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82
민지가 집을 나갔다.
민지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가족들은 한밤중에 민지를 찾으러 동네를 돌아다녔다.
“여보세요? 응, 엄마. 민지 찾았어. 여기가 지금 어디냐면….”
민지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원 놀이터에 있었다.
은하와 둘이서 움직이던 은아는 민지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게 좋겠지?”
전화를 마친 은아는 미끄럼틀 위를 쳐다보았다.
민지가 안고 있는 고민은 은하가 어떻게든 할 것이다.
괜히 눈치 없이 다가갔다 그녀가 말을 꺼내기 불편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저건 은하 별, 내 별…, 그 옆에 있는 건 은애 별이고….”
오늘은 별이 참 맑다.
밤하늘을 올려다본 은아는 이름도 모르는 별마다 자신이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붙였다.
밤하늘이 이리도 환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달이 떠 있고, 수많은 별들이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만 유달리 특별하게 빛나고 있어서가 아니라.
“…….”
사람의 수만큼 별이 존재한다.
은아는 다시금 다짐했다.
저 별들을 지키기 위해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 거라고.
☆
“다들 너 찾고 있어. 집에 안 들어가고 뭐해?”
“…몰라, 나 안 들어갈 거야.”
민지는 말을 걸지 말라는 식으로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난간에 등을 기댄 은하는 그녀의 행동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은하는 그녀가 고집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소꿉친구로서 지낸 그가 민지의 행동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 그럼 들어가지 마. 여기서 자는 것도 나중에 추억이 되는 거지 뭐.”
“…….”
입술을 깨문 민지는 다리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그가 위로는 해주지 않을망정 속을 박박 긁는 게 야속하기만 했다.
노은하 이 나쁜 놈, 하양이가 이러면 걱정해줬을 거면서…!
물론 민지 역시 하양이 가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이제는 옛날 일이라지만, 어렸을 적부터 겁이 많고, 툭하면 울음을 터뜨리기 일쑤였던 그녀가 혼자서 밤거리를 걷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서나는 의외로 강단 있고, 생활력도 강해서 걱정이 덜 갈 것 같았다.
은혁은 굳이 찾지 않더라도 알아서 집으로 돌아갈 것 같은 이미지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금은 걱정해줘도 되는 거 아니야?
한참을 지나도 은하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고 있으니 괜한 반발심이 솟구쳤다.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은 채로 톡 쏘아붙였다.
“이럴 거면 왜 왔어. 나 혼자 있게, 좀 가란 말이야.”
“뭐 하러 왔긴. 너 보러 왔지 뭘.”
울분이 섞인 목소리에도 은하는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손톱으로 할퀴고 싶을 만큼 얄밉기 짝이 없었다.
“계속 보고만 있을 거야?”
“그럼 보고만 있지, 더 뭘 해?”
“너 나 설득하러 온 거 아니었어!? 정말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야?”
민지는 하도 기가 막혀서 고개를 들어 올리고 꽥꽥 소리를 질렀다.
아주 속에 불을 지르고 있다.
한 번 말을 내뱉으니, 다음 말이 나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내가 왜 집을 나온 건지 안 궁금해!? 정말 나 이러고 있는 거 보러 온 거야!?”
그녀는 속에 꿍하게 담아두고 있던 말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숨이 차올랐다.
어느새 미끄럼틀에서 일어나 은하를 마주한 그녀는 어깨를 위아래로 들썩였다.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은하가 입을 열었다.
“당연히 너 걱정돼서 찾으러 왔지. 집 나간 이유야 너희 엄마가 진작 말해줬고….”
“그러면서 나 속 터지게 하고 있어? 걱정이 되면 좀 걱정하는 척이라도 해주면 어디 덧나냐!?”
“그래서 네가 기분이라도 나아진다면야 들어주겠는데…, 그러지는 않을 거 아니야.”
“…….”
맞는 말이었다.
누군가의 걱정을 받기 위해 집을 뛰쳐나온 게 아니었다.
은하한테 위로해달라고 하더라도, 은하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어?”
은하가 별빛 아래에서 물었다.
그제야 그녀는 그가 답답한 마음을 모두 토로하게끔 행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시비를 거는 그가 섭섭하기는 했어도, 자신과 그는 원래 이런 사이였다.
난데없이 은하한테 폭언을 쏟아낸 후회가 밀려들었다.
자신이 한심해진 민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주저앉았다.
“…나, 플레이어가 되고 싶어. 근데 우리 엄마는 플레이어가 위험하니까 하지 말래.”
