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950)
리라이프 플레이어 (949
〈심해의 던전〉 공략 참가는 개인의 자율이라지만, 그렇다고 정부 차원에서 가만히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무나 허락해 주었다가는 자칫 국제 망신이나 전력 유출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거기에 실패라도 했다가는…….’
전력 손실이 기다리고 있다.
그로 인해 민심이 악화하고 선녀 정부가 지탄받을 게 불 보듯 뻔했다.
따라서 정부 측에서 관여해, 성공적으로 공략할 수 있도록 주도할 필요가 있었다.
그 역할을 주도하는 사람이 바로…….
“흑색던전 공략에서 중요한 건 협업 능력이에요. 그러니 클랜 평가 B 이상, 파티 평가 A 이상, 개인 평가 B 이상. 요컨대 BAB등급 이상에 해당하는 플레이어들만 지원할 수 있도록 하죠.”
제4기 십이좌 필두, 〈군주〉 노은하였다.
그는 선녀 임가을과 회의해, 지원 기준을 세웠다.
“마이너스 등급도 포함해서?”
“음……. 네, 포함하기로 해요. 마이너스, 제로, 플러스 구분 없이.”
“괜찮을 것 같네. 알겠어. 그럼 지원 후에는? 어떻게 거를 생각이니.”
“1차로 개인 실력을 보고, 2차로 협업 능력을 보고, 3차로 인성 검사를 해야죠. 괜히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갔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안 되잖아요.”
“맞는 말이기는 한데……. 네가 인성을 거론하기에는 좀…….”
입가를 가리고 키득거리며, 놀리듯 말을 흐리는 임가을.
은하는 뚱한 시선으로 대꾸했다.
“제 인성이 뭐가 어때서요? 제가 인성에 문제가 있다면, 그런 저를 이 자리에 앉힌 사람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농담이야. 장난도 못 하니? 재미없게…….”
“저야말로 하나도 재미없거든요? 그냥 일이나 하죠.”
“그래, 그러는 게 낫겠다.”
그렇게.
잠시간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회의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렀다.
“지원 기준은 이렇게 하고……. 십이좌는 얼마나 데려갈 생각이니?”
“선녀님은 얼마나 데려갔으면 좋겠는데요?”
“이왕 이탈리아에 가는 김에 직접 빅 마마를 만나서 협상하지 않으면 섭하지 않겠니? 그러니 행정에 능숙한 사람 한 명, 너를 포함해 공략에 참가하는 사람 세 명. 최대 네 명이겠네. 그 이상은 업무에 지장이 클 거야.”
“네 명…….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행정에 능숙한 사람으로는 〈별헤는 마녀〉로 생각 중이에요. 선녀님 의견을 잘 이해하고 행동할 테니까요.”
“잘 생각했네. 확실히 그녀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지. 좋아.”
임가을이 수긍한다.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나머지 두 명은 어쩔 거니? 너희 클랜에서 뽑아 가게?”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닌데, 판도라에서는 저만 가려고요.”
현재 제4기 십이좌로 활동하는 판도라 클랜원은 은하를 포함해, 류연화, 진파랑, 한창진, 노은아로 총 다섯 명이었다.
그래서 은하는 마음 같아서는 손발이 맞는 클랜원들 중에서 선발하고 싶었지만…….
대단히 안타깝게도.
“연화, 〈신창〉은 현재 임신 중이라서요.”
“그러네. 누구 아이를 품느라 조만간 십이좌에서 물러날 거라지? 그 자리는 원래 현철이, 〈염마〉의 자리였던 만큼 블레이즈 클랜이 이어받기로 했고. 믿음직한 플레이어가 물러나서 많이 아쉽지만, 어찌 보면 너희 클랜 비율이 줄어든 셈이니 다행이기는 해. 조금은 균형 있게 잡힌 셈이니까.”
“크흠! 뭐, 그렇죠. 처음에야 백서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희 클랜원들로 채웠다고 해도, 이제는 눈치가 보이던 마당이었으니까요. 마침 〈신창〉이 시기적절하게 물러나게 된 거죠. 사람들의 축하까지 받으면서.”
