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48
10월의 밤은 길다.
A부대가 의정부역 제2보급기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밤이 깊었을 때였다.
“부상자! 부상자는 이쪽으로 옮겨주세요!”
“네, 신곡교 방면에서 제8위계 시체쥐 출몰을 확인하였습니다. 확인된 개체는 30여체, 가까이 있는 클랜은….”
“네가 그놈 아니야! 아까부터 하는 짓이 수상하잖아!” “지금 말 다했어!?”
제2보급기지는 난장판이었다.
몬스터의 습격이 있었던 모양인지 장비와 보급품이 난잡하게 흩어져 있었다.
그 위를 병장기를 챙긴 플레이어들이 욕지거리를 내뱉고 지나가고, 한쪽에서는 서포터들이 부상자들을 치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 명왕 클랜로드!”
“A부대가 돌아왔어!”
넋이 나간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플레이어들은 복도를 걸어가던 강현철과 도완준을 환대했다.
하지만 두 사람 역시 컨디션이 최악이기 그지없었다.
방연지에게 괴시니의 군세를 막아달라고 부탁한 뒤, 강현철은 블레이즈클랜을 앞세워 길가를 가로막던 시체쥐들을 몰소했다.
극한상황에 몰릴 정도로 마나를 소모해버린 그는 몬스터들의 디버프를 완전히 뿌리칠 수 없었다.
그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몰려 있었다.
심신을 회복시키지 않고서야, 마나 저항력을 끌어올릴 수는 없었다.
“…….”
도완준 역시 마찬가지.
도중부터 정신을 놓고 몬스터란 몬스터를 죽이던 강현철을 대신해 부대를 지휘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게다가 그는 전장에 두고 온 방연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반갑네, 이렇게 보니. 얼굴을 오랫동안 못 본 느낌인걸.”
회의실은 깨진 창문에 신문지를 붙이고, 결계를 두른 게 다였다.
안으로 들어선 도완준은 상석에 앉아 있던 구연수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겨우 며칠 보지 않았을 뿐이거늘.
레귤러스 클랜로드 구연수를 보고 괜히 반가움이 들었다.
“…여어, 박혜림.”
“‘여어’가 아니잖아요! 지금 꼴이 그게 뭐예요!”
한계였다.
강현철은 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도완준의 어깨를 붙잡고 몸을 지탱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박혜림이 쓰러지다시피 도완준에게 매달린 강현철에게 다가갔다.
서포터인 그녀는 알 수 있었다.
현재 강현철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그녀는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바닥에 눕혔다.
푸른빛이 일렁이는 손이 그의 얼굴을 쓸어내리자, 낯빛이 조금씩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가 꽤 힘들었나 보군. 저 정도로 힘들어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피차일반이지.” “하긴…, 그런가. 그런데….”
구연수가 가느다란 눈을 뜨며 도완준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 챈 도완준이 입을 다문 채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가.”
E부대 지휘관들이 그 뜻을 파악하고 입을 다물었다.
십이좌 방연지는 여기에 없다.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내심 강현철과 방연지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의정부역 상황은?”
“최악 그 자체지. 시체쥐들을 처리한 덕에 간신히 숨을 틀 수 있는 시간은 만들었지만, 시내에는 여전히 고위계 몬스터가….”
“그 전에 말일세. 우리 상황을 알려주기 전에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는 거 아닌가?”
구연수와 도완준의 대화에 끼어든 사람은 심기가 불편한 티를 내고 있던 장봉전이었다.
단군 클랜로드 장봉전.
그가 간신처럼 양 옆으로 길게 자란 수염을 매만지며 A부대의 지휘관들을 노려보았다.
“자네들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의정부역에 인간을 사육하는 몬스터가 있다고 말이야.”
“…듣기는 했지.”
도완준이 떨떠름한 얼굴로 답했다.
그는 의정부시청을 정리하고 있을 때쯤, E부대가 텔레파시스트를 통해 알려준 정보를 떠올렸다.
주인님이라는 몬스터는 인간을 사육하고, 인간의 탈을 쓴 채 그들 사이에 녹아든 몬스터라고.
“지금 우리 중에 그 몬스터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건가?”
“당연하지. 내가 자네들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자네들 중에 녀석이 섞여들어 기지 내로 잠입했을 수도 있지 않나.”
“…….”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몬스터를 상대했을 플레이어들이 흥선동에서 후퇴해 기지 내로 들어온 A부대를 의심할 여지는 충분했다.
“…힘든데 미안해. 그 놈 때문에 E부대 피해가 말이 아니거든. 절차를 간추려서라도 A부대 검사를 자정까지 끝내볼게.”
“근데 그 놈을 파악하는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흥! 그건 걱정 말라고. 감지능력이 뛰어난 플레이어들이 녀석을 찾아다니고 있으니까.”
