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49
D부대와 F부대가 의정부역에 도착했을 때에는 자정이 지난 시각이었다.
그들이 늦은 이유는 제3위계 기간트가 부대를 앞질러나가 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결국 D부대와 F부대는 전력의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기간트의 군세를 상대해야 했다.
특히 신서영은 부대 내의 S급, A급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기간트를 쓰러뜨리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
서포터들이 골절상을 치료해주기는 했어도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뼈는 다시 골절 상태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픈 내색을 보이지 않고, 뒤따라오는 군세를 견제했다.
한편 제대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D부대는 건물을 부수거나, 도로에 암벽을 만들어 그들의 발을 묶었다.
“끙, 도중에 길을 돌아서 오지만 않았으면 좀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버스터미널 일대가 그 모양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강철은 길성준에게 부축 받는 신서영을 따라오며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신서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강철을 비롯해, D부대와 F부대 플레이어들이 씨부렁거리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기껏 군세의 발을 묶어놓았는가 싶었더니, 신곡동에서 버스터미널로 이어지는 동일로가 불바다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길을 가득 메운 불길을 꺼트리려 마법을 전개했지만, 어째서인지 불길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강현철 플레이어가 한 걸까.
신서영은 꺼지지 않는 불꽃을 보고 제일 먼저 강현철을 떠올렸고, 불꽃에 담긴 한결같은 의지를 느끼고 감탄했다.
그녀는 따라할 수 없는 마법이었다.
오로지 그만이 할 수 있는 마법이리라.
“그런데…, 역시 버스터미널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겠지?”
“그러겠지.”
강철의 물음에 이승환이 짧게 대답했다.
결국 D부대와 F부대는 길을 돌아 버스터미널 방면을 지나야 했고, 일대가 불꽃에 그슬린 흔적을 목격했다.
신기하게도 도로는 새까맣게 그을려 있건만, 건물은 그을린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태워야 할 대상과 태우지 말아야 할 대상을 명확히 구분했던 것처럼.
“그것만이 아니라니까. 도대체 저건 뭔지 원….”
“방연지 플레이어의 마법이겠지.”
강철은 시청역 방면에서 주변 건물 사이를 빼곡히 채운 나무들을 가리켰다.
시청역 방면이 숲이 되어 있었다.
“…예쁘네.”
이승환은 나무들 사이에서 우뚝 솟은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주변 나무들은 잎이 죄다 단풍에 물들어 있는데 반해, 제일 높은 나무는 자주색 꽃을 늘어뜨린 나무였다.
“등나무야. 이 시기에 피는 꽃은 아닌데, 신기하네.”
“누님은 그걸 어떻게 아소?” “분명…, 방연지 플레이어가 좋아하던 나무였지?”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신서영이 째진 눈빛으로 길성준을 노려보았다.
시선을 마주친 길성준의 눈동자가 한순간 흔들렸다.
헛기침을 한 그가 그녀의 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전에 얘기했었잖아.”
“근데 그걸 다 기억해?”
“당연하지. 네가 얘기했었으니까.”
“흠…, 뭐 좋아.”
새치름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서영.
그녀는 건물 곳곳에 설치된 조명에 비치는 등나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방연지.
서영은 같은 십이좌이자, 마음이 맞았던 그녀가 무사할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도완준으로부터 비보를 전해들어야 했다.
“…그런, 가요.”
“…네.”
그럼에도 그녀는 슬픈 감정을 가슴에 담아두어야 했다.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었다.
실의는 막막한 상황을 벗어나고 해도 늦지 않는다.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과 전황에 대한 정보를 교환했다.
“…….”
전황은 최악이었다.
의정부역은 세 방면에서 군세의 위협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우선, 바로 몇 시간 전에 시청 방면에서 죽은 자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나왔다.
버스터미널과 신곡동 방면에서 출몰한 몬스터를 처리한 탈환대는 곧장 죽은 자들을 상대해야 했다.
쉬지도 먹지도 못하고 전투를 벌이던 플레이어들은 죽은 자들을 상대로 난전을 피하지 못했고, 그들에게 죽은 플레이어들이 죽은 자가 되어 탈환대를 덮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죽은 자들을 부리는 몬스터는요?” “…숲속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아.”
도완준이 착잡한 어조로 답했다.
이래서는 죽은 자들을 뚫고 제3위계 몬스터를 찾아야 했다.
플레이어들은 쉬지도 못하고 싸우고 있는데, 몬스터가 강해지는 밤중에 녀석을 토벌하러 나갈 수도 없었다.
군세는 녹양동 중랑천 방면에도 있었다.
다행히 신라클랜이 의정부역으로 내려오는 길목을 차단했다고 하지만, 시간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경기북부청사 방면에서는 기간트의 군세가 내려오는 중이었다.
