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57
한국마나관리기구 청사 응접실.
임가을은 바쁜 일정을 미루면서까지 신서영을 맞이했다.
응접실에는 두 사람밖에 없었다.
호위사도 없었다.
그녀가 신변의 안전을 주장하는 호위사들을 억지로 물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완강했다.
호위사들이 아무리 호소하더라도 물러서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신서영이 괜찮다며 말리기까지 했는데에도.
“생활은 어떤가요? 어디 아픈 데는 없고요?”
“네, 선녀님께서 챙겨주신 덕분에 괜찮습니다.”
눈웃음을 지은 임가을은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마셨다.
벌써 11월 중순이었다.
의정부 탈환전이 실패로 끝나고 2주가량이 지난 셈이다.
그녀에게는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시간이었을 터였다.
신서영이 창해클랜의 비리를 고발하지 않았더라면 각계각층으로부터 비난을 피하지 못했으리라.
이참에 그녀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의정부 탈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창해 클랜로드 길성준에게 떠넘기고, 그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서 누구나 손가락질할 만한 악당으로 만들었다.
반대로 영웅이라 불리기 시작한 를 부각시키고, 영웅이 악당을 물리치는 구도로 여론을 조장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길성준은 선녀의 의지에 반하는 세력을 형성하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기회를 선녀의 의지에 반하는 관료들을 파악하고, 반정부파의 세력을 축소시키는 일로 이용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요. 하지만 저야말로 신서영 플레이어 덕분에 많이 좋아졌는걸요.”
“…그런가요.”
신서영은 머그컵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저 임가을이 묻는 말에 답하기만 했다.
그녀는 이 자리가 불편한 기색이었다. 앞으로 떨어질 선고를 기다리는 것처럼 다소곳이 앉아있기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길성준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머지않아 창해클랜 서브로드였던 그녀 역시 재판에 회부될 터였다.
“─저는 신서영 플레이어가 이대로 십이좌에 남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던 차.
임가을이 대뜸 화제를 전환했다.
반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신서영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는 응접실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십이좌에서 물러나려 합니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신서영 플레이어라면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임가을이 테이블에 소리가 나도록 머그컵을 내려놓았다.
현재 십이좌는 남궁성운을 포함해 다섯 개의 공석이 발생한 참이었다.
여론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성난 민중이 창해클랜을 비난하고 있어도, 몬스터의 위협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의정부 탈환의 영웅인 가 십이좌에 남아준다면 그들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 터.
또한 그녀는 를 자신의 힘으로 삼을 수 있다는 계산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신서영이 창해클랜의 비리를 밝힌 순간, 스스로 약점을 잡힌 셈이니까.
“…이번 일로 많은 걸 깨달아서요. 이제부터는 저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
임가을은 굳은 의지를 표현하는 신서영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부럽네요.” “…네?”
“부럽다고요. 좋지요, 자신만을 위한 삶.”
임가을이 한순간 보여준 쓴웃음.
머그컵을 기울인 그녀는 커피를 마시는 행동으로 얼굴을 반쯤 가렸다.
머그컵이 비었을 때에는 만인이 아는 선녀가 있었다.
“그러면 신서영 플레이어는 십이좌에서 물러난 후로 뭘 할 건가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죗값을 치른 다음에 생각해보려고요.”
“그러네요. 재판이 남아 있었죠. 죗값을 치르려면 못해도 10년은 보내게 될 테니,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참 많겠네요.”
그 말을 들은 신서영은 입을 다물었다. 임가을이 어떤 의도로 비꼬는 것인지 파악하려 했다.
눈을 마주친 임가을은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녀는 태생이 배우였다.
한때 신세대를 이끌 여배우로 불리기까지 했던 사람.
그녀에게 감정을 감추고 미소를 짓는 일이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신서영 플레이어─.”
낭랑한 울림으로 입은 연 임가을은 다리를 바꿔 꼬았다.
그러더니 마치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아카데미에서 교관 자리가 하나 부족하다는 보고를 받았네요.
신서영 플레이어가 지원해보면 어떨까요? 신서영 플레이어라면 충분할 것 같은데.”
