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39
한국마나관리기구 청사 앞.
기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은 모두 청사입구만을 바라보았다.
기다리기 벅찬 시간이었다.
어서 이 기쁨을, 이 희망을 알리고 싶었다.
의정부 탈환전, 역사의 한 획을 그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을 작전.
기자란 객관성과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직업이라지만, 그들 역시 사람이었다. 희망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S등급을 받은 일곱 개의 클랜을 필두로 A, B, C등급에 해당하는 클랜이 참전한다.
명망 있는 플레이어들도 대다수가 참전의사를 표했고, 재계에서는 의정부 탈환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온다!”
누군가 소리쳤다.
기자들은 무언가에 취한 것처럼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다.
그야 그럴 수밖에.
십이좌가 무려 아홉 명이나 참전하는, 이후 유래 없는 대규모 작전이었다.
제각기 부여받은 임무로 인하여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이 드문 그들이 참전하는 것이다.
의정부를 탈환하기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쪽을 봐주십시오!”
청사를 나온 아홉 명의 플레이어들은 카메라 플래시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떤 이는 대규모 작전을 벌이는 데에도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들이 차에 올라타자, 기자들이 발 빠르게 준비하고 있던 차에 타며 액셀을 밟았다.
탈환전에 참전하는 플레이어들은 광화문에서 탈환식을 거행한다.
탈환식에서 십이좌의 역할은 사람들의 마음을 고취시키는 일이었다.
기자들은 십이좌들이 탄 차를 따라가며, 광화문으로 들어섰다.
아침인데도 광화문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둘러싼 원 안에는 장엄한 기운을 내뿜는 플레이어들이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던 단상으로 올라간 십이좌 필두 문준.
머리가 샌 노인은 세상이 한 번 멸망했을 때의 이야기를 꺼내며, 플레이어들의 투지를 태우게 하는 연설을 했다.
“─따라서,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의정부를 탈환한다.”
문준을 시작으로, 단상 아래에 있던 십이좌들이 잔을 들었다.
참전하는 플레이어들 역시 준비된 잔을 들어 올렸다.
“돌아와서, 거하게 마실 수 있도록.”
플레이어들이 피식 웃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잔.
탈환대는 조그마한 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삼켰다.
☆
광화문에서 탈환식을 마친 플레이어들은 탈환전이 시작되는 도봉역에 도착했다.
이 역시 기자들이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플래시에 질린 기색을 드러냈다.
이내 표정을 바꾸고 눈앞에 드리운 장벽을 바라보았지만.
.
당시 몬스터의 존재가 명확히 확립되지 않았던 대한민국은 전체인구의 3할을 잃고, 국토의 절반가량을 빼앗기는 비극을 맞았다.
인류는 너무나 무력했다.
사람들은 눈앞에서 터진 재앙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때로는 비극적인 선택을, 때로는 비인도적인 선택을 내렸다.
눈앞에 존재하는 장벽은 절망과 무력감을 절감했던 인류가 쌓아올린, 금방이라도 무너질 모래성 같은 희망이었다.
장벽은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류는 장벽을 쌓아올리기를 멈추지 않았고, 지금에 이르러 고개를 들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높이에 이르렀다.
사상누각 같은 희망이었지만, 다행히 몬스터가 의정부에서부터 몰려 내려오는 일은 없었다.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플레이어들은 빠르게 대열을 갖췄다.
선두를 걸어가던 십이좌들도 제각기 소속된 클랜으로 이동했다.
선두에 남은 십이좌는 어느 클랜에도 속하지 않고 마나관리기구에 속해 있던 문준과 오건후였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흠.”
오건후가 마나를 발현했다. 어깻죽지에 붙어 있던 조그마한 날개가 원래의 크기를 되찾고, 날개를 활짝 펼쳤다.
오건후는 플레이어들의 시선을 받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장벽 위로 날아올랐다.
