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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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어가 이끄는 곳에서(2)
나는 그길로 곧장 산동 집으로 돌아왔다.
다들 각자의 일을 하느라 바빴고 나는 지금 당장 무한에서 해야 할 일이 없었다.
암어를 해독해야겠다고 생각한 김에 끝까지 처리해버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나서 곧장 종총관을 만났다.
“이게 뭔가?”
종총관이 앞에 놓인 몇 가지 물건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건강에 좋은 약재입니다. 그리고 이건 새 장삼이고, 편히 입으실 수 있는 봄옷 몇 벌 샀습니다. 무한에서 유명한 재단사가 만든 옷입니다.”
“그러니까 이 덫을 왜 내게 주는 것이냐고.”
“덫이라니요? 선물입니다.”
“선물이라?”
“좋은 제자를 소개해주셔서 감사의 뜻으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종총관이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흥! 씨도 안 먹히는 소리 말고. 부탁할 것이나 이야기 하게.”
“역시 사람을 꿰뚫어 보시는군요!”
종총관이 앞에 놓인 선물을 내려보았다.
“자네의 흑심이 이렇게 뚜렷한데 꿰뚫기는!”
“하하.”
내가 품에서 암어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이것 해독 좀 부탁드립니다.”
종총관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종이를 받아들었다.
“꽤 어려운 암어군.”
다시 말하자면 자신이 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공수찬은 암어해독을 스승인 종총관에게 배웠다고 했다. 종총관은 원래 학사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던 사람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총관이 된 경우라고 했다. 언젠가 그의 사연을 듣게 될 날도 오게 되리라.
“이따 저녁에 오게.”
“그렇게나 빨리 말입니까? 정말…….”
“됐고. 올 때 술이나 한 병 사오게.”
“네.”
일어서 나오려는데 종총관이 말했다.
“그 놈은 잘 있나?”
저렇게 무뚝뚝해 보여도 제자를 챙기는 마음은 여느 스승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네, 아주 잘 있습니다.”
“그럼 됐네.”
암어에 빠져드는 종총관을 뒤로 하고 방을 나왔다.
* * *
송화린의 하루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련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송가장의 일은 잠시 손 떼고 무공수련에 전념하겠다고 뜻을 밝혔다.
어느 무인이 딸이 무공에 전념하겠다는데 말릴 것인가?
송우경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날 이후 송화린은 벽리단이 전수해준 진화검술을 익히는데 하루를 다 보냈다.
아직 초반이지만 익히면 익힐수록 이전에 배웠던 무공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무공을 익혔던 고산화낭자는 평생을 외롭게 산 여인이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들어서인지, 왠지 검술이 고독하게 느껴졌다. 송화린은 검술에서 느껴지는 고독감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쉭쉭쉭쉭쉭!
동작은 빠르면서도 우아했고, 정확하면서도 강력했다.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입은 옷처럼 이질감 없이 편했다.
진화검술이 상급의 검술임을 감안했을 때, 믿기 어려울 정도의 적응이었다.
그녀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처음에 벽리단이 가르쳐 줄 때, 정말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 줬기 때문이란 것을.
만약 그가 가르쳐주지 않고 이 무공을 다른 스승이 가르쳐줬다면, 지금 이 정도로 이해하려면 몇 년은 걸렸을 것 같았다.
‘정말이지 그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해야할까, 이상하다고 해야할까를 생각하며 돌아서던 그녀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아악!”
뒤에 벽리단이 서 있었던 것이다. 마침 그를 생각하고 있던 참이라서 더욱 놀랐다.
“미안.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어.”
“아냐. 한데 어떻게 네가?”
“갑자기 집에 올 일이 생겨서. 곧 돌아가야 해.”
“그렇구나.”
“저녁때까지 시간이 있는데…….”
벽리단이 뒷말을 망설이자 그녀가 빠르게 말했다.
“잠시 기다려줘. 준비하고 나올게.”
“그래.”
그녀가 우아한 걸음으로 연무장을 걸어 나갔다.
벽리단의 시야에서 벗어나자 그녀가 경공술을 발휘해서 내달렸다. 씻고 화장하고, 옷 고르고. 할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
반 시진 후, 두 사람은 저잣거리를 걷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그녀를 쳐다보았다. 송화린에게는 감탄을, 벽리단에게는 질투가 날아들었다.
벽리단은 그것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한 기분이 들어서 내심 그 시선을 즐기고 있었다.
