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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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작은(4)
“돈 문제를 책임질 사람의 집 치고는 너무 허름한데요?”
광두가 목소리를 낮춰서 내게 말했다.
과연 집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낡고 허름했다.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안에 든 사람만 허름하지 않으면 된다. 불러라.”
“네.”
광두가 큰소리로 말했다.
“계시오?”
그러자 문이 열리며 삼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큰 키에 마른 체형, 치렁치렁한 머리, 덥수룩한 수염까지. 이 낡은 모옥과 잘 어울리는 외모였다.
광두가 재빨리 내게 귓속말을 했다.
“안에 든 사람도 허름한데요?”
“저 머릿속에 든 것만 허름하지 않으면 된다.”
광두에게 속삭여 준 후 사내에게 정중히 물었다.
“공선생이시오?”
“선생은 무슨. 그래, 내가 공가요.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벽씨검문의 종총관께서 선생을 소개해 주셨소.”
순간 공수찬이 흠칫 놀랐다. 종총관이 자신을 소개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모양이다.
“들어오시오.”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방이었는데 사방에 책이 쌓여 있었다.
“실례지만 종총관과는 어떤 관계이시오?”
“제 스승님이십니다.”
나와 광두는 깜짝 놀랐다. 괴팍한 종총관에게 제자가 있었을 줄은 몰랐다.
“스승님께선 잘 계시는지요?”
“건강히 잘 계시오.”
“다행입니다. 한데 어인 일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저는 벽씨검문의 후계자인 벽리단입니다. 제가 총관이 필요해서 공선생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저를 총관으로 쓰시겠다는 말씀이시오?”
“그렇습니다. 스승님께서 추천을 해주셨소.”
“혹 스승께서 왜 제가 초야에 묻혀 사는지 말씀하시든가요?”
“아니오.”
“역시 그랬군요.”
“각자의 사정이 있었겠지요.”
공수찬이 묻지도 않은 말을 불쑥 말했다.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저를 고용한 주인을 죽였지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이야기를 했으니 더는 할 말이 없다는 태도였다.
“잘 돌아가십시오. 배웅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소. 나는 주판에 맞아 죽을 정도로 약한 사람이 아니니까.”
당황한 공수찬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죽을만한 사람이었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그가 이곳에 있지 못할 것이다.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면 대가를 치렀을 테니까. 그리고 이런 말을 자신의 입으로 하지도 않았을 테고.
“주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설마 내가 이런 질문을 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는지 공수찬이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죽어 마땅했습니다.”
“그럼 잘 죽이셨소.”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처음이군요. 다들 잘 죽였다고 말은 했지만 나를 고용하려 한 사람은 없었는데. 그 일을 찝찝하게 여겼습니다.”
“저는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오.”
“뭡니까?”
“그대는 일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공수찬이 물었다.
“저를 믿으십니까?”
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믿는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아직 그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까.”
“한데 왜 나를 데려가시려는 것이오?”
“대신 그대를 소개해 준 사람은 믿기 때문이오.”
더불어 인연의 힘을 믿었다. 종총관이 내 인생으로 걸어와 이 사람을 소개해줬다면, 이 인연 역시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와 함께 하시겠소?”
“저도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얼마든지 물으시오.”
“앞으로 꿈이 무엇입니까?”
“벽씨검문을 중원제일문파로 만드는 겁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이내 공수찬이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짐을 챙겨서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하오.”
밖으로 나온 후에야 광두가 참았던 말을 꺼냈다.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신선하지 않느냐? 피냄새 풀풀 풍기는 총관이라니.”
“뭐, 아무튼 일만 잘하면 그만이죠.”
“과연 잘 할까?”
“네?”
“그는 이상론자다. 내게 한 가지 질문을 하면서 그는 내 자본이나 자신의 월봉이 얼마냐를 묻지 않고 내 꿈을 물었다.”
“하면 왜 저 사람을 뽑았습니까?”
“산동제일이 목표라면 아주 현실적인 총관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중원제일이 목표라면 저런 총관도 괜찮을 것 같아서다.”
광두가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어렵네요.”
“어려울 것 없다. 정 일 못하면 자르면 그만이지. 또 다른 총관을 구하면 되지 않느냐?”
“잔인해요!”
