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12
벨제뷔트.
파리를 지배하는 자를 죽였을 때에 대한 기억은 비참하고 참혹할 정도로 처절했다.
구마(九魔) 중 하나였던 녀석은 온갖 역병과 질병을 몰고 다녔다.
녀석이 수원시에 일으킨 테러는 도시 하나를 몰락시키는데 충분했다.
사람들은 녀석이 지배하는 파리에 물려 고통 속에서 죽어 가거나 몬스터로 감염되어 버리고 말았다.
벨제뷔트를 상대하려면 각별히 엄선된 소수의 플레이어로 대적하는 것이 유리했다.
안개꽃 파티는 그곳에 있었다.
십이좌들은 각 분야에서 최고라 거론되는 플레이어였지, 전원이 뛰어난 전투력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십이좌로는 구마를 상대하기 부족했다.
그래서 임가을은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죽음을 기꺼워하는 안개꽃 파티에 벨제뷔트의 토벌을 명한 것이다.
‘이유정! 일대 정화를.’
‘알고 있어!’
화성 기사단과 세류 공군단 그리고 수원시의 기타 지역클랜은 시체를 쌓고 태우기를 반복했다.
그들의 역할은 몬스터로 변모해버린 사람들을 죽이며, 안개꽃 파티가 벨제뷔트를 쓰러뜨리도록 보조하는 것이었다.
‘너희가 그래도 이름값 하나는 하는 구나. 십이좌도 아닌 놈들이 온다고 해서 기분이 퍽 상했었는데, 생각보다 꽤 하네?’
벨제뷔트는 시체의 산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매니큐어를 바른 손가락으로 머리를 배배 꼰 그녀는 파리처럼 붉은 눈으로 안개꽃 파티를 바라보았다.
‘닥쳐! 지금 기분 엿 같으니까.’
‘그래, 네가 이고.’
‘크아아악─! 이 새끼들이, 떨어져!’
벨제뷔트는 지면을 박차고 시산 위로 뛰어오른 진파랑의 공격을 가볍게 흘려보냈다.
파리 떼에 휩싸인 진파랑은 이유정이 부여한 버프를 모조리 잃고 디버프 상태에 걸리고 말았다.
‘파랑 오빠! 거기 가만히 있어!’
‘그리고 안개꽃 파티에서 라 불리는 유일한 서포터가 바로 너구나?’
‘─손 떼.’
파리들이 만들어준 길을 유유자적하게 밟고 내려와 이유정에게 다가선 벨제뷔트.
은하는 녀석이 유정에게 손을 대기 전에 검을 휘둘렀다.
‘성미가 급하네? 네가 구나? 아니, 인가?’
벨제뷔트는 손목이 떨어져 나갔는데에도 태연한 얼굴로 그를 훑어보았다.
정작 그는 태연해질 수가 없었다.
전투도 제대로 벌이기 전에 파티원 몇몇이 녀석의 손에 당해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안개꽃 파티에 입단하기 전부터 생사를 함께했던 캐스터 배수빈이 녀석의 장난질에 당하고 말았다.
녀석의 본거지는 곳곳이 시체와 파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설마 파리 떼가 시체를 조종해 후위에 있던 그녀를 감염시킬 줄은 몰랐다.
‘리…더….’
‘라는 이름치고는 약했지만, 마나 저항이 상당하네.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쟤네들한테 당하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건 네가 처음이거든.’
‘닥쳐! 이 새끼야!’
‘꽤 빨리 왔네? 가 치료해줬나 보지?’
배수빈은 몬스터로 변모해가면서도 마법으로 벨제뷔트를 견제했다.
이미 그녀의 신체 일부는 파리의 외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녀가 몬스터로 변모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리…, 더.’
배수빈이 불렀다.
은하는 미친 개처럼 전장을 뛰어다니며 벨제뷔트와 전투를 벌이던 진파랑에게서 시선을 떼고 답했다.
