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32
도와줘
살려줘
구해줘
지옥이었다. 그곳은.
무엇이든 집어삼킬 것처럼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겁화.
무너지는 지반, 붕괴하는 다리.
하늘은 치솟는 불길과 연기로 뒤덮이고, 들끓는 불길 속에서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일렁이는 열기 속에서 안광을 빛내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눈빛은 분명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떡해요. 우리도 내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도 얼른 내리자.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있던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녀석으로부터 눈길을 돌릴 수 없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포를 절감한 몸은 눈물도 나올 새 없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은하야. 은하야, 얼른 나가자.
괜찮아. 아빠가 저딴 놈들…, 다 쫓아버릴 테니까 걱정….
그 때, 시야가 반전했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바로 정면에 있던 녀석이 수면 아래에서 꺼낸 다리를 채찍처럼 내리친 것이다.
지반이 무너졌다.
떨어지는 잔해를 삼키는 수면이 탐욕적으로 솟구쳐 오르고, 초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빙그르르 돌았다.
이윽고 돌변한 세계는 거품이 몰아치는 세계.
사람들의 절규와 가족들의 비명만이 들리는 물속에서 올려다본 세계는 빌어먹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불길이 번지는 수면, 부글부글 치솟는 거품과 사람들의 절규로 이루어진 심포니.
그리고 듣고 싶지 않은 음악 속에서 또랑또랑 울린 소리가─.
괜찮아 은하야.
누나가 지켜줄게.
어느덧 백색으로 물든 세상.
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강물을 떠다니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나도.
…거짓, 말…이야.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
희미해져 가는 의식 너머로 어렴풋이 보였던 것은 자신으로부터 모든 것을 앗아간 크라켄이었다.
넘고 싶어도 넘을 수 없었던 벽이자, 트라우마가 되어 공포를 떠올리게 하는─.
“─웃기지 마.”
낯설면서도 익숙한 감각이 정신을 일깨웠다.
물속에서 들어 올린 팔을,
“내가 꺾일 것 같아?”
녀석을 향해 내리쳤다.
우끼에에에에
☆
제6위계 몬스터 스티지아이 글룸.
녀석의 무서움은 어둠에 동화해서 형체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에 있다.
녀석은 스스로의 몸집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었다. 공격을 받을 때는 몸집을 줄이고, 공격을 할 때는 몸집을 부풀리고는 했다.
그래서 녀석의 몸뚱이를 공격하려 하다 보면 무엇과 싸우는지 알 수 없어질 때가 있다.
마치 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와 싸우는 것처럼.
무서워하는 만큼 커지고, 무서워하지 않는 만큼 작아지는 것처럼.
유일하게 형체를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은 보름달처럼 크고 둥근 눈동자였다.
녀석을 공략하는 방법 역시 어둠 속에서 존재를 특정할 수 있는 눈동자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녀석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자신 안에 잠재한 공포를 마주하게 된다.
“싫어. 이건 아니야. 아니야아니야아니라고. 잘못했어요. 다 갚았잖아요. 이 이상 더 뭘 하라는 거예요. 부탁이에요. 문 좀 열어주세요, 나 여기 있기 싫단 말이에요. 무서워요. 제발제발제발 열어주세요. 무서워무서워무서워오지마제발! 이자까지 쳐서 다 갚을 테니까,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 “안 돼!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씨발! 내가 안 죽였다는데 자꾸 왜 나한테 지랄이야!”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다고! 왜 나만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건데! 왜, 왜 하필이면 우리 가족이냐고!”
“혀, 형…. 정신 좀 차려봐. 포션 가져왔다니까? 왜 못 마셔, 좀 마시란 말이야. 죽고 싶어? 아니아니아니지, 죽으면 안 돼. 내가 농담한 거야. 그러니까 죽지 마. 제발 부탁이야 나만 두고 가지 마. 형까지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이런 식으로.
마나에 대한 저항을 높이더라도 녀석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싸우다 보면 어느 순간 공포에 잠식당하고 만다.
