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600)
리라이프 플레이어 600(a)
[Chapter 161] [노은하에게 대적하는 자(2)]본선 1일차가 끝났을 때는 어느덧 날이 저물 무렵이었다.
이에 1일차 마지막 경기를 장식한 은하는 카에데와 함께 뒤늦게나마 문화제를 둘러보기로 했다.
물론 카에데가 못마땅한 것 같은 기색을 보이기는 했다.
“내가 왜 너랑 같이 다녀야 하지? 나는 그냥 기숙사로 돌아갈 거야.”
“하양이가 했던 말, 기억이 안 나? 마지막 문화제인 만큼 좋은 추억을 만들자고 했던 거.”
“너하고 좋은 추억을 만들 생각은 머리카락 한 올만큼도 없거든.”
“아까 내께 되겠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공적인 일에는 어울려주겠지만, 사적인 일까지 간섭하려 하지 마.”
“그래서 나하고 같이 안 갈 거야? 하루 종일 대회만 치렀으니까 잠깐 스트레스도 해소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
“끙….”
“그리고 네 대회는 이미 끝났잖아. 남은 건 재밌게 즐기는 일뿐이지.”
“내 대회를 누가 끝냈는데….”
정하양은 담당하는 부스에 있느라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도 일정이 되지 않거나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혼자 시간을 보내기 심심한 은하는 카에데를 보채려 한 것이다.
그러던 중─.
“─아, 잠깐만. 여동생한테 연락이 와서….”
“여동생?”
기숙사로 돌아가겠다며 몸을 돌린 호시미야 카에데의 팔을 붙잡은 채.
은하는 손 안에서 발버둥을 치는 그녀를 무시하며 톡을 확인했다.
“여동생이 지금 문화제를 구경하러 왔다고 하네.”
“잘 됐네. 여동생이랑 같이 보고, 나는 이대로 보내줘.”
“너도 같이 갈래?” “내 말 못 들었어?”
“가자. 마침 이 근처에 있다네. 어? 뭐야, 바보 형도 같이 있다네?”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손 좀 놔라.”
노은애가 근처에 있다고 한다.
메시지를 읽은 그는 풀어진 얼굴로 답장을 보냈다.
그사이 카에데는 은하와 계속해서 실랑이를 하는 것도 지쳤는지 끝내 굴복하고 말았다.
이윽고 두 사람은 노은애가 있는 호숫가로 향했다.
“─오빠!!”
[야야!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야! 바보팅아!]호숫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많은 부스가 호수를 둘러싼 형태로 설치되어 있었으며.
호수를 X자로 잇는 다리 주변에는 화려한 조명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무리 시스콤도 자신의 여동생을 찾는 일이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은애가 먼저 발견했다.
또한 진파랑이 그에게 텔레파시를 보내오기도 했다.
누구 보고 바보라고 하는 거야?
가장 바보인 사람이 바보래….
이내 텔레파시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노은하.
그가 호수 건너편에서 손을 흔드는 진파랑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그의 옆에서 손을 흔들며 방방 뛰는 노은애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쟤가 내 여동생이야.” “나도 알아. 여름방학 때 봤어.” “그때는 인사할 상황도 아니어서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했지? 이참에 인사하면 되겠다. 가자.”
“미리 말해두겠는데, 너희들이랑 오래 있을 생각은 없거든.”
은하와 카에데는 다리를 건넜다.
그러자 은애 또한 은하가 건너오는 다리로 뛰어갔다.
─어라?
그때 은하는 여동생의 옆에 있는 여학생을 발견했다.
보아하니 은애의 친구인 듯했다.
은애보다 조금 키가 컸다.
“오빠! 시합 잘 봤어! 관람실에서 봤는데, 사람들도 다 오빠 보고 잘 뛴다고 그러더라!”
“오늘 올 거면 알려주지 그랬어. 그랬으면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게 티켓을 구해놨을 텐데.”
“미예하고 같이 보러 가기로 하고, 정확한 날짜를 잡지 않고 있었거든! 그리고 오빠 깜짝 놀라게 하고 싶기도 했고….”
“미예?”
노은애가 달려들었다.
은하는 여동생이 넘어지지 않게끔 재빨리 품 안으로 받아냈다.
그러다 그는 은애의 뒤에 서 있는 여학생에게로 눈길을 주었다.
“─안녕하세요, 은애 오빠. 저는 선미예라고 해요. 저 기억하시죠?”
선미예.
들어본 이름이었다.
기억을 떠올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현재 동해클랜의 대표 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선기준.
그리고 이전 삶에서는 제 손으로 딸을 죽이고 라는 이명으로 불렸던 가디언.
그녀는 선기준의 딸이었다.
“당연히 기억하지. 마지막에 본 지 언제였더라?”