‘왜.’
‘죽여줘.’
‘…….’
‘왜… 이래? 설마…, 정이라도… 들었…어? 그건 또…, 의외인데.’
믿고 사랑했던 자에게 배신을 당한 채, 온갖 오명과 오물을 뒤집어쓰고, 빈민가에서 노예처럼 살았다던 배수빈.
그녀가 피가 섞인 눈물로 그를 불렀다.
은하는 눈동자가 희미해지고, 눈이 붉게 물들어가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침묵은 길지 않았다.
‘…알았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던, 아니 찾지 않았던 이들.
죽기 위해 살았던 그는 마찬가지로 죽기 위해 살았던 그들을 이끌었다.
‘…지옥에서 보자.’
그렇기에 배수빈을 주저 없이 죽였다.
‘부탁한다, 유정아.’
‘…응.’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파티원들 모두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오로지 유정만이 배수빈의 시체를 불태우며, 눈물 섞인 목소리로 파티원들에게 버프를 부여할 뿐.
‘꺄하하하, 동료를 서슴없이 죽이다니, 너 정말 미쳤구나? 라는 이름값 하나는 잘하네.
근데 이래서는 누가 인간이고 괴물인지 모르겠네.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니?’
벨제뷔트의 비웃음에 답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한 명만이, 그녀에게 검을 겨눈 그만이 비웃음을 일축했다.
‘죽기 전에 할 말은 다 끝났나?’
☆
모스키토 플라이를 통해 벨제뷔트를 투영할수록 열이 받았다.
공기의 흐름을 감지하고 원거리 공격을 피해내는 녀석을 보면 더더욱.
무기가 필요해.
은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붕 위에서 무기로 쓸만한 물건은 안테나밖에 없었다.
손에 마나를 그러모았다. 탁구공정도로 구체를 이룬 마나를 던지자, 안테나가 부서졌다.
재빨리 속도를 높여 달려 나간 은하는 지붕 아래로 떨어지던 안테나를 낚아챘다.
“…좀 빌립니다.”
그는 안테나가 부서진 집을 한 번 돌아보고, 지붕과 지붕을 뛰어넘으며 모스키토 플라이와의 거리를 줄였다.
그때 녀석이 길가를 걷고 있던 여성과 아이를 향해 활강했다.
마나가 부족한 모양이었다.
몬스터로 변하고 아직 아무것도 먹지 못한 녀석에게서 마나를 탐하는 욕구가 솟구쳐 오른 것이다.
녀석이 사람들을 습격하게 둘 수는 없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새로운 모스키토 플라이가 태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어, 엄마….”
아이는 눈앞에 내려앉은 모스키토 플라이를 보고는 제대로 말도 잇지 못했다.
아이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제자리에서 굳어서는 가느다란 관처럼 생긴 주둥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날 잊었냐?”
은하는 지붕 위에서 뛰어내리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지면에서 떨어져 내린 충격을 상쇄시킨 그가 안테나로 녀석의 머리와 몸통을 잇는 관절부위를 후려쳤다.
녀석이 화들짝 놀라 몸을 비틀었지만, 공격을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했다.
구불구불한 선을 그리며 하늘로 솟구친 녀석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꽁무니를 내뺐다.
“혹시 모르니까 병원에 가서 체내 마나 검사 좀 받아요.”
은하는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지 못한 여성에게 말하고는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다시금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우와! 짱이다! 엄마, 엄마! 나도 저 형처럼 되고 싶어!”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나도 저 형이랑 같은 초등학교에 가고 싶어!”
아이와 여성이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천보
마나 크래셔
속도를 높였다.
전경이 선으로 변하면서 뒤로 밀려났다.
전봇대를 밟고, 담벼락으로 착지하고, 벽을 박차서는 측면에서 안테나를 휘둘렀다.
미침
녀석이 피할 것이라고는 예상했다.
