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1)
리라이프 플레이어 051
[Chapter 024] [변하지 않는 것]8월이었다. 더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밤에도 더위는 계속되었다. 찌는 듯한 더위에도 불쾌지수가 올라가건만, 모기가 돌아다니니 스트레스는 쌓일 대로 쌓였다.
그래도 여름은 끝나가고 있었다. 집에서 한가로이 뒹굴거리던 여름방학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은하는 미뤄두고 있던 방학숙제를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일찌감치 숙제를 끝낸 하양이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으면 남아 있는 방학 내내 머리를 굴려야 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카페의 이름은 해피니스. 아이들은 산 속의 오두막 같은 인테리어가 특징인 카페에 들어갔다.
방울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윽하고 고소한 커피향이 아이들을 반겼다.
“얘들아, 안녕.”
“어서와~”
해피니스의 주인 정석훈이 아이들을 맞았다. 아빠곰과 아기곰이 그려진 앞치마를 두른 그의 옆에는 하양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 역시 조그마한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와, 그거 정말 예쁘다!”
제일 먼저 반응한 아이는 민지였다. 민지는 하양이 두른 앞치마를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헤헤, 고마워.”
“곰돌이 귀엽다.”
“그치?”
반면에 서나는 점잖게 앞치마를 평했다. 교회에서 식사준비를 돕는다는 그녀는 앞치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꼬리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이 마치 앞치마를 살지 말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내꺼 남아 있는데, 가질래?”
“정말!? 고마워 하양아!”
“그래도 돼?”
하양은 카페 구석에 있던 서랍에서 앞치마를 꺼냈다.
두 아이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먹민지 너는 왜 앞치마를 챙기는 거야?”
은하는 앞치마를 가슴에 끌어안고 좋아하는 민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가 알기로 그녀는 요리와는 담을 쌓은 유형이었다.
“시끄러워. 그리고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랬지?”
“네가 요리를 한다고?”
“나도 요리할 수 있거든! 집에서 종종 엄마를 도와준단 말이야.”
너희 엄마도 요리 못하잖아.
괜히 말했다가는 카페에서 싸움을 벌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어조로 “아, 그래. 열심히 해. 응원할게.”라며 이야기를 끝냈다.
“두고 봐. 아저씨! 오늘은 저도 같이 만들게 해주세요!”
“야, 뭐하는 짓이야! 카페 문 닫을 일 있어?”
“비켜! 내가 얼마나 요리를 잘하는지 보여줄 테니까.”
민지는 막무가내였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눈초리를 세운 그녀는 씩씩 거리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하하…. 하양아, 대신 주문 좀 받아줄래?”
“응, 아빠.”
석훈은 난처해하며 민지를 따라갔다. 그녀가 잘못하다 다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양은 아이들을 볕이 드는 자리로 안내했다. 여름방학부터 아버지로부터 접객업을 배우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주문하시려면 저를 불러주세요.”
말 한마디 틀리지 않고 준비된 멘트를 말하는 하양. 그 동안 아버지가 일을 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 행동거지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녀를 보내고 메뉴판을 펼친 아이들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다.
“음~ 나는 핫케이크 세트!”
메뉴도 보지 않고 결정한 은혁. 은하로부터 여유가 있을 때마다 해피니스에 들르라는 조언을 실행하고 있던 그는 모든 메뉴를 꿰차고 있었다.
“나는 토스트 세트.”
“나도 토스트.”
안경을 고쳐 쓴 연금술 콤비가 메뉴판을 접었다. 두 사람은 방학 내내 수학학원을 다니느라 제대로 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방학숙제를 하러 모였음에도 얼굴이 밝았다.
“나는 베이글 세트로 할게.”
서나는 방학 내내 하양과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그녀는 고서광 할아버지의 서재로 놀러가거나, 도서관을 가거나, 해피니스에 들렸다고.
“정말 책 좋아하는 거 맞아?”
“응? 왜?”
“아니, 셋 다 시원한 장소라고 생각해서.”
“…왜 뭐 왜.”
가끔 생각지도 못하게 허를 찌르는 은하였다.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있던 서나는 귀를 한 번 쫑긋하더니, 평소 민지나 은하가 대꾸하던 말을 꺼냈다.
점잖게 행동하던 그녀가 이럴 정도니 상당히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럼 나는…, 베이컨소시지 세트 먹을래.”
마지막으로 메뉴를 결정한 은하가 저만치 떨어져 있던 하양을 불렀다.
“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혹시라도 혀를 깨물까 또박또박 말하는 하양.
테이블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소리를 죽여 키득거렸지만, 마나를 제어하는 법을 배운 뒤로 웬만해서는 당황하지 않는 그녀였다.
성장했네.
하양은 은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시행하고 있었다. 체외로 흘러나오는 마나가 전보다 줄어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아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체내 마나도 대단하고, 마나를 다루는 센스도 뛰어나단 말이지.