거만한 웃음을 흘리며 구연수 대신 대답하는 장봉전.
도완준은 재빨리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E부대 지휘관들이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장봉전이 무언가 문제를 일으킨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단군그룹과 외척관계에 놓인 클랜을 건드릴 수는 없으니 강하게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면 블레이즈클랜과 명왕클랜부터 체내 마나 검사를 진행하겠습니다. 그 이후에는 A부대 소속 클랜원들을 대상으로….” “명왕 클랜로드, . 당신들은 여기에 남아 있어. A부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들어야 하니까.”
“나는 상관없지만 블레이즈 클랜로드는 휴식을 취하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하는데.”
“하긴, 그러겠네. 헤림아, 를 안쪽 방으로….”
“…누구 멋대로 날 빼려 그래.”
“아! 치료 중이잖아요! 가만히 좀 있어 봐요 좀!”
문을 열고 들어온 네비게이터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두 손으로 종이컵을 감싼 도완준은 차갑게 식은 몸을 녹이는 기분에 안도했다.
그러다 방연지를 떠올리고 긴장이 풀리려던 마음을 되잡았다.
“흥선동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 점심때부터 복지리 방면에서 몬스터들이 내려오기 시작하더니….”
[의정부 탈환대 E부대 레귤러스 클랜 신시아 네비게이터의 전언을 전파합니다.현재 시각 23시 3분, 신곡동 방면에서 출몰한 제8위계 시체쥐의 수가 300여체에 이르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신곡동 방면에서부터 시작된 디버프 마법이 기지 방면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의정부역 곳곳에서 편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저, 레귤러스 클랜 네비게이터 신시아는 신곡동 방면에서 출몰한 시체쥐 300여체를 제5위계로 간주하며, 인근 지대에 위치한 플레이어는 시급히 시체쥐들을 토벌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아, 추가적으로 전파드립니다.
의정부 버스터미널 방면에서 제4위계 몬스터의 출몰이 확인되었습니다.
정보에 따르면 제4위계 몬스터는 고독자(蠱毒子)로, 쥐목 몬스터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과정에서 태어난 몬스터입니다.
근처에 있는 플레이어는 텔레파시를 받는 대로 고독자의 마법을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전파합니다. 현재 시각 23시 3분….]
“검사는 나중으로 미뤄야겠군.”
자리에서 일어난 플레이어들이 병장기를 챙겼다.
그들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겨우겨우 일대를 정리하고 숨을 돌리나 했더니, 몬스터들이 그럴 틈도 주지 않고 밀려들어오니 그럴 만도 했다.
“나도 갑니다.” “이 몸으로 어디를 간다는 말이에요!”
강현철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았다.
화들짝 놀란 박혜림이 그를 붙잡았다.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단시간에 씻어낼 수 없을 정도로 디버프의 흔적이 짙었고, 부상도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로 심했다.
절대적인 안정을 요하는 몸이었다.
“절대 안 돼요, 못 가요.
클랜로드, 이 사람은 지금 싸울 수 없는 몸이에요. 전선에 나갔다가는 폐만 끼칠 거예요, 분명.”
박혜림이 두 팔을 벌리며 만류했다. 눈초리를 치켜 올린 그녀는 구연수에게 설득하기까지 했다.
“이거 왜 이래. 나 아직, 할 수 있다니까.” “…아니, 나도 혜림이랑 같은 생각이야.” “동감이야. 좀 쉬어.”
구연수와 도완준도 동의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강현철은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 진짜.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니까요.”
뒷머리를 벅벅 긁은 강현철이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
“─내가 정말 안 된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왜 내 말을 안 듣고 그래요!”
박혜림은 신경질적인 어조로 강현철을 나무랐다.
결국 그는 바락바락 대들면서 성한 몸을 이끌고 전선에 나왔다.
그것도 제4위계 몬스터 고독자가 출몰한 의정부 버스터미널로.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던 구연수는 어쩔 수 없이 박혜림을 데려가라며 그녀를 같이 보낸 것이다.
“…시꺼, 잠깐 졸았던 것뿐이야.” “그게 말이 되는 소리에요? 세상에 전투를 벌이다 조는 사람이 어디 있다는 거예요!”
자정이 넘는 시각.
버스터미널 건물 측면에 달라붙은 고독자가 붉은 안광으로 탈환대를 주시하고 있었다.
찍 찍 찍찍찍
입가를 뻐끔거리며 쥐 특유의 소리를 내는 몬스터.
녀석의 신호를 받은 쥐목 몬스터들이 포위망을 좁혀왔다.
성스러운 부적
쓰러진 강현철의 등에 손을 얹은 박혜림이 석장을 두드렸다.
맑은 소리가 파문처럼 퍼지더니, 탈환대를 중심으로 반구형의 방벽이 디버프를 상쇄했다.
