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64
모든 초등학생들은 4학년부터 의무적으로 기초마나운용을 배워야 했다.
은하는 그래서 자유로이 다룰 줄 아는 힘을 학문적으로 파고드는 지루한 시간을 가져야 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마나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게 된 아이들은 체내 마나를 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은하는 대강당에 모인 5학년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자리를 잡은 아이들은 체내에 흐르는 마나의 존재를 느끼려 고심하고 있었다.
“마나는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으로 느끼는 거다. 잡생각을 버리고, 신체리듬에만 집중해.”
임도훈은 눈을 감은 아이들을 지나치며 요령을 알려주었다.
마나 없이는 살 수 없다.
마나는 언제나 생명체의 심장에 근간을 두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무의식적으로 호흡하고, 심장이 하루에 얼마나 박동하는지 모르고 사는 것처럼 체내 마나는 존재를 인지하지 못해도 신체 내부를 순환하고 있다.
체내 마나를 자각하려면 의식적으로 호흡하는 것처럼, 심장이 하루에 얼마나 박동하는지 아는 것처럼 당연히 지나치던 일들을 돌아볼 줄 알아야 했다.
“노은하, 너는…. 자습이나 해라.” “네.”
아이들을 살피던 임도훈은 멀뚱히 서 있기만 하던 은하를 발견했다.
무언가를 말하려던 그는 끙 소리를 내며 지나쳤다.
자습을 허가받은 은하는 눈을 감은 아이들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선생님! 왜 노은하만 자유시간인데요!”
“옳소! 옳소! 자유시간을 주세요!”
그러자 볼멘소리로 항의하는 김민지, 12세.
체내 마나를 발현할 줄 아는 민지는 은혁을 데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도훈은 눈가를 문질렀다.
물론 은하도.
“너희는 아직 멀었어. 너무 쉽다고 허투루 보지 마.”
“다시 배우는 김에 차근차근 배우라고.”
기본기는 중요하다.
허투루 배웠다가는 목숨도 허투루 날아가고 만다.
어깨를 으쓱인 은하는 창고에서 꺼낸 축구공을 차며 시간을 때웠다.
다들 열심히 하네.
발등으로 공을 차올려, 이마와 콧등 사이로 공을 받아냈다.
은하는 공이 떨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으면서 체내에 흐르는 마나와 씨름을 벌이는 아이들을 살폈다.
아이들은 열심이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대기에 녹아든 마나를 감지하는 것조차 싫어하던 아이들이 기를 쓰며 체내 마나를 감지하려는 모습은 의외이기도 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나.
작년 수련회에서 일어난 사건은 아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리라.
몬스터에 대한 공포를 절감하고, 살기 위해 누군가를 밟고 지나가는 일도 서슴지 않았던 아이들.
아이들은 작년 수련회 이후로 서로를 데면데면하게 굴기 시작했다.
학년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날을 기점으로 내적으로 성숙해진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두르고, 상대와 거리를 두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힘이 없어서는 빌어먹을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수업에 열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으리라.
“…하양이는 잘하네.”
은하는 하양이 마나를 발현하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양은 방출한 마나가 다른 아이들을 건드리지 않도록 제어하고 있었다.
임도훈에게 검사를 받은 뒤에는 해방한 마나를 옷을 개는 것처럼 고이 접었다.
방대한 마나를 방출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물 흐르듯 마나를 가다듬는 그녀였다.
게다가 하양은 다른 사람이 체내 마나를 확인할 수 없도록 저항 마법을 전개하는 동시에 술식이 부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도록 위장하는 마법을 짜고 있었다.
쟤는 왜…,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듀얼 캐스팅 비슷한 걸 하고 있는 거지?
은하는 혀를 내둘렀다.
그녀가 수련회에서 만들었다는 마법을 보고 느끼기는 했어도, 하양은 마법을 다루는데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하양아, 나도 알려주면 안 될까?” “나도 좀 알려줄래?” “어? 응, 그래. 어디에서 막혔어?”
시간이 흐르니 체내 마나를 감지하는데 난항을 겪는 아이들이 속출했다.
눈치를 살피던 아이들은 임도훈에게 칭찬을 받은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은혁아! 어떻게 하는 거야? 나 좀 알려줘!”
“응, 그래! 좀 어렵지? 나도 처음에는 죽는 줄 알았어.”
“저기, 민지야…. 나 좀 알려주면 안 될까?”
“처음이라 어려운 거야. 내가 도와줄게.”