기간트를 토벌하기는 했어도, 녀석의 군세는 아직 남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의정부역 어딘가에 숨어 있을 제3위계 오버랭크 백면상과 제3위계 사이렌 글라이더였다.
백면상은 한차례 모습을 드러낸 이후,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사이렌 글라이더는 손지희를 죽이고, 밤하늘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라고.
탈환대가 밤하늘을 비추기 위해 조명을 튼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경기북부청사가 적색던전이라 그나마 다행이군. 안 그랬으면 거기 보스 몬스터도 상대해야 했을 거 아니야?”
“하하….”
단군 클랜로드 장봉전이 안도해하며 템페스트클랜의 네비게이터를 곁눈질했다.
강예희를 대신해서 회의에 참석한 네비게이터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기만 했다.
템페스트클랜 서브로드 강예희는 현재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금도 클랜원들이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억누르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블레이즈 클랜로드랑 이도진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군요.”
빈자리를 둘러본 길성준이 입을 열었다.
“이도진 플레이어는 사이렌 글라이더를 수색하고 있고, 블레이즈클랜은 회룡역으로 전황을 전하러 갔습니다.” “쳇.”
“…후퇴했다는 건가요.”
구연수의 대답에 장봉전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헛기침을 했다.
길성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말이야 전황을 전하러 갔다지만, 전선에서 후퇴했다는 말이었다.
싸움에 미친놈들이라 불리는 블레이즈클랜이.
그를 포함해 몇몇 클랜로드들은 장봉전처럼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강현철 플레이어가 마나탈진을 일으켰기 때문에 블레이즈클랜에게 역할을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박혜림이 침묵을 깨고 끼어들었다.
어디 할 말이라도 있으면 해보라는 식으로 눈에 힘을 주는 그녀였다.
“어쨌든 여기 있는 인원으로 군세를 막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네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신서영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녀는 의정부 지도를 살폈다.
은하는 의정부역으로 내려오자마자 바로 회룡역으로 후퇴하라고 했는데.
은하가 말하기를, 회룡역에서는 문준과 제니스클랜이 군세에 대응할 준비를 마쳐놓았을 거라는 것.
그녀도 믿고 싶었다.
모두 지쳐 있었으니까.
회룡역에서 준비를 마쳐놓았을 거라는 플레이어들에게 뒤를 맡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의정부역을 세 방면에서 위협하는 군세를 떠올리고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그녀에게 해주었던 정보는 하나도 빠지지 않고 들어맞았다.
하지만 군세가 세 방면에서 몰려들고 있는 데에도 의정부역을 버리
고 회룡역으로 후퇴하라는 조언이 믿기 어려웠다.
군세가 하나라면 모를까.
그녀는 탈환대가 세 군세를 이끌고 회룡역으로 남하하는 가정을 떠올리고는 그의 조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정말로 후퇴해야 하는 걸까.
정말로 회룡역에서 군세를 대응할 수 있는 걸까.
이라도 네 마리의 제3위계를 막아내는 일은 불가능할 터였다.
제니스클랜이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클랜이라고 하더라도, 이 없는 이상 어디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불가능해.
불가능하다.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회룡역으로 군세를 불러 모았다가는 탈환대가 완전히 붕괴하고 말 거라고.
최악의 경우에는 회룡역까지 내려온 군세가 도봉역의 장벽을 부수고 서울로 남하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가는, 끝이야.
상상하기도 싫은 미래였다.
그녀는 클랜로드들의 반응을 살피며 어찌해야 할지 갈등했다.
그들 역시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클랜로드를 잃은 템페스트클랜조차 전선에서 물러나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으면서도,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말하기를 꺼려하는 태도였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의정부역은 반드시 지켜야 하노라고.
그럼에도 장봉전처럼 위험지대로부터 물러나야 한다고 말을 꺼내는 이들도 있었다.
“회룡역으로 전선을 후퇴하고, 거기서 탈환대가 힘을 합쳐 군세를 견뎌야 하네!”
장봉전이 큰소리로 주장하니, 소규모 클랜의 클랜로드들이 말을 보탰다.
어느 틈에 템페스트클랜 역시 끼어 있었다.
“창해클랜은….”
길성준 역시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말을 꺼내려 할 때였다.
[의정부 탈환대 E부대 레귤러스 클랜 신시아 네비게이터의 전언을 전파합니다.현재 시각 3시 35분, 경기북부청사 방면에서 몬스터 무리의 이동을 확인했습니다. 무리의 평균 위계는 제6위계로 추정 중이며, 150여개체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의정부 경찰서 방면에서 제3위계 몬스터의 반응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몬스터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존재로….
…죄송합니다. 중요한 정보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의정부역 상공에 제3위계 사이렌 글라이더의 존재가 식별되었습니다. 인근에 위치한 플레이어는 사이렌 글라이더에 대항하기 위해─….]
기간트의 군세가 몰려들고 있다.