오늘따라 날씨는 화창했고,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하늘에는 새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원을 그리며 놀고 있었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자리에는 봄이 성큼 들어서고 있었다.
“무한은 어때?”
“그냥 이곳보다 복잡해. 사람도 많고.”
“나보다 예쁜 여자들도 많겠네.”
“아무래도. 응? 뭐라고?”
무심코 대답했던 벽리단이 흠칫 놀라 송화린을 돌아보았다. 제대로 낚았다는 표정으로 그녀가 눈을 흘겼다.
이내 그녀가 인정한다는 듯 말했다.
“그래, 아무래도 큰 도시니까, 나보다 예쁜 여자들 많겠지.”
“너보다 예쁜 여자는…….”
그녀의 귀가 쫑긋할 터라 괜한 장난기가 발동했다. 원래는 너보다 예쁜 여자는 보기 어렵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가끔 있지.”
그녀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하하하.”
장난인 줄 알았기에 그녀도 따라 웃었다. 이렇게 삐친 척 하는 모습도, 이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도 처음이었다. 한 번씩 만날 때마다 그녀는 새로운 모습을 자꾸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방 저잣거리가 끝나는 곳까지 왔다.
“이제 어디 가지?”
“글쎄.”
벽리단은 이렇게 한가로이 여인과 걸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뿐만 아니라 누구와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언제나 그의 걸음에는 목적이 있었다.
“그냥 좀 더 걷자.”
“좋아.”
두 사람이 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끝에 가면 다시 되돌아 가고.
목적 없이 왔다 갔다한 그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송화린과 실컷 쏘다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종총관은 암어해독을 마친 후였다.
“암어를 다 해독했네.”
종총관이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모월모시(某月某時), 하남성(河南省) 방성(方城) 추가장(秋家壯).
“모월모시라면 이번 달 아닙니까?”
“정확히 여드레 후네.”
팔일 후 하남성의 방성에 있는 추가장으로 모이라는 뜻 같았다.
하남성 방성이라면 시간 내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한데 이것 혹시…… 위험한 일인가?”
“어쩌면요.”
잠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걱정이 스쳤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진 않았다. 그가 내가 사온 술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는 덫에 걸리지 않을 걸세.”
내가 그의 손에 들린 술을 보며 말했다.
“하하하. 늦으셨습니다. 이제 어떤 종류의 덫이 필요한지 확실히 알았으니까요.”
“고얀!”
그래도 안 해 준다는 말은 하지 않는 그였다.
다음날 새벽, 가족들과 집안 식구들에게 인사를 마친 나는 집을 나섰다.
향한 곳은 하남성이었다.
* * *
방성에 도착해서 알아보니 추가장은 서쪽 외각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무명객의 얼굴로 그곳을 향했다. 거기에 방갓까지 푹 눌러썼다. 애초에 내 무공실력이라면 내 의지에 반해 방갓을 벗기지 못하겠지만,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곳이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이 상
책이다.
그곳으로 가는데 점점 사람들이 많아졌다. 무인도 있었고, 일반인들도 있었다. 무인들은 제법 실력이 느껴지는 이들이었고, 일반인들은 아주 비싸고 좋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호위무인들을 거느린 상인도 있었고, 표국 옷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손이나 수레에 선물처럼 보이는 짐을 들거나 싣고 있었다.
내가 슬쩍 인상이 좋아 보이는 사람에게 모른 척 물었다.
“다들 어딜 가시는 거요?”
“오늘 추가장주님의 생신이시라오.”
추가장주의 생일이라.
강호에서 은밀한 모임을 가지려고 할 때 주로 이용되는 날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니 이목을 받지 않고 모일 수 있었으니까.
“어디서 오셨습니까?”
입구에서 방명록을 작성하는 사내가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붓을 들어 이 암어의 주인이었던 조벽의 이름을 방명록에 썼다.
사내가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어차피 방갓을 푹 눌러쓰고 있었기에 내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 신망이 두터웠는지 안에는 축하객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아마도 인근의 유지들이 모두 모인 모양이었다.
서로 아는 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부터 한 옆에 마련된 요리들을 먹는 이들, 벌써부터 취해서 얼굴이 벌게진 사람들까지.
나는 한옆에 서서 그곳에 참가한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왜 조벽은 이 생일연회의 날짜와 장소를 암어로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아무나 참석할 수 있는 자리인데?
축하객들이 마당을 가득 채웠을 무렵, 추가장주 추도치(秋度治)가 나와서 인사했다.
