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59
선력 7년.
해가 바뀌고 일어난 변화는 키가 조금 자라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을 뿐이다.
그밖에 일어난 변화는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어도 담임은 그대로였고, 친구들 역시 같은 반이 되었다.
“어머, 너희 왔구나. 새로운 반은 어땠니?” “…다녀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개학식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려 했던 은하.
그의 뒤에서 아이들이 머리를 내밀었다.
“어휴.”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수업도 없었던 날이니 집에서 편히 쉴 생각이었다.
그런데 수업도 일찍 끝났으니 놀자는 아이들이 싫다고 투덜거리던 그를 따라온 것이다.
그러다 어쩌다 보니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 되어버렸다.
“어? 줄리에타 누나다!” “챠오, 은혁!”
은하보다도 먼저 안으로 들어선 은혁이 거실에 있던 줄리에타에게 인사했다.
“아부. 엉, 엉아!”
“오빠 안녕!”
무거운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며 걸어 다니는 어베니어와 어베니어에게 잡히지 않으려 뛰어다니던 은애도 있었다.
은애를 쫓던 어베니어는 녹색 눈을 배시시 뜨고는 방향을 선회했다.
어베니어가 아이들이 벗어놓은 신발을 정리하던 은하에게 달라붙은 것이다.
“엉아, 엉아!”
“오빠, 오빠!”
“그래, 엉아야. 은애 너는 유치원 잘 다녀왔어?”
은하는 어베니어와 은애가 뒤에서부터 달라붙자마자 투덜거리던 얼굴을 집어던졌다.
구석에 가방을 내려놓던 서나와 하양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일 정도로.
“쟤 또 저런다. 애들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우리한테도 그러면 좀 좋아?”
집에서 짐을 두고 온 민지는 현관문을 들어오자마자 눈에 들어온 광경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이제는 익숙해진 민지는 그를 성큼성큼 스쳐지나갔다.
“그럼 너희가 얘네 반이라도 닮던가.”
어깨를 으쓱인 은하는 다리에 매달린 어베니어를 안아 올렸다.
이제 3살이 되는 아이치고는 제법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오빠, 나는?”
“…업힐래?”
“와아!”
볼을 한가득 부풀리는 은애.
난감해진 은하는 순간 명쾌한 수를 떠올렸다.
어베니어를 안은 채로 무릎을 굽히고, 폴짝 뛰어오른 은애를 등에 업은 것이다.
자세가 불편하기는 했어도 그에게는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네. 우리한테 좀만 더 잘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재밌겠다. 나도 업히고 싶어.” “하양이 네가 이제 몇 살인데 대장한테 업히려고, 이제 네 몸…! 왜 때려!”
꼬랑지를 흔들던 서나가 시치미를 떼며 은혁을 때렸다.
현재 여자아이들은 한창 성장기였다. 키가 자라면서 체중도 늘고 있었다.
평소 운동을 즐기던 서나는 비교적 날씬한 편에 속했지만, 민지와 하양은 겨울방학 사이에 살이 붙은 편이었다.
“은혁아, 자고로 입은 조심해서 말해야 하는 법이다.”
“씨이…, 대장도 말 막하면서.” “나는 그래도 눈치를 알잖아. 안 그래, 댕댕…!”
거드름을 피우던 은하 역시 날아드는 꼬리를 막을 수 없었다.
얼굴에 꼬리자국이 남은 은하가 서나를 노려보았지만, 서나는 흥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은하야, 애들 괴롭히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응?” “엄마, 방금 못 봤어? 이거 안 보여? 여기 자국 생긴 거!” “은하 보스.”
은하가 점잖게 타이르는 어머니에게 항의하려 할 때였다.
어머니와 시장에 다녀오겠다며 일어난 줄리에타가 눈앞에서 검지를 흔들어댔다.
“지금부터라도 적응해두는 게 좋을 거야.” “네? 무슨 소리에요?”
조언하듯 말하는 줄리에타.
