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13
아이는 싫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고, 울기만 하면 제 부모가 해결해줄 거라고 믿는 이기적이고 얄팍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몇날며칠이나 잠을 자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검을 휘두르며 강북 지역의 멸망을 막아냈던 그날.
광화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플레이어들을 환호했다.
그때 그는 아무런 감흥도 들지 않았다.
살았다는 실감보다는 어째서 죽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먼저 들었다.
그 뒤에는 이대로 눈을 감고 곯아떨어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시끄러워.’
사람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정신 사나웠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을 반기는 사람들을 보며 눈가를 적셨다.
이유정은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흘렸다.
은하는 그녀가 울도록 내버려두며 광화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싸우겠다는 마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싸웠을 뿐이다.
그런데 저들은 대체 자신에게 무엇을 투영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다 시선이 멈춘 곳에는 대열 맨 앞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이 있었다.
부모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세상에 지옥 따위는 없다는 것처럼 해맑고 순수한 미소.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은 그는 절대로 지을 수 없는 미소였다.
너무 이른 나이에 지옥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니까.
그래서 아이가 싫었다.
뭐가 그리 행복한지 실실 거리는 웃음도.
자신만큼은 행복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확신도.
모두 다 그가 잃어버린 것들이었다.
그것은 시간을 되돌아가도 변하지 않았다.
☆
“천사…, 형아 맞…지?”
“…너였구나.”
1년 전이었다.
은하는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아이를 잊지 않았다.
원더런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고작해야 5~6살에 불과했던 아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아이는 1년 사이에 많이 자라 있었다.
아이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몰라 하던 순수한 티가 벗겨져 있었다.
세상의 때에 묻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리라.
그리고 아이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헤헤….”
아이는 멋쩍게 웃었다.
창백한 얼굴은 기억 속에 있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1년 전에 만났던 그 아이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은하는 아이가 지은 작위적인 미소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형들이…, 다 죽었어.”
아이는 담담하게 전했다.
그 시간에도 아이의 몸은 괴물의 형상으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상처 부위에서부터 곪기 시작한 살이 부풀어 오르고 터지기를 반복하며, 털로 뒤덮여갔다.
눈동자는 인간의 눈과 괴물의 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아이는 시시각각으로 색이 변하는 눈과, 희미해졌다 선명해지는 눈동자로 말했다.
“형들 모두…, 엄청 잘대해…줬는….”
데에에에에에에
아이는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를 듣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피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결국 한쪽 눈이 힘을 잃고 탁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눈자위가 안면을 빠져나와 팽창했다.
“나도…, 죽는 거지?”
아이는 담담히 물었고,
“응.”
은하는 담담히 답했다.
“헤헤.”
아이는 웃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너무나 작위적인 미소였다.
그럼에도 아이는 힘차게 웃었다. 의식이 괴물의 본능에 잠식당하고 있을 텐데도, 살이 멋대로 들끓는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텐데도 힘차게 웃었다.
“천사 형은…, 안 웃어?”
작위적인 미소를 잃지 않은 아이. 아이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려는 입술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아이의 얼굴 중 절반은 시시각각으로 파리와 모기를 뒤섞은 형상으로 바뀌어갔다.
“…나는 웃는 법을 잊어버렸어.”
은하는 아이를 따라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웃는 법을 잊어버렸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그가 과거로 돌아와서 두 번째 삶을 손에 넣었다고 하더라도, 감정은 진작 마모될 대로 마모된 상태였다.
감정이 마모된 괴물이었다.
회귀했을 때에도, 지금도.
때때로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가족들이 보듬어주고, 친구들이 다가오더라도 한 번 메마른 감정은 처음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란 잔인했다. 시간을 되돌아가도 회귀 전에 자신이 겪었던 일이 모두 없었던 것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을 잃었고, 죽기 위해 살았다.
행복을 빼앗겼기에 절망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절망을 겪었기에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러니 이 행복을 잃고 싶지 않았다.
웃지 못할 때에는 억지로 웃으면 된다.
들키고 싶지 않았다.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무표정만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웃음을 가장했다. 진심으로 웃는 법을 잊은 채.
때로는 진심으로 웃었다. 자신이 어떻게 웃었는지도 모른 채.
“그래도…, 웃어…야 해.”
“왜?”
“형들…이, 그랬어. 웃다 보면…, 언….”
젠가가가가가…
“…웃게 될…, 일…이…있을…거라고.”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식을 잃어가는 아이에게 닳고 닳은 안테나를 향했다.
