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80
거실에 켜놓은 텔레비전에서 최근 불거진 일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다.
영원그룹의 회장 유선경은 삼남의 비리에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더 나은 영원그룹이 되도록 그룹을 이끌어나가겠다고 사과했다.
영원그룹의 삼남 일가는 오늘부로 모든 경영권을 내려놓고 제주도로 거처를 옮긴다고 한다.
사실상 유배였다.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새벽 3시, 단군건설 염준우 사장이 자택에서 뛰어내려 자살했습니다. 방에서는 그의 유언이 적힌─.]단군건설의 사장 염준우가 자살을 택했다.
며칠 전, 단군그룹의 비리를 고백하겠다며 기자회장에서 미친 듯이 난동을 부리던 그는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단군그룹은 단군건설을 포기했다.
KK건설과 동해건설이 부도가 난 회사를 흡수하기로 했다.
그 외에도 단군그룹은 이번 일로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아인 플레이어들의 비난이 이어진 것은 덤이었다.
다만 아인 플레이어들의 보이콧은 얼마 안 되어 사라졌다.
매스컴이 한시적으로 아인에 대한 긍정적인 보도를 전했다 한들, 결국 아인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그것밖에 되지 않았다.
아인은 여전히 박해의 대상이었다.
한 번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누군가를 탓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나약했다.
“어베니어야, 나 잡아 봐~라~!”
“누나아!”
은애는 텔레비전에는 관심도 주지 않고 집안을 뛰어다녔다.
이제 3살이 된 어베니어가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그녀를 쫓아갔다.
집안은 두 아이가 까르르 거리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최근 일어난 사건과 무관하다는 듯이.
“어베니어. 엄마가 쿵쿵 뛰어다니면 안 된다고 했지? 밑에서 무서운 아저씨가 이놈! 하고 올라올 거야.”
“”이노옴!””
거실 식탁에 앉은 줄리에타가 꺄꺄 소리를 지르는 어베니어를 혼냈다.
혼나는 줄도 모르는 어베니어는 은애를 흉내 내며 장난스러운 얼굴을 했다.
줄리에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여기요. 얘들아, 코코아 마시렴.” “고마워요, 은아 엄마.”
“와! 코코아다!”
“코코아다!”
코코아라는 소리를 들은 은애가 두 팔을 들어올리며 어머니에게 달려들었다.
“우리 딸. 엄마가 너무 방정맞게 굴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엄마 다칠 뻔했잖아.”
“미아은해요오오….”
이럴 줄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쟁반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어머니는 다리에 달라붙은 은애의 볼을 늘려 잡았다.
양 볼이 빨개진 은애는 코코아를 받자마자 어베니어를 데리고 거실로 도망쳤다.
“은애도 이러다 은아랑 은하처럼 덤벙거릴까 걱정이에요.”
“은아가 덤벙거리는 건 아는데, 은하 보스도 덤벙거려요?”
“얼마나 덤벙거리는데요. 잠결에 옷을 거꾸로 입지 않나, 리모컨을 손에 쥐고도 찾지 못하고, 한밤중에 창문을 열어놓고 나가기나 하고….
어제도 비 오니까 우산 좀 챙기고 나가라고 했더니 현관문 앞에 두고 나갔는걸요.”
어머니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입가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은하 보스는요? 주말인데 어디 나간 거예요?”
“이번에 서나 퇴원했다고 애들끼리 경복궁으로 놀러가기로 했대요.”
“…즐겁게 놀다 오면 좋겠네요.”
“그러게요.”
대화를 중단한 두 사람도 최근에 서나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있었다.
도안초등학교 학부모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극성맞은 학부모들이 서나의 퇴학에 찬성해달라는 공문을 보냈으니.
줄리에타는 자신이 학부모였다면 이런 일을 가만 두지 않았을 것이라며 길길이 날뛰었다.
상황이 반전되었을 때에는 서나의 퇴학을 반대하는 학부모들의 대표로 세워달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물론 그녀는 학부모가 아니었기에 대표가 되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동네에 아인에 대한 비방을 흘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녔다.
