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969)
리라이프 플레이어 (968
해주에 필요한 소재를 모으러 정처 없이 숲속을 떠돈다.
안타깝게도 소득은 시원치 않았다.
“어째 영 보이질 않네. 나와도 쓸데없는 놈들만 나오고…….”
“그러게요……. 저나 주님이나 하필이면 왜 희소한 몬스터들로만 배정된 걸까요?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요?”
“아니, 우리가 특별한 거겠지. 나는 블랙 드래곤이고, 너는 서큐버스 퀸이니까. 둘 다 제3위계잖아.”
“즉……. 저희한테 저주를 건 몬스터의 위계가 높을수록, 해주도 까다로워진다는 거군요.”
“그런 셈이지.”
“큰일이네요……. 그런데 주님, 만약 찾는 몬스터가 없는, 그런 경우는 없겠죠?”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던전 가이드가 풀지 못하는 미션을 내지는 않거든. 그러니까 어딘가에 분명 있을 거야.”
“휴,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대신 개체 수가 제한돼서, 운이 나쁘면 얻지 못할지도 몰라. 우리처럼 희소한 소재를 모아야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때는 다른 사람에게서 빼앗든, 교환하든 해야겠지.”
“다른 사람이 가져가기 전에 얼른 찾아야겠네요.”
“그래야지.”
은하가 앞장서고, 이리야가 뒤따른다.
두 사람은 두런두런 대화하며 탐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은하는 걸음을 멈췄다.
“주님? 왜 그러세요?”
“이리야, 저기 보여?”
“저기요? 아…….”
나무 기둥 뒤에 숨은 은하가 한쪽을 가리켰다.
그의 곁에 붙은 이리야는 모로 기울인 고개를 내밀어, 수풀 너머를 쳐다보았다.
곧 그녀는 바위 위에 있는, 노란 형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키르륵, 키르륵.
제6위계 몬스터, 황금 고블린.
허리에 조그만 주머니를 찬 놈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찾았네요. 어떻게 할까요? 바로 나갈 건가요?”
“아니. 놈은 기척에 예민하고, 도망치고 숨는 것도 잘해서 섣불리 나갔다가는 놓치기 십상이야. 우리 존재를 눈치챈 즉시, 뒤도 안 보고 도망치려 들걸? 그러니…….”
“제가 고블린이 도망치지 못하게 속박 마법을 걸어야겠네요.”
“이 거리에서 할 수 있겠어? 한 번에 성공해야 하는데.”
“주님, 좀 서운하네요. 함께한 시간이 얼마인데…….”
이리야가 입술을 삐죽 내민다.
그러면서 슬며시 손을 뻗어 은하의 가슴팍을 더듬었다.
은하는 흠칫했다.
“제 실력 모르세요? 저 거리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아, 알았어. 나도 실력 알지. 그냥 한번 확인해 본 거야. 그러니 손 좀…….”
“손이요? 아……. 내가 언제 그랬지……. 죄송해요, 주님. 이건 그러니까…….”
“괜찮아, 이해해. 지금 나하고 붙어 있어서 발동한 거겠지.”
“네에……. 죄송해요.”
필시 저주의 영향이리라.
은하는 이리야의 손을 떼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반면 얼굴이 달아오른 이리야는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어쨌든 할 수 있는 거지?”
“네에……. 맡겨 주세요.”
“지금 바로 부탁할게.”
“네.”
직전의 상황을 무마하려는 듯,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리야.
그녀가 로자리오를 손에 쥐고 기도문을 읊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되…….〉
말은 울림이 되어 퍼지고, 발현된 마나는 형태를 갖춰서 현실에 구현된다.
순식간에 황금 고블린의 발치에서 쇠사슬 다발이 솟구쳐 올랐다.
촤륵! 촤르륵!
키륵!? 키아아악!
쇠사슬에 구속된 황금 고블린이 아무리 발버둥을 치더라도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사이 놈에게 뛰어간 은하는 검을 휘둘렀다.
〈바일런트 베놈〉
극독을 머금은 홍화검의 칼날이 황금 고블린을 베었다.
단숨에 놈이 어깻죽지에서부터 사선으로 갈라졌다.
‘이래서는 바일런트 베놈을 쓸 필요가 없었네.’
블랙 드래곤의 저주로 인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격에 죽이지 못할 시를 대비해 바일런트 베놈을 사용했건만.
아무래도 실력 저하를 감안해도 자신은 여전히 강한 듯했다.
은하는 괜히 뿌듯해졌다.
‘무엇보다 홍화검의 힘도 있고…….’
홍화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낸 은하는 만족스럽게 입가를 끌어 올렸다.
그때, 이리야가 다가왔다.
“주님, 거기로 가도 되나요?”
