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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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걸리지 않는(1)
오랜만에 산속 동굴을 찾았다.
이전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았던 바로 그 동굴이었다.
그곳에서 차분히 혁낭의 물건을 챙겼다.
우선 만년한철부터.
당대에 만년한철이라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순수한 만년한철이 아니었다. 다른 금속을 섞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만년한철의 비율이 얼마나 높은지에 따라 그 강도가 결정되었다.
만년한철은 값이 워낙 비싸서 아무리 부자라도 순수한 만년한철만을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순수한 만년한철을 이용한 사람은 사파의 흑룡제가 유일했다. 탈출에 이용했지만 결국 나는 그것을 잘라내고 그를 죽였다.
야천에게서 가져온 이것은 그 강도로 볼 때 만년한철의 순도가 상당히 높은 것이라 예상되었다.
나중에 만년한철을 다룰 수 있는 장인에게 맡겨, 이 금속들에게서 만년한철만 분리해 내면, 검 한 자루, 잘하면 두 자루 정도는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나 역시 합금으로 개조해서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돈으로도 쉽게 구하기 어려운 기물을 얻은 것이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사용할 수 없었기에 동굴 근처에 표 나지 않게 묻어두었다.
다음으로 전표를 세어보았다.
무려 오십오만 냥이었다. 야천이 평생을 축재한 재산이었다. 이것저것 함께 가져온 금붙이들을 팔아도 꽤 돈이 될 것 같았다. 그야말로 육십만 냥에 육박하는 돈이었다.
나는 이 돈으로 두 가지 일을 할 작정이다. 첫 번째는 정보조직을 만들 생각이다. 내 적을 생각했을 때, 제대로 돌아가는 정보조직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백표를 수장으로 하는 비밀조직을 하나 만들 작정이다. 오직 내 명령만 듣는 최정예고수들로 이뤄진 강력한 조직을 만들 것이다.
사람을 모으는 일부터 아예 백표에게 맡길 작정이다. 백표라면 충분히 그 일을 해낼 것이다.
전표와 금붙이, 보석들 이외에는 잡다한 것들이었다. 필요 없는 서류 따위들이었는데 그것들을 태워서 없애버리던 중에 뭔가가 내 눈에 띄었다.
암어와 숫자가 가득 적힌 작은 책자였다.
나는 이것이 야천의 비밀장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냥 태워버리려고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그것을 품에 넣었다. 태워버리기 전에 한 번쯤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산동야상에서 가져온 물건을 모두 정리했다.
동굴 밖으로 나와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상대하는 적들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내가 강해져야 할 이유도 점점 강해지는 것이었으니까.
* * *
다음날부터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호연세가의 호연남이 죽고, 천도문의 염화가 중상을 입었다는 소문이었다.
한쪽은 중원사대세가의 하나인 호연세가였고, 다른 쪽은 두 말 하면 입이 아플 천도문이었다.
그야말로 일대사건이 터진 것이다. 소문이 나돌기가 무섭게, 천도문의 고수 손에 산동야상의 상주가 죽었다는 소문이 뒤따라 퍼져나갔다.
호연세가를 끌어들인 것이 산동야상이고 그 보복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둘만 모여도 모두 그 이야기만 했다. 특히 산동문파 수장들은 산동이 그들의 싸움터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휩싸였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일이 또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걱정이구려.”
“그러게 말이에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걱정에 비해 나는 여유로웠다.
“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아버지의 물음에 내가 차분히 대답했다.
“호연세가는 강서에 자리를 잡고 있고, 천도문은 귀주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두 곳 모두 이곳에서 멀리 있지요. 이미 벌어진 일이고, 그 사건의 전후가 명확한 지금 굳이 이 먼 산동까지 와서 충돌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면 산동야상에 대한 네 생각은 어떠하냐? 혹 복수를 하겠다며 설쳐대다 산동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느냐?”
“산동야상이 망한 것은 잘 된 일입니다. 야상은 그 정체가 불분명한 조직인데다, 탐욕이 가득한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이 산동야상의 복수를 위해 나선다고요? 그럴 리 없습니다. 아마 그들은 산동을 차지하기 위
해 저희들끼리 피터지게 싸울 겁니다.”
내 말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향한 눈빛에 신뢰가 가득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떠나, 아들이 이렇게 명확한 의견을 내놓는 것이 기분 좋은 것이다.
