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06
과천시 몬스터 군집토벌작전이 끝난 지 일주일이나 흘렀다.
미디어에서는 서울랜드 지하에서 벌어진 사태를 보도하느라 바빴으며, 소식을 들은 국민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몬스터들이 만들었을 우리에서 생존자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구출된 생존자들은 모두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태로, 강남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그들이 일상으로 복귀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리라.
“어어어, 은혁아 어떡하면 돼?” “일단 하늘 높이 올려! 그럼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아이들은 서울랜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경마공원으로 캠핑을 와 있었다.
이후, 경마공원은 과거의 명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이제는 사람이 찾지 않는 공원에는 과거에 경마장이었다는 흔적만 남긴 채, 잡초만 무성히 자라 있었다.
처음에는 경마장에 흥미를 보였던 아이들도 관심이 금세 식은 눈치였다.
“에, 에잇!”
“잘했어! 나머지는 내가….” “이건 내가 가져갈게.”
아이들은 공원 한편에 남아 있던 배드민턴 코트에서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중이었다.
공을 쫓느라 우왕좌왕하던 하양이 얼떨결에 공을 띄워 올리고, 은혁이 공을 코트 반대편으로 넘기기 위해 뛰어올랐다.
“─컥!!”
코트 끄트머리에 있던 서나는 공이 네트 중간으로 솟아오르자마자 재빨리 달려 나갔다.
민지를 지나쳐 공중으로 도약한 그녀는 새우처럼 몸을 굽혀서는 공을 때렸다.
스파이크로 날아간 배구공이 은혁의 얼굴에 빨간 자국을 남겼다.
“아, 미안.”
“아프잖아! 진서나 네가 김민지냐!?”
“왜 날 걸고넘어지는데!? 왜? 내가 때리면 얼마나 아픈지 알고 싶어서 그래?” “얘들아, 싸우지 마. 은혁아, 안 아파?”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잘 놀았다.
은하는 저편에서 노는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은하. 여기는 다 끝났다. 너도 이제 그만 가서 놀아라.” “괜찮아요. 그다지 놀고 싶은 기분도 아니고.
저도 카레 만드는 거 도와드릴게요.”
은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트렁크에서 캠핑도구를 내리는 일을 마저 도왔다. 텐트를 설치하는 일도, 카레를 만드는 일도 거들었다.
이번 캠프는 그가 기획한 캠프였다.
물론, 부모님은 지금 같은 시기에 과천시로 캠핑을 가는 건 위험하다며 말렸다.
브루노가 같이 간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허락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브루노는 그의 부탁을 군말 없이 들어주었다.
그래서 미안해서라도 은하는 캠핑 준비를 도왔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네?” “너는 내 보스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하하하….”
부정해도 들어주지 않으리라.
은하는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팀 바꿔! 이번에는 내가 서나랑 팀 할래!”
“어디서 서나를 뺏어가려 그래! 너랑 서나랑 팀을 짜면 재미없어지잖아!” “나도 서나랑 팀 하고 싶어~”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나랑 민지랑 하양이랑 팀하고, 은혁이 너 혼자 하는 거야.” “혼자서 배구를 어떻게 하라고!?”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은하는 감자를 깎으며 흘러들었다.
“은하. 무슨 일이지?”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감자는 다 깎았어요.”
브루노는 은하가 경마공원에 오는 내내 마음이 어딘가에 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이들도 그랬다. 아이들은 그가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갑자기 캠핑을 가야 하는 이유를 묻지도, 배구를 할 때에도 같이 놀자며 억지로 끌고 가지도 않았다.
“브루노 아저씨.”
감자껍질을 벗기던 칼을 내려놓은 은하가 브루노를 불렀다.
브루노를 부르면서도, 시선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요.”
“흠.”
“칼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은하가 말하는 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캠핑을 가기 전, 그가 직접 부탁했기 때문이다.
“트렁크 안에 있을 거다. 비밀번호는…, 저번이랑 같다.”
“네.”
은하는 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냈다.
가방 안에는 플레이어 디바이스를 비롯한 보조장비와 포션이 들어 있었다.
디바이스 홀스터를 착용했다. 어린아이의 몸으로는 벨트를 바짝 조여도 자꾸 흘러내렸다.
어쩔 수 없이 팔뚝에 착용하는 홀스터를 허리에 감아야 했다.
홀스터 주머니에 넣은 건 베레타 한 정과 맹고슈 두 자루였다.
은하는 가져온 물을 벌컥 들이켰다. 페트병이 쪼그라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물을 마셨다.
“여기에 카레 좀 넣어주실래요?”
“흠.”
브루노는 은하가 건넨 500ml 페트병에 카레를 흘려 넣었다.