은하는 황당한 얼굴로 대꾸했다.
“은하 보스는 커서 여자 많이 울리게 생겼어. 지금부터라도 맞는 걸 적응해두는 게 좋을 거야.”
“…허, 참. 엄마, 지금 줄리에타 누나가 뭐라 하는지 들었지?”
기가 차서 어처구니가 없어진 은하.
그는 어머니가 줄리에타가 내뱉은 말을 가만히 넘기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그래서 은애에게 집에서 오빠언니들이랑 놀고 있으라고 말하는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의 손을 잡은 은하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줄리에타를 올려다보았다.
“엄마도 조금 걱정이야. 은하 네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겠지만, 여자애들 울리고 다니지 않을까 해서….”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야, 은하 보스 성격이….”
“왜애! 엄마, 언니! 우리 오빠 괴롭히지 마아~”
“…내 동생이 최고야. 은애야, 오빠는 너랑 누나밖에 없어.”
“은애도!”
“아부!”
“그래, 어베니어도.”
어머니에게 배신당한 은하는 무릎을 꿇고 은애와 어베니어를 껴안았다.
억울해서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비록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어휴, 노은하 쟤 성격을 받아줄 사람이 있을까 몰라.”
팔짱을 끼고 고개를 이리저리 젓는 민지.
어쭈, 먹민지 네 성격은 어떻고.
감사히 여겨. 나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어?
은애와 어베니어의 머리를 쓰다듬던 은하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오랜만에 두 사람이 눈싸움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두 사람을 무시하기로 했다. 어느새 그에게 안겨 있던 아이들도 거실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럼 은하야, 얘들아. 은애랑 어베니어 좀 부탁할게.”
“우리 아기 부탁해!”
단화를 신은 어머니와 줄리에타가 집을 나섰다.
집안에 남겨진 아이들은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그러다 아이들이 만들어낸 원 안에서 뭐가 그리 좋은지 박수를 치는 어베니어에게 시선을 향했다.
“어베니어랑 뭐하고 놀지? 놀 수 있나?”
“놀기는 어떻게 노니. 이제 3살이 된 아이잖아. 다치지 않게 돌봐줘야지.”
“그럼 오늘은 어베니어랑 은애 돌보는 거야?” “은애도 어베니어 돌볼래!”
어베니어가 기저귀를 찬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려 했다.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자, 서나와 하양이 안타까운 탄성을 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몸을 일으킨 어베니어가 뒤뚱뒤뚱 걸음으로 하양에게 안겼다.
“안녕, 어베니어야?” “아우! 온니! 온니!”
어설픈 발음으로 하양을 언니라고 부르는 어베니어.
새된 비명을 지른 하양이 어베니어를 꼭 끌어안았다.
“어? 이게 갖고 싶어?”
하양의 어깨를 지지대 삼아 일어난 어베니어가 리본에 손을 뻗었다.
하양은 머리를 뒤로 묶고 있던 리본을 풀었다.
“아우, 이고 모야?”
통통한 손으로 리본을 쫙 펼치며 묻는 어베니어.
어베니어는 그녀가 “리본이야.”라고 하는 말을 듣지도 않고 리본을 입에 집어넣었다.
“얘, 리본을 먹으면 어떡하니! 더럽게….”
“…어, 나, 내가 더러워?”
“아니야! 하양이 네가 더럽다고 말한 게 아니라…!” “어휴, 먹민지. 내가 누누이 말했지. 말 좀 예쁘게 하라고, 어?”
민지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을 듣고 하양의 눈망울이 크게 흔들렸다.
민지가 우왕좌왕하며 울먹거리는 하양을 다독이는 사이, 은하는 꼴좋다는 얼굴로 핀잔을 주었다.
“근데 손에 닿는 건 뭐든 입에 집어넣네?”
“쪽쪽이가 없어서 그런지도 몰라. 어베니어는 이제 쪽쪽이를 떼야 하는 시기인데, 쪽쪽이가 좋아서 대신…, 아얏! 얘, 꼬리를 물면 안 되잖니.”
