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74
서나가 결석했다.
몸이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은하를 비롯한 친구들은 가벼이 여기고 넘길 수가 없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학교에 오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까.
아프더라도 학교에서 아프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출석을 놓치지 않았던 그녀였다.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서나네 안 가봤어? 진서나 학교에 안 오는 거 알고 있었어?” “아침에 전화가 왔었어. 목소리 들으니까 많이 아픈 것 같더라고….”
하양과 은혁은 조례가 끝나자마자 교실 뒤편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실은 여느 때보다 한적했다.
서나만 결석한 게 아니었다.
어제 은하한테 당한 아이들도 병결로 학교에 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입을 여는 일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기만 했다.
교실이라는 공간에 모여 있으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벽을 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은 답답한 공허함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민지도 아침부터 저러고…, 대장은 반에 들어오자마자 잠이나 자고 있고….”
공허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민지는 어제 어머니가 서나의 퇴학운동에 동참한 모습을 본 이후부터 저기압이었다.
조금이라도 말을 붙였다가는 신경질을 내기 일쑤였다.
은하는 오늘 잠을 자지 못했다며 책상에 퍼질러 자고 있었다.
임도훈이 건드려도 소용없었다.
종국에는 담임마저 손을 들었을 정도였다.
하양이도 어딘가 이상하고.
하양도 마찬가지였다.
은혁은 하양이 수업 중에 멍을 때리다 혼나는 모습을 보고 입술을 삐죽였다.
그나마 그녀는 양호한 편이었지만, 하루 종일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오늘따라 따로 노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 서나 문병 가자!”
분위기를 돋울 필요가 있다.
은혁은 방과 후가 되자마자 친구들에게 제안했다.
“…응, 나도 서나 보러 가고 싶어.”
하양이 조심스럽게 동의했다.
그녀 역시 수업이 끝나는 대로 서나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미안, 나는 못 갈 것 같아.”
“뭐? 왜? 같이 가자. 오늘 일 있는 것도 아니잖아.”
“…오늘은 안 돼.”
민지가 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책가방을 맨 그녀는 두 팔을 벌려 길을 막는 은혁을 밀치고 교실을 나갔다.
은혁은 서나를 보기 미안하다고 중얼거린 그녀를 그대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대장! 대장은 같이 갈 거지?”
“…미안, 오늘은 너희끼리 가. 나는 따로 할 일이 있어.”
은하마저 등을 돌렸다.
점심시간에 잠깐 일어난 것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퍼질러 자기만 했던 그는 두 사람을 뒤로 했다.
“…우리 둘만 가라고?”
결국 은혁은 하양과 둘이서 서나를 보러 가기로 했다.
☆
임도훈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반 청소도 생략하고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서나를 퇴학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으는 학부모들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서나는 우수한 학생입니다. 신문에도 실릴 정도로….”
“선생님. 그 신문 저희도 봤어요.”
임도훈은 학부모들을 설득하기 위해 서나가 용감한 어린이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코웃음을 친 학부모들이 그가 하던 말을 끊었다.
“그 신문 보고 저희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아세요?” “…….”
“어린 나이에 텔레파시를 쓸 수 있는 아인이 왜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않고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느냐 이 말이에요.”
“그건 나이가….”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고등아카데미 3학년은 연령 제한이 없잖아요. 초등학생도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임도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들이 연령을 불문하고 고등아카데미 3학년에 편입할 수 있는 이유는 초등학생 아인을 플레이어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몬스터에 대한 증오가, 플레이어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한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이었다.
“저는 선생님 반 아인이 구해달라는 텔레파시를 직접 받았어요. 처음에는 아이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마나관리기구에 신고했는데, 나중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아세요?” “…….”
“텔레파시가 혹시 내 마음을 조종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텔레파시는 그런 게 아닙니다. 아인에게만 나타나는 특수능력으로 마나가 짙은 지대에서도 통신을 할 수 있는….”
“저도 알아요. 아는데, 아인의 텔레파시가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해명된 것도 아니잖아요.”
“선생님은 텔레파시가 들리는 감각이 얼마나 이질적인지 아세요? 저는 무서워요. 그 애가 우리 애 마음을 엿보고, 조종하지는 않을지.”
“선생님 말씀대로 텔레파시가 인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아인이 텔레파시를 악용할 가능성도 있는 거잖아요?”
“오늘 나온 기사 못 보셨어요? 아인이 한 사람에게 며칠 동안 텔레파시를 보내서 미치게 했다는 기사 말이에요.”
“…….”
일반인은 아인에 대해 무지하다.