사실 나야말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제거해야 할 자들은 모두 제거했으며 막대한 돈을 얻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모든 일에서 나와 송화린은 완벽하게 비껴났다는 점이다.
지들끼리 싸우는 것은 오히려 내가 바라는 바다.
전쟁에서 강적을 상대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 하나.
적을 분열시킨 후, 각개격파한다.
내가 자주 사용하던 수법이기도 했다.
천도문과 적대적인 세력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천도문의 힘은 약해질 것이다.
나는 힘을 키우면서 마봉기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아직은 몸집을 불리며 힘을 키울 시기였다.
어쨌든 당분간 산동은 별 일 없을 것이다.
“저는 내일 다시 무한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벌써? 좀 더 있다가 가거라.”
어머니는 못내 아쉬워했지만 아버지는 아쉬움을 참았다.
“그래, 젊을 때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아버진 항상 잊지 않는 말씀을 덧붙였다.
“수하들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말고 항상 배려하여라.”
“명심하겠습니다.”
만날 듣는 소리다. 하지만 오늘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수장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저 하나의 마음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최고의 자리이기에 너무나 많은 것을 해내야 할 것 같지만, 정작 저 하나만 제대로 실천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 죽을 때까지 저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닐까?
* * *
송화린이 눈을 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더 없이 화창하고 밝았다. 이렇게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은 적이 언제였던가?
그녀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아, 잘 잤다.”
잠시 후 수란이 마실 물을 챙겨서 들어왔다.
“아가씨,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푹 잤거든.”
정말 오랜만에 푹 잠을 잤다. 그리고 오늘은 악몽을 꾸지 않았다.
수란은 자기 일처럼 기뻤다. 제대로 잠을 못 자던 송화린을 지켜보는 일은 너무 신경 쓰이고 마음이 아팠다.
송화린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제와 다름없는 풍경이었는데, 자신의 기분이 다르니 풍경도 달라 보였다.
사부의 죽음에 대해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마음이 아팠다.
사부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던 순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사부에게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음을.
만약 사부의 죽음이 통쾌하게 여겨졌다면, 여전히 상처가 크게 남아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녀는 사부가 죽은 것이 안타까웠다. 사부가 불쌍했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악몽은 꾸지 않았고, 오늘 아침은 너무나 상쾌하다.
그때 시비가 하나 와서 소식을 전했다.
“벽공자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뭐? 잠시만 기다리라고 전해라.”
그녀가 후다닥 침상에서 내려왔다.
“어디 가세요?”
“씻어야지! 화장도 해야 하고. 넌 어서 옷 좀 찾아. 알지? 내가 아끼는 옷. 어서! 서둘러!”
경공까지 발휘해 달려 나가는 그녀를 보며 수란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송화린의 모습이었다.
수란이 창밖을 쳐다보았다.
저 멀리 화원에 벽리단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벽리단을 만나고 송화린이 변하고 있었다. 더 밝아지고 활기차졌다.
처음에는 벽리단이 싫었는데, 이제는 그가 고마웠다.
“그래도 우리 아가씨 울리면 안 돼요, 벽공자님.”
일각 후, 송화린이 하품을 하면서 후원으로 걸어왔다.
“이렇게 일찍 웬일이야?”
마치 방금 깨어나서 나온 것처럼 그녀가 기지개를 켰다.
“내가 너무 일찍 왔지?”
“아니. 막 일어나서. 아직 씻지도 못했네.”
“미안.”
“아냐. 이런 모습 보여서 내가 미안하지.”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 그녀였다. 입고 있는 옷도 깔끔했다.
“그런데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야?”
“무한에 다녀와야 해. 한두 달 걸릴 것 같아서 인사라도 하고 가려고.”
“아, 그렇구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송화린은 그 어느 때보다 아쉬웠다.
그와의 관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 자신의 마음이었다. 벽리단의 마음은 알 수 없었으니까.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또 어떤 감정이 들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살짝 설렜다.
그녀가 벽리단에게 말했다.
“이번 일 고마웠어. 정말.”
진심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갔어야 했을 테니까.
“잘 다녀 와.”
“그 전에 약속한 것은 지키고 가야지.”
“약속?”
“내가 더 근사한 무공을 가르쳐준다고 했잖아.”
“그게 진심이었어?”
“설마 농담으로 받아들였어?”
송화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벽리단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도 네 무공을 버리려고 마음먹었던 거야? 왜?”