“냉철한 거다.”
사실 아직 냉철의 ‘냉’도 시작 안 했다.
나는 안다. 권력에 미친 자들을 상대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선함은 조롱거리가 되고 꿈은 갈기갈기 찢겨버린다.
그들을 이기려면 그들보다 더 냉철해져야 한다.
* * *
다음 날 공수찬은 짐을 싸들고 벽리검문으로 들어왔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목욕에 수염과 머리까지 깨끗하게 깎고 나니 어제와 다른 사람 같았다.
짐을 풀고 있는데 소식을 들은 종총관이 찾아왔다.
“왔느냐?”
공수찬이 그 자리에서 엎드려 절을 올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단지 인사가 오가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말 못할 사연이 있음을 짐작했다.
둘 사이는 서먹했지만 종총관의 무뚝뚝함 속에는 오랜만에 만난 제자에 대한 반가움이 있었다. 종총관의 눈빛에 서린 아련함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종총관이 내게 말했다.
“술 사라.”
“네, 그러지요.”
나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제자를 받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저리 한다는 것을.
만약 이 사제지간이 어떤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면 공수찬을 받아들인 것은 벽씨검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오랜만에 재회했으면 정다운 이야기라도 몇 마디 나눌 법 했건만, 종총관이 한 말은 이것이었다.
“네 주인 될 사람이 많이 모자라니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다.”
나 들으라는 듯 그런 말을 하고는 종총관이 돌아가 버렸다.
심술궂은 늙은이 같으니라고.
내가 웃으며 말했다.
“들으셨다시피 그런 상황이오.”
그러면서 그에게 오백 냥을 제외한 삼천 냥을 건네주었다.
“이 돈으로 이십 명의 검대원들도 먹여 살려야 합니다. 물론 그대의 월봉까지 포함되어 있소.”
“네, 알겠습니다.”
그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괜찮겠소?”
“사정이 어렵기 때문에 절 부르신 것 아닙니까?”
첫 날부터 아쉬운 소리 하는 것보다는 이 자신만만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나는 돈이 많이 필요하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소. 그대만 믿겠소.”
검대를 만들었고, 돈을 관리해줄 총관도 생겼다.
이십 명의 검대, 한 명의 총관.
무림맹에 비하면 비교조차 우스운 규모다.
하지만 중요한 한 가지는 첫발걸음을 떼었다는 것이다.
* * *
무림맹에서 맹주 즉위식이 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중원의 중요가문에만 초청장을 돌렸다고 했다. 양소방과 송가장을 비롯한 몇 개 문파에는 초청장이 왔지만 우리 가문에는 오지 않았다.
우리 가문의 현실을 말해주는 일이었다.
만약 지난번에 갈사량과 백표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이번 취임식에 참석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흥미가 없었다.
백표는 바람주점에서 장사를 파고 있을 테고, 갈사량은 알아서 잘 처신하고 있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는 아버지를 찾았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아도 왠지 씁쓸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수장들의 마음은 내가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예전에는 받았던 무림맹 초청장을 받지 못한 것이 속상할 것이다. 그것도 맹주 즉위식 초청장인데.
“아버지, 간만에 아들과 술 한 잔 하시죠?”
챙겨간 술병을 흔들어 보이자 아버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벽리단이 이런 일 한 번이라도 해봤을 리 없을 테니.
“기왕 마시는 것 나가서 한 잔 하자.”
“좋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정원의 정자에 앉았다. 완연한 봄기운에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따라 드리고 아버지가 주는 술을 받았다.
“자, 건배하자꾸나.”
아버지가 내민 술잔을 힘차게 부딪쳤다.
나도 처음이다. 아버지란 존재와 이렇게 술을 마시는 것이. 조금은 묘한 기분이다.
“검대는 어떠하냐?”
“그럭저럭 잘 시작한 것 같습니다.”
“사람 다루는 일이 쉽지 않다. 아랫사람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항상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술잔을 비웠고 나도 따라서 마셨다. 본래 술을 좋아하지 않는데, 기분 탓인지 오늘 술은 맛이 좋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초청장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함께 있어 주는 것이 더 나은 위로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 * *
한 달 후 공수찬이 할 말이 있다며 나를 찾아왔다.
“무슨 일이오?”