“이 늙은이가 태어난 날이 뭐가 그리 중하다고 이리들 오셨소?”
그러자 하객 중 한 사내가 큰소리로 말했다.
“하남을 대표하는 큰 어르신의 생신인데 당연히 와야지요.”
“진짜 큰 어르신들이 들으시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우리에게는 추장주가 큰 어르신입니다.”
그러자 주위의 사람들이 맞장구를 쳤다.
“암요.”
“당연합니다.”
“감축 드립니다!”
축하객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추도치가 손을 들어 주위를 환기시킨 후, 모두에게 말했다.
“고맙소. 여러 강호동도들의 따뜻한 마음에 이 늙은이는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소. 모쪼록 많이들 드시고 즐기다 돌아가시기를. 먼 길을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외다.”
“장주님, 만수무강하십시오.”
다시 사방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여기까지는 이상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생일연회였다.
하지만 이제부터 달라졌다.
한 여인이 다가와서 내게 나직이 말한 것이다.
“조대협이시죠?”
“그렇소.”
아마도 앞서 방명록에 이름을 남겼기 때문에 나를 알아본 것 같았다.
“저를 따라 오시지요.”
여인이 나를 후원으로 안내했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우릴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후원의 별채 건물 앞에 무인 하나가 지키고 서 있었다.
나는 한눈에 그가 고수임을 알아차렸다. 얼마 전에 상대했던 염화보다 고수면 고수지 하수는 아니었다.
이런 곳에 이 정도의 고수가?
과연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여인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너른 대청에 두 명의 사내들이 먼저와 있었다.
서로 대화 없이 멀뚱히 서 있는 모양새로 볼 때, 그들 역시 나처럼 누군가의 안내를 받아 이곳에 온 것처럼 보였다.
한 사람은 이십대였고 다른 하나는 삼십대였는데 제법 상당한 실력을 지닌 것 같았다.
왜 이곳에 모인 것일까?
그때 문이 열리고 십여 명의 사람이 들어왔다. 앞장서 들어온 사람은 입구를 지키던 무인이었다. 그들 뒤따라 들어온 사내들 역시 무공이 상당해 보였다.
문에서 본 사내가 염화의 실력이라면 뒤의 사내들은 천도사우와 비슷한 실력은 되어 보였다.
천도사우가 한 수에 내 손에 죽었다지만 그건 나니까 그렇게 된 것이고. 천도사우는 상당한 실력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염화 하나에 천도사우 열.
이런 작은 장원에서 보기 어려운 전력이었다.
사내가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본인은 심황(沈煌)이오.”
추가장 소속 무인인지 아니면 외부의 무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시작에 앞서 초대장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초대장?
무엇을 시작하겠다는 것인지를 떠나서 내심 깜짝 놀랐다. 나는 초대장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심황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다행히 내게로 먼저 오지 않고 옆에 있던 사내에게로 먼저 갔다.
사내가 품에서 뭔가를 꺼내서 건넸다.
그가 꺼낸 것은 작은 종이였다. 나는 그것을 보는 순간 안도했다.
바로 화살촉 안에 숨겨져 있던 그 종이였던 것이다.
초대장은 바로 그것이었다. 조벽이 그것을 버리지 않고 보관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 초대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종이를 받아든 심황이 그것을 뒤따라온 수하가 들고 있는 물그릇에 담갔다.
그러자 종이에서 푸른색이 흘러나왔다. 아마도 자신들만이 확인할 수 있는 특수한 염료를 발라둔 모양이었다.
다른 사내의 것도 확인했고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종이를 담그자 역시 푸른색이 흘러나왔다. 해독한 후에 다시 그것을 받아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확인을 마친 심황이 돌아섰다.
그렇게 걸어가는가 싶었는데.
쉬이이이익!
벼락처럼 돌아서며 검을 휘둘렀다.
내 허리는 뒤로 눕혀져 있었고, 심황의 검이 내 얼굴이 있던 자리에 내밀어져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이다.
검을 겨눈 채 심황이 차갑게 말했다.
“넌 조벽이 아니야.”
뒤에 서 있던 무인들이 검을 뽑아들고 우르르 앞으로 튀어 나왔다.
내가 천천히 허리를 펴며 앞으로 내밀어진 검을 손가락으로 옆으로 밀어냈다.
“넌 초대장의 의미를 모르는군. 아는 얼굴만 부를 거면 그냥 오라면 되지 초대장은 왜 만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