“저희 초등학교 입학식 때요. 그때 아버지랑 같이 뵙고 5년만이네요. 오빠는 그때보다 엄청 커졌네요?”
“나 혼자 큰 게 아니라 너도 많이 컸는데.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은하에게 인사하는 선미예.
은하는 예의를 차리는 그녀를 보고 몹시 반가워했다.
그녀를 보니 새삼 선기준의 미래를 바꾸었다는 실감이 들었다.
정말 많이 컸네.
그럼 얘도 이제 6학년이야?
자신의 시간은 느린 것 같은데.
정작 타인의 시간은 참 빠르게도 흘러간다.
은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러던 그때였으니─.
“─아까 시합 정말로 잘 봤어요. 세상에 어떻게 그런 마법을 펼치고, 그런 식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지 깜짝 놀랐어요!”
선미예가 돌연 눈을 반짝였다.
은하는 그녀의 열렬한 칭찬을 받고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래서 겸손을 떨려 했는데─.
“─그거 가지고 뭘. 너희 아버지는 나보다 더 굉장….”
“오늘부터 팬 하기로 했어요, 언니! 저도 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엥?”
“뭐?”
은하가 겸연쩍어하는데.
선미예는 은하는 안중에도 없는지 그대로 휙 지나쳤다.
그러고는 무리에 섞여 들지 못하고 어색하게 서 있던 카에데에게 대뜸 달려든 것이다.
“정말로 멋졌어요! 특히 마지막에 눈을 감은 채로 공격을 피하던 모습이요!”
“고, 고마워….”
그녀가 카에데의 손을 붙잡아서는 꺄아꺄아 소리를 질러댔다.
카에데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그런 한편 은하는─.
“─오빠.” “…어, 어어, 왜?”
“지금 엄청 창피하지?”
“…….”
그간 사람들의 관심을 너무 받고 자만심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까 은하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칭찬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우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을 여동생에게 들켰고.
은하는 품속에서 고개를 내밀고는 활짝 웃는 그녀에게 뭐라 답을 하지 못했다.
또한─.
[─보는 내가 다 부끄럽다. 진짜 너 자뻑 좀 그만해! 바보팅아!]노은애의 뒤에서 진파랑이 신나게 놀려대고 있었다.
은하는 은애를 꼭 껴안은 상태로,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게 입모양으로 대꾸했다.
─바보 형은 닥쳐.
두 사람은 서로를 욕했다.
☆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선미예는 의외로 말이 많았다.
“언니도 중등아카데미부터 다닌 거예요? 아카데미 생활은 어땠어요? 어느 그룹에서 후원을 받고 있나요? 훈련하는 건 많이 힘든가요?”
“어어….”
끊이지 않는 질문 세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에게 덥석 팔이 붙잡힌 카에데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더군다나 반대편에서는 노은애가 그녀의 팔을 붙잡고 있기까지 했다.
“언니도 오늘 시합 멋졌어요! 아, 저는 노은애라고 해요. 그때 한 번 만났을 때 인사 드렸었는데…. 혹시 저 기억하세요?”
“기억하고 있어. 처음 봤을 때부터 노은하랑 닮지 않고 너희 언니를 더 닮았다고 생각했거든.”
선미예가 떠들고.
노은애가 떠든다.
카에데는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 그녀들과 대화를 나눠야 했다.
뒤에서 세 사람을 따라가고 있는 은하로서는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쟤 은근히 좋아하는 것 봐라?
호시미야 카에데였다.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멀리하는 그녀가 은애와 미예가 말을 건네자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두 사람을 바라보다 뭐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귀여워….”
은하는 그냥 듣지 못한 것으로 넘기기로 했다.
때마침 은하와 눈이 마주친 그녀도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시선을 회피했다.
그건 그렇고 미예가 플레이어가 될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그런 한편으로 은하는 조금 전에 선미예가 한 말을 되짚었다.
마나관리기구에서 녹봉을 받으면서 가늘고 길게 살겠다고 했더랬다.
너무나 현실적인 꿈이라서 은하는 선기준과 다르게 정말 어른스럽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미예라면 잘 하겠지.
그룹 후원도 걱정 없을 거야. 아마 기준이 아저씨가 있는 동해클랜이 알아서 해주겠지.
설령 선미예가 동해그룹의 후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시리우스그룹의 후원을 받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는 나중에 그녀가 입학하게 되면 신서영에게 선미예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은애는 아카데미에는 관심이 없어서 다행이야.
한편 은애는 플레이어가 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은하로서는 다행일 따름이었다.
은하뿐만 아니었다.
가족들 전체의 입장이 그러했다.
플레이어가 될 성격이 못 돼.
너무 위험하기도 하고….
노은애는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녀에게 몬스터를 죽이는 한편, 때로는 사람 또한 해칠 수가 있는 플레이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은하는 여동생의 의향을 환영했다.