은혁과 민지에게 다가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임도훈에게 별개로 받은 과제를 해결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던 두 사람은 슬그머니 다가오는 아이들을 반가이 맞이했다.
은근슬쩍 과제를 미루는 두 사람이었다.
“서나 너는 다 끝났어?” “하양이랑 제일 먼저 끝냈지. 나도 끼어줘.”
서나에게 오는 아이들은 없었다.
아이들은 서나를 무시하지 않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서나는 익숙한 눈치였다.
은하는 발등으로 가지고 놀던 공을 서나에게 넘겼다.
“과제는? 선생님이 과제 안 줬어?” “10분 동안 체내 마나를 균등하게 발현하는 일? 다 끝냈지.”
서나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정하양 다음으로 마나를 다루는데 소질이 있던 아이는 바로 그녀였다.
“그러면 축구공 위에서 해봐.”
“뭐? 그걸 어떻게 해.”
“하면 할 수 있어.”
은하는 무릎으로 튕긴 축구공을 서나에게 넘겼다.
축구공 위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벽면과 수면을 보행하기 위한 기초훈련에 지나지 않았다.
운동신경이 좋은 그녀라면 오늘 안으로 축구공 위에서 균형을 잡는 법을 배울 것이다.
“몸으로만 균형을 잡으려 하지 말고, 체내 마나도 발현해서.” “그럼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하나…가…아니라 두…이걸 어떻게 해?”
축구공 위에서 금세 균형을 잡은 서나였다.
서커스를 하듯 축구공을 굴리던 그녀는 체내 마나를 발현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은하는 볼멘소리로 항의하는 서나를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진서나 쟤는 엄살만 심하지, 시키는 대로 잘 하니까.
서나는 얌전하고 성실하다.
겉으로는 민지가 어른스러워보일지 몰라도, 친구들 중에서 어른스러운 아이는 서나였다.
혼자 내버려둬도 알아서 하리라.
“은하야, 나도 알려주라.”
“너는 어떻게 한 거니?”
“심장박동을 느끼라는 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 은하는 자신에게 모인 아이들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마나를 가르쳐달라고 모인 아이들을 적당히 돌려보내기는 힘들 것 같았다.
“일단 숨부터 쉬어.” “숨?”
“의식적으로 호흡해봐. 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은하는 모여든 아이들에게 숨을 쉬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숨을 쉬고 뱉었다.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려니 불편한 기색이었다.
“야, 은하야. 이거 맞아?”
“잘하네. 그대로 힘 좀만 주고.”
어떤 아이는 마나를 흘리는 데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새어나온 마나는 극소량에 지나지 않았던 데다,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했다.
은하는 친구들을 가르쳤을 때를 떠올리며 아이들을 격려했다.
그러다 한 아이가 눈에 밟혔다. 눈을 감고 집중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남자아이였다.
“서나야, 쟤 누구야?”
“누구? 쟤?”
은하가 보기에 남자아이는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아이는 연신 자신을 살피려 했다.
마치 무언가를 가늠하려는 것처럼.
“재진이랑 같이 다니는 남자애 말하는 거지?”
“재진이? 걘 또 누구야?”
“…염재진이라고, 올해 같은 반이 된 애잖아.”
“그래? 나는 몰랐지. 그래서 저 애는 누군데?”
“함찬욱. 은하 너는 이제 한 달이 돼 가는 데도…, 아니야, 너 원래 그랬지.”
“왜, 뭐가.”
축구공에서 내려온 서나는 딴청을 피웠다.
그녀에게서 눈을 뗀 은하는 함찬욱이라는 남자아이를 주시했다.
때마침 눈이 마주쳤다.
함찬욱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저기, 은하야.” “왜?” “나도 좀 봐줄래?”
“…그래.”
은하는 극도로 불안해하는 함찬욱에게 답했다.
아이는 마치 그를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뭐야. 얘 왜 이래?
은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마나를 발현하기 위해 숨을 고르게 쉬는 함찬욱은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두려움을 살 만한 짓은 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건만.
은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감정에 경계심을 세우는 사이─,
“─에잇!”
별안간 함찬욱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체내 마나를 발현하는 아이.
은하의 행동은 즉각적이었다.
신체에 닿은 마나가 체내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저항력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마나를 실은 팔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
“은하야!”
“──!!”
팔꿈치에 얼굴을 맞은 함찬욱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날아갔다.
바닥을 몇 바퀴나 데굴데굴 구르더니 철퍼덕 쓰러졌다.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으, 은하야 지금 뭐하는 거야!”