우끼끼끼끼
바람이 불었다.
스산한 소리가 수풀을 흔들고, 머리 위에서 노란 눈동자가 번뜩이고 있었다.
위험할 뻔했어.
은하는 녀석이 어둠 속에서 눈을 뜨는 순간, 재빨리 달려 나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처음 녀석이 나타났을 때, 복면을 쓴 플레이어 한 명이 마나 저항도 하지 못하고 녀석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말았다.
남아 있던 인원으로 파티를 급조해 녀석을 견제했지만, 은하를 제외한 이들이 하나둘 공포에 잠식당하고 말았다.
그러다 그 역시, 마나를 제법 소모한 순간 녀석이 보여주는 환상에 말려들었다.
“넌 진짜 곱게 죽을 생각 마라.”
일점돌파
벽면보행으로 나무기둥을 차고 올라가서는 두 손으로 레이피어를 쥐었다.
칼끝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친 바람이 거대한 드릴이 되어 그를 감쌌다.
발을 박찼다. 사선으로 뛰어오른 그가 허공을 향해 레이피어를 찔렀다.
칼끝이 녀석의 방벽을 깨뜨렸다.
일순 커다란 눈동자가 흔들렸다.
“칫.”
머리 위에서부터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마법을 해제한 그가 방벽을 두르고, 몸을 틀어 반대방향으로 회전했다.
미침
레이피어에 잔재해 있던 마나를 머리 위에서부터 덮쳐드는 무언가를 향해 흩뿌렸다.
가느다란 침은 별 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다.
은하는 그대로 방벽 채로 떨어졌다.
충격을 모두 상쇄할 수 없었다.
바닥을 굴러 몸을 일으킨 그가 머리를 들어올렸다.
눈동자가 있었던 위치가 바뀌었다.
노란 눈을 마주하자, 눈살을 찌푸렸다.
한순간 몸이 흔들렸다.
정신을 잃을 뻔했다.
이름 모를 기프트가 발동하지 않았더라면.
“…성가신 놈이네.”
제6위계 몬스터는 혼자서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다.
특히 스티지아이 글룸은 빛이 존재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제5위계에 버금가는 위협이 되는 몬스터였다.
회귀 전이었다면 모를까, 어린아이에 불과한 그가 혼자서 물리칠 수 있는 몬스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급조한 파티원들은 지금도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저들을 깨우는 일은 간단해도, 녀석을 보고 다시 정신을 잃어서야 깨우는 의미가 없었다.
한 명만 빼고.
“야. 일어나.”
은하는 사체업자에게 시달리는 악몽을 꾸고 있는 오연정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그녀에게 마나를 흘려보냈다.
신체는 자신의 마나가 아닌 마나를 받아들일 때에는 반사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스티지아이 글룸의 마법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타인의 마나를 주입해서 체내 마나를 교란시켜야 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마나 폭주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어, 어라? 여기는….” “일어났으면 나한테 버프 걸어주고, 네 동료들 데리고 어디 숨어 있어.” “네?”
“한 번 더 말해야 해?” “아, 아니요.”
악몽에서 깨어난 오연정은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이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에게 협력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버프를 부여한 뒤, 등을 돌려 냅다 도망쳤다.
동료들에 대한 정도 없었다.
은하는 주저하지 않고 도망치는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돌아오게 되어 있다.
“이, 이게 뭐야!”
스티지아이 글룸과 싸우느라 발이 묶였다.
새벽호텔로 들이닥쳤을 몬스터가 오연정의 마나에 홀려 당도했더라도 늦지 않은 시간이었다.
상황이 그만큼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스티지아이 글룸 하나를 상대하기도 벅찼다.
다른 몬스터들까지 상대해야 하니 손이 부족했다.
마나는 더더욱.
악몽에서 깨어나면서부터 이름 모를 기프트의 힘을 발현한 그는 얼마 남지 않은 마나를 확인하고 내심 초조해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공포를 조장하는 녀석에게 불안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보이는 순간, 공포에 집어삼켜진다.