“전대 〈신창〉 님의 제자라서 몇 번 얼굴을 보기는 했는데……. 그 아이가 누군가와 결혼하고, 아이까지 임신하다니 참 감개무량하네. 그 상대가 하필이면 너라는 점에서 깨지만. 부인이 몇 명이니…….”
“……우리 여기까지만 하죠.”
류연화의 임신을 언급하자니 괜스레 낯간지럽다.
일부러 헛기침을 한 은하는 적당히 화제를 마무리했다.
“다른 세 사람은?”
“신혼이랑 결혼 때문에요.”
은하는 쓴웃음을 흘렸다.
현재 얼마 전에 식을 올린 노은아와 한창진은 깨알 같은 신혼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속이 부글부글 끓을 정도로.
‘또 화가 나네. 한창진…….’
은하는 한창진을 증오했다.
마음 같아서는 신혼이고 뭐고, 강제로라도 그를 데려가고 싶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도 했다.
다만…….
―은하야, 제발……. 은아랑 편안하게 신혼 생활을 보내게 해 줘.
―……진짜 확 데려가?
한창진이 추하다 싶을 정도로 애걸복걸 애원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정말 창진이가 필요한 거야? 필요한 거면……. 어쩔 수 없지. 너도 없고, 창진이도 없으면 많이 쓸쓸하겠네…….
―…….
노은아가 은하의 연민을 자극하며, 은근히 한창진을 보내지 말라고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당연히 은하는 충격에 빠졌었다.
“대체 그 자식이 뭐가 좋다고……. 어떻게 그 자식 편을 들 수 있어……. 내가 누나를 되살리겠답시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은아를 좋아하는 마음은 알지만, 이제는 그만 졸업하지 그러니? 부인들도 있고, 자식들도 있으면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플레이어가 돼서 찌질하다, 참 찌질해. 은아 결혼은 어떻게 허락했니?”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용하네요. 내가 왜 그랬지…….”
“그래도 은아가 아깝기는 해. 〈그림자의 왕〉한테, 아니, 걔한테 은아 울리지나 말라고 하렴.”
“선녀님이 보는 눈은 있네요. 이럴 때는 마음이 잘 맞아…….”
여하간.
끝내 노은아를 위하는 마음에, 은하는 한창진의 강제 참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진파랑의 경우…….
‘그 철부지 형이 결혼이라니, 지금도 웬일인가 싶네. 할머니가 봤어야 하는데…….’
〈심해의 던전〉 공략 기간에 걸쳐, 〈힐링 노츠〉 김메리와의 결혼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자니 눈치도 없이 진파랑에게 참가를 권할 수는 없었다.
진파랑은 혹하는 듯했지만…….
―야, 이 형님이 안 따라가도 되겠냐? 정 뭣하면 메리한테 얘기해서 결혼을 미루고…….
은하는 기겁하고 말렸다.
―형, 미쳤어? 그러다 메리한테 차이면 어쩌려고……. 마음은 고맙지만, 공략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형은 제발 결혼이나 잘해. 형 인생에서 메리같이 형한테 죽고 못 사는 여자도 어디 없을 거다.
―엥? 얘가 날 깎아내리려 드네. 야, 너 그거 가스라이팅이야. 잘 찾아보면 메리 같은……. 아니, 없겠다.
―인정?
―어, 인정. 미안, 나 결혼할게!
―나도 미안. 결혼식에 못 가서…….
그때 진파랑이 생각이라고는 없이 김메리에게 실수라도 저지를까, 어찌나 걱정했던지…….
다행히 그를 타이른 은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었다.
‘그 형은 불안불안하다니까. 메리가 잘 잡아 주면 좋겠는데…….’
부디 진파랑과 김메리의 결혼이 행복하고 순탄하길 바랄 뿐이다.
은하는 회상에서 깨어났다.
“그래서 저희 클랜의 십이좌는 차출하지 못할 것 같아요.”
“경사에, 경사에, 경사가 겹쳤으니 어쩔 수 없지.”
“누나 일은 경사가 아니거든요?”
“아무렴.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서, 다른 두 명은 누구로 할 거니?”
“한 명은 이미 정해 놨어요. 〈시간의 마녀〉요.”