그가 다시 건네준 페트병은 내용물로 인해 표면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은하는 그것을 뒷주머니에 넣었다.
“…포션은, 이걸로도 충분하겠지.”
포션은 브루노가 준비한 가방에서 꺼내지 않았다. 그가 준비한 포션은 주사기 형태로 되어 있는 포션으로, 효력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물건이 아니었다.
대신 은하는 자신이 챙겨온 가방에서 텀블러를 챙겼다.
텀블러 안에는 정석훈의 커피우유가 들어 있었다.
“오늘 안으로는 돌아올 거예요. 애들이 저 찾으면, 적당히 둘러대 주세요.”
“혼자서 힘든 일이면 나도 따라가마.”
“아뇨,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은하는 단호했다.
브루노는 따라가겠다는 말을 더 이상 꺼내지 않았다.
“건투를 빈다.”
대신 카레를 졸이며 엄지를 들어올렸다.
은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캠핑장을 벗어났다.
천보
☆
경마공원에서 천지식물원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은하는 식물원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했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파티도 제대로 꾸리지 못했던 시기였다.
아니. 제대로 꾸리지 못했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파티를 꾸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때였다.
‘미쳤어. 이럴 수는 없다고.’
대형 클랜에서는 그를 영입하기를 꺼려했다.
아카데미 시절부터 미친놈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던 그를 영입하려는 클랜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나마 입단을 권유했던 소규모 클랜들의 권유도 거절하고 솔로 플레이를 지향했다.
그때 유정은 그가 못 미덥다는 이유로 대형 클랜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그를 따라 나왔던 시기였다.
노은하.
이유정.
두 사람이 이명으로 불리지 않았던 시절.
이변은 그때 일어났다.
선녀 임가을의 부재를 틈탄 몬스터들이 대군을 이끌고 강북을 침공한 것이다.
모든 플레이어들은 한국마나관리기구의 이름 아래 서울에 들이닥친 군세를 이겨내야 했다.
파티를 가지지 못한 플레이어들은 지역 클랜이나 연합에 들어가, 몰려드는 몬스터를 물리쳐야 했다.
은하와 유정도 그 안에 있었다.
팀플레이도 제대로 되지 않는 조직에서 몬스터 대군을 상대하는 일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몇날며칠을 자지 못했다. 몬스터들은 끊임없이 몰려들었고,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것들을…, 어떻게 이겨.’
유정은 몬스터 대군을 이끄는 군단장들을 마주하고는 좌절하고 말았다.
당시, 서울을 침공한 군단장들은 모두 넷.
개체 하나하나가 제3위계 이상에 육박하는 재해였다.
“도마뱀의 왕.”
은하는 그때 자신을 무력감에 떨게 만들었던 군단장 중 하나의 이름을 읊조렸다.
제3위계 오버랭크 도마뱀의 왕.
녀석은 이름 그대로 도마뱀의 왕이었다.
리저드맨 계열에 속하는 몬스터들을 이끈 녀석은 강력한 독을 무기로 플레이어들의 공포를 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손발이 맞지 않는 플레이어들과 몰려드는 군세를 막아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강현철을 비롯한 십이좌들의 귀환으로 전황이 반전되면서 녀석이 물러나는 모습을 멀리서나마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지. 설마 녀석이 제3위계 오버랭크로 성장할 때까지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니.”
몇날며칠에 걸친 싸움 끝에 서울을 가까스로 지켜냈다.
십이좌들은 퇴각한 도마뱀의 왕을 토벌하러 한강을 내려왔다.
은하와 유정도 그들의 대열에 합류해 있었다.
그리고 은하는 둥지, 천지식물원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도마뱀의 왕으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들어야 했다.
도마뱀의 왕이 과천시 몬스터 군집토벌작전에서 살아남은 몬스터였다는 사실을.
“내가 남의 똥을 치워야 한다니.
그러니 나한테 감사하라고, 이 미친 오징어야.”
얼마 전, 은하는 과천시 몬스터 군집토벌작전 뉴스를 접하고 도마뱀의 왕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이대로 모른 척하느냐, 미래를 위해 개입하느냐.
이번 생에는 플레이어로서 살지 않고, 가족과 친구들과 평화로이 살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미래에 서울이 몬스터 대군의 침공을 받든 말든 알 바가 아니었다.
그때 경험했던 고생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그 시기가 되면 적당한 이유를 둘러대고, 가족들과 친구들을 강북 밖으로 피신시킬 생각이었다.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었다.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었지만 자꾸 눈에 밟혔다.
“하.”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플레이어가 되었던 때만 하더라도 몬스터란 몬스터는 미친 듯이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죽기 위해 싸웠다.
