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21
은하가 아이들에게 마나제어 기술을 가르친 지 3년이 넘게 흘렀다.
아이들의 성장은 괄목상대했다.
그 중에서도 성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아이는 하양이었다.
“이렇게…, 하는 건가?” “잘하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마.” “아니야. 이 정도는 괜찮아.”
하양은 손으로 허공에 맺힌 마나를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와 꿈틀거리는 마나는 조금씩 형체를 잃어가며 사라졌다.
그녀가 자신의 마나를 불어넣어 편재가 되려던 마나를 억제한 동시에 상쇄시킨 것이다.
편재를 편산시키는 의 기프트.
하지만 의 기프트에 의지하지 않고도 편재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기는 했다.
편재가 될 가능성이 있는 마나를 흡수하거나 상쇄시키는 것이다.
“하양아, 다음에는 상쇄시키지 말고 한 번 흡수해봐.”
“그래도 돼?”
“돼. 내가 보고 있잖아.”
편재를 미연에 방지하는 법은 중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었다.
몬스터의 위협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눈에 보일 정도로 마나가 편재하기 시작하면 마나관리국에 신고하거나, 직접 편재를 상쇄시키고는 했다.
하지만 편재를 상쇄시키는 것은 흡수하는 것보다 몸에 부담이 가는 일이었다.
편재를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체내 마나를 편재를 감쌀 수 있을 정도로 소모해야 했다.
그래서 편재를 상쇄하려다 체내 마나를 급격히 소모한 나머지 몸에 힘이 빠지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게 있었다.
반대로 편재를 흡수하는 일은 간단했다. 대기 중에 녹아든 마나를 흡수하면 끝이었다.
다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마나회로에 교란을 일으키거나, 신체가 버티지 못할 정도로 흡수한 결과, 마나폭주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았다.
“나…, 몬스터로 변하면 어떡해?”
하양은 아직도 작년에 있었던 일을 잊지 못했다.
사람이 몬스터로 변모했던 일이 충격이었는지, 그녀는 그 뒤로 마나를 다루는데 조심스러워했다.
“넌 안 변해. 내 말 못 믿어?” “못 믿는 건 아닌데….”
“애초에, 내가 널 몬스터로 변하게 둘 것 같아?”
“…아니.”
“그럼 나 믿지?”
“…응, 너 믿어.”
은하는 손가락으로 하양의 볼을 콕콕 찔렀다.
눈을 깜빡인 하양은 안심이 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양이 너는 자각을 못하는 모양인가 본데, 마나 제어능력 하나는 이미 웬만한 플레이어 이상이라고.
하양은 어릴 때부터 방대한 마나를 품고 있었다.
마나폭주를 일으키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그녀는 은하를 만나기 전부터 폭주하려는 마나를 무의식적으로 제어하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마나를 체외로 방출하면서 몬스터들을 끌어들이는 일도 있었으나, 마나를 다루는 센스만큼은 또래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체내 마나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마나를 흡수한다고 폭주를 일으킬 리가 없었다.
“모르는 사이에 참 많이 늘었어.”
은하는 편재가 되려는 마나를 흡수하려 하는 그녀를 보고 중얼거렸다.
하양은 본인도 모르는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탄탄한 구조로 이루어진 방벽을 발동하는가 하면, 얼마 전에는 듀얼 캐스팅의 기초마저 보여주기도 했다.
플레이어에게 똑같은 마법을 동시에 발동하는 기술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고작 초등학교 4학년이 했다고 하면 이야기는 달랐다.
은하도 가끔 하양의 성장을 보고는 생각 이상으로 더한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양이 기프트가 도움을 주는 면도 있겠지만.
그녀의 기프트가 무엇일지는 대충이나마 짐작이 갔다.
그녀에게 제법 어울리는 기프트였다.
“이거 너무 어려운데.”
“머리로는 알겠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네.”
반면에 민지와 서나는 허공에 맺힌 편재를 잡기만 할뿐, 상쇄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어려울 만도 하지. 그거 중학교에 가서야 배우는 거니까.” “노은하. 지금 장난해?”
“뭐 어때. 일찍 배우면 좋지.”
은하는 눈초리를 세우는 민지를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모든 초등학교는 4학년부터 마나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
그래봤자 4학년에 배우는 것이라고는 마나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마나의 존재를 감지하는 것뿐이었다.
이전부터 마나를 다루는 기술을 배웠던 아이들에게는 지루한 수업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민지 같은 경우에는 마나를 다룰 줄 모르는 아이들을 가르쳐주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지만.
“너 애들 가르쳐주는 거 좋아하잖아. 지금 배워서 애들한테 가르쳐주면 되지 뭘 그래.” “근데 그걸 중학교에 가서야 해야 한다는 거잖아!”
