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902)
리라이프 플레이어 901(b)
[Chapter 223] [기적(5)]선녀 임가을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닦달하는 사람이 몇 있다.
은하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심하게 볶이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한창진과 유도준.
이날, 유도준이 오랜만에 놀러왔다.
“야, 나 죽겠다, 진짜.” “아직 덜 죽었으니까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겠지.”
“…미친놈. 너 설마 클랜원들한테 그렇게 얘기하는 거 아니지? 애들 죽도록 굴린 다음에 그런 소….”
“그런 소리 하는데. 그리고 나는 더 굴리지.” “선녀님이 다시 보니까 선녀였네. 악마 같은 놈.”
유도준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선녀가 복잡하게 얽히고 꼬여 있는 사람들의 재무 관계를 올바르게 짜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만으로도 치가 떨리는지, 연신 한숨을 쉬어댔다.
그러다 그가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유정이가 눈을 떴다는 게 정말이기는 했네. 그 소문 때문에 정재계 안팎으로 떠들썩했었는데, 그게 정말이었다니…. 아마 다음번 재계 모임에서 유정이가 꽤 관심의 대상이 될 것 같다.” “그렇겠지.”
조금 전 유도준은 클랜회관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아는 사람들과 오래간만에 인사한 그는 이유정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이 그러했듯, 유도준은 정말 잘 됐다며 그녀에게 덕담을 건넸다.
“유정이가 보게 돼서 좋은가 보네? 아니면 애들이 생겨서 그런 건가? 너 요새 얼굴 좋아 보인다.”
“하루하루가 행복하거든.” “이제는 그런 말까지 할 줄 아네? 너도 참 많이 바뀌었구나.” “그런가?” “그래, 임마. 애들이 생겼을 때부터 네가 많이 바뀌었어.” “어떤 식으로 바뀌었는데?” “음, 사람 같아졌다고 해야 하나?” “욕이냐, 칭찬이냐.” “사람 같아졌으니까 칭찬이지. 야, 네가 전에는 어땠냐 하면….” “어땠는데?”
“악마 같았지, 아주. 그나마 요새는 천사 같은 악마가 됐네.”
별 시답잖은 소리였다.
은하는 유도준이 하는 말을 듣고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은하도 그가 꺼낸 말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아내들을 만나고, 그녀들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특히 은하의 성격이 달라졌다.
“감정이 풍부해졌다고 해야 하나? 전에는 억지로 인상을 쓰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 보니까….”
“지금 보니까? 왜, 뭐, 왜.”
“잘 웃고 있잖아. 근심 걱정 없이.”
“실제로 근심 걱정이 다 없어지긴 했으니까.”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정의 눈을 치료하게 되면서, 마음의 짐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제 그가 걱정하는 것은 굉장히 사소하고 소박한 일들이었다.
아이들이 잘 자랄지.
클랜원들이 어디 다치지 않을지.
가족들이 건강할지.
아내들을 울게 하지 않을지 등등.
국민들에게 칭송받는 영웅은 이제 평범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과거와 관련된 걱정이 아직 하나 남아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부우웅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전화가 걸려왔다.
은하는 이십오의 전화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둠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어, 나야.”
[마녀들이 적색던전에 들어간 후에 한 명만 나왔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나머지는 죽은 듯해요.]며칠 전, 은하가 부탁한 일이었다.
은하는 이십오의 연락을 들으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네 명이서 던전에 들어간 마녀들이 혼자가 되어 던전을 나왔다.
그들끼리 살육을 벌였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체 왜?
묘한 일이었다.
굳이 머나먼 나라에서 건너와서는 던전에서 서로 죽이다니 말이다.
그러자 이십오는 그의 추측에 대해 부정했다.
[혼자 나온 마녀의 행색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고 해요. 적색던전에 시체로 보이는 것도 없었고요.]“그 말은 뭐야? 마녀들이 저희끼리 싸운 게 아니라, 의식이라도 벌여서 한 사람만 남았다는 건가?”
적색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안타깝게도 이십오는 거기까지는 알 수 없다고 전했다.
마녀들이 워낙 경계심이 많아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고도.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적색던전에서 나온 마녀가 방금 와 접촉했습니다.]“…그래, 고마워.”
그리고 둘이서 적색던전을 찾았다.
은하는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걱정한 일이 터진 모양이었다.
그 마녀의 힘을 얕볼 수 없어.
만약을 위해서라도 클랜원 몇몇을 데려가는 게 나을 거야.
그는 현재 회관에 있는 클랜원들로 소규모 파티를 짜기로 했다.
“프메 언니를 만나러 가는 거죠? 저도 데려가주세요! 오늘 언니하고 수업이 있는데, 언니가 오지 않아서 걱정이 돼요!”
한편 하백련도 따라왔다.
은하가 갑자기 파티를 꾸리는 것을 이상해하던 그녀는 사정을 듣고는 자신도 따라나서겠다고 주장했다.
