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563)
리라이프 플레이어 563
[Chapter 152] [이유정(2)]‘─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유정이 툭하면 하던 말이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하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
그에게 헌신적이었던 사람.
결국─.
─바보 같이….
내가 뭐라고….
최심부.
그녀는 의 힘을 각성하여, 노은하 그가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의 대가로서, 지금 이렇게 있는 것이었다.
“…….”
은하는 회귀 전에 이유정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볕을 받지 않은 듯이 하얀 피부.
생채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
기억보다 다소 마르기는 했어도, 이유정이 아카데미에 재학했을 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렇다고는 하나─.
“─꼴이 이게 뭐야….”
눈으로 보아도 그녀의 건강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혈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새하얀 피부는 그녀가 병약하다는 인상을 주었으며.
그대로 눈을 감고 있는 모습에서는 시체를 마주하기라도 한 듯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차가워.”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기계에 의지해, 다만 삶을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 정도로 그녀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 세상에서 사라질 정도로 덧없고, 부서지기 쉬울 것처럼 보였다.
이유정의 뺨에 손을 얹은 은하는 한참을 못박혀 서 있었다.
“음….”
“……!”
그때였다.
그녀가 반응을 보인 것이다.
미약한 신음에 불과했으나.
은하는 그것만으로도 흠칫 놀라며 손을 뗐다.
“…오빠?”
인기척을 느낀 것일까.
눈을 감은 채로.
이유정이 은하가 서 있는 방향으로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
이유정의 목소리를 듣고.
은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러는 한편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그녀의 목소리를 재생했다.
그리운 목소리였다.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라앉는, 편안한 목소리.
“…오빠…, 맞죠…?”
그런데 대답이 없었기 때문일까.
이유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이유천을 찾는 물음.
은하는 그녀에게 버팀목이 돼줬을 이유천을 찾는 목소리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 삶에서 자신은─.
─유정이한테는 모르는 사람일 뿐이겠지….
혹시나 이유정이 자신을 기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은하는 그녀가 순진무구하게 묻는 목소리로부터 어느 정도 직감했다.
그녀는 회귀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그렇다면─.
─내가 유정이에게 가까이 다가가도 괜찮은 걸까.
이전 삶과 달리.
이유정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자신이라는 존재가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그녀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어떠한가.
내가 가려고 하는 길에 유정이를 끌어들일 수는 없어.
수라의 길이다.
손에 피를 묻혀야만 하는 길.
그러한 길을 걸어가는 자신이 만약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그녀의 인생 역시 자신과 같은 길로 끌어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대로─.
“─…….”
서로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은하는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며 억지로 자신의 각오를 곱씹었다.
“…누구…, 세요…?”
손길만으로도 알아차린 것일까.
이유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있어. 네가 모르는 사람.”
경계심이 이리도 없다니, 하고.
노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갖은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에게 답했다.
“그렇…, 구나….”
이유정의 대답이었다.
그녀가 별다른 의문을 표하지 않고 수긍했다.
…아직 의식이 몽롱해서 그런가. 하긴…. 유천이 형 말을 들어보니 요새 깨어났다 다시 정신을 잃기를 반복하고 있었다고 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만도 한가.
아마도 이유정은 지금 이 만남을 꿈속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은하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많이 아파?”
그녀의 머리를 쓸어준다.
그녀가 배시시 웃는다.
“─괜찮아요.”
“…….”
그것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고개를 저은 그녀가 손을 뻗으며 은하의 손을 꼭 쥐었다.
그러고는 그녀는 그 손을 가져와, 자신의 얼굴에 포갰다.
“따뜻해….”
그녀가 중얼거린다.
처음에는 그녀가 갑자기 손을 잡아 깜짝 놀랐던 그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녀가 다음에 꺼낸 말이 더더욱 가관이었다.
“당신은…, 사신님인가요?”
뜬금없고, 황당한 질문.
은하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이제…, 절 데려가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
“그동안…, 오래 버틴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저도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네요….”
사신.
은하가 그녀에게서 그 말을 듣고 제일 처음 떠올린 것은 이전 삶에서 그녀에게 붙은 이명이었다.
.
죽음의 천사를 뜻하는 이름.
사신의 모습을 취한 천사는 사람을 죽음으로 이끈다는 불행의 상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유정이가 라고 불린 거였지.
죽음을 자처한, 안개꽃 파티원들.
그리고 그들이 죽는 그 순간까지 싸울 수 있도록 뒤에서 치료를 해준 이유정.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녀가 죽음의 천사로 보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래서 그녀는 죽음의 천사라느니, 사신이라느니 하는 말을 싫어했다.
안개꽃 파티에서 라는 이명은 금기시되었을 정도로.
“제가 생각했던…, 사신님하고는 다른 것 같네요.”
“…….” “손 따뜻해….”
“…….”
“저는 죽는 건…, 무섭지 않아요…. 옛날부터…, 이날이 오게 될 거라…, 각오하고 있었는 걸요….”
그런 그녀가 스스로 사신이란 말을 입에 담은 것이다.
심지어 죽음을 각오했다는 말까지.
그가 알고 있는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렇게 약하지 않았다.