“싫으면 하지 말든가.”
눈을 부릅뜨며 자신을 노려보는 김민지.
은하는 이런 식으로 대꾸하면 민지가 어떤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흥! 두고 봐!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보여줄 테니까!”
일부러 지면을 쿵쿵 밟으며 돌아서는 그녀였다.
근데 먹민지, 여기 흙바닥이야.
먼지만 날리지 소리는 안 난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지는 씩씩거리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손을 뻗어 마나를 상쇄시키려 했다.
“서나 너는?” “음, 더 해볼게.” “열심히 해, 댕댕아.” “…….” “왜?” “너 미워.”
민지처럼 흥 소리를 내며 돌아서는 서나였다.
요새 서나를 놀리는데 재미가 들린 은하였다. 댕댕이라고 부르며 머리를 쓰다듬거나, 턱을 간지럽힐 때마다 보이는 반응이 재미있었다.
서나는 싫다고 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그의 손길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는 자괴감에 빠지기 일쑤였다.
언젠가는 은혁이 자괴감에 빠진 그녀의 꼬리를 만지려다, 그녀에게 된통 혼이 난 적이 있었다.
그때 은혁이 억울하다고 소리쳤지만, 은하가 알 바는 아니었다.
최은혁 이거는 잘하고 있나?
성장이 두드러진 아이는 정하양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마나제어 능력에서 두드러진 성장을 보였다면, 은혁은 신체를 활용하는 면에서 두드러진 성장을 보였다.
은혁은 몸을 쓰는 감각은 원래부터 있었던 데다, 은하로부터 기초전투기술을 배우는 중이었다.
은하는 올해 안으로 은혁이 몬스터를 죽일 수 있을지 시험해볼 생각이었다.
“어어어어어?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하,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생각에 잠겼던 은하는 은혁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혀를 쯧쯧 찼다.
어째 실패할 것 같았다.
아주 대형 사고를 칠 줄은 몰랐지만.
“이, 이거 왜 이리 커진 거야!? 대장! 나 좀 도와줘!”
은혁은 편재를 상쇄시키려다 되레 편재를 키우고 말았다.
도중에 체내 마나에 대한 제어를 놓치고 만 것이다.
마나는 편재한다.
편재를 억누르던 마나가 제어에서 벗어나니, 편재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손 안에 들어올 정도로 조그마했던 편재는 규모를 늘리면서 머리 하나만한 크기로 자라났다.
“내가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라 했잖아.” “미, 미안. 이게 뜻대로 잘 안 되더라.”
거의 성공할 뻔하기는 했어도 실패는 실패였다.
플레이어의 세계는 한 번의 실패로 사람들의 목숨이 달아나는 만큼 철저하고 가혹했다.
저건 그냥 칼만 들어야 해.
마나관리기구에 들어갔다가는 우리나라 망할 거야, 분명.
극단적인 생각이었지만 은혁은 마나관리기구와 어울리지 않았다.
플레이어는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에는 대개 파티나 클랜에 들어가거나, 마나관리기구에 들어갔다.
마나관리기구는 국가 소속 기관인 동시에 주 업무가 편재를 관리하는 일이었기에 안정을 지향하는 플레이어들에게 손꼽히는 곳이었다.
은혁은 안 된다. 아직 어리니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어도 섬세한 기술을 요하는 마나관리기구와는 맞지 않았다.
하양이가 더 어울리지.
정하양의 능력은 여느 곳에서든 탐낼 만한 것이었다.
특히 마나관리기구에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이 눈에 선했다.
“야야! 야! 노은하! 지금 뭐하는 거야! 가만히 지켜보지만 말고 어떻게든 해야 할 거 아니야!”
민지가 소리쳤다.
은혁이 상쇄시키려다 실패한 편재는 민지와 서나가 연습하던 편재마저 끌어들여서는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아, 맞다. 해결하기는 해야 하는데.”
저건 나도 힘들겠는데.
저만한 마나를 상쇄시키려면 마나를 상당량 소모해야 했다.
비효율적이었다.
차라리 편재 속에서 태어나는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게 더 나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뒀다가는 이보다 더 커질지도 모르고, 관리국에서 알아차릴지도 모를 텐데.
“…하양아.”
“응?” “저거 나랑 같이 상쇄시키자.” “둘이서도 할 수 있어?” “당연하지.”
대규모 편재를 해소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마나관리기구 마나통제국에 소속된 플레이어는 거리를 거닐며 편재를 미연에 방지하고, 혼자서 상쇄할 수 없는 규모라면 다른 이들과 협력하기도 했다.
마나는 편재한다.