“아우….”
“얼른 퉤 해. 입 안에 털 들어갔잖아. 으이구.”
한 손으로 리본을 쥔 채로, 다른 한손으로 여우꼬리를 입에 넣고 있던 어베니어.
깜짝 놀란 서나는 어베니어의 입 안에 들어간 털을 빼냈다.
어베니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서나의 꼬리와 귀를 만지려 들었다.
“대장, 어베니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하, 또 날 가지고 논다 이거지? 그래, 좋아. 내가 성가신 게 뭔지 제대로 보여주지.”
“…대장?”
경험담인데 왜.
은하는 뚱한 시선으로 은혁에게 답했다.
은혁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야. 내가 한 번 해석해볼게!”
“…어, 그래. 열심히 하고.”
은하는 어베니어 돌보기를 아이들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소파에 몸을 파묻어서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볼 요량이었다.
한편 은혁은 리본을 흔들고 다니는 어베니어에게 다가갔다.
“아아! 아아아아! 이고! 이고!” “아아, 이것은 리본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서나가 흔들어주는 꼬리에 손뼉을 치는 어베니어.
은혁은 무릎을 움직여 서나의 옆으로 다가갔다.
“아아! 우우우우우우! 온니! 온니!”
“아아, 이것은 서나 누나 꼬리라는 것이다.”
이어서 민지가 보고 있던 텔레비전을 끌어안고 입술을 문대는 어베니어.
은혁은 드라마를 보려고 기웃거리는 민지를 밀어내고 어베니어의 말을 통역했다.
“아우아우아우….”
“아아, 이것은 드라마라는 것이다.”
뒤로 엎어진 민지는 무슨 짓이냐며 항의를 하려다 어베니어의 말을 통역하기를 멈추지 않는 은혁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서나와 하양도 마찬가지였다.
“…쟤 왜 저래?”
은하는 손으로 마이크를 만들어 “아아, 이것은….”라고 말하는 은혁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서나와 하양이 고개를 저었다.
“쟤, 요즘 라이트노벨이라는 책에 빠졌잖아.”
“라이트노벨? 소설이야?”
“아! 그러고 보니….”
혀를 쯧쯧 차는 민지.
하양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삼각 귀를 쫑긋거린 서나가 살며시 손바닥을 모았다.
“요즘 조그마한 책을 들고 다니던데…. 장르가…, 이계치렘하렘무쌍이라 했던가? 이세계로 전생한 주인공이 치트 모험가가 돼서 하렘을 만들고 무쌍을 찍는….”
“치트? 무쌍? 서나야, 그게 무슨 말이야?”
“치트랑 무쌍이 뭐냐면….”
“서나 너는 왜 이렇게 잘 아니?”
“…이게 은근 재미있는걸.”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은 민지가 묻자, 삼각귀를 늘어뜨린 서나가 작은 목소리로 항변했다.
“어쨌든, 거기 나오는 주인공이 이세계에 전생해서 몬스터를 물리치는….”
주눅이 든 채로 줄거리를 설명하던 서나.
그러다 그만 감정이라도 이입했는지 꼬랑지를 이리저리 흔들며 열의를 띠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하양은 짧은 감탄사로 맞장구를 쳤고, 민지도 어느새 주인공과 히로인들의 로맨스에 빠져들고 있었다.
반면에 소파에 누워 있던 은하는 은애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있었다.
“오빠, 코~ 잘 거야?”
“그래. 쟤네랑 놀면 은애 너도 이상해질 거야. 오빠랑 코~ 자자.”
“응! 코~ 잘래!”
은하는 아이들이 떠드는 이야기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세계에 전생해서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이야기가 뭐가 그리 재미있단 말인가.
너희가 말하는 이세계에 갈 필요도 없이, 이 세계에 몬스터가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데.