“…미안. 지금은 이거밖에 없어서. 조금 아플 거야.”
총이었다면 고통도 느끼지 못하게 끝낼 수 있을 터였다.
안테나에 마나를 실었다.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었다.
두 번은 용납하지 못했다. 자신이.
“…응.”
몸의 절반가량이 몬스터로 변모해버린 아이.
하나 남아 있던 눈마저 툭 튀어나와 붉은색으로 부풀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은하는 자세를 취했다.
안테나 끝에 모인 마나가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원뿔형의 형태를 만들어갔다.
호리잔틀 프리크(Horizontal Prick)
아이는 파리의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괴물과 인간의 중간 사이.
물결처럼 꿈틀거리는 입술이 마지막 말을 남겼다.
“…엄마 보고 싶어.”
이래서 아이는 싫었다.
☆
모스키토 플라이는 2차 피해를 남기지 않고 무사히 토벌되었다.
아이들은 사정정취에서 인간이 모스키토 플라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밝혔다.
마나관리국에서는 최근에 출몰한 모스키토 플라이에 대한 기록을 뒤졌고, 당시 녀석을 토벌했던 마로니에 기사단을 소환했다.
마나관리국이 조사한 결과, 마로니에 기사단의 대처에는 문제가 없었다.
당시 몬스터를 토벌했던 마로니에 기사단의 플레이어는 사건현장에서 쓰러진 남성을 병원으로 데려갔고, 병원에서는 남성에게서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고 퇴원수속을 밟았다고 전했다.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말했으나, 남자는 병원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마로니에 기사단과 병원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밀고, 마지막에는 남자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몬스터가 되어 죽은 남자는 말이 없었다.
남자는 죽음과 함께 책임소지를 떠안고 간 것이다.
[아인 소녀의 텔레파시가 세상을 움직이다!] [“친구들이 있어서 무섭지 않았어요.” 혜화동 모스키토 플라이 출몰] [마로니에 기사단 “아인 소녀의 텔레파시가 2차 피해를 막아”]한편, 저명한 신문사들은 앞 다투어 모스키토 플라이의 출몰을 신고한 서나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앨리스그룹에서 사건을 축소한 끝에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 작은 기사로 처리하는 일로 마무리를 지은 것이라 한다.
기사의 주인공이 된 그녀는 성북구청장으로부터 용감한 어린이상을 받았다.
모스키토 플라이 출몰소식은 끄트머리에 작게 보도된 기사에 불과했음에도, 서나의 활약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로니에 기사단과 같은 성북구 지역클랜에서는 그녀에게 영입을 제안했다는 모양이다.
물론 서나는 나이를 이유로 거절했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모스키토 플라이가 일으킨 피해가 아니라, 모스키토 플라이의 토벌 과정에만 주목했다.
빈민가에서 죽은 아이들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번 멸망한 세상은 길가를 떠도는 아이들의 죽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세상이 한 번 멸망했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한 번 멸망한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보 같이 희망만을 꿈꾼다.
희망은 덧없고, 절망은 언제나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진실로부터 눈을 돌리며.
이 세상은 그런 세상이다.
욕이 나올 정도로 더러운 세상.
그런데도 죽지 못하고 사는 세상.
☆
요즘 오빠가 웃지 않는다.
은하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은애는 알 수 있었다.
어린아이의 감각은 예민했다. 누가 자신에게 사랑을 주는지, 주지 않는지 정도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은아도.
줄리에타도 브루노도.
주변 친구들도.
모두 은하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단지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니까.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러니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언젠가 그가 말할 때까지.
“오! 빠!”
은애는 아니었다.
그녀는 어려운 생각 같은 것은 몰랐다.
오빠가 울적해 있다.
오빠가 시무룩해 있는 건 싫다.
그것만 알면 될 뿐이었다.
그녀가 행동하는 데에는 그 이유 하나로 충분했다.
“왜 그래?” “다리! 다! 리!”
소파에 앉아 있던 은하에게 달려간 은애가 폴짝 뛰어올랐다.
그의 무릎 위에 올라탄 그녀는 조그마한 손으로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은하가 그녀가 하라는 대로 다리를 벌리자, 은애는 자신에게 편한 공간을 만들며 그에게 기댔다.
“헤헤!”
“뭐가 좋아서 그래?” “그냥 좋아!”
‘은애야, 은하 오빠 좀 잘 부탁해. 언니는 기숙사로 돌아가야 하니까, 오빠가 울적해하면 은애가 위로해줘야 해, 알았지?’
‘어떠케?’