“…됐어. 보호마법 좀 부탁해.” “그 몸으로 저기에 뛰어들겠다고요?” “여기서 나 아니면 저놈을 누가 상대하는데.”
“명왕 클랜로드가 있잖아요.” “그 아저씨는 바람잡이가 없으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데 무슨.” “블레이즈 클랜로드. 바람잡이라는 말은 듣기 좀 그런데…, 할 수 있겠어?”
고독자를 토벌하기 위해 플레이어들을 지휘하던 이는 도완준이었다.
탄창을 갈아 끼운 그는 저 멀리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들을 노려보는 녀석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고독자는 무리 속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놈이 보기에 도완준의 부대는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상태였다.
직접 움직이지 않더라도 언젠가 쓰러질.
플레이어들로서는 힘이 다하기 전에 녀석을 쓰러뜨리기 위해 무리를 헤치고 나아가야 했다.
그리고 도완준의 부대에서 다수의 몬스터를 상대하는데 능하고, 녀석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이는 강현철이 유일했다.
“엄호, 부탁한다.”
“네! 클랜로드!”
블레이즈 클랜원들은 상처 입은 몸을 돌보지 않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대신 그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뛰쳐나갔다.
부서진 방패를 치켜든 그들이 악에 받쳐 노래를 시작했다.
전선을 간다 1절을 시작한다!
와아아아아아──!!
높 은 산 깊 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 린 전 선을~
우리는~ 간~다!
함성이 일대를 휘어잡았다.
가디언들의 합창에 반응한 방패가 푸른빛을 발하고, 걸어 나가는 그의 몸을 휘감았다.
불꽃이 넘실거리고, 푸른 기운이 일렁이며 날아드는 디버프를 쳐냈다.
“곡조 하나 잘 뽑았고….”
손가락을 튕겼다.
딱 하는 소리가 노래 사이에 울리고, 몸을 휘감은 마나가 쥐떼들을 밀어냈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한 번 일렁인 불씨가 몸집을 부풀려서는
쥐떼를 태워버렸다.
화염에 먹힌 쥐들이 찍찍거리며 디버프 마법을 쏘아냈다.
성스러운 부적
“…아직이야.”
한 걸음을 내딛기도 힘들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대검을 질질 끌고 나아가며, 폭발을 일으켰다.
“레인저 사격 준비! 캐스터는 다음 마법을 준비하라!”
전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온힘을 다할 수 있다.
뒤에서부터 들려온 소리에 입가를 끌어올린 그는 무겁다고 생각했던 발걸음을 떼었다.
한 걸음을 떼니 다음 걸음을 떼기는 힘들지 않았다.
칼자루를 쥔 손을 교체하고, 왼손에 맺힌 불길을 양옆으로 퍼뜨렸다.
자신이 만들어낸 불길 속으로 무거운 방패를 짊어진 가디언들이 뛰어들었다.
뜨거운 열기가 중장갑을 달구고 있을 텐데도,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그들은 영창을 멈추지 않았다.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눈빛은 아직 힘을 잃지 않았다.
대검을 가슴선상에서 지면과 수평으로 들어 올린 그가 녀석을 노려보았다.
녀석이 주춤한 기색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녀석은 그가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건물 외벽에 선 채로 달라붙어서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진로를 만들어!” “불길을 무서워하지 마라! 보호마법이 있으니까!”
헌터들도 그를 엄호하고 있었다.
블레이즈 클랜원들이 아닌 그들은 불길이 두려울 텐데도, 어떻게든 길을 틔어주려 하고 있었다.
“…큭…!”
몸에 한기가 들었다.
온몸이 쑤시고, 가려웠다.
음식을 잘못 먹은 것처럼 배가 더부룩했다.
디버프의 영향이었다.
어쩌라고…!
이딴 건 태워버리면 그만이다.
그는 몸속에 스며든 독기를 태웠을 때를 떠올렸다.
자신이 가진 힘은 고작 눈에 보이는 물질을 태우는 게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이 다룰 수 있었던 힘을 상식이라는 틀에 가둘 필요는 없다.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한 줌의 의심도 품지 않으면 된다.
연소하는 본질을.
정화하는 본질을.
강하게 믿으면 된다.
무엇이든 연소시키고, 정화시키는 힘을.
원리를 따질 필요 없이, 이해할 필요 없이.
“─다 먹어치우면 그만이야.”
그는 자신을 중심으로 푸른 불꽃을 퍼뜨렸다.
불길과 푸른 불길이 뒤섞이고, 달려 나가던 플레이어들의 디버프를 정화했다.
몬스터들의 마법을 파훼하고, 도리어 마나 폭주를 일으키게 만들었다.
“알았냐, 이 쥐새끼야?”
남아 있는 마나를 모두 쥐어짜냈다.
이글거리는 불꽃과 부정을 태우는 불꽃을 휘감은 그가 비틀거리며 대검을 들어올렸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149(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