이제 그는 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의정부 일대를 날아다니며, 탈환대의 눈이 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전원 전투 준비.”
무겁게 깔린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곳곳에서 눈이 부신 빛이 터졌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가루가 떨어지고, 전신을 감도는 바람이 지나갔다.
보조·강화마법을 받은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마나를 발현했다.
이윽고 경례를 올린 문지기들이 육중한 철문을 움직였다.
“선두는 제니스클랜.”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였다.
십이좌들이 물러나면서 선두를 맡은 클랜은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클랜인 제니스였다.
제니스 클랜로드 지용현이 검을 빼들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친 일격이 붉은빛을 발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선로 위로 모습을 드러냈던 몬스터들이 잘게 찢어졌다.
그를 시작으로 플레이어들이 선로를 달리며 몬스터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마법을 쏘았다.
목숨을 잃고 쓰러지는 플레이어들보다, 습격을 당하고 쓰러지는 몬스터들의 수가 더 많았다.
선로 주변을 다니던 몬스터들의 위계는 평균 제7위계.
탈환대가 상대하지 못할 위계가 아니었다.
“─여기인가.”
선로가 몬스터들의 피와 사체로 뒤덮였을 무렵.
탈환대는 어느새 구 외곽순환도로와 선로가 겹치는 부근까지 당도해 있었다.
얼굴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아낸 신명환은 머리 위를 지나는 구 외곽순환도로를 올려다보았다.
감지망을 전개하니, 저 위에도 몬스터들이 숱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자라라. 드높이.
마나가 깃든 목소리.
신명환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다.
방연지.
그녀의 마나가 자갈 사이에 고개를 내민 싹에 내려앉자, 싹들이 무서운 기세로 자라기 시작했다.
기둥을 옭아매고 자란 줄기가 거대한 잎을 돋아내고, 구 외곽순환도로까지 자라났다.
이어서 구 외곽순환도로에서 불꽃이 터졌다.
이 역시 누구일지 뻔했다.
성질 급한 가 그 새를 못 참고 자력으로 뛰어올라,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질 수 없지.”
사기는 최고조였다.
신서영이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줄기가 당도한 부근의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흐린 하늘 아래 박혜림이 발하는 빛이 눈부시게 빛났다.
신명환 역시 마찬가지.
장전을 마친 그가 템페스트클랜을 이끌고 도로를 점령한 몬스터들의 숨통을 끊었다.
잠시 후, 부근을 점령했던 몬스터들을 모두 섬멸한 탈환대는 잠시 휴식을 가졌다.
탈환대에 대한 지휘권한을 가진 이들은 회의를 가졌지만.
“여기서부터 탈환대를 A부대와 B부대로 나눠야 합니다.”
마나관리기구의 네비게이터가 말했다.
정보국에서 국장 다음의 직위를 가진 그녀가 지도를 펼쳐들며 현재 위치를 가리켰다.
A부대와 B부대는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한 뒤, A부대는 이대로 구 외곽순환도로를 따라 의정부시청을 공략하고, B부대는 선로를 따라 회룡역까지 진입한다.
여기서 의정부시청을 탈환하는 역할을 맡은 클랜은─.
“─이제야 좀 싸워볼만 하겠네.”
강현철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블레이즈 클랜로드. 흥분해서 너무 앞서나가지만 않으면 좋겠군.”
그리고 싸움에 미친 그와 사선을 넘어야 하는 도완준은 한숨을 쉬었다.
A부대는 블레이즈클랜과 명왕클랜, 그리고 두 클랜이 지휘권한을 가진 클랜들이었다.
☆
의정부시청.
그곳을 지배하는 몬스터는 제4위계 라이거 스왈로워(Liger swallower).
사자와도 같은 갈기와, 호랑이와 같은 무늬를 지닌 몬스터였다.
“거 되게 힘드네. 몬스터가 뭐 이리 많이 달려들어?”
