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30
흐름을 끊어야 한다.
흐름을 끊지 않고서는 호텔을 습격한 몬스터들을 토벌할 수 없었다.
그 흐름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하, 하아…. 잠, 잠깐 쉬면 안 될까?” “앞장 서.”
“부탁이야. …이 상태로 어떻게 산을 오르란 말이야!”
“앞장서라고 했을 텐데?”
은하는 말을 바꾸지 않았다.
맨발로 산길을 오르던 오연정이 악에 받쳐 소리쳐도,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단지 총구를 겨누었을 뿐.
순간 오연정은 욱하는 심정이 솟구쳤다.
“누가 죽는 게 무서울 줄 알고!? 그래, 해! 죽일 수 있으면 죽여─.”
탄환이 그녀의 손등을 꿰뚫었다.
오연정은 눈만 깜빡이다, 구멍이 난 손을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내, 내 손…. 내 손…!”
그녀가 반대쪽 손으로 구멍이 뚫린 손을 치료하려 했을 때였다.
멈칫했다.
총구는 여전히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내가.”
약실이 돌아갔다.
“곱게 죽여줄 거라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야. 그 손도 구멍 나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어서 움직여.”
사람이 아니었다.
어린애의 탈을 뒤집어쓴, 감정이 없는 괴물이었다.
오연정은 이를 악물고, 손가락 끝에 맺힌 피를 털어내며 산길을 올랐다.
마법으로 상처를 대충이나마 지혈하고, 붉어진 눈시울로 어둠 저편을 노려보았다.
잘 따라오고 있네.
은하는 마나 감지망을 전개했다.
새벽호텔을 습격하던 몬스터 행렬에 변화가 생겼다.
몬스터들이 방향을 선회해서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다.
. 오연정의 기프트는 종을 구분하지 않고 생물체를 홀리는데 탁월했다.
심지어 그녀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혈액 속에 포함된 극소량의 마나조차도 몬스터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서 고생을 하는 건 사양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몬스터를 몰이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호텔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믿을 수 없었다. 그들 중에 이병인을 따르는 플레이어들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도안초등학교에서 수련회를 위해 고용한 플레이어들은 이병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이기적인 존재였다.
그들에게 목숨이 달린 일을 섣불리 맡길 수는 없었다.
그나마 신용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담임인 임도훈이었다.
은하도 고민했다.
임도훈에게 몬스터 몰이를 맡기고, 자신이 이 사단을 벌인 이병인을 처리하면 되지 않을지.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는 임도훈에게서 망설임을 보았다. 초등학교 교사로서 있었던 시간이 그를 플레이어가 아닌 사람으로 만들었다.
은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중요한 순간에 잔인해지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 녀석들도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고.
은하는 대강당에서 펼쳐지고 있을 상황이 충분히 예상됐다.
이병인이 고용한 플레이어들은 때를 노려 이정인의 플레이어들을 죽이거나, 그들을 포섭할 것이다.
음모가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 아이들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뱃머리를 잡을 선장이 필요했다.
임도훈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열 받네.
결국 이 일은 자신이 처리해야 했다.
은하는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몬스터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을 울리며 날아간 탄환이 어둠을 꿰뚫었다.
무언가 툭 떨어졌지만, 상황을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뒤따라오던 몬스터들의 존재가 하나 둘 느껴지기 시작했으니까.
산 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새벽호텔로 향하던 몬스터들은 오연정이 흘리는 마나를 감지하고 방향을 틀고 있었다.
“버프.”
“네, 네?” “나한테 버프 걸고, 떨어져 있으라고.” “네, 네!”
오연정은 자신들을 둘러싸기 시작한 몬스터를 보고 겁을 먹었다.
그녀를 다그친 은하가 버프를 받았다.
“산 속에 있을 거라는 네 동료들은?” “그, 그게…. 분명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은하는 혀를 찼다.
여기저기서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말할 틈도 없었다.
나무 사이를 달리며 탄창을 갈아 끼웠다. 발바닥에 힘을 싣고 나뭇가지 위로 점프해, 무리 속으로 뛰어 들어 길이를 최대한으로 확장한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종횡난무
천보
광무
미침
정신이 없었다.
