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28
이변은 불현듯 일어났다.
목욕을 하고 나온 하양은 뒷목을 찌르는 듯한 감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감각은 먼 곳에서부터 전해져왔고, 발코니에서 내다본 밤은 깜깜하기만 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스산한 바람이 열기가 가시지 않은 피부를 스친 뒤, 절로 소름을 돋게 하는 감각이 전신을 훑었다.
“하양아, 무슨 일이야?”
“아니, 그냥….”
“아, 드디어 찾았네. 너희들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하양은 서나가 묻는 소리에 답을 하려다, 은혁이 다가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은하가 없었다.
내심 그가 있기를 바랐다.
이토록 불안한 마음이 들던 때에는 그가 옆에 있어야 안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최은혁 네가 여기는 웬일이야? 너희 방은 위층이잖아.”
팔짱을 낀 민지가 툭 쏘아붙였다.
그녀의 말대로, 은혁이 여자애들의 방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올 이유가 없었다.
하양 역시 민지와 같은 생각을 했고, 막연히 어딘가에서 전해지는 감각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이 너희한테 가보라고 하던데?”
“뭐? 노은하가? 대체 왜….”
은혁이 말을 꺼낸 순간, 하양은 마나 감지망을 전개했다.
체스판처럼 퍼져나간 감지망에 반응한 수는 이십 여체.
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하양아?”
“정하양?” “하양아?”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몬스터는 지금─.
[─새벽호텔 안내데스크에서 알려드립니다. 22시 17분, 호텔 부근에서 몬스터의 출몰이 관측되었으므로 호텔에 계신 분들께서는 지하 대강당으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다시 한 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2시 17분 호텔 부근에서 몬스터의 출몰─.]
새벽호텔 측에서도 저 멀리서부터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존재를 관측한 모양이었다.
천장
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안내방송을 들은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이 들은 방송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다.
“모두 대피하십시오!”
“지하 대강당으로 내려가!”
“어서! 얼른! 시간이 없어!”
호텔에 상주해 있던 직원들이 소리치고, 위층에서부터 투숙객들이 소란을 피우며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아이들은 패닉에 빠졌다.
위층과 아래층에서 울려 퍼진 소리가 전염된 것은 삽시간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일단 뛰어! 대강당으로 피하고부터 생각해!”
민지는 패닉에 빠진 아이들을 다독이며 복도를 달렸다.
서나의 옆에서 달리던 은혁은 민지와 하양이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친구들은 다행히 잘 따라오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의 패닉에 휩싸이지 않았다.
위험해지면, 내가 나서야 해.
은혁은 손에 쥔 플레이어 디바이스에 힘을 주었다.
은하가 친구들을 찾으라고 했을 때, 혹시 몰라 숨겨둔 플레이어 디바이스를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온 그였다.
이번에는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 무기가 있었다.
그는 친구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들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정…하양?”
1층으로 내려왔을 때였다.
은혁은 하양의 손을 붙잡은 남자를 돌아보았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서나의 손을 뿌리친 것이며, 하양이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친근하게 말을 거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을 새벽엔터테인먼트의 사장 이병인이라고 소개했다.
이병인은 하양을 배려하는 척하면서, 그녀를 억지로 이끌고 계단으로 향했다.
“정하양!”
“뭐야, 저 아저씨? 되게 재수 없게 생겼는데….”
“…일단 우리도 따라가자.”
아이들이 끌려가다시피 걸어가는 하양을 보며 소리쳤다.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을 다독인 은혁이 남자를 따라갔다.
남자의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하지만 은혁은 그들의 시선을 꿋꿋이 견디며, 굳은 표정을 짓고 걸음을 옮겼다.
“은하는…, 괜찮을까?”
서나가 물었다. 삼각 귀를 쫑긋거린 그녀가 최상층에서 헤어졌다는 은하를 걱정했다.
“…대장이잖아.”
“노은하가 노은하지 뭐.”
그렇게 답하는 은혁과 민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세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은하는 어디선가 홀로 싸우고 있을 거라고.
든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걱정이 되는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지하 대강당으로 이동하고 있어.그러니까 지하 대강당에서 기다릴게. 다치지 말고.]
서나는 플레이어들이 노려보든 말든 스파크를 튀기며 텔레파시를 보냈다.
이럴 때에는 텔레파시가 일방향 통신이라는 점이 답답할 따름이었다.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안부를 전하는 것밖에 하지 못하니까.
“─시발.”
사람들로 붐비는 계단 몇 칸을 내려갔을 때였다.
누군가 욕설을 내뱉었다.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들며 로비 정문을 노려보았다.
“”””아.””””
은혁을 비롯한 아이들은 플레이어들이 어째서 무기를 꺼내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이들이 전개한 마나 감지망은 호텔 바로 앞까지 접근한 몬스터를 파악하는데 충분했다.