“그래, 좋아. 백련이 너도 가자.”
은하는 처음에는 꺼려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는 저항하지 않고서 순순히 그 마녀를 따라갔다고 했어.
어쩌면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은하는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녀가 그러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다.
하백련은 그녀가 죽지 못하게 하는 미련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
적색던전.
마녀는 플레이어들의 발길이 뜸한 적색던전으로 발을 들였다.
프리시스 메모리는 그 뒤를 따르며 던전에 입장했다.
“죽지 못해 살았어.”
침묵을 지키던 마녀가 입을 뗐다.
많은 감정이 묻어나는 어조였다.
프리시스 메모리는 고개를 숙였다.
“28명의 마녀가 몇백 년이나 되는 세월을 죽어도 죽지 못한 상태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었지.”
행여나 사람들에게 보일까.
마녀는 더욱 깊숙이 던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옛날 일을 이야기했고, 프리시스 메모리는 짧게 대답하기나 했을 뿐이다.
그러다 그녀는 마녀를 만나고부터 참고 있던 물음을 꺼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너하고 나를 빼고 모두 죽었어. 실험체가 돼서 정신이 파괴당하고 죽은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여생을 모두 마치고 죽은 사람도 있었지.” “…….”
“그리고 실험체가 된 사람들은…. 우리가 연구소를 습격해, 그 애들이 더는 고통받지 않게 편히 보내줬어. 그게 자그마치 300년 전 일이지.” “아….”
“걱정하지 마. 이제는 죽지 못해서 고통받는 사람은 없으니까.”
마녀가 무미건조하게 대꾸했다.
프리시스 메모리는 더는 그녀에게 뭐라 말하지 못했다.
모두, 자신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일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고, 마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녀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너와 달리, 우리는 세계 의지의 저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어. 몇백 년의 시간이 흐르니, 우리도 이제 죽을 수 있게 됐거든. 영생을 죽이는 방법을 알아내기도 했고.”
마녀가 손을 휘저었다.
프리시스 메모리가 그러했듯.
몇백 년의 시간은 마녀가 이제는 마나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 극의에 도달하게 했다.
그녀가 아공간을 만들고, 안에서 거대한 창을 꺼냈다.
“그건….”
“영생을 죽이는 창이야.”
이질적인 기운이 묻어나는 창.
프리시스 메모리는 자신의 키만 한 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녀는 그녀에게 친절히 그 창이 어떤 창인지 가르쳐주었다.
“평범하게 살아남은 우리는 몇십, 몇백의 시간을 보내 비로소 마침내 방법을 찾아낸 거야.” “…….”
“우리가 받은 저주는 세계 의지의 간섭이 줄어드는, 던전의 영역에서 크게 약화되지.”
마녀가 창을 가볍게 휘둘렀다.
창끝이 대기를 가르자, 대기 중에 녹아 있던 마나가 가시화되었다.
프리시스 메모리는 마녀가 손에 쥔 창이 상당한 힘을 지닌 아티펙트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창에 찔린 대상은 기존에 있는 세계선에서 분리돼, 죽음에 이르게 되고 말아. 이 창이라면….”
“죽어도 되살아나는 우리도 그걸로 죽을 수 있다는 말이구나.”
“그래, 맞아. 실험은 이미 끝났어. 던전에서만 효과를 발동할 수 있는 창은 이미 몇 명의 마녀를 죽였지. 너를 죽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창이야.”
프리시스 메모리는 마녀의 설명에 납득했다.
마녀의 설명이 맞는다면 창은 필시 세계 의지에 묶여서 죽지 못해 사는 자신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죽이기 위해서…. 언니들은 몇백 년이나 되는 시간 동안 나를 쫓고 있었던 거구나.
꼴도 보기 싫은 자신이 없어지면.
그녀는 마녀들이 그나마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 되도록 한 곳에 정착하지 않으면서 세계를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 달리, 남은 마녀들은 몇백 년의 시간에 걸쳐서 자신을 원망했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쓸쓸하게 웃었다.
“그런데도 너를 죽일 수 있을지, 완벽히 확신할 수 없더라고. 그래서 내가 다른 마녀들한테 부탁한 거야. 너를 죽일 수 있게, 너희들의 힘이 이 창에 깃들게 해달라고.” “…….”
“최근까지 살아남아, 나하고 같이 이 나라에 들어온 세 명의 마녀는 너를 죽이기 위해 목숨을 바쳤어. 그들의 힘이 이 창에 깃들었지.” “그렇…, 구나….”
언니들은 나를 정말 죽이고 싶어 여기까지 온 거구나.
프리시스 메모리는 웅얼거렸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은 끝내 그녀의 입속에서 머물다, 체념으로 승화했다.
“죽고 싶다고 했었지?”
“…응.” “잘됐네. 그럼 내가 죽여줄게. 네가 죽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도 삶을 끝낼 생각이야.”
