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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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속으로(3)
어머니는 후기지수들을 위한 연회를 여셨다.
명목은 산동의 미래를 짊어질 청춘들을 위한 자리라고 하셨지만 사실은 나와 송화린을 위한 자리였다.
내가 검대양성에만 빠져서 송화린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았기에 마음이 조급해지신 것이다.
또 다시 돈 벌러 나가기 전에 서둘러 연회를 개최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연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연회라면 맹주시절 정말 지겹도록 경험한 것이 이유였고, 싫은 사람도 웃으며 대해야 하는 연회 본연의 속성이 싫었다.
특히 젊은 애들의 연회에 어떤 선입견 같은 것이 있었다.
젊은 애들끼리 모여서 술을 마셔봐야 취해서 실수하고 싸움 나고.
그렇다고 연회를 꼭 열어야겠다는 어머니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초대장이 돌았고 결국 연회가 열렸다.
꼭 참석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특별초대장을 받은 송화린은 물론이고 산동일대의 후기지수들이 대다수 참석했다.
우리 가문의 위세가 약해진 지금, 분명 거들먹거리는 놈들이 속출할 거라고 예상했다.
한데 막상 연회가 열리니 생각보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좋은 술에 맛있는 요리까지. 준비를 철저히 해주신 어머니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나에 관한 소문 때문이었다. 특히 내가 이끄는 소검대가 야수대를 전멸시킨 이야기는 산동의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했다.
다들 나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무도 나를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소검대가 어떻게 야수대를 물리쳤는지 물어보며 친근함을 표했다. 그 중에는 양기강과 어울리며 나에게 멸시의 눈빛을 보내던 녀석들도 있었다.
이기적인 것인지, 개념 없는 것인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가문을 키우는 일은 사적인 영역의 일이 아님을.
싫은 사람을 보며 웃을 수 있어야 하고, 내키지 않은 말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 이 아이들의 집안 자랑, 무공 자랑, 돈 자랑, 새로 산 병장기 자랑,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웃으며 들어주는 이유다.
만약 이게 싫다면 세력이 얽히지 말고 자유롭게 살면 되는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것, 나는 쓸만한 녀석이 없는지 살폈다. 산동에서 가업을 키워가려면 어차피 한 두 번씩은 마주쳐야 하는 녀석들이다.
각자 녀석들의 성격을 파악했고 집안 사정을 기억해 두었다.
일전에 산동상회에 관한 종총관의 한마디가 일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은 사소한 어떤 것이 나중에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의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나와 송화린은 주로 듣는 쪽이었다. 그녀는 나만큼이나 연회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나에 대한 그녀의 눈빛은 예전보다 부드러워져 있었다. 아무래도 지난 번 도와준 일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먼저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긴 말을 하고 싶어도 할 기회가 없었다. 사내 녀석들이 그녀 주위에 모여들었다. 자신이 없어 가까이 가지 않은 녀석들은 멀리서 그녀를 힐끗거렸다. 이런 것을 즐긴다면 행복한 순간이겠지만, 아니라면 참 고역이겠다 싶
었다.
“송소저 우리 한 잔 합시다.”
계속되는 요구에도 그녀의 대답은 하나였다.
“저는 술은 마시지 않아요.”
이상하게도 그녀는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누군가 왜 마시지 않는지를 물었지만 그녀는 그저 옅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사실 내가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왜 맹주를 싫어하는지. 그것을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어서 참고 있을 뿐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물어볼 생각이다.
사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꼴이 보기가 싫었는지 참석한 여인 중 하나가 송화린에게 물었다.
“벽공자와 파혼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맞나요?”
제법 큰 소리로 말했기에 일순 주위가 조용해지며 시선이 집중되었다.
송화린이 살짝 당황했다. 막상 자신이 하자는 말을 꺼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대답을 대신했다.
“소문 여부를 떠나서 그녀는 내겐 너무 과분한 여인이지 않소?”
두루뭉술한 내 말에 사내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질문을 던진 여인이 다시 말했다.
“외모가 다는 아니죠.”
그녀는 송화린을 곤란하게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송화린은 모든 여인들의 질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 당돌하고 무례한 여인의 장단에 맞춰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예쁜 여자가 머리도 좋고, 무공도 뛰어나기 어려운데. 송소저가 그 어려운 것을 해내는군요.”