“네? 무슨 말씀이신지….”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희생되었어요. 저는 그들을 희생한 미래를 책임져야 하고요.”
“…….”
“그러니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할 시간, 그 시간을 저에게 맡기지 않겠어요?”
신서영은 임가을의 말을 의심했다.
다시 말해─,
“─영웅이 옥에 있어야 쓸까요.”
죗값을 아카데미의 교관으로서 치르라는 말이었다.
“선녀인 저에게도, 신서영 플레이어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생각하는데요.
무엇보다 선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신서영이라는 사람이 앞으로 만들어나갈 삶이 뭔지 보고 싶거든요. 어때요?”
손을 내미는 임가을.
신서영은 그녀가 내민 손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이내 눈시울에 물이 찼다.
신서영은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닦아내고,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해요. 마음 편히 울어도 돼요. 이 자리에는 저랑 당신밖에 없으니까요.”
“…아니요.”
신서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눈물을 닦은 미소로 답했다.
“이제─, 울지 않기로 했거든요.”
☆
“은하, 선물이다.”
“정말 저 가져도 돼요?”
“흠.”
은하는 브루노의 집을 찾았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브루노가 건넨 물건은 어베니어즈 클로크였다.
바닥에 질질 끌리는 커다란 망토를 걸친 은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차피 스킬석은 네 거였으니까.”
“그러면 사양 않고 받을게요.”
은하는 브루노가 준다고 하니 마다하지 않았다.
망토에 마나를 주입하자, 적당한 길이로 줄어들었다.
듣자하니 마나를 함유한 원단을 사용했다는 모양이다.
이거 괜찮네.
위장능력도 마음에 들고.
망토를 두른 부위가 사라졌다.
주변의 색에 동화된 것이다.
도마뱀의 왕이 남긴 스킬석으로 만들어진 망토인지라 웬만한 사람들은 감지할 수 없는 위장능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래봤자 살기를 드러내면 끝이겠지만.
은신의 기본은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다.
어베니어즈 클로크도 마찬가지.
위장마법이 발휘되고 있을지라도 살기를 발하거나, 마나를 드러내는 순간에 흐트러지는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럼에도 도마뱀의 왕이 남긴 마법은 살기를 드러내지만 않는다면야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이리라.
백서진 선생님이나 한창진 같은 녀석한테는 통하지 않겠지만.
잠깐, 하양이도 알아차리려나?
정하양은 마나에 담긴 정보를 읽는 감각이 뛰어났다.
어쩌면 은신을 간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은하는 언젠가 그녀가 망토를 두른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을지 시험해보기로 했다.
“근데 이거, 소모량이 좀….”
“블랙스미스가 만든 거니까.”
“어쩔 수 없긴 하네요.”
은하는 망토의 마법을 유지하는데 소모되는 마나를 확인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효율적이지 못했다.
체내 마나가 플레이어의 평균에 미쳤던 은하는 부족한 마나를 보완하기 위해 효율을 추구했다.
그런데 어베니어즈 클로크는 마법을 발동하는데 필요한 소모량이 고정되어 있었다.
블랙스미스는 범용성을 전제로 아티펙트를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망토의 근간이 되는 스킬석의 주인도 아니었던지라, 효율과 효과가 더더욱 떨어졌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마에스트로한테 부탁할걸.
어쩔 수 없다.
은하는 부족한 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어베니어즈 클로크를 사용할 일이 웬만해서는 없을 것이다.
그러던 바로 그때.
“아우! 아부우우! 어베어베 꼬야!”
어느새 기어온 어베니어가 그가 두른 망토를 뺏으려 하고 있었다.
“우리 아기, 저건 은하 보스 거야.”
“아우! 아아아앙!”
줄리에타가 어베니어를 안아 올렸다.
망토를 얻지 못한 어베니어가 그녀에게 벗어나려 떼를 쓰며 울었다.
어베니어는 망토가 유난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이거랑 상성이 좋았나 보네.”
은하는 망토를 고이 접으며 중얼거렸다.