하나,
둘,
“─온다.”
속으로 숫자 셋을 세고 있던 하양이 입을 열었다.
“꺄아아악─!!”
“시발, 어서 정문 방어해!”
“서포터는 얼른 방벽을 전개하라!”
회전문이 처참히 깨져나갔다. 유리파편을 뒤집어쓴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호텔 밖에서 몬스터들을 견제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플레이어들의 생사는 알 수 없었다.
연이어 들이닥친 몬스터들이 그들을 짓밟고 돌진해왔으니까.
“사, 살려줘!!”
“시발, 비켜! 얼른 내려가라고!”
“빨리! 빨리 내려가!”
“몬스터다!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관리국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어서 플레이어들을 파견하지 않고!”
투숙객들이 대강당으로 내려가려던 아이들을 밀치고, 때로는 몇 계단이나 한꺼번에 뛰어내렸다.
그 탓에 계단에서 구른 아이들이며, 넘어진 아이들이 다리를 다쳤다.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아이들이 기어서라도 계단을 내려가려 했다.
그 위로 아이들이 뛰어내리고, 몇몇 아이들이 바닥에 처참히 깔렸다.
몬스터는 아직 로비 입구에서 발이 묶여 있는데, 살려달라는 비명과 고통에 찬 신음이 뒤쪽에서부터 새어나오고 있었다.
“─여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그래, 수고해라. 아래층으로 절대 내려 보내지 말고.
돈을 받았으면, 그만한 값어치를 해라.”
“…알겠습니다.”
호텔 로비에 상주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몬스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힘을 다했다.
그 중에 이병인이 고용한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최상층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로비 입구로 뛰어갔다.
“자, 하양아. 이틈에 얼른 내려가자꾸나.”
이병인이 하양의 손을 잡아끌었다.
키 차이가 나서 까치발을 든 그녀가 저항도 못하고 질질 끌려가는 형태가 되었다.
“제가 데려갈게요.” “은혁아?”
아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은혁은 플레이어들이 목숨을 걸고 몬스터에게 뛰어드는 와중에도, 그들의 희생을 태연하게 무시하는 이병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게….”
이병인이 얼굴을 구겼다.
그가 하양의 손을 잡아채려 하자, 은혁이 그녀의 손을 등 뒤로 감추며 마나를 발했다.
쏜살같이 흘러나온 마나가 이병인을 위협하려던 순간─,
“─이게 어디서 지랄이야.”
이병인의 전속 플레이어 중 한 명이 그가 발하는 마나를 받아쳤다.
플레이어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의뢰인에게 기어오른 애송이를 완전히 밟아버리기 위해, 마나로 그를 찍어 누르려 그랬다.
─뭐?
살기와 함께 마나를 발현하려던 플레이어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남자아이에게 보호를 받고 있던 여자아이가 무서운 기세로 마나를 폭발시킨 것이다.
남자 자신이 발현한 마나를 덧씌워버릴 정도로 압도적이고 거대한 기운을.
압도당한 것은 오히려 남자였다.
그 뒤에 있던 이병인까지 숨을 쉬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할 정도로.
“…하양아?”
은혁은 하양을 돌아보았다.
동그란 눈에 힘을 준 그녀가 남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 친구, 건드리지 마세요.”
하양이 자신들을 둘러싼 플레이어들이 살기를 발하는 와중에도 의지를 꺾지 않고 내뱉었다.
마나를 때려 넣은 것만으로 압박감을 조성한 그녀.
압박감뿐이었다.
전신을 마나로 감싼 플레이어들이 그녀를 잠재우기 위해 손을 뻗으려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피해!!”
“사장님! 도망치십시오!”
“야, 새끼야! 거기 막으라고 했잖아!” “그게, 갑자기, 몬스터들이 돌변해서…!”
로비 입구에서 발이 묶여 있던 몬스터들이 방벽을 뚫고 넘어오기 시작했다.
진열이 무너졌다.
플레이어들 몇몇이 재빨리 방벽을 넘어온 몬스터들을 상대하러 검을 휘둘렀다.
몬스터들의 위세는 대단했다.
폭발하는 마나를 감지한 몬스터들은 자신을 공격하는 플레이어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씨발! 어서 안 막고 뭐해!”
압박에서 풀려난 이병인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덩치 큰 플레이어가 돌진해오는 몬스터를 견제했다.
“어서, 도망친다!”
아이들과 기 싸움을 벌일 때가 아니었다.
몬스터가 바로 가까이까지 다가왔다.
겁에 질린 이병인은 아이들이 따라오든 말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서가던 사람들을 밀쳤다.