“이유는?”
“여러 외국어에 능통하기도 하고, 치유 마법과 보조 마법에 탁월한 실력을 자랑하는 서포터니까요.”
“하긴, 그녀만 한 적임은 없겠네. 나머지 한 사람은?”
“그게 고민이에요.”
은하는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남아 있는 십이좌 중에서 공략대에 가장 필요할 인재를 고려한다.
이윽고 결론을 내린 그는 입을 열었다.
“명왕 클랜의 〈풍술사〉 채선우 플레이어요. 정보 수집과 정찰에 능한 레인저가 나을 것 같네요.”
“흠, 〈풍술사〉라……. 괜찮겠니? 그 사람, 실력은 알아준다지만 걸핏하면 농땡이나 피우려 들어서……. 레인저 역할을 원한다면 차라리 〈소환사〉 그녀나, 〈사일런트〉는 어때?”
KK 클랜의 캐스터, 〈소환사〉 강예솔.
그리고 템페스트 클랜의 스나이퍼, 〈사일런트〉 유수진.
임가을로부터 두 사람을 추천받은 은하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차원에서 소환수를 불러 정찰을 겸할 수 있는 〈소환사〉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임기응변에는 약해요. 소환수를 유지하는 마나 소모도 클 테고요. 그리고 〈사일런트〉는……. 선녀님도 알잖아요.”
“그치……. 〈풍술사〉가 능구렁이라면 〈사일런트〉는 게으름뱅이니까.”
“둘 중 한 명을 골라야 한다면 능글맞은 〈풍술사〉가 더 낫죠. 그리고 주로 후방에서 활동하는 스나이퍼를 정찰로 내보낼 수도 없고요.”
“맞는 말이야. 인정할게.”
이로써.
은하는 〈심해의 던전〉 공략에 함께할 십이좌들을 결정했다.
〈별헤는 마녀〉 송윤서, 〈시간의 마녀〉 프리시스 메모리, 〈풍술사〉 채선우.
제안을 받은 세 사람은 의외로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전국은 다 돌아다녀 봤지만, 해외는 처음인데……. 좋네요. 나름 여행 가는 기분도 낼 수 있을 테고.”
“제가 도움이 된다면 가야죠. 이탈리아라……. 오랜만이겠어요. 통역은 문제없을 테니 저한테 맡겨 주세요.”
“흑색던전 공략은 좀 그렇지만, 해외여행을 떠날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이야, 이탈리아에 미녀들이 많다던데 궁금해 죽겠는걸?”
* * *
‘한동안 여유롭게 지내나 싶더니만, 다시 일에 치여 사는구나…….’
제4기 십이좌 필두로서 주어진 역할은 얼추 끝났으니, 이제는 판도라 클랜 로드로서의 역할에 임해야 할 때다.
은하는 정식으로 공문을 내려, 〈심해의 던전〉 공략에 참가할 클랜원들을 모집했다.
그러자 제일 먼저 찾아온 사람은…….
“은하야! 우리도 데려가 줘라!”
“응……. 우리도 갈래…….”
“……뭐?”
〈창성의 마에스트로〉 벽해수와 반쯤 그의 팔에 들리다시피 온 〈조광사〉 백현율이었다.
은하는 전투직이 아닌 생산직인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아니, 형이랑 현율이 네가 〈심해의 던전〉에는 왜 가려고?”
“던전에 들어가겠다는 게 아니라, 이탈리아에 가고 싶다는 소리야.”
“그러니까 거기는 왜?”
“이탈리아의 마나 합금이 좋잖냐. 직접 가서 보고 싶기도 하고, 그 나라 마에스트로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말이야.”
“나는 해수 형이 보여 준 이탈리아 풍경이 예쁘길래……. 가서 그림 그리고 싶어.”
공방에서 작업하다 나온 것인지, 얼굴에 잿더미를 묻힌 채로 벽해수가 콧잔등을 문질렀다.
백현율은 졸린 눈을 비비며 하품이나 해 댔고.
은하는 혀를 내둘렀다.
‘해수 형의 꼬드김에 넘어간 현율이는 그렇다 치고, 이 형이 단단히 꽂혔나 보네…….’