덧붙여 감을 읽는 능력도 뛰어났다.
그녀는 일류 플레이어로 거듭날 소양은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뭐, 얘랑 플레이어는 어울리지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양이 플레이어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이 점은 얼마 전에 점심을 먹었던 신서영도 동의한 바였다.
“은하는?”
“어?”
“은하 너는 어떤 걸로?”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하양은 이미 평소 말투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베이컨소시지 세트 먹을게.”
“응! 그럼 아빠한테 말하고 올게.”
주문을 받아 적은 그녀가 주방으로 뛰어갔다.
“대장, 여기 주스는 정말 맛있는 것 같아.”
“여기서 나오는 건 모두 몸에 좋은 거니까 남기지 말고 먹어.”
“응, 대장.”
“”오케이.””
아이들의 아무 말 대잔치가 시작되었다. 은하는 아이들의 수다에는 끼지 않고 천천히 포션을 음미했다.
전보다 더 좋아졌네.
마나 회복속도가 빨라졌다. 일부러 체내 마나를 소모했던 그는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감탄했다.
미래는, 바뀐 건가.
원래라면 자신의 능력을 알아차린 정석훈이 악에 받쳐 포션을 제조했을 터였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포션시장에 그의 포션이 등장할 시기였다.
하지만 작년, 은하가 고블린으로부터 하양을 구한 것으로 석훈이 몬스터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우는 계기는 사라졌다.
결국 석훈은 여전히 조그마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은하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되었지만, 포션을 제조하고 유통하는 데에는 흥미를 가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의 바람은 하양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으니까.
“…뭐, 완전히 바뀐 건 아니겠지.”
“응? 뭐가, 대장?”
“아무것도 아니야. 맛있게 먹어.”
은하는 커다란 핫케이크를 볼이 터져라 집어넣는 은혁을 건성으로 대했다.
언젠가 정석훈의 포션은 알려지겠지.
미래가 조금 늦춰줬을 뿐이다. 정석훈의 포션이 시장에 나오는 미래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그의 능력을 썩히게 두지는 않을 테니까.
세상은 여전히 몬스터를 대적할 수 있는 힘을 원하고 있으니까.
나는 그 미래나 지켜보고 있어야지.
이번 생에는 행복하게 살겠다고 결심했다. 언젠가 정석훈이 포션 시장을 지배하는 미래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비록 그가 앨리스 그룹의 회장이 되는 미래는 이제 없을 테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은하 역시 하양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행복한 삶에 그녀가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나저나 내 껀 왜 안 나오는 거야?”
“기다렸지~! 자, 어서 먹어!”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던 은하.
그의 앞에 음식을 내려놓은 사람은 하양이 아니라 민지였다. 소스가 묻은 앞치마를 두른 그녀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서 맛이나 보지 그래? 내가 만들어서 엄청 맛있을 거야.”
“…너 지금 이걸 먹으라고 준 거야?”
초코바 하나로 사흘을 버틴 적이 있던 그였지만 눈앞에 있는 음식은 죽어도 입에 넣고 싶지 않았다.
다 탔잖아, 이거.
베이컨이 바싹 익은 것이 아니라 새까맣게 타버렸다. 스크램블에그는 스크램블이 아니라 계란찌꺼기가 모인 결정체였다. 소시지는 웬 이상한 소스가 덕지덕지 칠해져 있었고. 웬 시큼한 냄새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왜? 맛있게 잘 됐는데.”
“이거 탔다니까.”
“그건 탄 거 아니야. 우리 집은 이렇게 먹어.”
“…아, 그래. 근데 우리 집은 아니거든.”
“그럼 한 번 먹어봐. 엄청 맛있을 테니까!”
“…소시지에 바른 소스는 뭐야?”
“후훗, 내가 즉석에서 만든 특제 소스야!”
답이 나오지 않았다.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싶었던 은하였지만, 음식이 있던 관계로 한숨을 쉬어야 했다.
이걸 지금 나한테 먹으라고?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야?
“은혁아, 이것도 몸에 좋을 거야.”
“…대장, 나 지금 배불러. 미안.”
핫케이크를 꿀꺽 삼키고 시선을 피하는 은혁.
“토스트랑 소시지랑 바꿔먹을래?”
“그러고 보니 우리 숙제는 언제 할 거야?”
“나 이따 수학학원 가야 하는데.”
못 들은 것처럼 행동하는 연금술 콤비.
이 자식들이….
포크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래. 내가 먹는다, 먹어.
은하는 포크로 접시를 찍었다. 그대로 소시지를 우걱우걱 씹었다.
“…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가 절실해.”
미각이 파괴되었다. 시큼한 맛과 달콤한 맛, 마지막으로 짭짤한 맛이 복합된 기묘한 맛이었다.
어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입가를 씻고 싶었다.
이건 독이었다.
그러니 어서 에스프레소를….
“안 돼. 우리는 아직 8살인걸. 내가 어른이 되면 만들어줄게.”