이름 모를 기프트가 있다 하더라도, 기프트의 힘이 미치지 않을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야 했다.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했다.
은하는 탄환이 모두 떨어진 총을 버리고 핸드백을 뒤졌다.
정석훈의 포션은 진작 쓰고 난 뒤였다.
나머지는 아류작밖에 없었다. 효율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라도 마나를 회복해야 했다.
그래도 하나는 남겨둬야 했다.
녀석을 쓰러뜨리고, 산에서 탈출할 힘은 남겨둬야 하니까.
스킬 No. 001 바일런트 베놈(Violent Venom)
독성을 품은 마나가 검신을 검게 물들였다.
지면에서 뛰어오른 그는 은아가 공중에 발판을 만들었던 것처럼 지지대를 만들었다.
상상력이 약했다.
지지대가 흔들렸다.
상관없었다. 지지대가 사라지기 전에 뛰어올라, 나무기둥을 박차고, 다시금 지지대를 만들고 녀석을 향해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됐다.
바일런트 베놈은 통했다.
멈추지 않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피가 그 반증이었다.
보름달 같은 눈동자가 괴로움에 찌그러졌다.
녀석이 눈을 감고, 어둠이 찾아들었다.
마나 감지망을 전개했다.
위치는 알 수 있었지만, 몸집을 줄인 녀석을 포착해낼 수 없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녀석 역시 공격할 때에는 반드시 눈을 떠야 하니까.
그리고 그는 녀석의 눈을 마주하더라도 공포에 잠식당하지 않는다.
끼 끼끼 끼끼끼끼끼끼끼끼
녀석이 눈을 떴다.
은하는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녀석은 도마뱀의 왕이 남긴 마법을 저항하지 못했다.
문제는 독성이 약했다는 것.
이대로 두더라도 언젠가 독이 전신에 퍼져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자신이 힘이 다하기 전에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야 했다.
이대로 밀어붙여야 했다.
아니, 밀어붙인다.
다시금 검신을 검게 물들인 그가 달려 나갔다.
마나를 발했다. 남아 있는 마나로 최대한의 효율을 끄집어내기 위해 집중했다.
새까만 빛이라는, 역설적인 힘을 구현한 마법.
체내 마나가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가용할 수 있는 힘을 최대한으로 끄집어낸 그는 측면에서부터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뿌리쳤다.
검신에서 튄 마나가 몬스터들을 덮쳤다.
피를 토한 몬스터가 숨을 다하고, 그 피를 뒤집어쓴 몬스터가 다시금 중독되는 연쇄가 발생했다.
은하는 몬스터들이 숨을 다하는 전장을 일직선으로 뛰어나갔다.
레이피어를 쥔 손을 최대한으로 뒤로 뺐다.
천보
일점돌파
“큭…!”
몸은 앞으로 돌진하는데, 의식은 상황을 채 따라가지 못했다.
신체와 정신이 따로 놀았다.
체내 마나가 부족하니 마법도 불완전했다.
이를 악물었다.
거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
바로 그때, 녀석이 눈빛을 바꾸고 도망쳤다.
도중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순간 발목이 꺾였다.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인대가 늘어났는지, 방향을 트는 순간 고통이 새어나왔다.
천보 천보
일점돌파
검신에 담았던 마나를 빼돌렸다.
자연히 검신에 부여한 마법의 위력이 약해졌다.
나뭇가지 위로 뛰어오른 그가, 가늘게 뜬 눈으로 도망치는 녀석을 향해 떨어졌다.
“사람 참 성가시게 하고 있어.”
바일런트 베놈
녀석이 비명을 질렀다.
남아 있는 마나로 이끌어낸 독성이 녀석의 몸에 침투했다.
상처부위에서부터 피가 솟구치고, 녀석은 자신이 뿌린 피를 다시 뒤집어썼다.
피를 뒤집어쓴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
죽음이라는 결말만을 남겨둔 연쇄가 녀석에게서 일어났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녀석의 몸이 팽창해서 터지든가, 피를 모두 토하고 죽느냐 둘 중 하나뿐이었다.
