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62
YH월드는 YH그룹이 새벽그룹이 매각한 새벽월드를 사들인 놀이공원이다.
그래서 주변을 걷다 보면 새벽월드였던 흔적을 쉬이 찾을 수 있었다.
은하는 물살을 튀기며 지나가는 아트란티스 후미에서 새벽그룹의 상징을 찾아냈다.
경사를 내려온 나팔꽃이 서행을 시작하니 물 위로 연꽃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오빠, 저기 봐요! 저기에도 나팔꽃이 있어요! 여기는 어디를 가나 나팔꽃이 있네요?’
‘…새벽월드니까.’
백련이 중학생이었을 무렵.
당시 안개꽃 파티는 새벽월드에 몬스터가 존재한다는 소문을 파악하기 위해 놀이공원을 찾았다.
안개꽃 파티는 인원을 둘로 나눠 교대로 임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진파랑과 몇몇 파티원들이 강력히 주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은하는 그들의 주장을 묵살하려 했지만, 사람들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는 백련을 생각하자니 마냥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그는 파티원들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다.
‘나는 나팔꽃이 뭐가 좋은지 모르겠더라. 꽃말도 덧없는 사랑이고, 권력자에게 아내를 빼앗긴 화공이 죽어서 나팔꽃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잖아.’
‘네? 그래요?’
‘그래서 난 싫어. 나팔꽃이 꼭 무너지지 않는 권위를 상징하는 것 같아서….’
그날따라 유정은 구시렁구시렁 투덜거리기만 했다.
파티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던 그녀가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으니, 백련을 비롯한 파티원들은 그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리더! 리더, 이리 좀 와 봐.’
‘왜.’
‘모처럼 놀러온 건데 이러고 놀 거야? 리더가 유정이 기분도 풀어주고 해야지!’
‘아유, 언니도 알잖아! 리더는 정말 눈치가 없다니까. 가서 확! 손잡고! 이왕이면 깍지도 끼고! 좀 찰싹 달라붙어 있으란 말이야!’
투덜거리는 그녀를 보다 못한 쌍둥이 자매가 그를 타박했다.
심기가 상한 은하가 쌍둥이 자매를 노려보았지만, 온갖 험한 일을 당했다는 쌍둥이 자매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오히려 그의 손을 덥석 잡아서는, 이유정의 손에 깍지를 끼게 했을 정도였다.
‘생각해봐, 리더! 우리는 지금 놀이공원에 놀러온 일반인처럼 행동하고 있는 거라고.’
‘그런데 건장한 20대 남녀가 데이트도 하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다녀서야 되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은하는 주둥이를 나불거리는 쌍둥이 자매를 때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유정이 깍지를 낀 손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뭐 이런 거 가지고 화내고 그래? 가자, 너희 아트란티스 타고 싶다며.’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 이유정은 그가 입도 열지 못하게 하고는 아트란티스로 걸어갔다.
‘…좋겠다. 나도 오빠 손잡고 싶은데….’
그날 그는 집에 돌아갈 때까지 유정의 손을 놓지 않았다.
“은하야! 사진 나왔어!”
“오빠! 얼굴 이상해!”
은하는 은아와 은애가 뛰어오는 소리를 듣고 상념에서 깨어났다.
은아는 인화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틸란티스가 급경사에서 내려오는 순간을 촬영한 사진에는 볼살이 하늘로 올라간 그가 찍혀 있었다.
“…나 볼살이 이리 많았던가.”
“아니야! 얼마나 귀여운데! 지금도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걸!”
격하게 고개를 젓는 은아.
은하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불현듯 옛날 일이 떠올라서였다.
은아가 툭하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자신의 볼을 빨아들이고는 했던 일을.
아무리 누나라도 이 나이에 소중한 볼을 넘겨줄 수는 없었다.
“…오빠?”
물론 은하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여동생에게 복수를 대신하기는 했지만.
그런 게 있어, 은애야.
은하는 아무 말 없이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름 누나도 이상하게 나왔는데요?” “…내가 이렇게 못생겼다고?”
은하는 사진에서 플로핏햇을 한 손으로 눌러쓰고 우는지 웃는지 모를 임가을을 가리켰다.
옷매무새를 정돈한 그녀는 사진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러면서도 사진을 버리는 일 없이 핸드백에 집어넣었다.
“고마워, 은아야. 사진 얼마였니?” “아니에요. 엄마가 안 주셔도 된대요.”
“이렇게 받기만 하기는 미안하고…, 그럼 언니가 마실 거라도 살게.”
“네? 조금 전에도 마셨는데요?” “언니가 미안해서 그래. 아니면 따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그걸로 먹어도 되고.”
임가을은 은하가 나이를 가지고 놀린 이후로 누누이 언니라는 말을 붙였다.
마치 젊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은하는 웃음을 참고 따라갔다.