사람들을 짓밟고 아래층으로 뛰어내렸다. 그에게 밟힌 사람들이 파도처럼 쓸려 내려오는 인파에 휩쓸리고, 비명을 질렀지만 알 바가 아니었다.
그대로 복도를 내달린 그가 방벽이 전개된 대강당으로 몸을 던졌다.
“헉…, 헉…! 시발!”
바닥에 주저앉은 이병인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계단을 내려온 사람들이 쉬지 않고 대강당으로 뛰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는 전속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돌아다니며, 저 멀리서 하양이 아이들과 들어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앨리스그룹의 손녀에게 사과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좋았다.
몬스터가 울부짖는 소리가 바로 가까이에서 들렸다.
이제는 호텔로 들이닥친 몬스터의 수를 줄여야 할 때였다.
이 이상 수가 늘어났다가는, 호텔에 있는 병력으로 몬스터를 상대할 수 없게 된다.
그는 몬스터를 몰이하고 있을 용병들에게 전언을 보내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였다.
“…어라?”
주머니를 뒤져도 대포폰은 나오지 않았다.
온몸을 뒤져도.
나온 것이라고는 자신의 스마트폰과 지갑이 전부였다.
“…어디 간 거야?”
피가 마르는 듯한 감각.
뭔가가 잘못됐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그가 지금도 사람들이 꾸역꾸역 들어오는 입구를 향해 목이 새도록 소리를 질렀다.
“…씨~발~! 얼른 문 닫아, 이 개새끼들아─!!”
☆
깊은 산속.
복면을 쓴 플레이어들은 빛도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산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얼마나 지나갔지?” “족히 50여개체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평균 위계는?” “평균 위계는 제8위계. 가장 낮은 녀석이 제9위계고, 가장 높은 녀석이 제7위계 오버랭크입니다.”
“오버랭크라. 조금 위험한데.”
플레이어들은 몬스터들을 몰이하고 있었다.
그들은 산골짜기에서부터 올라온 몬스터들이 새벽호텔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슬슬 전언이 올 때가 됐는데, 아무 연락도 없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기어올랐다.
“어떻게 할까요? 슬슬 중단하시겠습니까?” “전언이 오지 않았는데, 멋대로 중단할 수는 없다.”
이만한 몬스터들을 불러일으킨 테러.
지하시장에 몸을 담그고 있던 플레이어들이었지만, 이만한 일을 벌이는 데 쫄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몬스터들이 떼를 짓는 모습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미친 자이리라.
[여기는 올빼미.새롭게 출몰한 제7위계 오버랭크가 무리에 편승했습니다.]
복면을 쓴 플레이어들 사이에 기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건물로 향하는 몬스터들을 관찰했다.
이만한 몬스터들이 움직이는 데다, 호텔에 있을 플레이어들이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고 있을 터였다.
편재가 발생하고, 그 속에서 몬스터가 태어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들의 임무가 몬스터들을 몰이하는 것이라지만, 그들의 임무 또한 몬스터들을 몰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 인력으로는 몬스터들을 제압할 수 없었다. 턱도 없었다.
어째서 연락이 오지 않는단 말인가.
집단을 이끄는 자는 치솟는 불만을 속으로 곱씹었다.
자신이 동요하면, 동료들마저 동요할 것을 알기에.
그때였다.
[여기는 물도마뱀.편재를 확인했습니다. 편재 규모─아아뭐야이거언끄아악─!!]
복면을 쓴 플레이어들 중에 입을 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사태가 발생했다.
이만한 무리를 몰이했는데 이상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바로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편재를, 편재 속에서 태어난 몬스터를 감지하고 긴 숨을 토했다.
끼륵 끄르르륵
끼끼끼끼
숲속에 퍼지는 유인원의 울음소리.
그리고 저 위에서부터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두 개의 달.
달이 아니다.
몬스터의 눈이다.
편재 속에서 태어난 몬스터는─.
“─모두 임무를 중단하고, 퇴…!!”
집단을 이끄는 자는 마지막 말을 끝맺지 못했다.
나무 위에서 내려온 몬스터가 남자의 목을 잡아 뜯었기 때문이다.
피가 콸콸 쏟아졌다.
암흑 속에서 떨어져 내린 선혈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끼끼 우끼끼 끼끼끼
어둠이 도사리는 밤.
암흑이 깔린 숲속에서, 누군가의 비명을 양분 삼아 선혈이 꽃을 피워 나갔다.
끼르르르 끼르르
붉은 꽃을 흩뿌린 몬스터는 저 너머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건물로 고개를 들었다.
보름달처럼 노랗고 동그란 눈을 초승달처럼 히죽인 몬스터가 어둠 속에서 뛰어올랐다.
─편재 속에서 태어난 몬스터는 제6위계 스티지아이 글룸(Stygi-Aye Gloom).
리라이프 플레이어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