르고, 계속 올라갔다.
이윽고 그녀가 꼭대기에 도착했다.
그곳에 누군가 뒷짐을 쥔 채 서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이었다.
노인이 그녀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반갑네. 우린 처음이지?”
함부로 대할 노인이 아니란 것을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어르신은 누구시죠?”
“자넬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이지.”
“왜 저를 기다리셨나요?”
노인이 대답 대신 다시 돌아서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여기 경치가 어떤가?”
그녀가 그제야 조금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끝없이 시체가 펼쳐져 있었다.
“끔찍하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네? 무슨 말이죠?”
“자넨 앞서 이곳에 오자마자 피를 흡수하려 들지 않았나?”
“그건…… 습관적으로 그랬을 뿐이에요.”
“그 습관이 곧 자네이기도 하지. 아, 긴장하지 말게. 자넬 책망하기 위해 꺼낸 말이 아니니까. 백인백색(百人百色), 사람마다 다 다른 법이지. 특히 자넨 더욱 특별한 사람이라네.”
“제가 특별하다고요? 왜죠?”
“혈신이 될 사람이니까.”
순간 그녀가 경악했다.
“제가 혈신이 된다고요?”
“그렇다네. 그것이 자네의 운명이지.”
천소선은 정말 놀라고 당황했다. 양사휘가 혈신을 강림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데 자신이 혈신이 된다니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혈신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나요?”
“자네가 말하는 혈신이 누구인가? 석상으로 만들어진 그것 말인가?”
“네.”
“그건 인간들이 만들어 낸 허상이지. 그 석상을 만든 사람도, 만들라고 한 사람도 혈신을 직접 본 적은 없었을 것이네.”
천소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정해진 일인가요?”
“자네가 음양상변지체로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 정해진 일이지.”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면 우리 할아버지나 벽리단 모두 저를 위해 존재한 사람들이란 뜻인가요?”
“그렇진 않다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운명대로 살아가는 법이지. 자네에게 자네의 운명이 있듯, 그들에게도 그들의 운명이 있다네. 자, 어떤가?”
“뭐가 말이죠?”
“자넨 혈신이 되고 싶은가?”
질문을 듣는 순간 천소선은 자신의 가슴속에 부글거리는 어떤 감정의 외침을 들었다. 쌓여온 분노였고, 그것이 소리치고 있었다. 이 분노를 마음껏 폭발할 수 있도록 강해지라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래요.”
그러자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린 조만간에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그녀는 환상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시간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 * *
“정말 혈신을 뵈었단 말이지?”
양사휘는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의심을 늦추지 않았다. 평생을 혈신을 강림시키려 애썼지만,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 광세신화지체인 벽리단을 통해 혈신강림의 대업을 이루려다 실패하던 그 순간에도 말이다.
한데 천소선에게 나타났다고 하니 의심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나?”
“수련을 계속해서 어서 자신을 강림시켜달라고 하셨어요.”
천소선은 자신이 겪은 일을 그대로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혈신이 된다는 것을 양사휘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이 마음 때문이었다.
‘내가 혈신이 되면 넌 내 손에 죽는다.’
양사휘는 자신을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전혀 고맙지 않았다. 목적을 위해 자신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양사휘는 그녀의 속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혈신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너무 흥분해서 천소선이 하는 말의 진의를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 드디어 그날이 오고 있구나.”
양사휘의 마음이 격동했다. 혈신이 자신에게 나타나지 않은 것은 섭섭한 일이지만 어쨌든 천소선 역시 자신의 작품이 아니던가? 혈신강림이라는 자신의 숙원이 이뤄지려는 순간이 된 것이다.
“어떻게 생긴 분이시더냐?”
“석상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어요. 온통 붉은 옷을 입은 신장(神將)의 모습을 하고 계셨지요.”
“아! 혈신이시어!”
잠시 그를 바라보며 그녀가 물었다.
“당신은 왜 이토록 혈신을 강림시키고 싶은 것이지요?”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단지 혈락여제의 후예이기 때문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나?”
천소선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핏줄 따위가 뭐가 중요하기에.
문득 노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운명대로 살아가는 법이라는.
“배고파요, 밥 먹으러 가죠.”
“그러세.”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서둘러요. 우린 피가 더 필요해요.”
* * *
송화린과 사랑을 나눴다.
지금 그녀와의 관계는 탐닉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었다.
앞으로 시간이 잘 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일까? 우린 시간이 나면 불같은 사랑을 나눴다.
그녀와의 잠자리는 내게 큰 기쁨과 만족을 안겨주었다. 과연 그녀도 나만큼 좋아할까 신경이 쓰일 정도로.
“오늘 무슨 일 있지?”
사랑을 나눈 후에 나란히 누워 있던 그녀가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평소와 달라서.”
그러고 보니 평소보다 더 격렬하고 과감했다. 천마가 몸에서 나간 후에 아무래도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아무리 천마가 지켜보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도, 그래도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친구가 생겼다.”
“누구?”
“마철군.”
나는 마철군의 몸에 천마가 들어갔고, 그와의 친분에 대해 말해주었다. 앞으로 마철군과 오랫동안 교류를 해야 할 테니, 그녀와 광두만은 내막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천마라니, 조금 무섭다.”
“괜찮은 사람이야.”
“천마가 괜찮은 사람이라니까…… 더 무섭다.”
“하하하.”
“그래도 부럽네.”
“뭐가?”
“나는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잖아?”
