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10)
리라이프 플레이어 310
[Chapter 100] [죽음을 밟고 사는 이들에게]중등아카데미 1학기 중간고사.
하양은 마나의 발생과 원리에 대해 긴 장문의 글을 적어 내려갔다.
다른 학생들이 문제지를 작성하고 자리를 뜨는 가운데에도 교관에게 추가로 답안 작성지를 부탁하며.
…됐다.
제법 어려운 시험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시험을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학생들과 다르게 끈기 있게 방대한 내용을 정리했다.
답안의 논조가 흐트러지지 않았나 몇 번이고 답안 작성지를 검토하고 교관에게 제출했다.
“하양이 네가 마지막이구나.” “네? 아직 사람들이…. 정말 저만 남아 있었네요.”
시험에 집중하느라 주변에 신경을 기울이지 못했다.
교관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서야, 강의실에 자신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양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하양아.” “네?”
그때, 대충 그녀가 적은 답을 읽은 교관이 대견스럽다는 얼굴을 하고는 그녀를 불렀다.
교관은 자신의 강의를 눈을 빛내며 수강하곤 했던 하양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예의바른 학생이자, 앨리스그룹의 직계이기도 했기에.
“내년부터는 플레이어의 포지션을 하나 선택해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
“네. 3학년이 되면 하나 선택해서 들을 수 있잖아요.”
하양은 교관이 건넨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이어는 전투직과 생산직으로 나뉠 수 있었다.
그리고 전투직과 생산직은 다시금 하위 카테고리로 셀 수 없이 나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생산직에서 대표적인 하위 카테고리로는 마에스트로, 블랙 스미스, 크레스터, 알케미스트가 있었다.
또한 전투직에서 대표적인 부문은 딜러, 헌터, 가디언, 레인저, 캐스터, 서포터, 네비게이터, 텔레파시스트, 스나이퍼 등이었다.
중등아카데미 학생은 3학년이 되면 전투직과 생산직에서 하나의 부문과 관련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기초 이론에 불과하기는 했지만.
보다 전문적인 수업은 고등아카데미에서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중등아카데미 학생들에게는 고등아카데미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부문을 자유롭고 다양하게 파악하는 기회가 되는 셈이었다.
“아직 1학기라 여유롭다고 해도, 하양이 네가 전공하고 싶은 부문을 확실하게 정해놓는 게 좋을 거야. 다양하게 경험해보는 것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하나만 파고드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하거든.”
“그런가요? 만약 저랑 맞지 않으면 고등아카데미에 가서 바꿀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고등아카데미에서 배우는 수업이 본격적이기는 해도, 그래도 기초는 중등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게 나아. 학생들 수가 워낙에 많아질 텐데, 지금처럼 학생들을 일일이 케어할 수는 없는 법이거든. 될 수 있으면 중등아카데미에서 기초를 다진 다음 한 가지 부문으로 쭉 파고드는 게 너한테 도움이 될 거야.”
“네….”
하양은 교관의 조언을 기탄 없이 받아들였다.
일전에 은하도 그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와 친구들은 모두 내년에 어떤 부문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기는 했다.
한편, 은하가 친구들에게 어울리는 부문을 조언해주기도 했고.
‘…하양이 너는 좀 애매해.’
‘뭐가 애매한데?’
‘너는 마나를 주로 다루는 일이면 뭐든 잘할 것 같으니까.’
그러나 은하는 그녀의 부문에 대해 확고한 제안을 내놓지 못했다.
그것은 교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하양이 너는 무엇을 선택할 건지 결정한 게 있니?”
“음…, 아직 고민 중이에요. 저한테 뭐가 맞을지 잘 모르겠어요.”
“너는 031기 중에서 체내 마나가 제일 많은 데다 제어능력도 좋으니 그거랑 연관된 걸 선택해야지.” “네, 맞아요.”
“캐스터, 서포터는 어떠니?” “네, 그것도 있고….”
은하가 조언해준 부문은 캐스터와 서포터였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다.
“…네비게이터도 생각하고 있어요.”
“네비게이터라…, 하양이 너하고 맞는 일일지도 모르겠구나.”
은하는 방대한 체내 마나를 십분 이용할 수 있는 캐스터와 서포터를 제일 먼저 추천했다.
다음으로 기프트를 활용할 수 있는 네비게이터를 추천했고.
그러나 그는 어떤 것을 고르라고 종용하지는 않았다.
자신에게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였으면서도.
‘…그래도 하양이 네 인생이니까. 내가 거기까지 너한테 강요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은우에게 서포터를 권유했으면서.
수빈에게 캐스터를 권유했으면서.
