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37
10월, 그날이 머지않았다.
종로구에 위치한 한국마나관리기구.
청사는 이 일어났던 시기, 황색던전(Yellow Dungeon)으로 변모했던 서울시청 본관을 덕수궁의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리모델링한 건물이었다.
청사 5층 공용회의실.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는데에도 범상치 않은 마나를 품은 플레이어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공용회의실에 모인 이들은 마나관리기구에서 중추를 담당하는 사람들과 십이좌, 신년도에 S등급을 받은 클랜의 클랜로드와 A등급을 받은 단군클랜의 클랜로드, 마지막으로 중소규모 플레이어 연합의 대표자들이었다.
“─지금부터 의정부 탈환전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중순에 있을 의정부 탈환전에서 지휘권한을 가진 자들이었다.
물론 이들 모두가 대등한 권한을 가진 것은 아니다.
공용회의실은 지휘권한을 가진 이들을 세 부류로 나누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선, 스크린 가까이에 양 옆으로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도록 준비된 테이블.
그리고 스크린을 등진 채, 좌우 열두 명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 하나.
스크린을 등진 자리는 의정부 탈환전에서 가장 높은 지휘권한을 가진 선녀 임가을의 자리였다.
현재 그녀는 다른 회의가 있는 관계로 의정부 탈환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실상 의정부 탈환전을 기획하고 지휘하는 이들은 십이좌들이었다.
물론 십이좌 전원이 참석하지는 않았다.
십이좌 남궁성운은 제2위계 오버랭크 레비아탄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왼팔을 잃고, 청주에서 요양 중이었다.
사실상 은퇴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는 그가 아직도 열두 개의 좌 중 하나를 차지하는 이유는 의정부 탈환에 대한 여론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십이좌 윤성진 또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홀로 서울 전역에 녹아든 마나의 흐름을 살펴야 할 그는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청사 최상층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십이좌 손지희는 의정부를 감시하는 중이었다.
“탈환대는 도봉산역에서부터 출발하여 구 외곽순환도로에 진입, 그대로 장암대교를 지나 평화로가 겹쳐지는 구간에서 두 부대로 갈라질 계획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를 포함해, 공용회의실 중앙에 앉은 사람들은 마나관리기구의 관료들이었다.
두 번째로 지휘권한이 높은 이들이었지만, 대다수의 역할이 행정과 보급에 치중해 있었다.
직접적으로 탈환전에 참여하지 않는 그들이 부대를 지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실질적인 지휘권한을 가진 이들은 전황을 직접 지휘하고, 부대 소속 클랜을 관리하는 자들이었다.
말석에 자리 잡은 그들은 브리핑을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여기서 A부대는 평화로 호원고가교를 지나 의정부시청을 점령합니다. B부대는 의정부역으로 향하며 몬스터들을 토벌합니다.
이를 통해 A부대와 B부대가 양방향에서 의정부시청을 압박하게 됩니다.
A부대의 역할은 탈환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첫 쐐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B부대는 망월교, 구 1호선이 통과했던 노선을 지나 회룡역에 진입합니다. 여기서 B부대를 B, C, D, E 네 부대로 나눕니다.”
클랜로드들은 정보국장이 브리핑하는 의정부 지도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부대 편성과 부대에 속한 클랜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그들은 모두 생각에 잠겨 있었다.
과연 어느 팀을 선택해야,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한의 이익을 거둘 수 있을지.
A부대는 위험부담이 컸다.
A부대의 역할은 보급도 없는 상태에서 적의 중심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A부대가 가장 많은 인원을 할당받았다고는 하나, 가장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바는 변하지 않았다.
클랜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 자리에서 A부대를 지원하려는 이는 없을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A가 재미있겠네.”
클랜로드들은 바로 근처에서 들린 소리에 서로의 귀를 의심했다.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주었다.
알사탕을 까득 깨문 남자는 블레이즈클랜의 서브로드였다.
싸움에 미친 놈들.
속으로 혀를 내두른 클랜로드들은 저편에 앉아 있는 십이좌 강현철을 힐끗거렸다.
붉은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쓸어 올린 그는,
“A 그거 우리가 먹는다. 내가 못 먹으면 가만 안 둬.”
역시 블레이즈클랜이었다.
창설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았건만,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임무를 주로 완수해서는 S-등급을 받은 클랜.
이 자리에 모인 클랜로드들은 미치광이들이 모인 클랜이 위험을 지겠다는 모습에 일단 한시름 놓았다.
A부대는 아직 한 자리가 더 비어 있었지만.
“B부대는 회룡역에서 진지를 구축합니다.
회룡역은 의정부 탈환전의 최후방이며, 보급의 거점지로 사용될 계획입니다.
따라서 문준 장관님께서 보급을 담당하고 최후방을 지켜야 할 B부대를 총괄지휘하실 겁니다.”