백면상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고, 설상가상으로 사이렌 글라이더의 존재가 포착됐다.
혀를 찬 플레이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를 하고 있을 시간이 아니었다. 회의실을 나선 그들은 복도를 뛰어다니며 부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신서영은 회의실 창문 너머로 몸을 던졌다. 바람을 일으켜 밤하늘로 날아오른 그녀는 곳곳에서 느껴지는 편재를 확인했다.
역시 저 군세를 데리고 내려갈 수는 없어!
그녀는 자신의 직감에 확신했다.
은하의 조언이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회룡역에서 저들을 상대할 힘이 준비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 오건후 플레이어가 실종된 이후, 텔레파시스트의 중계기지가 차례차례 작동하지 않기 시작하면서 회룡역과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소규모 클랜을 파견하여 회룡역으로 보냈어도 며칠째 답신이 없었다.
그들의 연락은 현재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지 않기도 했다.
블레이즈클랜이 회룡역으로 내려갔다고 하더라도, 불과 몇 시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들이 무사히 도착했을지도 알 수 없는 가운데, B부대가 준비를 끝마쳤을 리가 없었다.
캬라라라 캬라라라
“…큭…!”
제3위계 몬스터 사이렌 글라이더.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녀석을 상대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탈환대 내에 얼마 없었다.
손지희가 있었더라면 공중전에 대응할 수 있었겠지만, 그녀가 없는 이상 녀석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가 녀석을 추격하려 할 때였다.
뇌전
한 명 더 있었다.
공중전에 대응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그녀는 밤하늘을 눈부시게 밝히는 벼락을 보며 20대 초반에 십이좌로 발탁된 남자를 떠올렸다.
☆
제1차 의정부 탈환전.
탈환대는 의정부역을 세 방면에서 압박해오는 군세로부터 후퇴할 수 없었다.
뒤로 물러났다가는 세 군세를 최후의 보루인 회룡역까지 끌어들이는 형세가 되고 만다.
그래서 탈환대는 세 방향에서 몰아치는 군세를 일제히 상대해야 했다.
그래, 일제히.
“그걸 어떻게 상대해. 제3위계 이상이 몇 마리야.”
은하는 보온병에서 따른 우유로 몸을 녹였다.
자정이 지났다.
의정부가 있을 방향은 희미한 별빛만 보일 뿐,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형은 왜 밤에도 여기를 오른 거지.”
은하는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남산타워를 찾았던 벽해수를 떠올렸다.
낮이야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지만, 밤에는 도시를 밝히는 불빛만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한밤중에도 남산타워에 올랐을 그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을지 알 수 없었다.
별빛밖에 없건만.
불빛밖에 없건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어지는 시간 속에서 무엇을 찾고,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은하는 깜깜한 밤을 내다보다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에도 별빛이 있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별빛 아래에 자신이 있었다.
세상은 한 번 멸망했건만, 별빛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외롭고 힘들 때에는 밤하늘을 올려다봐.’
‘왜.’
‘별은 언제나 거기에 있으니까.’
‘지금이 20세기에나 쓸법한 멘트가 어울릴 때인가. 어디 가서 그랬다가는 미친놈이라는 소리나 들을걸.’
‘와, 이놈 보게. 미친놈이 누구한테 하는 소리야. 그리고 형한테 말하는 꼬라지가 그게 뭐냐?’
“…생각해보면 해수 형, 감수성이 참 싸구려였지.”
그런 사람의 손에서 크레스터들이 문장을 새기게 해달라고 납작 엎드리게 만든 No One Cry가 제작되었다는 게 신기했다.
“서영 누나는 회룡역으로 물러났으려나.”
은하는 신서영에게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었다.
탈환대가 군세를 의정부역에서 상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회룡역에서 상대해야 한다는 정보를.
제1차 의정부 탈환대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회룡역에서 군세를 맞아들였다면 필시 회룡역 전선은 붕괴했을 것이다.
군세가 그대로 서울을 침공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는 진실 속에 거짓을 숨겼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그녀가 살기를 바라니까.
제1차 의정부 탈환전에서 신서영은 몰려드는 군세를 상대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
다른 부대가 살기 위해 도망치는 가운데.
“그 꼴을 볼 수는 없지.”
신서영.
정에 살고, 정에 죽는 여자.
그는 그녀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거짓말을 섞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럼에도 신서영은─.
“─누나는 또 그러겠지.”
그녀는 정에 살고, 정에 죽는 여자니까.
그는 씁쓸함이 묻어난 웃음을 남아 있던 우유와 함께 삼켜버렸다.
어느덧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푸른 밤이 찾아오고, 산꼭대기에 걸린 하늘이 불그스름하게 번지고 있었다.
날이 밝고 있었다.
그녀가 스스로를 희생하는 날이.
리라이프 플레이어 150(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