브루노가 그 뒤를 따른 건 예정된 전개였다.
‘은하 엄마. 은하 엄마도 집으로 온 공문 봤지?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잔을 내려놓은 줄리에타가 아이들에게 장난을 치러 떠났다.
자리에 홀로 남은 어머니는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뭐기는. 지금 학부모들이 서나를 퇴학시켜야한다고 들고 일어났잖아.
은하 엄마는 참가 안 할 거야?’
‘…서나는 애들 친구잖아요.’
‘그치, 서나는 애들 친구지. 근데 서나가 애들 친구인 거랑, 엄마들 입장은 다를 거 아니야. 안 그래?’
‘…….’
그때 그녀는 민지 어머니의 말을 단번에 부정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인에 대한 편견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았지만, 아인이 사회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가 아인과 어울렸다가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다는 것도.
서나는 착한 아이다.
부모가 없는 그녀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식이 먼저였다.
은하의 안전과 행복이 우선이었다.
‘나는 우리 민지, 나중에 애들한테 손가락질 당하는 꼴 못 봐. 나도 내가 나쁜 사람인 거 아는데…, 그래도 내 딸이 먼저지. 은하 엄마는 안 그래?’
‘저도 은하가 먼저에요. 먼저지만, 먼저라서 은하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하고 싶어요.’
두 사람이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모두 똑같았다.
단지 자식이 걸어가는 길을 지지해주느냐, 이끌어주느냐 겨우 그 차이였을 뿐.
‘은하가 좋아하는 친구면 오늘부터 엄마도 좋아하는 친구네. 다음에 또 놀러오라고 해.’
어머니는 은하가 서나를 처음 집에 데려왔을 때부터 다짐했었다.
은하의 선택을 지지하겠다고.
은하가 좋아하는 친구라면 자신도 좋아하는 아이라 생각하겠다고.
“엄마! 밖에 비가 와!”
“비! 비이! 엄마! 비!”
상념에서 깨어난 어머니는 은애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베란다로 향했다.
하늘은 이리도 맑건만,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잠깐 내리고 그칠 소나기였다.
“여우비네.”
“여우비?”
어베니어를 안아 올린 줄리에타가 대낮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은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낮에 내리는 비를 여우비라고 해. 오늘은 여우가 시집을 가나 보네.” “여우가? 결혼하는 거야?”
“그치.”
줄리에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은애를 보며 장난스럽게 답했다.
은애는 여우비에 얽힌 이야기가 신기한 눈치였다.
“그럼 언니, 여우가 결혼하는 게 슬퍼서 우는 거야?”
“어? 어어…, 그러게….”
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
생각지 못한 질문에 줄리에타는 난감해했다.
그때 어머니가 대답을 찾아 헤매는 그녀를 대신해서 말했다.
“여우가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구름이 슬퍼서 우는 거야.”
“구름이?” “응, 구름이 여우를 좋아했거든. 그래서 호랑이에게 시집가는 여우를 보고 너무 슬퍼서 우는 거야.”
“구름이 불쌍해. 그럼 지금 구름이 엉엉 울고 있는 거야?”
은애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구름에 감정이입하며 울먹거렸다.
무릎을 굽힌 어머니가 은애를 끌어안았다. 어깨에 손을 얹고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도록 방향을 유도했다.
“아주 잠깐 우는 거야.”
“정말?”
“구름이 여우의 행복을 빌기 위해 그만 울기로 하거든.”
어느덧 빗줄기가 약해지고 있었다.
비가 그치고 있었다.
태양 뒤에 숨은 구름이 눈물을 그치고, 애써 웃으려는 것처럼.
“그럼 이제 구름이 여우의 행복을 빌고 있는 거겠네?”
“그럼. 시집가는 날인데 웃어야지. 은애도 여우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빌어줄래?”
“응!” “우리 여우 꽃길 걷게 해주세요.”
“꽃길 걷게 해주세요.”
그러니 여우비가 그칠 적에는 여우가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으리라.