물론, 은하는 그녀가 왜 이렇게도 약한 면모를 보이는 것인지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준비는…, 돼 있어요…. 그런데…, 그 전에 잠깐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그러나 이유를 알고 있음에도.
은하는 가슴을 옥죄는 듯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고.
금방이라도 뚝 끊어질 것만 같은 목소리로 말하는 이유정을 보고는 얼굴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가기 전에…,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게 해주세요.”
“…….”
“고맙고,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꼭 그 말을 전하고 싶어요.” “…….” “그리고…, 이제는 저한테 신경을 쓰지 말고…, 행복하게 살라고요…. 가족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두 개의 목소리가 겹친다.
하나는 덧없는 목소리였고.
하나는 의지가 깃든 목소리였다.
두 개 모두 이유정의 목소리였다.
이유정은 이유정이구나.
회귀를 해도.
설령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그녀는 지금 당장 자신의 안위보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은하는 피식 웃음이 나온 동시에 안타까움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사신 아니야.” “…네…?”
“사신이 이렇게 손이 따뜻할 것 같아?”
은하는 이유정의 오해를 바로잡아 주기로 했다.
그러자 그녀가 당황한 것만 같은 소리를 냈다.
그것이 무척 사랑스러워서.
또 순진하고 순수하게 보여서.
은하는 키득거렸다.
“그럼…, 누구세요…?”
질문은 도로 원점으로 돌아왔고.
“있어. 네가 모르는 사람.”
대답 역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치이…. 뭐예요….”
그가 장난을 치는 것을 눈치 챈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내 얼굴에 힘을 푼다.
“다행이다….”
“…….” “아직 죽지 않아도…, 되는 구나.”
이유정이 안심해한다.
그리고 은하는 그녀에게 답했다.
아니, 단언했다.
“─걱정 마. 너 안 죽어.”
가녀리고, 병약해 보이는 그녀.
하지만 사랑스럽다는 것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고.
은하는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그러자 그녀는─.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옅은 미소로 답하는 이유정.
마치 그럴 리가 없다는 투였다.
그렇기에 은하는 재차 강조했다.
“네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줄게.”
“…….”
“그러니 이제는 죽을 날이 오는 걸 기다리지 마. 너는 앞으로 오래오래 살 거니까.”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고.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다만 그의 온기를 더 느끼려 하는 것처럼.
이유정은 은하의 손을 꼭 쥐고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의 손길에 얼굴을 묻었다.
“고마워요.”
“고마워할 필요 없어.”
이유정이 울먹거리듯 읊조리고.
은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는 남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할 필요 없다.
그저─.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는 거니까 고마워해할 필요는 없어.
회귀 전에는 받기만 했다면.
이제는 자신이 그녀에게 아낌없이 퍼주겠노라고.
노은하는 다짐했다.
그럼에도 자신은 그녀에게 도저히 갚지 못할 만큼,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았다.
새 발의 피에도 미치지 못한다.
갚아도, 갚아도 부족하다.
아마 너는 모를 테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은하는 말없이 미소만 지은 채로 다시 잠이 오는 것 같은 이유정을 내려다보았다.
“죄송…, 해요…. 너무 졸려서…, 더 말하기가 힘들 것 같아요.”
“괜찮아. 푹 쉬어.”
이유천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깨어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만큼 그녀에게는 휴식이 필요할 것이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을 거두었다.
“다시…, 만나고 싶어요….”
“…….”
“이게…, 꿈이 아니라면…, 정말…, 좋을 텐데….”
“…….”
“다음에 깨어났을 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면…, 어떡하죠?”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 “그럼…, 안 되는데….”
이유정이 걱정한다.
그 모습도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은하는 무릎을 굽혀, 이유정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마치 자장가를 부르는 것 같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답했다.
“─네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내가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아….”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얼른 푹 쉬어.” “다음에도…, 만날 수 있을까요?”
“…네가 원하면, 그렇게 할게.”
“꼭…, 오세요….”
“…응.”
말소리는 더는 들려오지 않았고.
그녀의 숨소리만 들리게 됐을 때.
은하는 그녀의 앞머리를 넘기고는,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이제 괜찮아. 앞으로는 아프지 않을 테니까.
☆
호시미야 카에데는 말했다.
정말 파티의 리더가 될 생각이면, 리더로서 결코 흔들림 없는 판단을 내리라고.
그 선택에 확신을 가지라고.
─엘릭서를 사용하면 마나고갈증을 치료할 수 있어.
그렇기에 은하는 미래를 바꿔나갈 파티의 리더가 될 사람으로서,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엘릭서는 하나밖에 없었고.
구해야 할 사람은 두 명이었다.
이유정과 온태양의 어머니.
─온태양에게는 미안하지만….
기프트 를 가지고 있는 온태양을 파티로 끌어들이게 된다면 지금보다 수월하게 미래를 바꿀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미래에.
이유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딴 미래는 없는 게 나아.
저울질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설사 온태양을 파티에 끌어들이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은하는 이유정을 구할 생각이었다.
이번 삶에서는 유정이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온태양을 포섭하지 못하더라도.
노은하의 선택은 확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