시청 꼭대기에서 단잠을 방해받은 괴물은 불쾌한 시선으로 문을 차고 들어온 남자를 쳐다보았다.
머리를 붉게 염색한 남자, 강현철은 저 홀로 고고한 왕처럼 앞발을 모으고 단잠을 자고 있던 녀석을 보고 코웃음 쳤다.
“그래도 너 꽤…, 재미있을 것 같단 말이지.”
최상층이 열기로 뒤덮인 것은 그때였다.
그의 등 뒤에서부터 솟구친 불길이 일대를 빙 둘러 돔 형태를 만드는 가 싶더니, 살아있는 생물처럼 녀석에게 쇄도했다.
“폭(暴).”
일제히 폭발하는 불길.
맹수의 울음소리는 열화가 되어 겹겹이 쌓이는 불꽃에 파묻혔다.
제4위계가 이 정도로 소멸할 리가 없었다.
화염의 장막
비사치기
마탄 연사
녀석이 불길을 헤쳐 나오기 전, 돌입한 플레이어들이 원거리 공격을 가했다.
격렬한 폭발음이 쉬지 않고 터지고, 최상층이 흔들리며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도 플레이어들은 당황하지 않고 불길 너머에 있을 녀석을 공격했다.
“블레이즈 클랜로드.” “나도 압니다.”
차츰 불길이 꺼져가고, 날개를 펼친 맹수의 실루엣이 스쳐지나갔다.
사격대를 지휘하던 도완준이 신호를 내렸다.
대검을 고쳐 잡은 현철이 탄환이 빗발치는 공간으로 뛰어든 것은 거의 동시.
멋진 사나이 1절을 시작한다!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 지만~
바로! 내가
~
블레이즈클랜의 가디언들이 합을 모아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그를 향해 보조마법을 영창했다.
우렁찬 노랫소리가 최상층을 채우는 가운데, 정열적인 기운이 그를 둘러쌌다.
“노래 하나 기차게 좋고.”
탄환이 그를 꿰뚫는 일은 없었다.
서포터들이 부여했던 보조마법이 탄환으로부터의 충격을 흡수하고, 가디언들이 영창하는 마법이 탄환의 궤도를 흘려보냈다.
마나가 깃든 노랫말이 일대를 둘러쌀수록, 그를 지키는 힘은 더욱 굳건해졌다.
크르아아아
별안간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몸을 웅크린 채 감내하던 녀석이 뛰쳐나왔다.
살기를 띤 눈빛은 정확히 그를 주시하고, 날개를 펼쳐 그의 손목을 쳐냈다.
녀석은 대검이 치켜 올라간 사이를 놓치지 않고 품속으로 파고들어, 마나로 검게 물든 어금니로 옆구리를 뜯어냈다.
뜯어낸 줄 알았다.
옆구리가 뜯겨나간 형체가 마치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더니 사라지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
아지랑이 스위치
명왕 클랜로드 도완준.
허상과 환상을 다루는데 능한 레인저가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어딜 봐? 나는 여기 있는데.”
녀석이 뒤늦게 몸을 돌렸다.
강현철은 옆구리를 뜯겨나가기 직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검을 들고 있었다.
“바이올렛 블레이즈.”
위에서 아래로 내려그은 공격.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서부터 공간이 갈라지는 것처럼, 틈새 사이로 자주색 불꽃이 솟아올랐다.
불꽃은 마치 배를 채우려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녀석의 온몸을 옭아맸다.
녀석이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녀석은 자주색 불길을 떨쳐낼 수 없었다.
바이올렛 블레이즈는 물리적인 힘으로는 떨쳐낼 수 없는, 마법으로만 대항할 수 있는 고등제어기술에 속하는 마법.
바닥을 굴러도 체내 마나를 공격하는 불꽃을 꺼트릴 수는 없었다.
락 온(Lock On)
원(One), 투(Two), 쓰리(Three)
파이어(Fire)!