몬스터라 손가락질 당한 끝에 플레이어 업계에 몸을 담글 수밖에 없는 아인들이 자신들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임도훈은 제 할 말만 토하는 학부모들을 가만히 마주하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
친구들 중에서 서나가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는 아이는 하양뿐이었다.
친구들은 서나가 교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지, 그녀가 사는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서나가 친구들을 교회로 불러들이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며.
그래서 하양도 별 다른 일이 없고서는 서나가 사는 교회를 찾지 않았다.
“…정말 저거야?”
“응, 저거 맞아.”
교회는 성북동에서도 빈민가와 인접한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아스팔트가 벗겨진 언덕길을 오른 은혁은 초목 위로 보이는 십자가를 보고 제 눈을 의심했다.
십자가가 일부 부서져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낡은 건물이었다.
“…원래 이랬어?”
“…아니야, 이러지 않았어.”
마저 길을 걸었다.
칠이 벗겨진 벽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광경은 입구 돌담에 래커로 그려진 낙서였다.
낙서라고 하기에는 말이 순했다.
[악마의 아이를 당장 십자가에 매달아라!] [여기에 아인이 살고 있어요. ^^ 우리 제발 개 목걸이라도 채우자.] [시끄러워서 어디 살 수가 있나.]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패라 좀.]“”…….””
욕설은 바닥에도 있었다.
두 사람은 이외에도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마리아 수녀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여기 왜 이래요!?”
그러던 하양은 바닥솔로 돌담을 문지르고 있던 수녀를 발견했다.
퍼뜩 정신을 차린 그녀가 수녀에게 뛰어갔다.
“…하양이 왔니?”
수녀는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
서나가 교회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마리아였다.
“간밤에 어떤 썩을 놈들이 이 짓을 하고 간 거 있지. 두 번 죽여도 성에 차지 않을 새끼들이…!”
마리아는 이를 갈았다.
구둣발로 담배를 꺼뜨린 그녀는 두 사람에게 교회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했다.
은혁은 그녀의 안내를 따라 입구를 지났다.
수녀복을 입은 여성들이 입구 부근까지 침범한 래커를 닦고 있었고, 조그마한 아이들이 열심히 물 양동이를 나르고 있었다.
“다들 아침부터 이 고생이야. 목사 양반은 구청에 항의하러 가서 돌아오지도 않고….”
“목사님이요?”
“응, 그런데? 뭐 문제 있어?”
마리아가 대꾸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은혁은 담뱃갑이 비었다고 투덜거리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문제가 아니라…, 왜 목사님이랑 수녀님이 같이 있어요? 그리고….”
원래 교회에 수녀가 사나?
은혁은 지금이 돼서야 서나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교회에 수녀가 있을 리 없다.
수녀는 성당에 있는 법이었다.
“이거 순 멍청이 아니야?”
“네?”
“이 말 모르냐?”
마리아가 피식 웃었다.
담뱃갑을 아무 짝에나 집어던진 그녀가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았다.
마치 우매한 신도에게 깨달음을 전파하는 것처럼.
“신은 죽었다.”
“네?”
“세상이 한 번 멸망한 마당에 종교가 무슨 소용이야?”
신은 죽었다.
인류는 세상이 한 번 멸망하는 날, 구원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녕 신이 있다면 절망 밖에 없는 시련을 내리지 않았을 거라며.
인류는 신에게 버림받을 바에는 차라리 신을 죽이고 말겠다고 부르짖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로가 믿는 신의 기치 아래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전쟁을 벌이던 사람들은 세상이 멸망하고 나서야 서로를 인정할 수 있게 됐다.
“그럼 교회는 왜 있는 거예요?”
“신은 죽었어도, 사람은 살아야지.”
신이 인간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면 될 뿐.
과거 종교로서 기능하던 장소는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서로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하나의 이념 아래 모인 것이다.
“그러니 학교에서 배운 종교는 모두 잊어버려. 배워도 1도 쓸모없어.
뭐, 종교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마나교 같은 사이비 종교가 대다수니….”
마리아는 혀를 끌끌 찼다.
신은 죽었지만, 신이 죽은 자리에 새로운 신이 태어난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신이 죽은 세상에서도 신이라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갈구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에 광신도적으로 빠져든다.
그녀는 은혁에게 길을 가다 사이비 종교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수녀님, 서나는 괜찮아요?”
“그건 너희가 직접 보고 판단해.”
아이들이 모여 사는 방 앞에 서서 말하는 마리아.
“진서나. 네 친구들 왔다. 꾀병 그만 부리고 나와.”
마리아가 방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진서나! 들리면 대답해!”
“…저 아파요. 친구들한테 학교 못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그건 네 입으로 전해.”