딱히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이, 공방에서 묵묵히 제 일만 하던 벽해수다.
그런 사람의 부탁이니만큼.
‘되도록 들어주고 싶기는 한데…….’
문제는 공략을 진행하는 동안, 이탈리아에 남아 생활해야 할 벽해수와 백현율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하느냐였다.
자칫 그들의 실력에 눈독을 들인 사람들에게 납치를 당할 수도 있었다.
‘스카우트 제의는 당연하겠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은하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안 되겠어. 위험해. 공략대가 던전에 들어간 사이 누가 형이랑 현율이를 지키라고? 잘못해서 납치라도 당하면?”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다. 정 불안하면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호위 좀 붙여 주든가.”
“음, 호위라…….”
“그리고 이탈리아를 가는 동안 바다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들을 지긋지긋하게 상대하게 될 텐데, 그러다 디바이스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고치려고? 다른 마에스트로들이 동행한다지만, 나만큼 너희 디바이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
은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론이라면 정론이었으니까.
그러자 벽해수가 거 보란 듯 콧방귀를 끼었다.
“그리고 은하 너, 이탈리아로부터 국보를 받기로 했다며, 두 점이나. 〈심해의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그런데?”
“내가 따라가면 그 자리에서 검을 만들어 줄 수도 있어. 어차피 바로 던전에 들어가 공략을 진행할 것은 아니잖아? 너희가 이탈리아에 도착하고 나서 대략 한 달의 여유를 둔다고 했다니……. 네 검을 만들 시간으로는 빠듯하면서도 충분하겠지.”
“…….”
“용광로야 그쪽에서 빌리면 되고. 이탈리아에 부탁해 잘 찾아보면 헤파이스토스의 용광로만 한 용광로가 있지 않겠어? 그리고 사실, 너도 힘을 잃은 여명검을 들고 〈심해의 던전〉에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을 것 아니야.”
“……그렇기는 하지.”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수 형 말이 맞아. 이왕이면 여명검이 아니라 새로운 검으로 던전을 공략하는 게 낫지. 이 형이 있으면 장비 관리가 편해지기도 할 테고…….’
은하는 진지하게 고심했다.
그런 가운데, 승리를 확신한 벽해수는 입가를 끌어올렸다.
이윽고 은하는 결정을 내렸다.
“알았어. 허락할게.”
“좋았어!”
“후암……. 그럼 나는 이제 마저 자러 가도 되는 거지?”
벽해수는 주먹을 쥐고 기뻐하고, 백현율은 눈을 감아 버렸다.
은하는 두 사람의 반응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주의했다.
“대신 신변을 조심하도록 하고, 우리나 이탈리아 정부 쪽 사람을 대동하고 다니도록 해.”
“우리끼리 다니지 말라는 소리지? 그래, 걱정하지 마.”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믿을 만한 호위도 붙여 줄게.”
“오, 누구로?”
“헤르미트 누나.”
“헤르미트 누나? 오……. 그 누나라면 확실히 믿음직하지. 찬성이야.”
현재 판도라 클랜의 행정원이자, 회귀 전에는 구마의 일원으로서 아가레스로 불렸던 헤르미트.
그녀라면 호위로서 충분할 터였다.
“마침 자질구레한 일을 맡아 줄 행정원이 필요한 참이었는데 잘됐네. 헤르미트 누나를 대표로 일임해 보내면 되겠어.”
괜찮은 인선이다.
그길로 은하는 헤르미트를 호출해, 그녀에게 사정을 전했다.
헤르미트는 떨떠름해했다.
“저한테 호위요? 누누이 말하지만, 저는 행정원으로 들어온 겁니다만…….”
“알지, 알아. 그래서 행정 일도 같이 부탁하는 거잖아.”
“…….”
“따로 호위 수당도 챙겨 줄게. 두둑할 거야. 아, 출장비랑 위험수당도.”
“여행 경비도…….”
“줄게, 다 줄게.”
“이탈리아 경관이 꽤 예쁘다던데, 한 번쯤 가 보고 싶기는 했어요. 좋아요, 가겠습니다.”
다행히도.
헤르미트를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덕분에 은하는 걱정을 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