그 특성을 이용해 하나로 모여든 편재를 인원수만큼 나눠서 상쇄시키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양이라면 가능하겠지.
예상대로였다.
은하가 체내 마나를 발현해 편재하려던 마나를 일부 떼어오자, 그녀가 재빨리 따라한 것이다.
“대장! 그래도 아직 남아 있어!”
두 사람이 상쇄시킬 수 있는 규모는 제한되어 있었다.
체내 마나가 방대한 하양도 손으로 거머쥘 수 없는 양이 아니면 상쇄시킬 수 없었다.
결국 같은 작업을 몇 번이나 반복해 편재를 해소해야 했다.
그 사이에도 허공에 맺힌 마나는 다른 마나를 끌어들여 떨어져나간 부분을 채우려하고 있었다.
“뭐야! 야, 꼬맹이들! 너희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때마침 문을 벌컥 열고 뛰어나온 정금전.
두 사람이 해소하려던 편재를 보고는 화를 낼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슬리퍼를 신지도 않고 맨발로 뛰쳐나왔다.
“뭐 이리 심해.”
정금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짜증이 섞인 어조로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걱정 마요. 저희가 해결할 수 있어요.”
“해결은 개뿔. 이걸 너희들이 어떻게 해결한다고? 비켜봐.”
은하가 차분히 설명했다.
그의 설명은 듣지도 않은 정금전은 후줄근한 운동복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야, 노 꼬맹 그리고 정 꼬맹.” “왜요?”
“네?” “이 돈은 내가 꼭 청구할 거다.”
정금전이 주머니에서 꺼낸 돈은 5만원짜리 지폐 3장이었다.
그가 손에 쥔 지폐를 꾸겼다.
헐, 뭐야?
은하는 구겨진 지폐
가 마나가 되어 흩어지는 것을 보고는 눈을 의심했다.
역시 예전에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정금전, 그는 물건에 깃든 마나를 흡수하는 기프트를 소유한 것이다.
“내가 진짜 이자까지 합쳐서 받아낼 거다.
나중에 뭐라 그러면 가만 안 둬.
…아씨! 이 돈으로 오랜만에 스테이크나 썰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태연하게 으름장을 놓으며, 마지막에는 거의 절규하며 감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정금전이었다.
목에 핏대를 세운 그는 편재가 되려는 마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내가 진짜 이자 받아내고 만다. 이거 끝나자마자 그놈의 할아범한테 가서 돈 뜯어낼 줄 알아.”
“왜 우리 할아버지 괴롭히려고 해요!?” “그럼 정 꼬맹 네가 15만원 주든가!”
정금전은 씩씩 거리며 편재를 해소하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물건에 깃든 마나를 흡수했다지만, 상당한 양을 한 번에 소모하니 기운이 빠진 모양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뭐라 하든 무시하며,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일어나 계단을 올랐다.
“내가 진짜…, 다 받아낼 거야. 이자까지….”
난간을 붙잡고 꾸역꾸역 올라갔다.
“…징하네.”
은하는 4층으로 올라가는 그를 보고 혀를 찼다.
힘이 들면 조금 쉬었다가 올라가도 되련만.
지금 당장이라도 돈을 받아내겠다며 바락바락 기를 쓰는 꼴이 우스웠다.
“야, 노은하. 근데 이것도 큰일 아니야?” “뭐가?” “뭐가는 무슨. 저 오빠가 너희 집에 들어가서 돈 달라고 할 거 아니야. 너 부모님한테 엄청 혼나는 거 아니야?” “혼나겠지. 혼나겠는데….”
아마 그럴 일은 없을걸.
은하는 확신했다.
정금전이 한 푼도 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가 4층에 사는 고서광 할아버지, 민준식을 찾은 것부터가 실수였다.
“아…!”
서나는 민준식의 집에서 나온 정금전을 보고는 탄성 어린 소리를 내며 꼬리를 세웠다.
김 기사로 불리는 사람이 고양이 뒷목을 대롱대롱 잡은 것처럼 정금전을 데리고 나온 것이다.
“시…발…, 내 돈…, 마이 프리시스…!”
과연 민준식이 퇴짜를 놓은 모양이었다.
정금전은 힘이 채 들어가지 않는 주먹으로 굳게 닫힌 문을 두드렸다.
그러다 힘이 다해 쓰러졌다.
일어날 힘도 없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내 저럴 줄 알았지.”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민준식은 정금전에 한해서는 엄격했다.
“내 돈…, 내 15만원….”
어느새 얼굴이 반쪽이 된 정금전.
아이들은 그가 불쌍하기는 했어도, 부모님에게 혼나고 싶지 않아 모른 척하기로 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