한 번 휘둘렀던 안테나를 원위치로 되돌리는 동작을 취했다.
안테나에 잔재해 있던 마나가 날카로운 침이 되어 바람을 타고 올라간 녀석의 배를 노렸다.
“잘도 피하네.”
사격계열 무기가 있었더라면 전투가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눈살을 찌푸린 은하는 저 높이까지 날아오른 녀석을 쫓았다.
근처에는 빈민가로 이어지는 길목이 있었다.
주거 구역 바로 반대편에 붙어 있던 빈민가에는 세월이 지난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녀석이 빈민가로 들어섰다.
지붕 위를 달리던 은하는 방향을 급선회해서 낡은 건물로 뛰어든 녀석을 보고는 혀를 찼다.
“뭐, 뭐야!”
“…몬스터─!!”
이판사판이었다.
은하는 맞은편 건물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
몸에 방벽을 전개했다.
눈을 돌리지 않았다.
돌렸다가는 그대로 길가로 떨어지고 말리라.
이를 악물었다. 몸을 둥글게 말아 녀석이 침투한 층으로 떨어지려 몸을 틀었다.
“…젠장.”
건물과 건물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사선으로 불어온 바람이 그가 착지지점으로 골랐던 층보다 2층 아래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게다가 벽이었다.
안테나가 부러지거나 말거나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은하는 다급하게 벽에 안테나를 박아 넣었다. 방벽의 두께를 최대한으로 늘려 벽과 부딪치는 충격을 흘려보냈다.
천보
안테나를 뽑아들었다.
끝부분이 뭉개져 있었다.
신장에 맞게 조정했던 안테나를 절반이나 부러뜨리고 벽면을 달려 나갔다.
마나 소모가 상당했다.
그래도 마나는 남아 있었다.
몇 개월 전, 트레디치를 상대하느라 죽음의 문턱에 들어섰던 이후로 체내 마나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회귀 전에 버금가는 체내 마나.
그리고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제어능력.
오히려 회귀 전을 웃도는 마나효율.
소량의 마나만으로도 2층 높이를 질주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걸음에서 도약한 그는 모스키토 플라이가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선 방으로 뛰어들었다.
“아아….”
“아파아파아파아파─!!”
“엄…마….”
늦었다.
빈민가의 아이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은하는 아이들을 지나쳐, 한 아이에게 달라붙어 체액을 빨아들이던 모스키토 플라이의 등허리를 찔렀다.
극침격자
녀석은 제대로 날아오를 수 없었다.
천장까지 닿는 높이라면 은하가 뛰어오를 수 있는 높이였다.
드디어 공격이 들어갔다는 감각이 손안에 퍼졌다.
아파아아아아
사려려려려려
어느새 모스키토 플라이의 눈에는 눈동자가 생겨 있었다.
동공 주변이 새하얀 색이었다.
인간의 눈이었다. 인간의 눈이 머리만한 크기로 튀어나온 모습은 기괴했다.
배를 찔린 녀석이 바닥에 떨어져 몸부림을 쳤다.
살려줘어어어어
녀석이 흔들리는 눈으로 은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동공의 흔들림이 멈췄다.
인간의 피부로 뒤덮인 다리가, 인간의 눈알이 다시금 모스키토 플라이의 외형으로 돌아갔다.
“…완전히 먹힌 건가.”
녀석은 마인화를 마치지 못했다. 되레 의식을 잡아먹혀서는 완전히 몬스터로 변모하고 말았다.
천보
은하가 달려 나간 시점과 모스키토 플라이가 도망친 시점은 동일했다.
녀석은 자신이 부순 창문으로 뛰쳐나갈 생각이었다.
미침
원령
마나로 가느다랗게 만들어낸 바늘비로 움직임을 견제했다.
주춤한 순간에 고등제어기술에 속하는 원령을 발동했다.
그의 발밑에서 올라온 흐물흐물한 기체가 모스키토 플라이에게 닿았다.