캐스터들이 체내 마나를 회복하는 사이, 탄환을 재장전한 레인저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고막이 터질 것만 같은 소리가 쉬지 않고 녀석에게 날아들었다.
자주색 불꽃을 두른 녀석이 비틀거리며 일어났지만, 쏟아지는 탄환을 이겨내지 못하고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크르르릉
그러던 녀석이 돌변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온다. 방연지. 준비는 됐겠지?”
라이거 스왈로워는 제4위계 몬스터.
인류번영에 위협이 되는 몬스터가 고작 플레이어들의 공격에 대항도 하지 못할 리 없었다.
녀석은 제4위계에 걸맞은 위험을 지닌 몬스터다.
마음만 먹는다면, 온몸을 두른 불길과 쏟아지는 탄환을 막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크르르릉
장난은 끝났다는 듯이.
녀석이 떨쳐낼 수 없는 불꽃을 물어뜯었다.
자주색 불꽃이 물리공격을 피한 것은 한순간, 이윽고 마나에 물든 어금니에 꽂힌 채 나풀거렸다.
녀석이 불꽃을 삼켰다. 자주색 불꽃에 매달린 또 다른 불꽃이 입 안으로 들어갔고, 배를 한껏 부풀리는 것으로 넝쿨째 빨아들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녀석이 고개를 시계방향으로 흔들자, 쏟아지던 탄환이 깔대기에 걸린 것처럼 궤도를 바꿔서는 입안으로 사라졌다.
라이거 스왈로워.
녀석은 마나로 이루어진 형상을 흡수하여, 자신의 힘으로 부풀리는 능력을 지닌 몬스터였다.
크르르르르
앞발을 내딛은 녀석이 낮게 울었다. 두 날개를 활짝 펼쳐들고, 갈기를 세워 사격을 중단한 플레이어들을 바라보았다.
이것으로 끝났냐는 듯이.
소화한 마나로 몸집을 부풀린 녀석이 눈초리로 묻는 것 같았다.
[─끝났어요.]여성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목소리는 바닥에서부터 들려왔다.
어느새 최상층 바닥에 나뭇잎이 흩어져 있었다.
생생한 색을 품은 잎이 불에 타지도 않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바보 같이 처먹기는.”
입가에 실소를 머금은 도완준이 탄창을 갈아 끼웠다.
그 행동이 너무 여유로웠다.
열세인 상황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너무나 여유롭게, 그가 총구를 겨누며 신호했다.
“사격.”
어림없다.
라이거 스왈로워는 총탄을 흡수하기 위해 입을 벌리다 멈칫했다.
마나가 담겨 있지 않았다.
플레이어들이 발사한 탄환은 마나합금만으로 제조된 탄환이었다.
금속에 함유된 마나를 빨아들인다고 해봤자, 금속 자체를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신체가 붕괴하지 않을 정도로 약한 물리공격은 제4위계인 녀석에게 큰 타격이 되지 못했다.
그럴 줄 알았는데.
[씨앗 폭탄]나뭇잎에서부터 들려온 목소리.
여성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별안간 신체내부가 폭발했다.
뱃속에서부터 폭발이 이는 고통에 녀석이 찢어지는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그러게 주의해서 먹었어야지. 뭔지도 모르고 허겁지겁 먹으니까 탈나는 거 아니야.
씨를 먹으면 어떡하냐, 이 멍청아.”
거대한 검신이 머리를 강타했다.
마나를 담지 않은 검신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방벽을 쳐냈다.
“어디,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볼까?”
뱃속에서부터 일어난 폭발로 흡수한 마나를 모두 토한 라이거 스왈로워.
캐스터들이 밧줄을 매개로 구현한 포박마법으로 녀석을 붙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블레이즈 클랜원들이 히죽거리며 무기를 바꿔들었다.
“누가 내 몽둥이도 가져와라. 네가 어디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강현철.
그는 기프트 가 없어도 뛰어난 실력을 지닌 플레이어였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