은하는 그녀에게는 끝내 권유하지 않았다.
기쁘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했다.
그가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해주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그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너한테 도움이 되고 싶은데.
결국 하양은 그녀 스스로 부문을 선택해야 했다.
그래서 고민이 되었다.
은하가 말한 것처럼 자신을 위해서 선택해야 할지.
혹은 은하를 위해 선택해야 할지.
“그래도 나는 하양이 넌 캐스터가 적합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여기 적은 답안도 그렇고, 수업이해도도 그렇고…. 마법을 자유롭게 다루는 캐스터가 너한테는 잘 맞을 것 같아 하는 말이야.”
“…그쵸?”
자신을 위해 선택해야 하는 거라면 캐스터가 제일 적절했다.
어렸을 적부터 다양한 책을 읽은 자신은 그것을 기반지식으로 삼아서 공격성 있는 마법을 만들어낼 수가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서포터와 비슷한 마법도 사용할 수가 있었으니.
하지만 그러면 수빈이랑 겹쳐….
그러나 은하를 생각해 선택한다면 캐스터는 지양해야 했다.
수빈도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그것은 서포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은하는 은우의 능력을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은하가 기대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럴 만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서포터를 선택해 은우와 겹칠 수는 없었다.
결국 하양이 내린 선택은─.
“─일단은 네비게이터를 생각하고 있어요.”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조금 아쉽네. 캐스터를 하면 그보다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하하….”
하양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교관은 입맛만 다실뿐이었다.
은하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
하양은 은하가 종종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이 어떤 학생들인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네비게이터로 보이는 자질을 지닌 사람이 없는 듯했다.
은하가 누누이 아직 네비게이터는 구할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고.
‘어서 31기가 들어왔으면 좋겠네. 네비게이터는 역시….’
기대 어린 바람.
언젠가 은하는 차창을 바라보면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하양은 불확실한 바람보다 자신이 직접 네비게이터를 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중등아카데미 3학년 전문이수교양 중급검술 심화응용.
작년 2학기에 초급검술 심화응용을 수강했던 은하는 올해 한 학년 높은 전문이수교양을 수강했다.
원래라면 초급검술 심화응용이나 중급검술 기초입문을 배워야 했지만 검술 담당교관이 그의 실력을 보고 해당 수업을 추천한 것이다.
던전보다 못한 수준이네.
그럼에도 그는 시험을 어렵지 않게 응시하고 있었다.
난도 높은 황색던전 수준의 트랩과 저위계 몬스터들의 공격에 대응하는 수준이었다.
조그마한 시험장 안에는 마법으로 날아다니는 블록이 여러 개 있었다.
시험은 날아다니는 블록을 쳐내는 것이었다.
다만 형형색색의 블록들은 제각기 색에 따라 다른 능력을 보여주었다.
“다음! 보라색 단계! 못 하는 놈은 뒤로 빠지고 다음 사람이랑 교대!”
하얀색은 한 대를 치면 부서지고.
노란색은 두 대를 치면 부서지며.
주황색은 세 대를 치면 부서진다.
초록색은 주변에 연기를 발산하며.
파란색은 주변에 냉기를 발산한다.
빨간색은 공격하는 순간 폭발하고.
보라색은 부딪치는 순간 현혹한다.
그리고 블록 중에는 예고도 없이 갑자기 색을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마구잡이로 날아다니는 블록은 각기 크기도 길이도 다르기까지 했다.
시험이 시작되는 순간 날아다니는 블록들이 응시자의 주변을 맴돌면서 그러한 성질을 띠는 것이다.
그러니 시험을 응시하는 학생들은 새로운 색을 지닌 블록이 나올 때면 시험을 속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며 뒤로 물러나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보라색 블록을 마주한 학생들은 몇 사람 없었다.
“…쟤 진짜 2학년 맞냐?” “지금 빨간색의 폭발력을 이용해서 보라색 블록을 피하는 것 봤어?”
“나는 7개를 쳐내는 것도 힘들었는데…, 지금 쟤는 몇 개냐?”
자연히 대기 중인 학생들이나 혹은 도중에 탈락한 학생들은 시험장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은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다리를 모아 앉은 학생들은 일제히 감탄을 했다.
남아 있는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다른 수의 블록들을 거느린 은하가 보이는 광경은 예술이라고 부를 만했다.
앞으로 튀어나온 블록을 쳐내고는 하늘 높이 뛰어올라서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하얀색 블록만을 부순다.
살며시 친 빨간색 블록의 폭발력을 추진력으로 삼아서 보라색 블록이 만들어내는 환술을 돌파한다.