기척이 느껴지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몬스터들이 상대할 겨를이 없이 몰려들면 장소를 바꾸고, 그래도 안 되면 견제마법을 사용해 거리를 벌렸다.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다 바로 가까이까지 접근을 허용한 몬스터에게 리볼버를 쏘았다.
그걸 써볼까.
거친 숨을 몰아쉰 그가 팔뚝 길이로 조절한 레이피어를 힐끔 쳐다보았다.
머리로나마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는 현상.
지금까지 사용해본 적은 없었다.
사용할 수 있는 상황도,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고, 몬스터만 득실거리는 상황이라면 경우가 달랐다.
숨을 가다듬은 그가 레이피어의 칼날에 마나를 덧씌웠다.
푸르스름한 마나가 빛을 발했다.
어둠 속을 기어 다니던 몬스터들의 동공이 빛을 받아 수축한 사이,
푸르른 빛이 어둠에 동화되어 검게 물들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암흑.
몬스터들은 세상의 섭리를 건드리는 비현실적인 현상을 똑똑히 보았다.
흉흉하고 꺼림칙한 기운이 검신에서 피어올랐다.
“스킬 No. 001 미정.”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마법.
익숙지 않은 형상을 고정할 필요가 있었다.
입 밖으로 아무 짝에나 읊조린 그가 검신에 감싸인 암흑을 휘둘렀다.
머릿속에서 도마뱀의 왕이 독액을 발사하는 이미지가 스쳐 지나갔다.
스킬 No. 001 미정
검신을 감싼 암흑이 방사형으로 분출되었다.
마나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전방에 있던 몬스터들을 헤쳤다.
몬스터는 죽지 않았다.
죽어갈 뿐이었다.
처음으로 신호를 보인 몬스터는 제일 먼저 공격을 받았던 몬스터였다.
상처부위가 썩어문드러지더니, 피를 토하며 몸부림쳤다.
이내 벌어진 상처부위로 피가 분수처럼 튀어 오르고, 온몸으로 피를 토해냈다.
몬스터는 몸이 절반가량이 남았을 때, 더 이상 독에 저항하지 못하고 소멸했다.
그 징후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어떤 몬스터는 피를 토하다 소멸하고, 어떤 몬스터는 썩어문드러진 채로 마나가 되어 흩어졌다.
“…성체가 되지 못했다고는 해도, 도마뱀의 왕이 괜히 도마뱀의 왕이 아니었네.”
도마뱀의 왕이 남긴 스킬은 강력했다.
스킬석이 작아서, 응용폭은 칼날에 덧씌워 날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남발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겠어.
은하는 중독된 몬스터들의 피를 뒤집어쓴 몬스터들에게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이 마법을 자제하기로 했다.
자칫하다가는 아군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는 공격이었다.
마나 소모도 의외로 상당했다. 소모량과 효율에 따라 독성이 달랐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기술이었다.
다수의 몬스터를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는 기술을 얻은 것이니까.
전염이 되는 특성을 지닌 독성은 때로는 광범위 공격과 다름없었다.
회귀 전, 체내 마나가 플레이어의 평균에 미쳤던 그로서는 원거리 마법이나 섬멸계열, 광범위 마법을 다루지 못했다.
체내 마나가 미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스킬석을 포기해야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도마뱀의 왕이 남긴 마법은 그를 위한 마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체내에 녹아든 스킬석은 단순히 독성을 발휘하는 것만이 아니라─.
“위에!!”
오연정이 소리쳤다.
주변 일대를 정리한 은하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마나로 시각을 강화한 그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둥지를 튼 녀석의 실루엣을 볼 수 있었다.
제6위계 몬스터 그림자거미.
녀석의 독은 체내 마나에 혼란을 일으키는 특성이 있었다.
하지만 은하는 덤덤했다.
녀석이 엉덩이 끝에서 독액을 분사할 때도 담담히 지켜보았다.
천보
거리를 좁히는 마법으로는 하늘에서 무작위로 떨어지는 독액을 피할 수 없었다.
“근데 내가 뭐 하러 피해?”
나무 기둥을 지그재그로 차고 올라간 은하는 그림자거미의 독액을 뒤집어썼다.
즉효성 독.