여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파혼 이야기를 꺼내서 나쁜 말들이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오히려 그녀를 칭찬하는 말이 나오자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
“자, 우리 다 같이 건배합시다.”
내가 잔을 높이 들었다.
연회를 마치고 송화린이 내게 다가와서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뭐를?”
“나를 과분하다고 여기느냐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네 눈빛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내 눈빛이 어떤데?”
“무덤덤해. 이렇게 덤덤해도 되나 싶을 만큼.”
그녀의 말에 내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더구나 임독양맥이 타통된 후 눈빛이 더욱 깊어져서 더욱 그래 보일 것이다.
그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어 슬쩍 화제를 돌렸다.
“무공 수련은 잘 되고 있어?”
“노력하고 있어.”
누구에게 무공을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에게서 상당한 실력이 느껴졌다. 적어도 여기 있는 후기지수들 중에서는 일이 위를 다툴 것으로 생각한다.
“너는 어때?”
“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뚝뚝 끊어졌지만, 그래도 여전보다는 부드럽게 서로를 대하고 있었다.
아주 어려서는 친했다는데. 그때 기억은 도통 없으니.
내가 그녀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그냥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
“무슨 뜻이야?”
“우린 이제 스무 살이잖아? 뭔가에 얽매이기에는 너무 아까운 나이지. 그냥 주어진 삶을 즐기며 열심히 살자는 말이야.”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뭔가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내 눈빛에서 무엇을 보았든 간에, 넌 정말 아름다워. 내겐 너무 과분할 정도로.”
“나는 그런 말들이…….”
송화린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눈빛에 어떤 서글픔이 스쳤다.
그래, 아름답기 때문에,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그녀가 겪어야 하는 고충이 있을 것이다. 사내들의 음탕한 시선과 여인들의 무자비한 질투를 견뎌내야 할 테니까.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상처들이 있을 것이다.
“네가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 알고 있어.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세상은 더욱 너를 외모로만 평가할 거야.”
그녀의 아름다움이 어디에나 한 명쯤 있는 그런 평범한 아름다움은 아니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의 물음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냥 네 아름다움을 당당히 인정해 버려. 남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래, 나 죽이게 예쁘잖아? 그게 뭐 어때서? 기왕이면 아름다운 것이 더 낫잖아? 이렇게 말해 버리라고.”
“나는…… 그럴 수 없어.”
그래, 그녀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해야 해. 때론 완전히 인정해야만 벗어날 수 있는 일들도 있는 법이니까.”
그녀가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고마워하고 있었다.
“너를……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럴 것이다. 그녀가 돌아와서 보고 들은 나는 쓰레기 파락호였다. 노름에, 폭력에, 기녀에게 빠져서 돈이나 바치는. 그리고 취해서 자신에게까지 행패를 부리는.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테니 여러모로 혼란스러울 것이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스물이라는 나이는 한창 변덕스러울 나이잖아?”
그때 저 멀리서 어머니가 함께 있는 우릴 보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녀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고 내가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렇게 오늘의 연회는 끝이 났다.
* * *
요즘 공수찬은 얼굴보기 힘들 정도로 바빴다.
연회를 마친 늦은 시간에도 서류를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래, 이 모습이 내가 총관이 필요한 이유겠지.
정말이지 숫자계산이 약한 나다. 무공과 관련해서는 수십 명을 어떻게 죽일지 순식간에 다 계산이 다 되는데, 돈 계산이라도 할라치면 검대원들 밥 값 계산도 헷갈리는 것이 현실이다.
내 방문에 공수찬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소.”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아직 일하던 중이었습니다. 자, 이리 앉으시지요.”
공수찬이 주전자에서 차가운 차를 따랐다.
“머리가 맑아지는 차입니다.”
“이런 것을 마셔서 공총관의 머리가 이렇게 좋은가 보오.”
“하하,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사실 내가 가장 신경을 써야 할 사람이 공수찬이다. 돈과 관련된 문제야 말로 조직을 키워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요즘 일은 어떻소?
“그럭저럭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돈이 얼마나 있소?”