“널 믿으라면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하하.”
내가 크게 웃었다.
정말 대책 없이 나만 믿고 그런 결심을 했던 것이니까.
“자, 나가자.”
그녀를 데리고 아무도 없는 연무장에 마주섰다.
전수해 줄 무공은 진화검술(震華劍術)이었다. 전전대의 유명한 여고수였던 고산화낭자(孤山華娘子)의 독문무공이었다.
진화검술은 그녀가 호연남에게 익혔던 검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승의 검술이었다.
그녀에게 심법을 먼저 전수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심법을 운용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다음에는 초식을 전수했다.
핵심만 뽑아서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전수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루 종일이 걸렸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녀 역시 온힘을 다해 배웠다.
이윽고 밤이 되었을 때, 무공전수가 끝났다.
내가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 무공을 대성하면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을 거야.”
장난처럼 말했지만 송화린은 이 검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그녀는 흥분한 얼굴이었다. 상승의 무공이 주는 긴장감과 즐거움이 있다.
“다음에 와서 다시 봐줄게. 그때까지 배운 대로 수련하면 될 거야.”
그녀는 어떻게 이 무공을 알고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하긴 이것을 물어봐야 한다면 그 이전에 물어봐야 할 것이 너무 많았을 테니까.
“열심히 할게.”
그녀의 수련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덧붙여 말했다.
“무공을 구사하는 사람은 자유로워야 해. 얽매이지 않을 때, 자유로울 수 있지. 하지만 잊지 마. 자유롭게 무공을 구사하는 사람은 수천, 수만 번 같은 초식을 반복해서 연습했던 사람이야. 그런 사람만이 진정한 자
유를 얻을 수 있는 거야.”
그것은 비단 무공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자유란 그런 것이다.
인내가 깃든 자유만이 진짜 자유가 되는 법이다.
송화린이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한 그녀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들었을 것이다.
“다녀올게.”
“다시 만나면 강해져 있을 거야.”
“기대할게.”
내가 돌아서려는데 송화린이 생각지 못한 행동을 했다.
그녀가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민 것이다.
내밀어진 그녀의 손이 떨렸다. 아마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사내에게 손을 내민 것이 처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프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꽉.
그녀와의 첫 악수였다.
* * *
나는 무한으로 곧장 돌아왔다.
오면서 동굴 근처에 묻어두었던 만년한철도 챙겨서 왔다. 어차피 그것을 다룰만한 장인은 산동에는 없었다.
만년한철을 챙겨서 선학봉의 비동에 가져다 두었다. 그곳이야말로 중원 그 어떤 전장보다 더 안전한 곳이었다.
그리고 나서야 광두와 공수찬이 묵고 있는 객잔으로 돌아왔다.
“도려언니이이이이이님!”
저 멀리서부터 달려온 광두가 덮치듯 나를 와락 껴안았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고분고분 안겨 주었다. 나도 정말 광두가 보고 싶었으니까.
“보고 싶었습니다!”
“이 놈아! 누가 보면 수십 년간 헤어졌던 가족상봉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그렇게 생각하라지요. 산동에서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 많이 했다고요.”
오죽했겠는가? 날 걱정해서 잠 못 자는 것은 광두 특기였다.
“혹시?”
광두가 조심스럽게 묻자 내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나와 관련이 있음을 알고 광두가 화들짝 놀랐다.
“걱정마라. 잘 해결되었으니까.”
“도련님?”
“왜?”
“겁 안 나세요? 그런 놈들 상대하라면 전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데.”
“겁나지. 하지만 내게는 대신 죽어줄 사람이 있지 않느냐?”
흠칫 놀란 광두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그 칼받이 아직 약하다는 것 잊으시면 안 됩니다. 강해지려면 한 백 년쯤 더 걸릴 거예요!”
“하하하.”
뒤이어 공수찬이 걸어와서 인사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덕분에 잘 다녀왔소.”
“얼굴이 좋아 보이십니다.”
난 그런지 몰라도 공수찬은 아니었다. 바쁘게 일하느라 얼굴이 조금 수척해 보였다.
“쉬어가면서 일하시오.”
“잘 먹고 잘 자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명령입니다.”
“네! 그러지요.”
공수찬이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벽공자, 저와 함께 가실 곳이 있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살짝 흥분한 기색이었다.
나는 두 말 없이 그를 따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