☆
요새 돈을 너무 많이 썼다.
정금전은 이번 달에야말로 기필코 허리띠를 졸라매야겠다고 다짐하던 차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뭐지? 뭐 시킨 건 없는데….”
금고 안에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던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난번처럼 다단계를 권유하려는 작자들이라면 다리를 부러뜨릴 생각이었다.
다리를 고쳐줄 흥부는 다른 데에서 찾으라고 말하며.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착한 일을 하면 복이 올 거라느니 하는 말이나 믿는 사….” “안녕하십니까, 정금전 도련님.”
후줄근한 운동복 속으로 배를 벅벅 긁다 눈을 크게 뜬 정금전.
문 앞에 정장을 입은 여성이 곧은 자세로 서 있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모를 리 없었다.
표정을 바꾼 정금전은 운동복 안에 넣었던 손을 빼고, 현관 모퉁이에 등을 기댔다.
“무슨 일이야?”
팔짱을 낀 그가 여성을 하대하는 자세로 말했다.
여성은, 동해그룹 총괄비서실장은 이런 일에는 익숙하다는 듯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녀가 두 손으로 내밀었다.
“뭐야?”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그녀는 그를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태연하게 답했다.
“하….”
여성의 정수리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그가 봉투를 받았다.
봉투에서 내용물을 꺼내는 순간, 명세서라는 글자를 읽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건…, 뭐야?”
“보시다시피 명세서입니다. 이번에 동해그룹을 통해 인부들을 고용한 내역입니다.”
“고, 공짜로 빌려준 거 아니었어?” “도련님. 잊으셨습니까? 이 세상에 대가 없는 공짜는 없습니다.”
“그, 그래도…! 가, 가족할인이나 그런 거 받을 수 있을 거 아니야! 아니, 그리고! 비용이 뭐 이리 많이 청구되어 있는 거야!”
“회장님께서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가족할인을 운운할 생각이라면 당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입니다.
또한 도련님께서 의뢰하신 내용은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에 추가비용이 발생했음을 알립니다.
회장님께서는 적을 공격할 때에는 꼬리가 잡히지 않도록 공격해야 하는 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금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진 꼬맹이 울었다.
독자적으로 알아보니 진 꼬맹을 공격하는 흐름에는 단군건설의 개입이 있었다.
그래서 녀석들에게 자신의 부하를 잘못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고 싶었다.
집을 나온 후로 거의 연락을 끊다시피 살았던 동해그룹에 힘을 빌려 달라 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그때 동해그룹 회장이자, 자신의 할아버지 정지만은 흔쾌히 들어준다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설마 손자한테 돈을 받을 생각일 줄은 몰랐지!”
“도련님. 설마 회장님께서 공짜를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뭣들 하고 있어. 안에서 돈 가지고 나오지 않고.”
“””네!!”””
“어어어…, 야! 너희 누구 맘대로 내 방에 들어오는 거야! 야, 이 자식들아! 신발 안 벗어!?”
동해그룹 총괄비서실장이 열어젖힌 문 뒤에 대기하고 있던 남자들에게 호령했다.
선글라스를 쓴 남자들이 정금전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가지고 온 장비로 금고를 따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알았어! 돈 주면 될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내 금고에서 당장 비켜!”
“저희도 도련님께서 지급하실 용의가 있다면 도련님 자산에 손을 댈 생각은 없습니다. 단─.”
그동안 무표정을 유지하던 동해그룹 총괄비서실장이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녀를 옛날부터 봐왔던 정금전은 그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을 괴롭힐 때마다 쾌락을 느낄 때 짓는 미소였다.
“─현금으로 지불하실 용의가 있으시다면 말입니다.” “안 돼! 카드! 카드로 지불할 테니 제발 내 현금을 가져가지 말아줘! 내가 금고에 모은 현금이 상당한 마나를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잖아!”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돈은 금고에 있는 걸로 받겠다고.” “제발! 무릎 꿇을 테니까 봐….”