이제는 이정현이 체념 어린 얼굴로 점원이 주문을 확인하기도 전에 카드를 내밀었다.
“어? 멍뭉이다!”
카운터 구석에 몸을 말고 있던 강아지를 발견한 은애가 어머니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강아지는 은애를 보자마자 꼬리를 흔들며 머리를 들이밀었다.
“귀엽다! 가게에서 키우는 강아지인가?”
“멍뭉이는 마카롱이래!” “…마카롱도 먹고 싶니? 마카롱도 주문할까?” “아니, 멍뭉이가 마카롱이라고!”
강아지를 만지던 은애가 볼을 부풀렸다.
강아지가 마음에 든 나머지 이름을 붙인 모양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덩치가 큰 강아지에게 달라붙은 은애를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은아도 편승했다.
스마트폰을 셀프 카메라 모드로 전환한 그녀가 은애와 강아지를 찍으려 했다.
“애들은 참 체력이 좋아. 나는 이제 슬슬 지치는데….”
“이거 가지고 벌써 지쳤어요?” “누나가 온실 속에서 자라서 그래.”
임가을은 이정현이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며 어깨를 수그렸다.
은아에게 손을 붙잡혀 다니느라 지친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핸드백에서 꺼낸 사진을 보고 뭐가 그리 좋은지 입가를 끌어올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노니까 좋네.”
“왜요? 노는 게 오랜만이에요? 나는 매일 노는데.”
“어린애는 좋겠다.”
은하는 알면서도 물었다.
선녀에게 휴일이 있을 리 없었다.
백련은 휴가를 사용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기나긴 업무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 전, 그때가 그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전국을 순회할 때에는 더했다.
방문하는 도시마다 코쿤을 활성화시켜야 했으니 이동하는 시간이 유일하게 눈을 붙일 수 있던 시간이었다.
그조차도 서류작업이 남아 있다며 마나를 소진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야 할 때도 있었다.
‘괜찮아요, 오빠. 가을 언니는 저보다 더 힘들 거예요.’
은하는 백련을 도구로 부리는 무리를 가만두려 하지 않았다.
그들을 족친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겠지만, 악의란 악의는 보이는 대로 죽이려 했다.
그때마다 백련이 말렸다.
성인이 되지 못한 나이에 선녀가 된 그녀는 그가 이정현처럼 죽을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임가을을 거론하며 꿋꿋이 참았다.
‘…미안하다.’
‘오빠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일개 플레이어로서 악명을 떨치기만 했던 그는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부터 그녀를 지킬 힘이 없었다.
지켜보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틈이 날 때마다 청와대 담벼락을 넘어 그녀를 만나러 가는 일뿐이었다.
“대학생이 놀 때가 어디 있니? 도서관에서 과제하랴, 수업 복습하랴 예습하랴, 같이 팀플하는 사람이 발암이면 그것도 문제고…. 이게 끝났다 하면, 저게 터지고, 그걸 처리하는 사이에 또 다른 게 터지지 않나….”
“누나 잘 아네요.”
“대학생이니까.”
임가을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턱을 괸 그녀는 창밖에 보이는 사람들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공부도 공부고…, 두루두루 어울려야 하지, 남의 눈치도 봐야 하지, 애들 기 싸움도 관리해야 하지….” “누나 잘 아네요.”
“대학생이니까.”
은하도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몬스터의 위협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즐거운 미소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니 놀 수 있을 때 노는 게 제일 좋아. 은하 너도 놀 수 있을 때 신나게 놀아두렴.”
“누나는 오늘만 놀고 끝이에요?” “내일부터 다시 학교 다녀야지. 다음 주부터 4월이니, 중간고사도 준비해야 하고….” “중간고사요?” “응, 중간고사.”
임가을은 절로 한숨을 쉬었다.
성가시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십이좌를 새로 뽑을 때겠네.
그녀가 저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아차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4월에 있을 제2기 십이좌 선발.
기존 십이좌를 포함해 선녀정부의 관료들이 참여하는 회의였다.
그녀가 한숨을 흘리는 일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후보들 중에서 국가를 대표할 능력을 지닌 플레이어들을 선발하는 한편, 그들로 선녀의 존재에 반하는 세력을 견제해야 했다.
새로 선발된 사람들 중에 반대파가 있다가는 여러모로 문제니까.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녀의 칼이 되어줄 십이좌가 도리어 그녀를 겨누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특정 클랜이나 그룹에게 과도하게 힘을 실어줄 가능성 또한 있었다.
실제로 제3기 십이좌는 대다수가 백련을 지키는 칼이 아니라 그녀를 위협하는 칼이 되었다.
이 시기에 십이좌로 발탁되는 사람이…, 추영훈은 아직이었지 아마?
물론 제2기 십이좌를 선발한 이후에도 십이좌를 새로이 충원하기도 했다.