녀석이 경련을 일으켰다.
원더런에게서 빼앗은 마나를 소화하려던 찰나, 원령이 체내 마나를 갉아먹은 것이다.
마나 크래…
“저게 진짜.”
은하는 건물 아래로 떨어지는 모스키토 플라이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녀석이 살아남겠다는 의지로 대뜸 창틀 아래로 몸을 던진 것이다.
제대로 날개도 피지 못한 녀석은 고장 난 실외기와 지붕 천막 등에 충돌하면서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아직도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욕지거리를 내뱉은 은하는 창틀을 밟고 뛰어내렸다. 벽면에 마나를 부착하며 포장이 벗겨진 길 위로 떨어지는 녀석을 쫓았다.
녀석은 살아있었다.
구멍이 뚫린 날개를 용케 움직여서는 저공비행을 감행했다. 몸을 세로로 틀어 비좁은 길로 들어가 그를 따돌리려 했다.
짜증나네 정말.
공중을 날아다니는 몬스터는 성가셨다.
누군가 지원이라도 해주면 상대할 수 있을 텐데, 장애물을 피해 날아다니는 녀석을 상대하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로 그때였다.
건물 저편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목소리가 들린 것이.
“저쪽이다!” “찾았습니다!” “녀석이 건물을 나오는 순간 사격한다!”
─물러날 때인가.
곳곳에서 플레이어의 기척이 느껴졌다.
민지의 신고를 받은 플레이어들이 모스키토 플라이를 토벌하러 도착한 것 같았다.
달리기를 멈추고 골목길로 몸을 숨긴 은하는 비좁은 길에서 마주보는 벽면을 지그재그로 밟고 오르는 플레이어들을 살폈다.
그리고 기겁했다.
…수가 왜 이리 많아.
제7위계 몬스터 하나를 상대하는데 몇 명이나 온 거야.
플레이어들의 수는 지금도 늘어나고 있었다.
은하는 제각기 다른 클랜의 문장을
달고 온 플레이어들을 보면서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이제 뒤로 빠져야지 어쩌겠어.”
열이 받쳤지만 플레이어들이 도착한 와중에 활개를 칠 수는 없었다.
체내 마나를 가다듬은 그는 기척을 죽이며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몬스터는 플레이어들에게 맡겼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조금 전, 모스키토 플라이는 원더런들을 사냥했다.
마나를 빼앗긴 대다수가 마나 폭주를 일으키며 사망하겠지만, 새로운 모스키토 플라이가 태어날 가능성도 있었다.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제거해야 했다.
빈민가에는 비슷하게 생긴 노후건물이 여러 채나 있었다.
하지만 모스키토 플라이가 습격했던 건물은 인근에 유리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해당 건물을 찾아낸 은하는 계단을 올랐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부터 쓰지 않는 폐건물이었던 것 같았다.
몇몇 방에서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있었던 흔적이 발견되었으나, 몬스터의 출몰을 듣고는 달아난 모양이었다.
그렇게 아무도 마주하는 일 없이 습격이 일어났던 층으로 올라갔다.
“…다 죽은 건가.”
방 안은 난장판이었다.
피를 흩뿌린 아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운동화에 닿은 피는 바로 조금 전에 흘린 것처럼 물기가 남아 있었다.
숨이 끊긴 아이들은 10명가량이나 되었다.
문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누군가 방안을 드나든 흔적은 없었다.
감염원은 방 안에 있는 아이들이 전부였다.
“…형아?”
불안에 떠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돌아보자, 벽면에 기대 팔을 축 늘어뜨린 아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살아남은 아이 역시 죽을 것이다.
죽어야 했다.
아이의 몸이 몬스터로 변모하고 있었으니까.
“…천사, 형아?”
아이가 두 단어에 힘을 주며 물었다. 그러자 입에서 피를 토했다.
피눈물이 아이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