하양에게 제지당했다.
어쩔 수 없이 은하는 남아 있던 오렌지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 살 것 같다.
“넌 다시는 요리에 손도 대지 마.”
“왜 이래! 아저씨도 맛있다고 해줬단 말이야!”
석훈의 배려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조금 전에 입가를 가리고 화장실로 뛰어가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응, 넌 다시는 요리에 손도 대지 마. 그리고 아저씨한테 사과해.”
“내가 왜! 하양아, 서나야! 너희도 얼른 먹어봐!”
“나, 나는 다음 손님한테 가야 해.”
아직 손님도 오지 않았건만 카운터로 뛰어가는 하양.
“미, 미안. 너무 많이 먹었는지 속이 안 좋아.”
여우 귀를 숙이고 배를 부여잡는 열연을 선보이는 서나. 괴로운 얼굴까지 하고 있었다.
정말 여우였다.
오늘따라 쟤가 참 얄밉네.
“…맛있는데. 이상하네.”
잔반처리는 음식을 만든 민지의 몫이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마다하는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먹었다. 미각이 어떻게 된 것인지 말끔히 해치웠다.
아이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너, 몇 위계냐?”
“어? 무슨 소리야?”
“아니다, 됐다.”
어쩌면 얘는 인간이 아닐지도 몰라. 사람이 먹지 못하는 걸 먹으니 몬스터지 뭐야.
은하는 앞으로 민지를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가 본색을 드러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베기 위해서.
딸랑
그때였다. 벙거지를 쓴 여성이 해피니스에 들어온 것이.
지금 아저씨는 화장실에 있는데.
그녀를 접객할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수진 언니! 어서 오세요~”
하양이 메뉴판을 들고 뛰어가 맞이한 것이다.
“하양아, 안녕. 오늘은 하양이가 안내해주는 거니?”
“네, 헤헤!”
“그럼 하양이 안내를 받아볼까?”
“네! 손님, 이쪽으로 오세요.”
하양이 그녀를 창가 자리로 안내했다.
하얀 샌들을 신은 여성은 그녀가 귀여운지 손을 가리고 키득 웃었다.
“손님, 주문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정중하게 접객 멘트를 꺼내는 하양.
메뉴판을 받은 여성은 그녀를 사랑스러운 미소로 바라보았다.
“…그래, 오늘의 브런치 세트로 할게.”
“네, 오늘의 브런치 세트 하나 맞으신가요?”
“네, 맞아요. 브런치 세트로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손님, 더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그러네. 음…, 석훈 씨는 어디에 있니? 보이지 않는데….”
“점장님은 지금 화장실에 있어요.”
하양이 화장실을 가리켰다.
여성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문을 부탁했다.
“누구지?”
은하는 벙거지를 벗은 여성이 매우 낯이 익었다.
“하양아.”
그가 주방에 메뉴를 달러 가던 하양을 붙잡았다.
“응, 왜?”
“저 사람은 누구야?”
은하가 손거울을 꺼내 머리를 매만지는 여성을 가리켰다.
“수진 언니라고 해. 얼마 전부터 우리 단골이 된 언니야.”
단골이라고? 그런데 내가 낯이 익다고?
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낯이 익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의문은 금세 풀렸다.
“어, 수진 씨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석훈 씨.”
화장실에서 입을 가리고 나온 석훈. 그는 자리에 앉아 있던 수진을 보고는 놀란 모양이었다.
“오늘은 어떤 걸로 할래요?”
“아까 하양이한테 주문했어요.”
수진이 메뉴판을 가져온 그를 싱그러운 미소로 맞이했다. 오직 그녀 주변에만 분홍색 꽃이 흩날리는 것 같았다.
호오. 그런 거였나.
두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서로에게 가진 호감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어쩌면 미래는, 바뀌지 않은 건지도.
은하는 석훈과 대화를 나누는 수진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민수진. 앨리스 그룹의 회장 민준식의 차녀에 해당하는 여성으로, 그녀가 바로 회귀 전 정석훈의 재혼상대였다.
…여기서 만난 거구나.
그가 알기로 수진은 석훈을 첫 눈에 보고 반했고, 그가 제조하는 포션의 가능성을 깨닫고 투자를 제의했다고 한다.
그 미래가 아직 사라진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양아, 저 누나 어때?”
그래서 하양이 걱정이었다. 회귀 전, 두 사람의 관계는 하양이 없었기에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살아있는 지금으로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될지 불투명했다.
더군다나 그는 하양이 아버지의 재혼을 달가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좋은 언니야. 엄청.”
하양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진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를 빼앗긴 것 같은 옆얼굴. 그녀는 두 사람을 응원하면서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희 아버지는 너를 더 좋아할 거야.”
“응, 고마워. 그래도 정말 좋은 언니야.”
“네 감이야?”
“응.”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은하는 하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양이 행복해질 수 있기를.
이 시간이 변함없기를.
은하는 앞으로도 그녀가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