‘오빠 좀 꼭 안아줘.’
‘응!’
은애는 은아가 며칠 전 기숙사로 돌아갈 때 꺼냈던 말을 기억했다.
비록 그를 안지는 않고 자신이 안긴 상태였지만, 은애는 그걸로 만족했다.
오빠가 살며시 웃었으니까.
“오빠빠빠빠!”
“응, 왜?”
은애가 두 팔을 벌렸다.
은하가 고개를 내리자 은애는 재빨리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우선 오른쪽에 쪽.
이어서 왼쪽에 쪽.
“헤헤! 오빠가 제~일 좋아!”
은애가 해맑게 웃었다.
기습 뽀뽀를 당한 은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을 말똥말똥 깜빡인 것도 잠시.
여동생으로부터 그 말을 들은 것이 기쁜지 맑은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나도 은애가 제일 좋아.” “아빠보다도? 엄마보다도?” “당연하지.” “그럼 언니보다도?” “…누나랑 은애랑 똑같이 좋아해.” “얼마나?”
은애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은하는 그녀의 물음에 답하기 전에 그녀를 바짝 끌어안았다.
“은애 너는? 오빠 얼마만큼 좋아하는데?”
은애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가슴 앞에서부터 모은 두 손을 원을 그리듯 펼치며,
“하~늘만큼! 땅만큼~!”
은애가 까르르 웃었다.
은하도 덩달아 웃었다. 그녀의 머리에 턱을 얹고는 눈을 감았다.
“나도. 하늘만큼 땅만큼.”
“진짜? 진짜진짜 진짜?” “응, 진짜.”
“거진말하면 떼찌! 야!”
“정말이야, 정말.”
“약속!”
“자, 약속.”
은하는 은애가 내민 손가락에 손가락을 얽었다.
은애가 손을 연신 흔들었다.
은하는 은애가 손을 흔들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대로 그녀를 껴안고 가만히 흘러가는 시간을 즐겼다.
이대로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어느덧 졸음이 몰려왔다.
눈을 감았다.
☆
“어머.”
한편, 장을 보고 돌아온 어머니는 소파에 누워 잠든 두 아이를 보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이건 찍어야 해!
손에 들고 있던 짐을 조용히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은하와 은하의 배 위에서 대(大) 자로 뻗어 잠든 은애.
행여나 은애가 떨어지지는 않을까, 은하는 잠이 든 상태에서도 은애를 끌어안은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남편과 은아에게 보내자 금세 답장이 날아왔다.
[우리 은아: 나도! 나도 은하랑 은애랑 같이 자고 싶어!! ( ˶´⚰`˵)] [우리 당신: 나도 자고 싶다… 사장님이 오늘 또 야근하래 ㅠㅠ] [나: 은아도 이리와~! 이번 주에 엄마랑 같이 잘까?] [나: 당신은 일찍 오고요. 늦게 들어오면 문 잠가 놓을 거예요.]“아유, 귀여워.”
요즘 은하가 울적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다 알아.
이 세상에 엄마가 모르는 것은 없단다.
은하도, 은아도, 은애도 엄마 뱃속에서 나왔으니까.
그러니 울지 마렴.
엄마랑 아빠랑 은아랑 은애가 있잖니.
은하는 웃는 얼굴이 제일 예뻐.
그러니 웃으렴. 아무 걱정 말고.
은애를 안고 자는 은하는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민이 풀린 얼굴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어머니가 자식을 모를 리 없었다.
우리 집 장남은 아닌 것처럼 굴어도 걱정이 많고, 마음이 여리다는 것을.
엄마는 다 알아.
걱정 말고, 울지 말고 웃으렴.
“나도 졸리네.”
달콤한 잠에 빠진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졸음이 몰려왔다.
남편은 오늘 늦게 돌아올 것 같았다.
오늘 하루는 게으름을 피워도 되지 않을까.
소파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은하를 껴안았다.
이걸로 한 번에 은하와 은애를 껴안았다는 행복에 휩싸였다.
“잘 자렴, 우리 아가들.”
눈을 감았다.
한 번 멸망한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희망을 꿈꾼다.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절망을 알기에 희망을 꿈꾸고, 희망을 꿈꾸기에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대로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어느덧 여름이 끝을 고하고 있었다.
여름 내내 힘차게 울었던 매미는 다음에 태어날 굼벵이에게 미래를 맡긴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세상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간다.
그것은 멸망했어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
─나뭇가지에 매달린 이파리가 붉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
아이들은 2학기를 맞이했
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