“도련님.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을 텐데요. 동해그룹의 직계나 되시는 분이 함부로 무릎을 꿇지 말라고.”
눈초리를 세운 여성이 무릎을 꿇으려던 정금전을 붙잡아 일으켰다.
입장은 진작 역전되었다.
정금전은 하얀 장갑을 낀 여성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고 매달렸다.
금고에 있는 돈이 어떤 돈인데!
금액이 같더라도 사람의 손을 많이 타서 마나가 쌓인 정도가 다르단 말이야!
“물론, 회장님께서는 도련님께서 당장 현금으로 지불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며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이럴 속셈이었던 거구나?”
여성이 스마트폰을 건넸다.
그제야 정금전은 그녀가 강압적으로 나오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먼저 전화를 거신 쪽은 도련님이십니다.”
“…알았어. 줘봐.”
좀 더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 꼬맹을 돕는 게 아니었다.
어차피 자신이 돕지 않더라도 단군건설은 영원그룹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해체되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이미 덫에 걸려든 꼴이었다.
한숨을 쉰 정금전은 여성이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때마침 전화가 울렸다.
동해그룹 회장 정지만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할아버지 때문에 아주 자알 살고 있습니다. 손주 돈을 그리도 뺏고 싶으셨어요, 네?”
[먼저 부탁한 놈이 투정은…. 왜? 이자까지 갚을래?]“…용건이 뭐예요.”
돈 앞에 장사 없다.
정금전은 뾰로통한 얼굴로 화제를 돌렸다.
전화 너머로 피식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제 돈도 슬슬 떨어졌을 텐데…. 고집 그만 피우고 집으로 돌아와서 네 형이나 도와라.]“싫거든요. 일하기 싫어서 집에서 뛰쳐나왔는데 다시 일하러 집으로 돌아가라고요?”
[네가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지 않냐. 일 많이 시키지 않으마.]“할아버지, 일하면 지는 거예요.”
[그럼 너도 제주도로 내려가든가.]“…….”
정금전은 속으로 끙끙 앓았다.
동해그룹 회장 정지만은 경영권을 장자에게 상속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다.
장자 상속원칙을 오죽 강조했으면, 장자 일가를 제외한 직계들을 모조리 제주도로 내려 보냈을 정도였다.
장자 일가에 속했던 그는 제주도로 귀양가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언젠가 회장이 될 형을 보좌할 역할이 있었다.
내가 일을 왜 해.
앞으로 흥청망청 쓰면서 놀 건데.
일하면 지는 거라고!
물론 그는 일하기 싫다는 이유로 집에서 뛰쳐나왔지만.
할아버지가 자신을 제주도로 유배를 보내지 않을 거라 자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떵떵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가! 제주도로 가버리면 되겠네. 애들한테 올라오는 소식 들어보니 물 좋고, 공기 맑은 곳이라는 구나.]제주도는 안 된다.
정금전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
현재 제주도는 육지의 절반 이상이 몬스터의 서식지로 변모해 있었다.
한라산은 적색던전 중에서도 가장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적색던전이었다.
최근에 경기북부청사가 난이도를 갈아치우기는 했지만.
게다가 게임을 할 수 없단 말이야! 만화는 또 어디서 사고! 치킨이랑 피자는 어디서 배달해 먹으라고!
마나가 짙게 깔린 제주도 일대는 전자기기의 통신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제주도 중심부에 적색던전이 위치하고 있으니 어디를 가더라도 외곽을 따라 돌아서 갈 수밖에 없었다.
배달을 하게 되면 반드시 적자가 나고 마는 상황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테니까 다른 걸로 부탁드립니다.”
집으로 돌아가기도 싫고, 제주도로 유배를 가기도 싫다.
그러니 정금전은 저자세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이 있기는 하지.]빌어먹을 영감탱이.
정금전은 속으로 혀를 찼다.
필시 정지만은 자신이 납작 엎드릴 상황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동해클랜의 입지가 의정부 탈환전 이후로 많이 줄어든 상태다.내가 집으로 들어오라는 말은 하지 않을 테니, 네가 동해클랜을 맡아서 경영 좀 해라.]