그러니 몬스터는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군단장들을 마주했을 때 본능적으로 느낀 무력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느낀 무력감은 시간이 흘러, 십이좌에 준하는 실력을 갖추게 되는 미래에도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크라켄이 절망을 주었던 존재였다면, 서울을 침공했던 군단장들은 무력감을 선사했던 존재였다.
그가 결국 넘어서지 못한 벽이었다.
넘어서야 할 시기에 군단장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이번 생에서도, 너한테 무력감을 느낄 수는 없단 말이지.”
보도를 듣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몰랐다.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이 아직도 녀석을 넘어서야 하는 벽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물론, 이 시기의 녀석은 제3위계 오버랭크에 어울리는 힘을 갖추지 못했을 터였다.
그날의 녀석을 재연하려면 녀석이 서울을 침공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내가 미쳤다는 소리는 들어도, 그 녀석 하나 잡겠다고 미친놈은 아니란 말이지.”
일종의 핸디캡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시기의 녀석은 전성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 역시 전성기의 시절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
“쌤쌤인 거지 뭐.”
은하는 허리에 차고 있던 맹고슈를 뽑아들었다.
칼날에 마나를 실었다.
브루노가 준비한 맹고슈는 마나를 불어넣으면 칼날을 확장할 수 있는 플레이어 디바이스였다.
“안 그래?”
키에에에엑!!
식물원에 들어섰을 때부터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은 진작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은하는 도마뱀의 왕이 가까이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녀석은 다가왔고, 그는 머리 위로 뛰어내린 놈을 향해 맹고슈를 움직였다.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녀석이었지만, 녀석의 신체를 이루는 두꺼운 갑옷은 마나를 덧씌운 칼날을 막아냈다.
“생각보다 단단하네.”
비늘 아래에는 뼈가 자잘하게 흩어져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하나로 자라날 뼈는 비늘과 함께 이중으로 몸을 방어하고 있었다.
은하는 당황하지 않았다.
녀석은 미래에 재해로 변모할 몬스터였다.
쉽게 죽이지 못할 거라는 예상은 했었다.
쉽게 죽일 생각도 없었다.
“원망은 회귀 전의 네놈한테 하라고.”
인…간…
녀석이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어쭙잖게나마 사용했다.
위계는 제3위계 오버랭크에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녀석은 과연 언젠가 제3위계 오버랭크
로 자라날 만한 자질과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린 도마뱀이 기척을 완전히 감췄다.
녀석의 능력 중 하나인 카모플라쥬였다.
회귀 전에도 플레이어들은 주변의 색에 동화해 기척을 완전히 감춰버린 녀석을 끌어들이느라 크나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한다는 건 그야말로 공포였다.
“고작 이것밖에 안 돼?”
어디까지나 회귀 전의 녀석이었다면.
어설펐다. 녀석은 기척을 완전히 감추지 못했다.
대놓고 살기를 흘리고 있었다.
기습을 가한다는 감정이 과한 나머지, 경첩처럼 휘어진 손톱이 닿기 직전에 기척을 드러낸 것이다.
키아아아아!
반대로 역습을 당한 도마뱀의 왕.
몸을 반쯤 틀어 공격을 피한 은하가 맹고슈로 녀석의 목을 내리쳤다.
“엄청 단단하네.”
그래서 뭐?
은하는 바닥에 처박힌 녀석을 시큰둥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무너지지 않는 벽은 무너질 때까지 두드리면 될 뿐이다.
“기척도 제대로 감추지 못하다니. 이건 괜히 가져왔네.”
은하는 뒷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페트병을 꺼냈다.
스텝을 놀려 땅속에서부터 솟구쳐 나온 녀석의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면서 뚜껑을 열었다.
녀석이 바로 코앞을 스쳐지나가는 순간을 노려, 안에 있던 내용물을 털었다.
키에?
나무에 달라붙어 다시 공격을 가하려던 녀석이 멈칫했다.
머리에서부터 걸쭉하고 노란 액체가 흘러내렸다.
“도마뱀 카레라고, 들어나 봤나 몰라.” 키에에에에!
녀석은 그가 자신의 몸에 액체를 뿌린 이유를 알아챘다.
이래서는 주변의 색에 동화하더라도 제대로 모습을 감출 수 없었다.
바닥을 굴러 몸에 묻은 액체를 지우더라도 코를 틀어막는 듯한 냄새를 완전히 떨쳐낼 수 없을 터였다.
“맛있지? 많이 먹어. 그게 네 마지막 밥이니까.”
한편, 꾸겨진 페트병을 바닥에 집어던진 은하.
그가 두 번째 맹고슈를 꺼내들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