“너희 엄마한테 들었어.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 이유가 뭐야?”
해결책은 바라지도 않는다.
이 일은 자신과 부모님 사이의 문제니까.
민지는 그저 들어나 달라는 듯이 진로에 대한 문제로 부모님과 다퉜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다 은하가 묻는 말에 자신이 제대로 된 이유도 말하지 않고 무작정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
“…먹민지? 뭐야,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자유롭게…, 나답게, 살고 싶어서. 세상 사람들이…, 나를 알게 하고 싶어서. 그리고….”
너희랑 나란히 서고 싶어서.
입을 다물고 있던 민지가 띄엄띄엄 말했다.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 이유는 한 가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그런데 부모님에게는 고작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고 떠들어댔다.
부모님도 제대로 된 이유는 말하지 않고, 안정적인 행복을 추구하며 살라는 말이나 늘어놓았다.
“나…, 부모님한테 제대로 말하지 않았어. 내가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 이유를….”
“잘 말했어야지. 무작정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 어떡하겠어? 왜 말을 안 한 거야?” “그야…, 엄마랑 아빠라면 당연히 이해해줄 줄 알았지.”
“그런 게 어디 있냐. 부모님이라고 내 마음이 어떤지 이해할 수 있겠어?”
“그러게….”
민지가 시무룩한 어조로 동의했다.
부모님은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어차피 부모님은 자신이 플레이어가 될 거라는 미래를 반대할 거라는 생각에 무작정 제 목소리만 높이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말하면…, 이해해주실까.”
“그건 나야 모르지. 내 마음이 아니라 너희 부모님 마음인데.” “그러게….”
생각해보니 민지 역시 부모님이 어떤 마음으로 정해진 길을 가라 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어렴풋이 이해는 가면서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형이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어.”
“네가 아는 형? 자기가 현빈보다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그 오빠?”
“금전이 형한테 뭘 바라는 거야.”
“하긴….”
은하가 문득 화제를 돌렸다.
두 다리를 쭉 펼친 민지는 그를 따라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리는 밤은 오늘따라 별이 참 많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첫 번째로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고, 두 번째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라고.” “…….”
“내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는데, 부모님은 내 마음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크나큰 착각이지.
반대로 네가 부모님 마음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러네.”
민지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고 수긍했다.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반대로 자신의 마음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었다.
부모님과 끝이 보이지 않는 논쟁을 벌였던 근본적인 원인은 서로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을 거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제대로 된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무작정 주장만 앞세워봤자 상대방이 이해해줄 리가 없었다.
“별이 참 많지?”
“별은 또 왜?”
“그 형이 그랬거든. 이렇게 올려다보면 밤하늘에 별들이 촘촘히 떠 있는 것 같지만, 별과 별 사이의 거리는 손가락 마디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떨어져 있다고.”
“…노은하.” “왜?” “너, 알고 보면 감성이 되게 유치하구나?”
“뭐? 야, 먹민지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인생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해줬더니 뭐? 내 감성이 유치하다고?”
“어, 유치해 죽겠어. 내가 유치하다고 하는 거면 유치한 거야.”
민지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은하가 욱하며 노발대발했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문득 별들이 외로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끄럼틀에서 관측했을 때에는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별들은 사실 인간의 인생을 모두 소모해서 달려가도 도달할 수 없는 거리만큼 떨어져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도 그런지 모르겠다.
바로 가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지도.
그 간극을 극복할 수 없는 건지도.
“근데 네 유치한 말을 들어보면…, 사람들은 결국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외로이 살다 외로이 죽는 거겠네.”
“어…, 그게 그렇게 되나? 뭐 어때. 어차피 관에 들어갈 때에는 혼자서 들어가는데 뭐.”
“…….”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한 은하는 미끄럼틀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엉덩이에 묻은 흙을 탁탁 털어낸 그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있을 텐데도 애써 딴청을 피웠다.
그러다 침묵이 불편하다 싶었는지 끙 소리를 내며 머리를 굴렸다.
이윽고 그가 내놓은 대답은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내놓은 느낌을 물씬 풍겼다.
“그래서 별이 빛나고 있는 거지! 나 여기에 있다고, 나 좀 봐달라고. 자기 인생을 활활 태워서 저 멀리 있는 별에게 신호를 보내는 거야.
거리는 여전히 좁힐 수 없겠지만, 별이 발하는 빛은 다른 별들에게도 도달하지 않을까?”
“노은하, 너 솔직히 말해봐. 지금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주절대고 있는 거지?”