☆
끝났다.
원숭이의 피를 뒤집어쓴 은하는 그제야 숨을 돌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몬스터들은 모두 숨이 끊겨 있었다.
바일런트 베놈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살아남은 몬스터는 한 마리도 없었다.
“…이 녀석들도 죽었네.”
은하는 바닥에 쓰러진 플레이어들 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스티지아이 글룸의 마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그들은 결국 바일런트 베놈에 당해 버린 것이다.
“이 녀석들이 있어야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데….”
다행히 대략적인 위치는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이 길이 보이는 끝에, 산골짜기 너머에서 몬스터들이 움직이고 있으리라.
그쯤에서 마나를 회복하고 감지망을 전개하면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오연정만 있으면….”
은하는 오연정의 생사를 확인했다. A급 서포터라면 방벽을 전개해 자신 하나만은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연정은 근처 수풀에 숨어 있었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어?”
“뒤, 뒤요…!”
은하가 대뜸 비웃었다.
그런데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던 그녀가 연신 고개를 저었다. 손가락을 들어, 그의 어깨너머를 가리켰다.
어째 좀 불안하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
끼이이이이이이이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거대한 원숭이.
나무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스티지아이 글룸이 그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아직도 죽지 않았다고?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독액을 뒤집어쓴 녀석이 살아있을 수 없었다.
그는 싸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녀석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녀석은 이미 죽어 있었다.
단지, 그를 죽이겠다는 일념이 몸을 움직이고 있을 뿐.
독은 전신을 잠식했다.
남은 것은 조직을 구성하던 마나가 흩어지며 사라지는 일뿐.
징한 놈.
포션을 마실 시간이 없었다.
기프트를 해제한 나머지 신체능력은 급격히 저하했고, 마나가 부족해서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뛸 힘도 없었다. 남아 있는 힘으로 뛰어봤자,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손목에 깔릴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젠장.
바일런트 베놈에 의해 부패한 신체가 투둑투둑 떨어져 내렸다.
떨어져나가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조직이 잘게 부서져서는, 파도가 되어 덮쳐오기 시작한 것이다.
안 돼. 여기서 휩쓸렸다가는….
산 아래에서 몬스터들이 올라오고 있다.
파도에 휩쓸렸다가는 산 아래로 흘러가,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이고 말 것이다.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오연정!!”
은하는 등 뒤에 있을 오연정을 불렀다.
그녀가 방벽을 전개한다면 파도 따위야 막아낼 수 있을 터.
“─꼴좋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이미 자신을 중심으로 방벽을 전개한 상태였다.
그녀가 방벽 속에서 만면의 미소를 지었다.
─온다!
별 수 없이 이를 악물었다.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려 머리를 막고, 어떻게든 남아 있는 마나로 방벽을 전개하려 발악했다.
체외로 흘러나온 마나는 얼개를 만들기도 전에 공기 중에 흩어졌다.
마나가 부족했다.
황급히 핸드백을 뒤졌다.
마나회복 포션을 찾아야 했다.
나와라, 나와라!
머리 위로 우수수 떨어지는 사체.
눈앞을 칠하는 피바다.
비린내가 바로 가까이에서 감돌고, 수위가 머리 위까지 낮아졌다.
어디에 있는 거야!
이윽고 파도가 일대를 집어삼켰다.
은하는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눈앞이 새하얗게 번졌다.
☆
“─어?”
시간이 지나도 충격이 일지 않았다.
파도에 휩쓸리는 순간,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던 은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이게, 뭐야.”
자신을 중심으로 전개된 보호마법.
어둠 속에서 피어오른 꽃잎은 나팔꽃의 형상을 띈 채로 그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덧 몬스터의 잔해로 이루어진 파도가 마나가 되어 사라졌을 때, 공중에 핀 꽃잎은 빛을 잃고 희미해졌다.
이윽고 꽃잎이 사라진 자리에, 새하얀 손수건이 너울거렸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