스킬석은 주인을 가린다.
자신이 주인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스킬석에 마나를 흘려야 했다.
그런데 마나를 흘리기 전, 자신이 스킬석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강렬히 드는 경우가 있다.
그때 체내에 받아들이는 스킬석은활용도가 무궁무진한 마법을 각인시킨다.
어베니어에게는 망토에 녹아든 스킬석이 그랬던 모양이다.
근데 미래에 가 될지도 모르는 애가 은신 마법이라니….
은하는 불현듯 브루노를 바라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베니어가 미래에 브루노처럼 덩치 큰 곰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동심이 깨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곰이 투명해질 수 있는 망토를 두른다고 생각하니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모른 채 머리가 부서질 사람을 생각할수록.
은하는 절로 몸서리를 쳤다.
“아우! 아우우우우! 아부! 아부!”
“…너 클 때까지만 내가 사용하고 있을게. 나하고 안 맞는 아티펙트이기도 하고….”
“아우우.”
은하는 떼를 쓰는 어베니어에게 망토로 장난을 치며 말했다.
어베니어는 그저 눈앞에서 흔들거리는 망토를 잡으려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제는 그의 무릎을 잡고 기저귀를 찬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기까지 했다.
“아우! 아우우!”
“이런 애가 가 될지도 모른다니….”
부디 어베니어가 브루노와 같은 불곰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들어가.”
“……!”
수용번호 3162.
한때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손꼽히는 클랜의 주인이었던 자가 새로이 부여받은 이름이었다.
독방에 내쳐진 길성준은 낄낄대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나회로가 손상되어 마나를 발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완전히 일어나지 못하고 철퍼덕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시발.”
30년.
그가 선고받은 시간이었다.
그는 제대로 항소할 기회도 받지 못했다.
그와 긴밀한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손바닥을 뒤집듯이 돌변하며,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웠기 때문이다.
한때 그가 수가 틀릴 때마다 쓰고는 했던 꼬리 자르기에 자신이 당한 것이다.
“…하하, 하하하하하하…!!”
구석으로 기어갔다.
힘겹게 벽에 등을 기댄 그는 미친 듯이 웃어댔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
창해클랜은 해체를 면치 못했다. 클랜을 지탱했던 이들이 빠져나가니 클랜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클랜원들은 모조리 단군클랜에 흡수당해 버렸다.
그리고 그는 30년이라는 구형을 선고받았다.
이 역시 비리에 연관된 사람들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대가로 만들어낸 시간이었다.
“…내가, 내가 이대로 당할까보냐!”
실핏줄이 터진 눈을 부라리는 길성준.
그는 연신 눈물을 흘리면서도 독기를 버리지 않았다.
이대로 당할 생각은 없었다.
복수할 것이다.
자신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람들에게 절망이 무엇인지 보여줄 것이다.
“기다려, 기다리라고…!”
길성준은 악에 바쳐 소리쳤다.
낄낄 웃고, 껄껄 어깨를 들썩였다.
“날…, 무시하지 말라고.”
마나회로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그러나 회로가 망가졌어도, 기프트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체내에 마나가 극소량이라도 남아 있다면 기프트를 발동할 수 있었다.
“신서영 그 년이…!”
여태까지 그는 자신의 기프트를 누구에게도 밝힌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업계 내에서 자신이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소문만 무성하게 나돌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과거를 읽었으니까.
.
가 미래를 읽을 줄 안다면, 그는 를 통해 대상의 과거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대상자의 마음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일이 가능했다.
과거를 읽는다는 의미는 그런 의미니까.
“그래, 그런 거였다고…!”
화상을 입은 얼굴을 들어 올린 그는 마지막으로 보았던 신서영의 과거를 되새겼다.
그때 그녀의 옆에 있던 남자의 과거까지 함께.
두 사람의 과거에 나와 있던 아이.
그 아이가 모든 일의 원흉이었다.
길성준은 낄낄거리며 피를 토했다.
부어터진 입술로 두 사람의 기억 속에 있던 아이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읊었다.
“노”
“은“
“하”
리라이프 플레이어 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