그게 이세계야? 누군지는 몰라도 트렌드를 잘못 파악했네.
자고로 이세계란 현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한 세계일 터였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안정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든가.
대신 세계관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안정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경쟁하고, 노력하고, 일해야 한다든가.
…내가 이세계가 어떤 세계일지 생각해서 뭐하겠어.
이 세계에서 쟤네들 돌보며 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은하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떠들도록 내버려두고, 은애와 낮잠이나 자기로 했다.
“아! 어베니어가 사라졌어!”
그때 은혁이 소리쳤다.
잠을 자려던 은하는 난데없이 어베니어가 사라졌다는 말에 눈을 떴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베니어가 있었던 자리가 휑하니 비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우리도 모르겠어.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졌는걸.”
“갑자기 사라졌다고?”
은하는 서나가 당황해하며 말하는 말에 귀를 의심했다.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는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아야아야야아우!”
“”””어베니어다!””””
별안간 어베니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졌던 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였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몸이 투명하게 변한 것이다.
“기프트? 이거 김유하 걔랑 같은 기프트 아니야?”
민지가 주변의 색에 동화한 어베니어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김유하의 기프트 을 떠올린 아이들은 눈앞에서 어베니어가 사라졌어도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야. 이건 이 아니야.”
은하는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는 눈빛을 달리했다.
그가 알기로 어베니어의 기프트는 줄리에타의 기프트 의 영향을 받아 브루노의 기프트가 강화된 기프트일 터였다.
브루노의 기프트는 이 아니었다.
그러니 기프트가 아니라면, 마법이라는 셈이었다.
“설마….”
스킬석을 녹이는 과정에서 흡수한 건가?
고작 2살짜리 아기가 했다고는 믿기지 않았지만,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보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어베니어가 어베니어즈 클로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스킬석에 담긴 마법을 일부 흡수했을 가능성을.
“아우!”
다시 어베니어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감지망을 전개한 아이들은 어베니어의 존재를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도마뱀의 왕이 남긴 마법은 감지망으로도 쉬이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어베니어야! 어디 있니!?”
“누나가 재미있는 책 읽어줄게!” “얘! 어디 있어?” “못 찾겠다 꾀꼬리!”
아이들이 방 안을 돌아다니며 어베니어를 불렀다.
현관문은 닫혀 있으니 집 밖으로 나갈 일을 없을 테지만, 이제 3살이 된 아이가 잘못 돌아다니다 다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아기 주제에 체내 마나도 상당하고….”
은하 역시 집안을 돌아다니며 어베니어를 찾았다.
어베니어의 체내 마나는 은아나 하양보다는 아니었지만 상당한 편에 속했다.
마법을 유지할 수 있는 마나가 바닥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족히 걸릴 터였다.
“오빠, 오빠.” “은애야, 오빠가 지금 바빠.”
“나 어베니어 어디 있는지 알아!” “어?”
“어베니어 저기 있어.”
은애가 은하의 손을 붙잡았다.
은하는 은애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커튼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짠!”
후다닥 달려간 은애가 커튼을 젖혔다.
허공을 더듬은 그녀가 무언가를 끌어안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손으로 안고 있던 허공이 어베니어의 색으로 물들어갔다.
“꺄우!”
“헤헤! 내 말이 맞지?”
“…어떻게 찾은 거야?”
은하는 은애가 어베니어를 거리낌 없이 찾아내는 모습을 보고는 당황했다.
“은애는 다~ 알 수 있어! 어베니어가 여기 있다고 말했는걸. 그치?”
“까우! 아이! 온니! 온니!”
조그마한 몸으로 어베니어를 힘겹게 껴안고 다가온 은애.
은하는 머리를 쓰다듬어달라고 보채는 은애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여동생의 체내 마나는 지극히 평범했다.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은애가 마법을 사용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냥 감인가?
근데 감이 뛰어난 하양이도 어베니어의 마법을
간파하지 못했는데….
은하는 답을 내지 못했다.
다만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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