그렇다고 중학교는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가겠다는 것은 좀 그렇지만….
물론 그녀가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진학을 하고 싶다는 말에 놀라기는 했다.
하지만 은하는 존중해주기로 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번에 주목을 많이 받기는 했지.
집까지 쳐들어온 플레이어들까지 있었을 정도니까.
방연지의 재림.
그녀가 은랑화를 재배한다는 것이 업계에 알음알음 알려지게 되면서.
나아가 그녀가 자신과 노은아의 동생이란 것이 알려지며.
최근 들어 여러 사람들이 은애에게 괜한 기대를 품고 접근해왔다.
플레이어가 될 생각이 없던 그녀는 은연중에 은하와 은아와 비교하며, 멋대로 자신의 진로를 정하려 하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중학교에서 가족내력을 비밀로 하고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마음도 조금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나저나 형은 어떻게 됐어?”
“뭐가?”
“종합부문대회. 시형이랑 싸웠지?” “어땠을 것 같냐.” “형이 이겼겠지. 시형이한테 형은 워낙 상성이 좋지 않으니까.”
까르르 떠드는 사람들 속에서.
세 사람이 문화제 부스를 둘러보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은하는 빙탕후루를 먹으면서 걷는 여동생을 흐뭇한 시선으로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진파랑이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시형이 그 녀석이 동해클랜에서 뭔가 배워오기는 한 것 같은데…. 영 몸에 맞지 않는 것 같더라고.”
“그렇겠지. 기준 아저씨가 알려준 기술은 체격 차이가 있었을 테니까 자기식대로 소화하지 못한 거겠지.”
“그런 것 같기는 하더라. 그래서 내가 이기기는 했지.”
“그래도 다음에 싸우게 될 때에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뭐?”
“듣기로는 시형이가 배워온 기술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진파랑과 강시형의 경기에서 끝내 진파랑이 이겼다고 한다.
은하는 가만히 파랑이 이야기하는 경기 양상을 듣고는 입을 열었다.
“해수 형이 그러더라고. 시형이가 얼마 전에 괴상한 물건을 부탁해서, 그쪽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라 하더라.”
“괴상한 물건? 그게 뭔데?”
“나중에 완성되면 직접 봐.”
진파랑이 궁금해하고.
은하는 키득거렸다.
─기대해도 좋을 거야.
벽해수가 강시형의 새로운 디바이스를 만들고 있다.
벽해수에게 소식을 들었던 은하는 그때 깜짝 놀랐더랬다.
어쩌면 강시형이 가디언의 새로운 전투 스타일을 정립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시험해볼 가치는 있었다.
그래서 은하는 이번에 파랑과 맞선 강시형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뭐지? 사람 궁금하게 하네. 나한테만 알려주면 안 되냐?”
“개인 프라이버시야.”
“그러는 해수 형을 통해서 들은 넌 어떻고?”
“나는 돼. 내가 리더가 될 테니까.”
“쳇, 그놈의 리더 소리…. 그래라. 치사해서 안 듣고 말지.” “잘 생각했어. 사실은 나도 그것이 정말 될지, 안 될지 모르겠거든.”
“그것보다.” “왜?”
“내가 강시형에게 이겼다는 뜻은, 내일 네 상대가 나라는 거야. 지금 알고 있는 거 맞지?” “…알고 있어.”
진파랑이 오징어를 꿀꺽 삼켰고.
은하는 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니 파랑이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일 기대해라. 내가 카에데보다 네가 더 놀라워 할 실력을 보여줄 테니까.”
진파랑의 선언.
은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알았어. 기대하고 있을 테니까 제발 바보짓이나 하지 말아줘.”
그리하여 문화제 첫 번째 날이 지나간다.
☆
문화제 두 번째 날.
종합부문대회 본선 2일차.
목민호는 본선 경기를 치르기 위해 출전자 전용 복도를 걷고 있었다.
오늘 경기는 이걸로 끝인가.
오전에 있던 경기를 치르고.
남은 것은 오후에 있는 경기뿐.
목민호는 금일 마지막 경기 상대의 이름을 읊조렸다.
“─온태양.”
31기 온태양.
현재 31기 학생들 중에서 빠르게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유망주.
그리고 목민호는 온태양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선수, 입장.]그와 자신은 성향이 전혀 달랐다.
목민호가 권위를 숭상했다면.
온태양은 평등을 숭상했다.
과연 그것이 평등이라 할 수 있나 심히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지.
권위를 숭상하는 목민호의 눈에는 온태양은 현실에서 불가능할 법한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목민호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현실에 순응하는 것도 아닌 데다, 그렇다고 현실을 바꿀 만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그럼에도 부득불 이 세상 자체가 잘못됐다면서 감정에 호소하는 듯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여─.
‘─온태양은 파티에 들이지 않을 생각이야.’