“나 있잖아. 우린 어려서부터 친구였잖아.”
“아, 그랬지. 자꾸 잊게 되네. 우리가 친구였다는 것을.”
그녀를 이해했다. 어려서와 지금과, 나의 변화가 워낙에 컸으니까.
“우린 친구이자 연인이자…….”
평생을 함께할 반려가 될 것이다.
그녀가 옷으로 가슴을 가리며 몸을 일으키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의 친구이자 연인이신 우리 맹주님, 잠시 눈을 감아 주세요.”
내가 눈을 감았다.
그녀가 옷을 입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모를 것이다. 이렇게 눈을 감고 있을 때, 여인의 옷 입는 소리가 얼마나 관능적으로 들리는지. 얼마나 큰 상상력을 자극하는지.
옷을 다 입은 후에 그녀가 말했다.
“난 잠시 섬에 다녀올 거야.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오라고 하시네.”
“외로우신가보다.”
“가서 오랜만에 재롱 좀 부리고 와야지.”
“나도 잠시 맹을 떠나 있을 거야.”
“어디 가는데?”
내가 겉옷을 걸치며 말했다.
그녀는 섬에, 나는.
“성에.”
* * *
나는 다시 마신성에 왔다.
원래는 마신결의 대성을 이루면 노인을 만나려고 오려던 곳이었다. 이미 노인을 만났으니 올 필요는 없었지만, 왠지 이곳에 오고 싶었다.
예전의 그 진법으로 들어갔다. 한 번 와봤던 곳이었기에 정확히 생문을 찾아 걸어갔다.
생문을 따라 걷다가 분기점이 되는 곳에서 혈뢰심법을 운기했다. 그러자 새로운 생문이 나왔고, 나는 새로운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렇게 몇 번의 분기점을 만났고, 그때마다 혈뢰심법으로 새로운 생문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길을 외우는 것조차 어려운 이 복잡한 진법을 빠져나오자 눈앞에 드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그리고 저 멀리 우뚝 솟은 거대한 성.
거대하고 웅장한 마신성은 여전히 보통 사람이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천천히 들판을 가로질러 걸었다. 하늘은 높았고, 공기는 더없이 맑았다.
계속 걸음을 옮겨 성 아래까지 도착했다.
성문 옆에 붙은 작은 석판에 손바닥을 대고 혈뢰심법을 구사했다.
그러자 문이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문 뒤에서 한 중년사내가 나를 맞이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마신성을 관리하는 총관 구모라고 합니다. 앞으로 구총관이라 불러주시면 되겠습니다.”
“반갑소, 구총관.”
어딘지 모를 신비함이 느껴졌다.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마신결의 대성을 감축 드립니다.”
“어떻게 아셨소?”
“마신과 관련한 일은 다 알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 마신이 아니오.”
“알고 있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계시지요.”
“시험을 치지 않을 수도 있소.”
“그 역시 알고 있습니다. 자, 들어가시지요.”
구총관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 역시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때는 휑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있었다. 청소를 하는 이도 있었고, 나무의 가지를 치는 이들도 있었다. 이젠 사람이 사는 진짜 성 같았다.
“전에 궁금했었소. 어찌 그렇게 빨리 식사를 차려두는지. 기척을 내지 않는지.”
“그렇게 훈련받은 사람들이니까요.”
아마도 관계된 무공이나 기술을 배우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집처럼 편하게 지내시면 됩니다.”
“고맙소.”
마신성에 오니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날 하루는 푹 자고 일어났다.
다음 날에는 여기저기 천천히 산책하듯 돌아다녔다. 내부의 구조야 이전의 시험을 치르면서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때 구총관이 인사를 하며 내게로 걸어왔다.
“편히 주무셨습니까?”
“덕분에 잘 잤소.”
“필요한 것 있으시면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소.”
“무엇입니까?”
“혹시 천란에 대해 알고 있소?”
천소선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암흑천병기를 제작한 희대의 기물.
일전에 맹주전 지하에서 한 대가 천소선과 함께 사라졌다. 천란을 찾아낼 수 있다면 천소선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말이었는데,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알고 있습니다.”
“아는 대로 말해주시겠소?”
“저를 따라오시지요.”
구총관이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도착한 곳은 책들이 가득한 서재였다. 예전에 와본 곳이었는데, 물론 이곳의 책을 읽어보진 않았다.
구총관이 책장에서 두툼한 책을 하나 꺼내왔다.
삼신불망기(三神不忘記)
제목으로 볼 때는 세 신에 대한 기록이었다.
“삼신(三神)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삼신? 들어본 적이 없소.”
“마신과 혈신, 그리고 암흑신이 삼신이지요. 태초에는 악신이라는 하나의 존재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다 세 개의 신으로 나눠졌다고 하지요.”
구총관이 책장을 넘겨 하나의 그림이 그려진 곳을 찾았다.
세 명의 신이 서로 싸우고 있는 그림이었다.
“이들이 바로 마신과 혈신과 암흑신입니다.”
그림에서는 혈신과 암흑신이 마신을 합공하고 있었다.
싸움의 내용에 대해 물으려던 내 시선이 그림의 한곳을 향했다.
“혹시 저것이?”
싸우고 있는 세 신들 뒤쪽에 관처럼 길쭉하게 생긴 것이 그려져 있었는데 맹주전 지하밀실에서 보았던 부서진 그것과 닮았던 것이다.
“네, 바로 천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