“어, 독은 다 사라졌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와도 돼. 이리 와.”
“네. 그런데……. 죽이지 않고 살려 두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다행히 주머니가 남긴 했지만, 하마터면 황금 고블린이랑 같이 사라질 수 있었잖아요.”
바위 위로 올라와 무릎을 꿇은 이리야가 의문을 표했다.
은하는 친절히 답해 주었다.
“그 마음은 모르지 않지만, 죽여서 얻는 편이 나아.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잖아. 자칫 그 사람들이 건드려서 일을 망칠 경우도 고려해야지.”
“음……. 하긴, 일리는 있네요. 휴우……. 기껏 몬스터를 찾아도, 죽여서 소재가 나오지 않으면 또 문제겠어요.”
“그래도 희소한 몬스터일수록 소재가 나올 확률은 올라가니, 너무 고생하지는 않을 거야. 어지간히 운이 나쁘지 않고서야.”
은하는 쓴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황금 고블린이 소멸해, 자리에 남겨진 주머니를 확인했다.
주머니 바닥을 잡고 열자, 안에서 보석들이 쏟아졌다.
이리야가 감탄했다.
“와아…….”
“반짝이는 걸 좋아한다더니, 역시 황금 고블린이야.”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다시피 보석들을 감정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중간중간 뿔이 스치고는 했다.
“아야! 주님…….”
“아, 미안. 괜찮아? 조심할게.”
한편으로 은하는 보석에 매료됐다.
‘예쁘다……. 아름다워.’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보석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더라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녹빛을 머금은 보석을 이리야 쪽으로 향했을 때.
“……주님?”
“…….”
은하는 이리야의 초록 눈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 아른거리는 빛은 손에 쥔 보석보다 아름다웠다.
은하는 무심결에 내뱉었다.
“예쁘다…….”
“네? 주, 주님!?”
이리야가 깜짝 놀라든 말든.
은하는 반쯤 분별력을 잃고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몸이 찌르르 떨렸다.
“주님, 지금 뭐 하시는…….”
“눈 감지 말고, 가만히 있어.”
“…….”
호의, 당혹감, 두려움, 기대 등 다양한 감정으로 자신을 보는 초록 눈이 아름답다.
가지고 싶고, 탐하고 싶다.
평생토록 자신을 바라보게…….
바로 그때.
찰싹!
“……아.”
이리야가 은하의 뺨을 때렸다.
그제야 은하는 충동을 떨치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 이제……. 괜찮아요?”
“……어, 이제는 괜찮아. 미안해.”
“아니에요. 괜찮다니까 다……행이에요.”
하마터면 저주에 집어삼켜져 완전히 이성을 잃을 뻔했다.
은하는 자신을 일깨워 준 이리야에게 사과했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뻣뻣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푹 고개를 숙였다.
“……이리야?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파?”
은하로서는 의아하기만 했다.
한편으로는 이리야의 상태가 걱정되기도 했다.
이내 어떤 생각이 스치고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혹시 나 때문인 거야? 나한테 실망해서…….”
그때, 이리야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아, 아니에요! 아니, 맞아요. 주님 탓이 맞기는 한데……. 주님한테 실망한 게 아니라…….”
“…….”
“주님이 또 제 눈을 보고 이상해지지 않을까 해서요……. 그리고 또…….”
한 손을 가슴 위에 얹고, 얼굴이 잔뜩 달아오른 채로 쭈뼛거리는 이리야.
그녀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아.’
은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리야는 그의 추측을 긍정하듯 뒷말을 이었다.
“아까 주님한테 만져져서……. 뺨을 때린 거기는 하지만, 제가 만지기도 했고……. 그 탓에 저주가 발동해서요……. 잠시,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이해했어. 기다려 줄게. 아니, 비켜 줄게. 그쪽이 더 편하겠지?”
“네에……. 부탁할게요…….”
이리야의 숨소리가 간드러진다.
그녀의 상태를 이해한 은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그는 멀찍이 떨어져서 그녀가 저주를 떨쳐 낼 때까지 호법을 섰다.
‘진짜 큰일이네…….’
얼른 8층을 공략해야겠다.
은하는 다짐했다.
* * *
문득 의문이 들 법도 했다.
‘그러고 보니 유성이한테서는 아무 얘기도 못 들었었는데……. 유성이라면 이렇게 될 줄 알지 않았을까?’
미래에서 온 노유성인 만큼 모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사전에 알려 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미래가 바뀌지 않았으면 해서?’
왜? 어째서? 어떤 이유로?
의문은 또 다른 의문을 불러왔다.
은하는 선뜻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결국에는 생각을 포기했다.
‘어차피 다음 층에서 만날 테니, 그때 유성이한테 직접 물어보자.’