‘나는 찬성이야.’
은하가 친구들에게 온태양을 더는 영입하지 않겠다고 밝혔을 때.
목민호는 제일 먼저 찬성했다.
도저히 온태양이란 폭탄을 데리고 파티 생활을 할 자신이 없었다.
“”…….””
그러면서 목민호는 은하가 어째서 온태양을 영입하지 않기로 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아 해결됐다.
온태양이 그와 노은하 사이에 있던 약조를 퍼뜨렸으니까.
은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곧 긍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네가 이 대회에 출전한 이유가 뭔지는 알고 있어.” “…….”
“노은하 때문이지?” “그렇다면 어쩔 건데. 설마 나한테 일부러 져주기라도 하게?”
어머니를 잃고.
여동생의 소망을 무시하고.
소꿉친구의 신의를 저버리고.
그때 이후로 온태양은 과묵해졌고, 사람들과 관계를 차단했으며, 더욱 미친 듯이 검을 단련했다.
그런 그가 목민호의 말을 듣고는 이죽거렸다.
자신이 어머니의 복수를 하게끔, 일부러 져줄 것이냐고.
이에 목민호는─.
“─내가 네 복수를 도와줄 의리는 없지.” “…….”
“네 사정이 딱한 것도 이해했고, 너와 노은하 사이에 풀지 못할 일이 있다는 것도 알겠어.” “그런데 왜….”
“처음에 말했던 대로야. 나랑 네가 서로 의리를 지켜야 하는 사이도 아니니까.”
목민호는 검을 뽑았다.
온태양과 노은하가 건너지 못하는 강을 건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노은하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이 온태양의 복수란 걸 도와줘야 하는 이유는 되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당사자 간의 일이었다.
나아가 권위를 숭상하는 그는─.
“─나는 내 할 일을 다할 뿐이야. 네 사정이 안타까운 것은 알겠지만, 정 은하와 맞붙고 싶다면 나를 먼저 쓰러뜨리도록 해.”
자신이 리더로 받들기로 한 은하의 검이 될 생각이었다.
최은혁은 다를지 몰라도.
적어도 그는 자신이 섬기는 사람이 정말로 잘못했다 생각하지 않는 한, 그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은하와 온태양 사이에 있던 약조는 목민호의 결심에 티끌 하나 타격을 주지 않았다.
감정적으로는 이해하지만….
안타깝지만 그뿐인 거지.
네 일이지, 내 일이 아니야.
자신과 관련된 사람의 일이 아니라 공감이 덜 되기도 했고.
목민호란 존재는 애초 냉정했다.
그는 현실 판단과 타협이 빨랐다.
한 사람의 목숨을 내건 약조조차도 그에게는 거래에 지나지 않았다.
애초 자신이 온태양이었다면─.
─나라면 노은하의 바짓가랑이라도 부여잡는 한이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매달렸을 거야.
첫째로, 노은하의 눈길을 돌리는 매력적인 조건을 내걸었을 것이고.
둘째로, 감정으로라도 노은하에게 호소했을 것이며.
셋째로, 그냥 뭐라도 했을 것이다.
차라리 은하를 협박하기라도 하며.
은하에게 증오심을 불태우기 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은하에게 검을 들이밀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목민호는 온태양이 은하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명분을 찾고 있는 것 같아.
검을 휘두를 수 있는 명분, 지금 이렇게 분노할 수 있는 명분을.
과연 전적으로.
온태양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유가 노은하에게만 있는 것일까.
목민호는 회의적이었고.
감정보다 이성을 더 중시했기에.
온태양이 은하에게 증오심을 품는 명분이 잘 와닿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대련을 무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그래, 좋아.”
온태양은 목민호가 어떠한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온태양 역시 검을 뽑았다.
“나도 너하고 싸우고 싶었으니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우연이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머릿속에 꽃밭이 들어 있는 것 같은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널 이길 수 있어야 노은하 그놈과 대적할 수가 있는 거겠지. 그러니까 이번에는, 널 이길 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온태양의 몸에서 마나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목민호도 이에 맞섰다.
그러고는 코웃음을 쳤다.
“─네 실력으로는 은하한테 대적하지 못해.” “그건 해보지 않으면….”
“나한테도 대적하지 못할 거고.” “……!”
“단련에 매진한 건 너만이 아니야. 그러니 너무 으스대려고 하지 마. 이 아카데미에서 단련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테
니까.”
경기를 시작하는 신호가 울리고.
두 사람이 검을 휘둘렀다.
“─넌 그냥 졸업식에 있을 대련을 기다리기나 해.” “…큭…!”
“이 대회는 네가 아니라 우리들이 실력을 검증받는 자리니까.”
목민호는 자신했고.
신념은 검을 강고히 만들었으며.
따라서 그의 검은 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