몸에 붙은 불꽃을 주변에 흩뿌리며 파란색 블록을 무력화시킨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 만들어지는 블록들이 그를 에워싸지만 그럼에도 그는 망설임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이 포기하는 가운데, 어느새 블록이 시야를 가릴 정도로 늘어날 때까지 검을 휘둘렀다.
“시, 시험 종료─!!”
마침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블록들이 시험장을 가득 메웠을 때가 돼서야 시험은 끝이 났다.
교관은 마지막까지 시험장에 남은 은하를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블록을 어떻게 유도했으면 그의 주변에 하얀색, 노란색, 주황색 블록만 모여 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는 블록이 가득 찬 공간 속에서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무사할 수가 있었다.
파란색, 빨간색, 보락색 블록들은 가장 외부에 모여 있었던 것이다.
“…은하 너는 고급검술 같은 것은 배우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미 너는 독자적인 검술을 가지고 있으니까, 기본적인 검술을 배우는 건 오히려 너한테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근데 졸업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
은하는 학생들을 제치면서 다가온 교관에게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중등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검술은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검술이었다.
기본이라면 작년에 모두 학습했다.
더는 아카데미 검술을 배우더라도 더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곳까지 도달한 것이다.
오히려 이전 삶에서 터득한 검술이 아카데미 검술에 물들어버릴 걱정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럼에도 아카데미에서 명시하는 학점 이수 제한이 있었으니 검술을 배우지 않을 수는 없었다.
“고등아카데미 수업은 못 듣겠죠?”
“…네 실력은 잘 알지만 규정상, 그건 힘들 거다.”
“쳇.”
은하는 짧게 혀를 찼다.
고등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검술은 그나마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신분은 결국 중등아카데미 학생이었다.
정규 커리큘럼을 거치지 않고서야 고등아카데미 수업을 수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카데미 측에서 이와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게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하필이면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 자신에게 일어난 게 문제였지만.
“근데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에도 검술을 배운 것 같은데…, 누구한테 배운 건지 알 수 있을까? 느낌상 전선을 험하게 넘나든 플레이어들의 버릇이 보이던데….”
“…저도 이름은 몰라요. 이 세상에 살아 있지도 않고요.” “그러냐. 이거 참…, 정말 아쉽네. 널 이렇게까지 만들 정도면 분명히 가르치는데 실력이 있을 텐데….”
그는 작년부터 레퍼토리가 돼버린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교관은 그 말을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중등아카데미에서는 더는 성취를 이룰 수 없으니 다른 플레이어의 라도 되어보는 건 어때? 듣자하니 너랑 강현철 플레이어랑 아는 사이라는….”
“네? 저는 처음 듣는 소리인데요?” “…역시 소문이었나. 아니다. 됐다.”
은하는 너무나 태연하게 말했다.
소문을 확인하려고 한 번 찔러본 교관은 아쉬워하며 물러났다.
그 오징어 자식하고 대련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놈이랑 엮이면 골치만 아파.
안 돼.
그는 교관을 뒤로하며 이전에 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의 가 되는 것은 이득보다 손해가 더 많았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백서진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 역시 힘들겠지.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이 중등아카데미에서는 졸업에 필요한 검술만 이수하기로 했다.
나머지는 다른 무구를 다뤄보는 게 나을 것이다.
연화 누나한테 창술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미래에 이 될 류연화에게 창술을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창술을 배우면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었으니.
극과 극은 하나로 통한다는 말도 있지 않았던가.
“이제 시험을 치러야 하는 수업이 몇 개나 남은 거지….”
당연하게도 3학년 학생들은 그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소문이 아카데미에서 워낙 좋지 않게 퍼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시험장에서 그만한 힘을 보여주기까지 했으니.
어차피 030기에게는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은하는 스마트폰으로 달력을 보며 중간고사 기간이 거의 끝나가는 걸 확인했다.
이제 곧 종평이네.
엄지로 중간고사가 지난 다음 있는 종합능력평가 일정을 눌렀다.
일주일에 걸쳐 이루어지는 종평.
몬스터를 죽이는 시험에서 합격한 학생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몬스터를 마주하기 시작한다.
이번에 있을 종평도 캠핑을 하며 몬스터를 토벌하는 것이었다.
‘말도 마. 중등아카데미도 순탄치는 않았다니까?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내가 2학년이었던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은하는 회귀 전 유정이 얘기했던 일화를 떠올렸다.
기억이 여실히 남는 일화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많은 학생들이 죽어나갔으니까.
그 때문에 아카데미는 이례적으로 031기를 추가선발하기까지 했다.
…그때가 얼른 왔으면 좋겠네.
많은 피가 흐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보다 더 많은 피가 흐르도록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