공수찬은 장부를 뒤져보지 않고 곧장 대답했다. 머릿속에 자금상황이 훤히 다 들어 있다는 뜻.
“만 팔천 냥 있습니다.”
돈은 제법 많이 불어 있었다. 공수찬이 그만큼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대부분 상단에 투자되어 있어서 묶여 있습니다. 혹시 돈이 필요하십니까?”
“당장은 아니고. 내년 봄에 검대원을 늘일 생각이오.”
“몇 명이나 말씀입니까?”
“사십 명 정도 추가할 생각인데. 가능하겠소?”
“내년 봄이면…….”
잠시 머릿속으로 셈을 하는가 싶더니 공수찬이 웃으며 말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좋소. 그렇게 알고 자금을 운영해 주시오.”
“네, 알겠습니다.”
사십 명 정도 더 받아서 총 육십 명, 이십 명에 한 조로 구성해서 삼개조로 만들 계획이었다. 육십 명쯤 되면 어느 정도 검대의 구색은 갖추게 되는 셈.
숫자를 늘리는 것에 대해 물어봤을 때 공수찬은 곧장 대답하지 않고 셈을 했다. 다시 말해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다.
좀 더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부지런히 돈을 벌면서 지금의 검대를 강하게 키워야했다.
“할 만한 임무가 들어오면 곧바로 말해주시오.”
* * *
다음날 광두를 찾았을 때, 항상 수련하던 뒷마당에서 강호를 잃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만 모른 척 물었다.
“왜 그래? 수련이 힘들어?”
광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힘없이 대답했다.
“아뇨. 수련은 정말 재밌어요.”
“하면?”
“알면서 왜 그래요?”
“너 싫대?”
“……네.”
“면전에다 직접?”
도순이가 그런 모진 성격처럼 보이진 않았었는데.
“아뇨.”
“아닌데 어떻게 알아?”
“제가 준 수실을 검에 달지 않았어요.”
“하하하하.”
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이런 이유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너무 소중한 선물이라서 달지 않은 것은 아니고?”
“네?”
순간 광두가 두 눈을 번쩍 떴다. 한순간에 광두가 잃어버린 강호를 다시 되찾았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아, 그 생각을 못했네. 멍청이! 정말 전 멍청해요. 도련님.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벌떡 일어나서 광두가 내 손을 붙잡았다. 나는 다시 불타오르는 녀석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물론 싫어서 안 단 것일 수도 있겠지만.”
“왜 이래요? 이랬다저랬다.”
“여자 마음을 알 수 없다는 말이지.”
칠십 생을 살아본 내가 가장 자신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긴, 그렇죠.”
광두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가 그 옆에 나란히 앉으며 물었다.
“도순이 어디가 좋냐?”
“전부 다요.”
“그 전에는 이렇게 안 좋아했잖아?”
“그게 참 이상하더라고요. 그녀가 내 앞에서 수줍은 표정으로 선물을 건네주는데, 그때 심장이 덜컥 떨어지더라고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지만 선물 때문에 그렇다는 둥 그런 질 떨어지는 농은
사절입니다. 저 진심이에요.”
“나 아무 말 안했다.”
광두가 조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가슴 떨리는 사랑을 해본 기억이 없다. 정말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면 녀석의 표현대로 심장이 덜컥 떨어질까?
내가 조심스럽게 일전에 느꼈던 바를 전했다.
“송희가 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아직 애잖아요.”
혹시 모를까 싶어서 말해준 것인데 알고는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그 정도로 눈치가 없는 녀석은 아니지.
“그냥 친동생 같은 녀석이에요.”
문제는 송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겠지.
천하제일인이었던 나도, 이제 막 무공을 시작한 광두도 애정사는 어렵기만 하구나. 사귀는 것도 어렵고, 사귀지 않으려는 것도 어렵고.
“나 간다. 너는 떨어진 심장이나 잘 찾아라. 또 다른 여자에게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나빠요.”
“진실은 항상 아픈 법이지.”
그렇게 일어나려는데 광두가 나를 붙잡았다.
“잠시만요, 도련님.”
녀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가르쳐 주세요, 비도술.”
첫사랑도, 관휘에게 지기 싫어하는 경쟁심도 여전히 진행중인 광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