“저보고 클랜로드를 하라고요?”
[네 실력에 무슨 클랜로드냐. 너는 그냥 경영만 하면 돼, 경영만!]“돈 굴리는 일이야 뭐. 적자 나도 나는 모르는 일이에요?”
[어차피 지금도 적자야. 너 알아서 관리해라.]“오케이. 그럼 바지사장이나….”
[그런데 말이다, 금전아. 바로 얼마 전에 김건 그 놈이 할애비를 놀리지 뭐냐.]“…….”
[이번에 KK클랜에서 십이좌를 배출했다고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 네비게이터로 선발됐다나 뭐라나…, 듣는 내내 짜증이 나더구나.이게 꼭 내 새끼는 학교를 좋은 성적도 받지 못하고 다녀서 속상해 죽겠는데, 옆집 애새끼가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했다는 소리를 듣는 심정이라고 해야 하나….
금전이 너도 할애비 심정 알겠지?]
“…그,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 그래서야.나는 많은 거 안 바란다. 동해를 적어도 KK클랜의 콧대는 꺾을 수 있는 클랜으로 만들라고.]
“할아버지,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나한테 적자가 나는 클랜을 떠안겨놓고 십이좌를 배출시키라고요?”
[내가 언제 십이좌를 배출시키라 했냐. 이왕 클랜 경영하는 거, KK클랜보다 더 나은 클랜으로 만들라는 소리지.어려운 일 아니잖아. 내가 제니스클랜만큼 국내에서 제일가는 클랜으로 만들라는 소리라도 했냐?]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잖….”
[됐고, 좋은 결과 기대하마. 못하면 알지?]“…….”
정금전은 벌레 씹은 얼굴로 스마트폰을 여성에게 돌려주었다.
가슴 앞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넣은 여성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뭐야. 왜 쪼개는 거야?”
“다시 도련님과 같이 일하게 돼서 기쁘네요.”
“엉? 뭔 소리야?” “오늘부터 동해클랜 행정고문으로 임명받았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정금전은 착잡한 얼굴로 할 말을 잃었다.
아주 작정하고 나를 감시하겠다는 말이구나.
언제부터 여우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우가 시집가는 날에 소가 되어 꾸역꾸역 일만 하게 생겼다.
☆
“야, 지금 비 오는데…! 저기 처마 밑까지 얼른 뛰어!”
“이상하다? 일기예보에서 오늘은 비가 오지 않을 거라 했는데….”
“우와, 옷이 다 젖었어! 오늘 우산 챙겨올걸….”
“나 하나 챙겨오기는 했는데. 음…, 곧 그칠 테니까 우산 쓰지 않아도 되겠지?”
“어차피 여우비니까 금방 지나갈 거야. 그때까지 여기서 쉬고 있자.”
“얘들아! 여우비가 뭐냐면 대기 높은 곳….”
“우와아아아! 저기 대장 혼자 우산 쓰고 오고 있어! 진짜 치사빤스다!”
“노은하가 노은하 했을 뿐인데 뭘. 그래도…, 우리만 비를 다 맞았는데 쟤만 저러면 안 되지. 가서 노은하 우산 뺏어오자, 돌격─!”
“돌격─!”
“나도 가야 해?”
“서나야, 우리도 얼른 가자!”
“…응.”
여우비가 내린다.
“─
이것들이 어디서 내 우산 뺏으려 하고 있어!”
“그러게 누가 우산 챙겨 오래!?”
“대장! 원래 이럴 때에는 다 같이 비 맞고 뛰어노는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 정하양 너 지금 마법 쓰기 있어, 없어!?”
“나 마법 안 썼는데? 어어어, 이리로 오지 마! 서나야, 패스!”
“패스. 그러게 왜 쓰고 그래. 나도 우산 가져왔는데 안 쓰잖아.”
“댕댕이 너 거기 안 서!”
여우비가 그칠 적에는,
다 같이 소풍을 떠나리라.
리라이프 플레이어 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