“싫어요. 저 아프다니깐요.”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서나가 그녀답지 않게 떼를 쓰고 있었다.
마리아는 한숨을 쉬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근데 서나야, 아프니까 청춘인 거야.”
“아프면 병원에 가세요. 제가 늘 두는 곳에 약 있으니까 약이라도 드시든가요. 음악이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 하지 마시고.”
“이년이 지 아프다고 못하는 소리가 없어 아주. 그리고 나라가 허락한 건 음악만 아니라 종교도 있어, 이년아!”
“몰라요. 현기증 나니까 잘래요. 그리고 저 이년 아니에요!”
마리아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문을 때렸다.
안에서 반응이 없었다.
“네가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겠다면 나한테도 생각이 있지. 그래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이년아.”
마리아가 소매 속에서 열쇠를 꺼냈다. 담배로 누렇게 된 이를 드러내며 실실 쪼갰다.
“얘들아! 들어가서 진서나 이년을 당장 끄집어내라!”
“”네!!””
마리아가 문을 땄다.
하양과 은혁이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방 안이 어두웠다.
하양은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서나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층침대가 가득한 방 안에 이불을 뒤집어쓴 형체가 하나 있었으니까.
“서나야, 나 하양이야. 괜찮아?”
“야, 진서나, 많이 아파?”
두 사람이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은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이불은 꿈틀거리기만 할뿐,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미안. 와준 건 고마운데, 그만 돌아가 주지 않을래? 나 혼자 있고 싶어.”
“응, 넌 안 돼. 정하양, 최은혁! 진서나 이불 들춰!”
마리아가 손가락으로 이불을 가리켰다.
은혁과 하양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나야 미안!!””
우울할 때 혼자 있으면 괜히 더 우울해지고 만다.
두 사람은 서나가 뒤집어쓴 이불을 들추려고 힘을 주었다.
“이러지 마! 너희 그만 가라고!”
이불 속에서 반항하는 서나.
서나는 이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비록 맨발과 꼬리는 삐져나왔을지언정, 이불을 둘둘 말아 얼굴을 사수했다.
“어쭈, 이거 보게? 네가 전파녀냐? 그래봤자 네가 고개를 내밀면 나오는 건 입자가 아니라 비듬이야, 이년아!”
“이거 놔요! 약은 늘 두는 곳에 있으니까 제발 미쳐 날뛰지 말아요!”
마리아가 서나의 이불을 당겼다.
결국 서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이불 밖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너무해…, 씻지도 않았는데….”
“그러게 누가 이불 속에 있으래?”
팔짱을 끼는 마리아.
그리고 양 손으로 이불을 끌어당기는 서나.
“꾀병도 정도껏 부려야지. 네가 노래를 불러대던 친구들이 찾아왔는데 이런 모습 보일 거야?”
“…….”
서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윽고 붉은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떨어졌다.
“…아프다고 거짓말치고 학교도 안 갔는데, 친구들 얼굴 어떻게 보란 말이에요.”
“왜 못 봐. 네가 죄 졌어?”
은혁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서나는 눈물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너희가 이런 나랑 놀아주는 게 너무 미안하고…, 나는 바보 같이 도망친 거니까! 나보고 너희 얼굴 어떻게 보라는 건데?”
“네가 왜 도망친 거야? 그리고 우리가 너 놀아준 적 있어? 같이 논 거지!”
“맞아.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서나야.”
은혁과 하양이 대답했다.
서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엉엉 소리를 내고 울었다.
“…반 애들이 나보고 괴물이래. 사람들이 나보고…, 다 괴물이라고 했단 말이야! 너희도 봤을 거 아니야! 교회 앞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네가 왜 괴물이야! 우리가 언제 너 괴물이라고 한 적 있어?”
“나도 알아! 나 괴물 아니란 거…! 근데…, 근데…, 다들 나한테 그러잖아. 나 이제 학교 가기…, 너무 무서워. 학교 안 다닐 거야.”
서나가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은혁과 하양이 그녀를 설득하려 해도,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나 이제…, 학교 안 다닐….”
“”서나야!!””
“진서나!”
서나는 어젯밤부터 눈물을 흘리기만 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하루가 넘도록 눈물을 흘린 그녀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황급히 방을 뛰쳐나간 마리아는 구급차를 불렀다.
은혁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는 서나의 어깨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내가…, 힘이 없어서 그래.”
하양은 눈시울을 붉히며 이 광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힘이 없었다.
친구 하나 지킬 수 있는 힘이.
“그러니까….”
힘이 없다면 빌리면 된다.
앨리스의 직계라는 자리는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까.
이대로 좌절할 수 없었다
.
리라이프 플레이어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