서나가 매달렸다.
은하는 손목을 붙잡는 서나를 뿌리치고, 온몸을 경련하는 함찬욱에게 걸어갔다.
신체는 심장이 생성하는 체내 마나와 대기에 녹아든 마나밖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타인의 마나를 체내에 받아들였다가는 회로에 혼란을 야기해 마나 폭주를 일으킬 수 있었다.
임도훈이 아이들이 거리를 유지하도록 시켰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서.
“은하야, 이러지 마.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참아!”
“이거 놔봐. 쟤한테 물어봐야 할 거 있어.”
은하는 등허리를 잡고 매달리는 서나를 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함찬욱은 고의로 체내 마나를 주입하려 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손을 잡고 마나를 발현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야! 최은혁! 노은하 얘 좀 말려봐! 정하양! 너는 얼른 찬욱이 지켜!”
“대장! 진정하고! 우리 말로 하자!”
대강당에 있던 아이들은 함찬욱이 바닥을 구르다 스탠드에 부딪치는 과정을 목격했다.
민지나 은혁도 마찬가지였다.
서나가 은하를 말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이 은하를 막으러 뛰어갔다.
뒤에서는 서나가 그에게 매달리고, 앞에서는 은혁과 민지가 그를 끌어안았다.
“…찬욱아! 찬욱아 정신 차려!”
아이들이 그를 막아내는 사이, 하양은 함찬욱을 지키는 방벽을 전개했다.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럼에도 함찬욱은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
“야, 비켜보라니까 좀.”
“은하야, 착하지? 우리가 다 들어줄 테니까 이러지 말고 말을 해줘.”
“야, 노은하!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거야? 다른 애들이 지금 너 쳐다보는 거 안 보여?” “맞아, 대장! 지금 상황이 장난이 아니라고!”
매달린 아이들이 소리쳤다.
그제야 은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 나는 아무것도 안 봤어….”
“…아….”
눈을 마주친 아이들이 뒷걸음질 쳤다.
“싫어…, 엄마 살려줘!”
“미안해. 나는 밟지 않았어. 나는 밟지 않았다고….”
트라우마를 떠올린 아이들이 머리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난데없이 토악질을 해대는 아이도 있었다.
“…야, 쟤가 지금 뭐한 거야?”
“나는 방금 찬욱이 때린 걸로밖에 안 보였는데?” “쟤 수업 시간마다 자기는 마나를 다룰 줄 안다고 잘난 척하잖아.” “보나마나 또 잘난 척이나 하다 찬욱이를 때린 걸 거야.”
은하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몇몇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소곤거리고 이었다.
“은하야, 그만….”
“…야, 참아.”
“대장….”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에게 매달린 친구들이 우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양도 저만치에서 굵직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노은하.”
함찬욱의 상태를 살핀 임도훈이 아이들이 주저앉은 공간을 헤치고 나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교무실에서 듣겠다. 살기부터 거두고, 마나 가다듬어.”
담담히 말하는 임도훈.
은하는 뭐라 말하려다 다물었다.
아이들은 겁을 먹었고, 함찬욱은 정신을 잃었다.
무작정 감정적으로 대응해봤자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괜한 혼란과 공포만 조성할 뿐.
어쩔 수 없이 풀어헤친 마나를 가다듬었다.
그제야 달라붙어 있던 친구들이 손에 쥐고 있던 힘을 풀었다.
“…미안. 많이 놀라게 했지?”
“””…….”””
친구들은 고개를 젓고 훌쩍이기만 했다.
임도훈에게 함찬욱을 넘기는 하양도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기만 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다들 반으로 돌아가고, 은하는 나 좀 따라와라.”
임도훈이 눈짓으로 따라오라고 알렸다.
친구들을 강당에 남겨둔 은하는 그를 따라나섰다.
☆
이날, 은하는 교무실에서 하교시간이 지나도록 벌을 서야 했다.
사정을 들은 임도훈은 그럼에도 마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아이를 상대로 힘을 휘두른 행동은 위험했다고 나무랐다.
함찬욱이 심하게 다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자칫 잘못했다가는 사람이 죽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은하 역시 동의했다. 반사적으로 행동하기는 했어도, 과했다는 점에는 인정했다.
의식을 찾은 함찬욱 역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반성문을 쓰는 선에서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누가 우리 아들을 때렸다고!?”
함찬욱의 어머니가 학교를 발칵 뒤집고 말겠다는 기세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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