“우선 주신 돈 중에 이천 냥을 세 군데 상단에 분산투자를 했습니다.”
그가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어느 상단에 얼마를 투자했는지가 적혀 있었다.
상단투자는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방식과 단기로 투자하는 방식, 두 가지가 있었다.
보통 상단에서는 상단 자체의 돈으로 사업을 벌이지만, 외부의 돈을 끌어들여서 사업을 하기도 했다. 수익이 나면 투자한 이들에게 수익을 나눠주는 형식인 것이다. 당연히 고위험 사업은 고수익이 났다.
지금의 투자는 모두 단기적인 투자였다.
“종화상단(宗華商團)에 투자한 것이 수익이 났습니다.”
“얼마나 벌었소?”
“사백 냥 투자해서 원금을 빼고 백오십 냥을 벌었습니다.”
“오! 많이 벌었군요.”
“나머지 두 상단은 두 달 후에 결과가 나올 겁니다. 기대수익은 사백 냥입니다.”
이천 냥을 투자해서 세 달간 오백오십 냥을 번다면 이건 대단한 수완이었다.
그가 이상론자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총관으로서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스스로 입증했다. 더구나 시작부터 이렇게 자신 있게 투자를 한다는 것은 중원상계에 대한 공부가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마음에 든 것은 위험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내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빠져들 수도 있는 유혹이었을 텐데.
“이번은 비록 세 군데만 투자를 했지만 조금씩 늘여갈 생각입니다.”
“솔직히 나는 상계의 일에 어둡소. 총관이 알아서 하시오. 대신 그때그때 빠뜨리지 않고 보고해 주시오.”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오?”
“상단에서 무인들을 필요로 할 때가 있습니다. 표국만으로 미덥지 않거나, 혹은 따로 무력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문파가 돈을 버는 방법이기도 했다. 보통 지역유지들이 자발적인 후원을 한다. 물론 문파는 그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나서서 돕는다.
하지만 몇 몇 유명한 문파를 제외하고는 후원만으로 문파가 유지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자체적인 사업을 벌이거나, 다른 문파나 상단과 협약을 맺고 수익을 낸다.
벽씨검문 역시 여러 일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잘 알겠소. 하지만 아직 우리 검대는 시기상조요. 때가 되면 내가 먼저 말하겠소.”
“네, 알겠습니다.”
* * *
검대의 훈련은 계속 되었다.
관휘는 분위기를 완전히 휘어잡았다. 뭐든지 솔선수범하면서 열심히 했기 때문에, 한 번쯤 나올 수도 있었을 어린 조장에 대한 불평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검대가 제대로 돌아가자, 기존 검대에서도 우리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소검대가 열심히 훈련하고 생활한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기존 검대도 우리도 긴장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그래, 긴장해야 할 것이다.
곧 우리 소검대가 그들을 앞질러 갈 테니까 말이다.
검대가 만들어진 지도 두 달이 지났다.
무림맹에서 새로운 인사가 단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많은 이들이 물갈이 되었다고 했다. 새로운 총군사로 사마천(司馬天)이 되었다고 했다. 사마천은 예전부터 천도문과 친분이 깊던 인물이었다.
갈사량이 어찌 되었는지에 대한 소식은 없었다. 아마 좌천되었거나 일반 군사로 강등되었을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알아서 잘 버텨내리라 믿었으니까.
최대한 빨리 갈사량과 백표를 내 사람으로 만들 생각이다.
그들이 정 원하지 않는다면 강요하지 않겠지만, 그들이 함께 꿈을 꾸고 싶은 사람이 되어 나타난다면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위해선 내가 강해져야 한다. 내 검대가 강해져야 한다. 무슨 일이든 첫 단추가 중요하듯, 이번 검대가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따라 이후 검대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행히 지난 두 달 간의 훈련으로 검대의 몸놀림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특히 새벽수련을 따로 한 관휘와 서너 명은 확실히 실력이 상승한 상태였다. 검대 내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때가 되었다고 판단을 내리고 곧장 관휘를 불렀다.
“관조장.”
“네, 대주님.”
관휘의 살아있는 눈빛을 보며 내가 힘 있게 말했다.
“이제 때가 되었다.”
실전훈련을 나갈 순간이 된 것이다.
“다 소집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