보급의 거점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전투에서 보급은 중요하다.
대한민국에 살아있는 신화라 불리는 문준이라면 최후방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역할은 중요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클랜로드들은 B부대를 담당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의정부는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몬스터라는 위험변수를 제거하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인을 잃은 보물이 탈환대를 반길 것이다.
공로를 세우면 세울수록, 주인 없는 땅을 차지하는 것에 대한 우선순위도 높을 수밖에 없었다.
정재계가, 여타 클랜이 의정부 탈환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보급기지를 지키는 역할은 클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몰라도, 최대한의 이익은 거두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A부대를 자처하는 블레이즈클랜은 의정부시청 일대의 재화를 차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셈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모두가 그만한 하이 리스크는 피하고 싶었지만.
“C부대는 의정부시청으로 진입해 A부대를 도와 잔당을 소탕합니다. D부대는 회룡역에서 장암동 구간으로 방향을 틀면서, 경기북부청사로 올라갑니다.
D부대는 경기북부청사 일대를 파악하고, 전열이 갖추어지는 대로 경기북부청사 공략을 시작합니다.
E부대는 의정부역으로 올라가 팀을 다시 E, F로 나눕니다. E부대는 의정부역을 제2 보급기지로 구축, F부대는 보급물품을 내려놓은 뒤 D부대를 돕기 위해 경기북부청사로 향합니다.
그리고 D부대와 F부대가 경기북부청사를 공략하는 순간, 탈환전은 마침표를 찍습니다.”
의정부 탈환전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지닌 D부대가 A부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은 이유는 경기북부청사의 특성에 있었다.
정기보고에 따르면, 경기북부청사는 적색던전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몬스터들이 적색던전에서 나올 일은 없을 터이니, 시간을 넉넉히 두고 던전을 공략하면 될 일이었다.
“그럼 질문이 있으신 분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브리핑이 끝났다.
사전에 내용을 확인했던 클랜로드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자료집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제는 전략을 확인할 때가 아니라, 탈환전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을지를 따져야 할 때였다.
“명왕 클랜로드 도완준입니다.”
“네, 말씀해주십시오.”
클랜로드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는 가운데,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든 이는 명왕 클랜로드 도완준이었다.
그리고 저 너머에서 그를 바라보는 여성은 마찬가지로 명왕클랜 소속이자, 열두 개의 좌 중 하나를 차지하는 방연지.
그녀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의정부 일대에 깔린 마나로 인해 통신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텔레파시스트들이 부대 간 통신을 연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네, 질문 잘 들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현재 의정부 일대에는 짙은 마나가 깔려 있습니다.
작전을 수행하는 도중에 통신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감시국에서는 회룡역에서부터 일정거리마다 중계지점을 설치하여, 텔레파시스트들이 먼 거리까지 연락할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통제국장님은 탈환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겁니까.”
손을 든 이는 삼백안을 뜬 여성이었다.
템페스트클랜의 서브로드 강예희. 클랜로드이자, 십이좌 신명환을 대신해 참석한 그녀가 나비안경을 들어올렸다.
“아…, 네. 답변드리겠습니다.”
정보국장은 싸늘한 얼굴로 묻는 그녀를 보고 말을 더듬었다.
“오건후 국장님께서는 메인 텔레파시스트로서 의정부 일대를 활공하며 이상징후와 작전상황을 중계지점에 전달할 것입니다.”
정보국장의 말에 오건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십이좌에서 유일한 텔레파시스트인 그는 조류형 아인으로서의 힘을 발휘해 의정부 전체를 관측할 계획이었다.
“질문 있습니다.”
“네, 신라 클랜로드 말씀해주십시오.”
어깨에 가죽재킷을 걸친 여성, 신라 클랜로드 김유진이 손을 들었다.
현 시점에서 S+등급을 받은 세 클랜 중 하나에 속하는 신라클랜.
하지만 이병인이 일으킨 테러로 인해 내년도에 S등급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클랜이었다.
그런 그녀가 손을 들었으니, 사람들의 악의와 호기심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정보국장을 향해 물었다.
“현재 의정부를 점령한 몬스터 중, 제4위계 이상에 속하는 몬스터는 얼마나 되죠?”
사람들이 모두 시선을 바꾸었다.
자료집에는 몬스터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았다.
의정부시청을 지배하는 몬스터도, 경기북부청사의 보스 몬스터에 대한 정보도 베일에 감싸인 채였다.
“…현재로서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의정부에 파견된 플레이어들의 정기 보고서로 추정컨대, 제4위계 이상 해당하는 몬스터가 20여체 이상 있을 거라 보고 있습니다.”
“제3위계는요?”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모두 3체입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브리핑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 숨을 삼켰다.
인류번영에 위협이 되는 힘을 지닌 몬스터가 20여체 이상.