은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노을이 지고, 밤이 오고 있었다.
“곧 어두워질 것 같으니까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할까? 저녁 먹고 잠이나 자자.”
“자, 자자고요? 저랑요?”
“…….”
이리야가 화들짝 놀란다.
은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상한 뜻으로 오해하지 말고. 순수하게 야영하자는 거야.”
“아……. 순수하게 야영……. 네에……. 좋아요, 저는.”
뒤늦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창피함에 고개를 숙이는 이리야.
그녀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은하는 그녀의 상태를 짐작했다.
‘저주 때문에 많이 힘든가 보네.’
사실, 은하도 힘들기는 했으나 그나마 이리야보다는 덜했다.
저주로 인한 충동을 어느 정도 해소할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몬스터를 죽임으로써 살심을 해소한다든가.
또는 몬스터의 전리품을 모아 소유욕을 해소한다든가.
그 밖에도 해소할 방법이 현실적으로 궁하지는 않았다.
다만 해소하는 것에 몰두해서 이성을 놓아 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그런데 이리야는…….
‘마땅히 풀 방도가 없지. 저주가 저주다 보니…….’
더군다나 이리야는 은하와 달리, 제3위계 서큐버스 퀸의 저주를 한 가지 형태로만 받고 있었다.
더더욱 힘들어할 만도 했다.
어찌 보면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놔두면 정신이 망가질 가능성도 있어. 조금이라도 풀어 줘야 해.’
고민 끝에.
“이리야, 받아.”
은하는 어깨에 두른 망토를 이리야에게 건넸다.
이리야는 고개를 갸웃했다.
“주님, 이건 왜…….”
“그걸로라도 저주를 다스리라고.”
“아…….”
이해했다는 듯 눈을 깜빡인 이리야가 은하의 망토로 얼굴을 가져다 댔다.
그녀가 눈을 감았다.
“주님 냄새가 나요…….”
“내 거니까.”
“제가 주님 거라고요? 어머…….”
“…….”
“농담이에요. 정색하지 말아요. 상처받잖아요…….”
“그래서 어때? 조금은 나아?”
“……네. 조금 낫기는 한데요……. 주님, 이왕이면…….”
“눈치 보지 말고 말해 줘. 도울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도울 테니까.”
“그럼 주님 침 좀 주세요.”
“…….”
은하는 그대로 굳었다.
못 들은 것으로 하기로 했다.
“미안한데 그걸로 참아 줘. 야영할 장소나 찾자.”
“아쉽지만, 네에…….”
다행히 은하의 망토를 끌어안은 이리야는 조금 전보다 안정된 기색을 보였다.
은하는 그런 그녀를 데리고, 야영지를 물색했다.
다른 사람들을 조우한 것은 그러던 중이었다.
“¿Quién está ahí(뭐야? 누가 있잖아?).”
“Es cierto(정말이네). Es asiática, ¿no(동양인이잖아)? ¿Eres coreano(한국인인가)?”
“¿Es coreano(한국인이라고)? ¿Por qué están aquí(걔네가 왜 여기 있지)?”
본래 이곳을 공략하기로 한, 스페인 공략대의 플레이어들이었다.
이리야를 보호하듯 선 은하는 남자들을 마주했다.
“주님…….”
“괜찮아, 나한테 맡겨.”
고블린의 외형을 지닌 남자, 오크의 외형을 지닌 남자, 뱀파이어의 외형을 지닌 남자.
은하는 그들의 시선이 한순간 등 뒤에 있는 이리야를 훑은 것을 알아차렸다.
‘이것들이…….’
은하로서는 불쾌하기만 했다.
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때, 남자들이 살가운 태도로 영어로 말을 걸었다.
“Why are you here?”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은하는 일부러 이리야를 대신해, 남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가 자신보다 영어를 잘했지만, 그들과 말을 섞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그는 본인도 모르게 지배욕을 느끼고 있었다.
한편, 서로의 사정을 파악한 대화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If you want…….”
“…….”
근처에 자신들의 야영지가 있다.
당신들이 원한다면 그곳에서 지내도록 허가해 주겠다.
아니, 이참에 우리와 함께 8층을 공략하도록 하자.
이야기를 들은 은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회귀 전에 읽은 일지에 따르면…….’
고블린의 저주를 받은 경우에는 약탈 충동, 살심, 성욕, 번식욕, 소유욕, 정복감 등.
오크의 저주를 받은 경우에는 번식욕, 식욕, 정복감, 호승지심, 파괴욕 등.
뱀파이어의 저주를 받은 경우에는 흡혈 욕구, 자아도취, 음욕, 수면욕, 권위주의 등.
여러 상태에 휩싸였었다.
거기까지 기억을 토대로 판단한 은하는 영어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