“아닌데.” “거짓말 마. 내가 너를 10년이나 알아왔어. 네가 아닌 것처럼 굴어도 내 눈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아?” “하, 또 궁민지 나셨구만….”
은하는 혀를 끌끌 찼다.
민지는 시치미를 떼는 그를 보고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은하치고는 그럴듯한 변명이었다.
배꼽을 부여잡고 깔깔 웃은 그녀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네 말이 맞을지도.”
사람은 평생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 것이다.
별이 남은 인생을 다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도록 빛을 발하다 사라지는 것처럼.
어쩌면 사람은 자신의 아주 작은 일부를 보여주기 위해 사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니 눈부시게 빛나고 싶다.
어느 누구보다, 너희처럼.
달빛 아래에서 빛나는 별들처럼.
“…나 역시 플레이어가 되고 싶어. 아니, 될 거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너는 안 말릴 거야?” “어차피 한 번 뿐인 인생인데 뭘.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되지.”
“…너, 은아 언니가 플레이어가 된다고 했을 때에는 말렸다면서. 정말 나는 안 말릴 거야?”
“왜 이래? 누나 인생은 내 꺼니까. 누나 인생이랑 네 인생이랑 같아? 아, 은애 인생도 당연히 내 꺼고.” “…우리 엄마가 그랬어. 개소리도 자꾸 하면 버릇 된다고. 시스콤이 도가 지나쳐도 단단히 지나쳤구나?”
민지는 고개만 뒤로 돌린 은하가 당당해하는 얼굴을 보고 깬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부러 우웩 하는 흉내를 낸 그녀는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가 공원 앞에서 서행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김민지─!!”
“민지야─!!”
부모님이었다.
민지는 자동차에서 내리자마자 자신을 부르며 뛰어오는 부모님을 눈에 담았다.
“은하야.” “왜?”
“나, 이번에는 부모님한테 제대로 말해볼게. 내가 왜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지 말이야.” “그래, 그럼. 민지 너라면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잘 할 수 있겠지.”
민지의 부모님이 바로 가까이까지 다가왔다.
깍지를 낀 손을 뒷머리에 가져다댄 은하는 이제 그만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민지와 그녀의 부모님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차례였다.
“내가 갑자기 뛰쳐나가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집을 나가면 어떡하니!”
저 멀리서 민지의 상태를 확인한 그녀의 부모님이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민지를 찾는 내내 안절부절 못했던 그들이었다.
사실 은하도 민지가 집을 나갔다고 들었을 때에는 걱정이 됐기는 매한가지였다.
“민지 찾아서 다행이다. 그치?”
“그러게. 오늘 별이 참 많다.”
“응! 예쁘지? 은애한테도 보여주고 싶은데, 너무 아쉽다.”
은하는 불이 꺼진 주택가 담벼락에 기대 있던 은아에게 다가갔다.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던 그녀가 생긋 웃으며 뒤에서부터 그를 끌어안았다.
둘이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참 많았다.
그 수만큼 수많은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고 말해주듯이.
“은하야.”
“왜?” “은하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어?”
“음…, 그러게. 누나는?”
“나는 엄마랑 아빠랑, 은하 너랑 은애랑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어!”
“죽을 때까지 같이 사는 건 힘들지 않을까? 내가 커서 여자친구도 만들고, 결혼도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음….”
밤하늘에서 시선을 뗀 그가 짓궂은 미소를 흘렸다.
그를 내려다본 그녀가 미간에 힘을 주며 답했다.
“그럼 내가 너희 집에 눌러 살지 뭐. 시누이가 돼서 내 동생 못살게 굴지 않나 감시할 거야. 24시간!”
“그건 좀 무서운데. 나 보고 아예 결혼도 하지 말라는 소리 아니야?” “은하 네가 결혼해도, 이 세상에서 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랑 엄마 다음으로 나란 소리야.
절대 날 소홀히 여기면 안 돼!”
“세상이 두 쪽으로 갈라져도 그럴 일은 없어. 이미 두 쪽으로 갈라진 세상이지만.”
은아의 말이 참 좋았다.
몸을 뒤로 기울인 은하는 그대로 그녀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코를 간질이는 비누 향이 마음이 누그러지게 했다.
“그래서? 은하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데?” “나도 누나랑 같아. 가족들이랑 행복하게 살고 싶어. 그리고─.”
은하는 잠깐 말을 끌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어딘가 씁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죽을 때에는, 후회 없이 행복한 삶이었다고 말하면서 죽고 싶어.”
리라이프 플레이어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