그리고 재해·재난에 준하는 몬스터가 최소 3체 이상.
당시, 서울을 멸망시켰던 재앙에 준하는 수가 의정부에 모여 있었다.
그때 이후 플레이어들이 질적인 성장을 거두고, 디바이스와 포션의 발달이 있었다고는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기는 매 한가지였다.
“질문 있습니다. 레귤러스 클랜로드 구연수입니다.”
위험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실감이 들었다.
의정부에 얼마나 위험한 몬스터들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을 띄우는 가운데, 구연수가 가느다란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십이좌는 탈환전에 어느 정도 참전할 계획입니까?”
십이좌는 국가를 수호하는 자들이었다.
제각기 역할이 정해진 그들이 의정부를 탈환하겠다며 전원이 서울을 떠날 수는 없었다.
잘못했다가는 혼란이 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윤성진이 의정부 탈환전에 네비게이터로서 참전했다가는 서울 전역에서 일어나는 마나편재를 감시할 수 없었다.
플레이어 라이브러리(Player Library)도 열람할 수 없을 것이다.
“─참전하는 십이좌는─”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한국마나관리기구 장관이자, 십이좌 필두 문준.
거대한 산이 좌중을 내려다보았다.
“십이좌 신서영 플레이어.”
“네.”
창해클랜 서브로드이자, 십이좌 신서영이 답했다.
“십이좌 신명환 플레이어.”
템페스트클랜 클랜로드이자, 십이좌 신명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십이좌 방연지 플레이어.”
“네.”
명왕클랜 서브로드이자, 십이좌 방연지가 답했다.
“십이좌 오건후 플레이어.”
한국마나관리기구 통제국장이자, 십이좌 오건후가 눈을 감았다.
“십이좌 손지희 플레이어.” “십이좌 이도진 플레이어.”
“십이좌 강현철 플레이어.”
“십이좌 박혜림 플레이어.”
“마지막으로─.”
플레이어들은 십이좌의 이름이 연이어 호명될 때마다 흠칫했다.
움직일 수 있는 십이좌는 모두 이름이 거론되었다.
극히 최소한의 전력을 남겨두고서라도, 의정부를 탈환하겠다는 선녀정부의 기세를 알 수 있었다.
“─나, 십이좌 문준. 이상 아홉 명이 참전한다.”
의정부 탈환전에 참전하는 아홉 명의 십이좌.
그들은 제각기 분야에서 최고라고 정평이 난 플레이어들이었다.
비록 최강은 아닐지라도,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이들과 유력 클랜이 힘을 합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의정부를 점령하고 있을 고위계 몬스터를 토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 그럼, 이제부터 부대 편성에 관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질문이 있으신 분은….”
질문도 얼추 끝났다.
정보국장은 다음 회의로 넘어가려 했다.
그때,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남자가 손을 들었다.
반짝이는 반지를 여러 개 낀 남자의 이름은 길성준.
창해 클랜로드였다.
“네, 창해 클랜로드. 무슨 일이시죠?” “우리가 합니다.”
“네?”
정보국장이 목적어를 뺀 말을 듣고 되물었다.
스크린 가까이에 있던 신서영 역시 그가 갑자기 말을 꺼낼 줄은 몰랐는지 입을 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 길성준이 말을 이었다.
“경기북부청사 공략, 창해클랜에서 하겠습니다.”
클랜로드들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
회의는 훈훈한 분위기로 끝나지 않았다.
회의주제가 부대 편성이라 좋게 끝나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었지만, 전력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마나를 발현하고 전투를 벌이려는 형국이 닥치기까지 했다.
제때에 선녀 임가을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창해클랜과 신라클랜의 기 싸움이 클랜전으로 발발했을 수도 있었다.
“하아.”
신서영은 청사를 나오자마자 대뜸 한숨을 쉬었다.
회의가 끝난 뒤로, 선녀정부와 십이좌를 중심으로 회의가 한 차례 더 있었다.
마지막 회의까지 마친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기가 빨리는 기분이었다.
“…잘할 수, 있을까.”
국가를 수호하는 검인 그녀는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자신이 과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정확히 말하면, 거기서 자신과 길성준이 마찰을 일으키지 않을지.
그것이 너무 불안했다.
마치 그녀의 마음에 호응하듯, 고층빌딩 사이로 불어온 바람이 불안하게 떨고 있었다.
위잉 위잉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바람이 우는 것처럼.
바람은 그저 불뿐이건만.
“아무도 죽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루어질 리 없는 소망.
그녀가 고층빌딩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어?”
스마트폰이 진동한 것은 그때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스마트폰을 꺼낸 그녀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은아라면 지금 아카데미에 있을 테고…, 얘가 또 왜 전화했지?”
어째 좀 불안했다.
아니, 심각하게.
리라이프 플레이어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