문준이 서울을 지키다 사망했을 때에는 난리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를 대신해 십이좌에 오른 추영훈을 제3기 십이좌라 부르지 않았다.
제2기 십이좌처럼 여섯 개의 좌를 대대적으로 선발하지 않았으니까.
“무슨 시험을 보는데요?”
“내가 왜 말해야 하는데?”
너 도와주려 그러지.
은하는 대뜸 선을 긋는 그녀를 보고 피식 웃었다.
제2기 십이좌 중에는 선녀의 존재에 반하는 세력에 가담한 십이좌도 있었다.
그들이 그녀를 선녀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원흉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입지를 흔드는 역할에 기여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새끼는 십이좌를 그만뒀으면서도 백련 속을 긁기도 했고….
추영훈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는 이 시기에 십이좌가 되지 않는다.
“말해도 모를 텐데….”
“뭔데요?”
“…선녀정부가 제2기 십이좌로 선발할 플레이어에 대하여 예시와 함께 논하시오.”
너무 적나라하게 말하는 거 아니야?
은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반면에 임가을은 “거 봐, 초등학생이 뭘 알겠니?”하며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까르르 웃었다.
“그게 시험문제에요? 누나가 어떻게 알아요?”
“교수님이 사전에 공지하셨으니까.” “그럼 답만 달달 외우면 되겠네.”
“이게 답이 정해진 문제도 아닌데 간단할 것 같니? 문제 그대로 나온다는 소리도 아니야. 저 문제를 토대로 나온다는 거지.”
“그게 그거지 뭐. 예시는 뭔데요?” “네가 들어서 어쩌려고. 들어도 모를걸?”
임가을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플레이어들의 이름을 줄줄이 나열했다.
플레이어들의 이름만 들어있지 않았다. 중간부터는 연예인 이름이나 식품 이름이 들어가 있기도 했다.
“…너구리, 육개장, 꼬꼬면, 아빠는 요리사, 왕뚜껑….”
“…누나는 라면만 먹고 살아요?” “대학생이니까.”
아무래도 대학생이라는 콘셉트를 계속 밀고 나가려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그녀가 열거한 이름에는 다음 기수로 뽑히는 십이좌들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문제는 임가을을 설득해야 하는 건데….
임가을이라면 적당히 의심할 여지만 주더라도 알아서 잘 하겠지.
나중에 서영 누나한테 부탁해도 되겠고.
“이 사람은 아닐 것 같은 사람이 한 명 있어요.” “누군데?”
임가을이 기대하지 않는다는 투로 대꾸했다.
“곽우혁 플레이어요.”
곽우혁.
창해클랜에서 신서영의 자리를 대신해서 내보낸 캐스터였다.
“왜? 왜 곽우혁 플레이어인데?”
임가을이 고개를 돌렸다.
창해클랜에서 몸을 담고 있던 플레이어의 이름이 거론되니 흥미가 생기는 눈치였다.
“창해클랜에 있었잖아요. 그러니 곽우혁 플레이어는 클랜을 해체시킨 선녀님을 싫어하지 않을까요?” “…….”
곽우혁은 실력만은 출중한 플레이어였다.
지면과 뱀을 다루는 능력으로 그를 따라올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그는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었다.
걸핏하면 비교되고는 하던 를 깎아내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백련에게 마법을 가르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백련은 실전이라는 이유로 날아드는 마법을 편산시켜야 했다.
어느 날 얼굴에 상처를 입고 돌아온 그녀를 보고야 진상을 깨달은 그는 곽우혁이 다리를 절고 다니도록 만들어버렸다.
“…그럴 듯하네. 그럼? 이 사람은 꼭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니?”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임가을은 퍼레이드를 보러 나가는 은아와 은애에게 손을 흔들었다.
은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머지는 양호한 편이었다.
그중에서 백련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사람을 말하라면 두 명을 거론할 수 있었다.
“아까 누나가 마녀라고 부른 사람들 있잖아요.” “마녀?” “네, 마녀.”
은하는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바닥에서 떠오른 은애를 내려다보며 답했다.
“누구였더라? 프리, 프리….” “프리시스 메모리?”
“아, 그 사람이요!”
프리시스 메모리.
방연지의 자리를 대신하는 그녀는 한국인의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던 플레이어였다.
그럼에도 클랜에 적을 두지 않은 그녀는 백련을 지지하는 힘이자, 훌륭한 스승이 되어주었다.
마법도 굉장하니까.
그가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임가을은 그녀의 마법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나머지 한 명은 미래를 볼 줄 안다는 마녀요.”
마지막으로 송윤서.
그녀 역시 클랜에 적을 두지 않은 플레이어였다.
그녀는 미래를 예언한다.
성인이 되지 못한 나이에 선녀가 된 백련이 반대파에게 견제를 당하면서도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에게 기댔던 부분이 컸다.
‘네 운명도 여기까지구나.’
그녀는 의 죽음을 예언한 사람이기도 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