마녀가 물었다.
프리시스 메모리는 대답했다.
그녀는 죽지 못해 살았고, 그래서 죽기를 바랐다.
그 소원이 이런 식으로 이뤄질 줄 생각하지 못했으나─.
“─언니한테 죽을 수 있다면, 정말 고맙지. 미안해, 너무 많이.”
프리시스 메모리는 자신의 죽음을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언니가 자신을 원망하면서 죽이는 것이라고 해도, 이대로 그냥 죽음을 맞이하기로 했다.
그것이 언니와 마녀들을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한 것에 대한 속죄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고통스럽게 죽여도 좋아. 언니가 바라는 대로 죽어줄 테니까.”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프랑스.
프리시스 메모리는 숲속에 있는, 여성들만 모인 마을에서 태어났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마을을 이룬 사람들은 되도록 외부와의 접근을 단절하며 살고 있었다.
“자연에는 마나란 것이 녹아 있고, 그건 우리 몸속에도 깃들어 있단다. 몸속에 있는 마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렴.”
세상에 마나의 존재가 드러난 것은 19세기 이후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하나의 단어로서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았다고 해도, 신비를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그런 부류에 속했다.
그들은 자연과 교감하고, 체내의 마나를 사용해 인간이 할 수 없는 마법을 부리고는 했다.
물론, 그들의 마법은 조잡했다.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마법은 그들이 일상에서 살아가며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덜어줄 정도였다.
“너는 많은 마나를 품고 있구나. 마나의 신이 너를 많이 사랑하시는 모양이야.”
그런 환경 속에서.
프리시스 메모리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에게 마나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자랐다.
그녀는 태생적으로 방대한 마나를 지니고 있었고, 마나를 다루는 것에 두각을 드러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사랑해주며, 그녀가 성인이 되어 마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숲에서 여자들끼리 모여 산다니, 마녀가 틀림없다!!
종교 개혁의 바람이 불던 시기.
의심과 광기에 빠진 세상 사람들이 그녀들을 가만히 둘 리 없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녀들끼리 모여 마을을 이루고, 숲속 깊은 곳에서 숨어 사는 그들은 의심의 대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들이 이따금 만들어 파는 약품은 일반적인 약품보다 효과가 훨씬 뛰어났다.
마녀들이 숲속에 모여 나쁜 일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놈들이 온갖 재료를 섞어, 기어코 사람까지 솥에 넣어서 약을 만들고 있는 걸 거야!
사람들은 오해하고, 착각했다.
광기는 그들이 이성에서 깨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그저 지금 자신들의 삶이 불행한 이유는 전부 마녀 때문이고, 신을 위해 그들을 죽여야만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녀들을 모두 붙잡아라!
도망치는 자들은 그냥 죽여라!
마녀들을 재판에 회부하라!
사람들은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들은 기어코 결계를 파괴하고서 마을을 찾아냈다.
그들은 숲에 불을 질러 마녀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삶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마녀들은 사람들에게 사로잡히고, 세상으로 끌려 나왔다.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한다!
불을 지펴라!
불에 타서 죽지 않는다면 마녀고, 그대로 죽는다면 너희들의 무죄가 입증될 것이다!!
프리시스 메모리는 철창 속에 갇혀 마을 사람들이 불에 타서 죽는 것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10살이었다.
눈앞에서 마녀가 아니라 소리치며 끝끝내 불에 타서 죽고 마는 그들을 눈에 담는 것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꺄아악!!”
“언니!”
“이 애도 붙들어 매! 마녀다! 너는 가만히 있어! 네 차례는 다음이니까 거기서 얌전히 보고 있어라!”
그녀는 자신의 일상을 부순 그들이 몹시 미웠다.
급기야 하나뿐인 혈연인 친언니가 화형대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는 더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힘을 원하는가?
그녀가 마나를 발현하려 할 때면 이따금 머릿속에서 울리던 목소리.
그동안 그녀는 응답하지 않았다.
바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원대한 소원이 싹을 트고 있었다.
프리시스 메모리는 빌었다.
간절히 원하고, 또 바랐다.
“힘을 원해요, 제발 도와주세요.”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이런 꼴로 만든 신이라도 상관없었다.
악마의 유혹에라도 넘어가주겠다.
자신의 영혼을 파는 일이 있더라도 소원을 이루고 말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염원이 세계 의지에 접하게 되고, 실현되고 말았다.
“저와 마을 사람들이 죽지 않도록 힘을 빌려주세요.”
그리고 미쳐 날뛰는 저 사람들을 모두 죽여주세요.
마을 사람들과 이전처럼 행복하게, 영원히 살 수 있게 해주세요!
몇백 년에 걸쳐서 후회하게 되는, 불완전하기 짝이 없고 어긋난 소원.
그것은 저주였다.
그대의 바람대로 이루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