체내 마나가 폭주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도마뱀의 왕이 남긴 마법을 흡수하지 않았더라면.
도마뱀의 왕의 독은 최상위에 위치한 독 중 하나였다.
마비독이라면 모를까, 비슷한 독성을 지닌 그림자거미의 독 따위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독이 통하지 않아서야 그림자거미는 제7위계 자이언트 스파이더(Giant Spider)에 지나지 않았다.
극침격자
그림자거미의 머리 위에서 뛰어내린 은하는 주홍색으로 물든 레이피어를 일직선으로 찔렀다.
마나에 감싸인 칼날이 두터운 갑옷을 헤집고,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켰다.
“너희도 얼른 나와. 있는 거 다 아니까.”
거대한 몸체가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나무를 쓰러뜨렸다.
충격 없이 풀밭에 착지한 그는 어둠 저편을 주시하며 레이피어를 들어올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플레이어 세 명이 손을 들고 걸어 나왔다.
그들 모두 복면을 쓰고 있었다.
은하는 구슬만한 마나를 띄워 올렸다.
푸르른 빛이 남자들의 행색을 비췄다.
네비게이터 하나, 레인저 둘인가.
“다른 녀석들은?”
오연정에게 듣기로 산에서 몬스터들을 몰이하는 임무를 맡은 용병들은 스무 명이 넘었다.
“…연락이 되지 않는…않습니다.”
선두에 선 남자가 답했다.
사실 남자는 기회를 봐서 오연정을 구하고, 그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보고 말았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레이피어를 휘둘러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섬멸한 것을.
그림자거미의 독이 통하지 않았던 것을.
그 사이에 남자의 동료는 재수 없게 튄 독액을 맞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에게 존재를 들킨 것도 그 때문이리라.
“좋은 말 할 때 무기 버려.”
남자들은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레인저 두 명으로는 그림자거미의 독을 능가하는 마법을 사용하는 그를 이길 방도가 없었다.
서포터 오연정이 합류하더라도 변함이 없을 터였다.
“몰이는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거지?”
“…산골짜기 너머에서 하고 있습니다.”
“컨트롤 타워는?”
“…….”
“컨트롤 타워는?”
“…산골짜기에 있을 겁니다.”
“앞장서.”
은하가 무기도 없는 남자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 너머에는 몬스터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맨몸으로 길을 열라는 의미였다.
자살행위였다.
하지만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검신을 검게 물들인 그가 싸늘한 어조로 내뱉었기 때문이다.
“왜. 뭐 하나 잃고 시작할까?” “…아닙니다. 가자.”
남자가 앞장섰다. 그 뒤를 레인저와 네비게이터가 뒤따랐다.
은하는 남자들이 수풀 속으로 사라졌을 때에야 걸음을 옮겼다.
오연정이 제대로 따라오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도망치는 순간,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몰아붙일 거니까.
애초 그녀는 그로부터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도망치지 못했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그가 몬스터 떼들을, 심지어 그림자거미를 상대로 보여준 전투를 보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산길을 오르는 플레이어들은 그를 몬스터보다 더한 괴물로 여기고 있었다.
“…얼마나 끌어들인 거야.”
정상이 머지않았을 때였다.
바위 위로 올라온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오연정이 흘리는 마나를 감지하고 뒤따라오는 몬스터들이 끊이지 않았다.
새벽호텔을 공포로 물들인 위협은 이제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그 위협이 자신에게 향하기는 했어도.
은하는 포션을 들이켰다. 포션 한 정으로 체력과 마나를 회복한 그는 냉정하게 전황을 분석했다.
그의 힘으로는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모두 쓰러뜨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춘천시의 클랜이 도착하기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다.
쓰러뜨릴 수도 없다.
기다릴 수도 없다.
남아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왜, 왜요?“
은하는 뒤따라오던 오연정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저 앞을 나아가는 남자들에게 눈을 돌렸다.
사람으로서 할 도리는 못 되지만….
나는 할 수 있다.
은하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떠올리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보름달처럼 커다란 눈이 두 개.
거대한 원숭이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끼끼끼우끼이이이
제6위계 스티지아이 글룸.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성가신 적이라 할 수 있는 녀석이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이 도래했고, 인간의 불안을 가증시키는 공포가 내려앉았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