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85
이도진은 십이좌 중에서도 그나마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축에 속했다.
같은 시기에 십이좌가 된 강현철이 불길을 다루다 괜한 곳에 불을 지르는 것에 비해 양호했다.
게다가 회귀 전에 제2기 십이좌로 선발되었던 곽우혁이나 추영훈의 행실이 좋지 않았으니, 이도진은 더더욱 착실하고 신사적인 플레이어로 유명했다.
또 소유자이지, 마나도 잘 다루지, 성격도 좋지, 그러면서도 갑질을 부리지 않지─.
“─잘 생기기까지 했으니….”
은하는 부럽다는 시선으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만티코어를 상대하는 이도진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더럽게 잘생겼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몬스터에 대한 트라우마 따위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듯이 이도진을 찍어대기 바빴다.
“우와~! 저 오빠 진짜 잘생겼다!”
“어디 어디!? 나도 보여줘!”
“정말이야! 연예인처럼 생겼어!”
“나 이 오빠 예전에 TV에서 본 적 있어! 연예인인 줄 알았는데 플레이어였구나!”
오죽하면 마나관리기구에서는 플레이어들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조각 같은 외모를 지닌 그를 방송에 내보내기까지 했다.
플레이어의 존재를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는 일반인들에게 이도진은 언론에 가장 많이 노출된 플레이어라 할 수 있었다.
“세상에…,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어떻게 플레이어를 하고 있지? 이건 드라마에 대한 모독이야!”
“먹민지 너는 이 거리에서 이도진 얼굴이 보여?”
은하는 창틀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몸을 절반이나 걸쳐놓은 민지에게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바닥에 발을 짚은 민지가 언짢은 얼굴로 노려보았다.
“노은하. 말 똑바로 해. 이도진이 뭐니, 이도진이…. 도진 오빠가 네 친구야? 도진 오빠라 불러야지! 도진 오빠!”
“…됐고, 이 거리에서 이도진 얼굴이 보여?”
“당연하지! 저기에 잘생긴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그걸 못 볼 수가 있어!?”
“어…, 그래….”
은하는 말을 말기로 했다.
민지가 이리도 열렬한 어조로 덤벼들어도, 은하로서는 겨우 이런 일로 대립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로부터 멀리 떨어지기로 했다.
“대장, 아무래도 민지 쟤가 오늘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아. 어쩌면 아까 마신 우유가 쉬기라도 한 거 아니었을까?”
“이 날씨에 우유가 쉴 리 있겠어? 그냥 내버려둬, 쟤 또 병 도진 거야. 가만히 무시하면 알아서 정신 차리겠지.”
“여윽시 대장이야!”
“왜? 나도 이도진 플레이어 엄청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그때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그녀는 붉은 눈을 가늘게 떠서는 이도진의 전투를 관찰하고 있었다.
“얼굴도 얼굴이지만…, 날쌔게 움직이면서 몬스터의 공격을 유인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다.”
“그건 나도 인정.”
서나의 눈은 삼각 귀를 쫑긋거리며 이도진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이도진은 자신보다 덩치가 몇 배나 큰 몬스터를 상대로 물러서는 일 없이 운동장을 종횡무진 달리고, 틈을 노려 벼락을 떨어뜨렸다.
은하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강현철이 전략 따위는 개나 주라는 식으로 무식하게 힘을 휘두르는데 반해, 이도진은 생각하며 움직일 줄 알았다.
이도진 역시 자신처럼 마나 효율을 추구하는 스타일이었다.
“은혁아, 잘 봐둬. 강현철 같은 오징어나 동경하지 말고, 이도진 같은 플레이어를 동경하라고.” “노은하! 내가 이도진이 아니라 이도진 오빠라 했지!”
“…대장, 나 오늘부터 이도진 플레이어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거야.”
무언가를 다짐한 은혁이 마치 홀린 것처럼 창밖을 내다보는 서나를 곁눈질했다.
서나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은하는 그를 위로하기 위해 어깨를 토닥이려 했다.
그러다 하양의 손을 붙잡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정하양 얘는 언제까지 잡고 있을 생각인 거지?
이도진이 내리치는 번개를 목격한 반 아이들은 벌써 트라우마에서부터 벗어나 있었다.
몬스터의 위협은 한풀 꺾였다.
그런데도 하양은 그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은하야, 왜?”
헤실헤실 웃으며 묻는 하양.
은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정하양 얘도 참 변했어.
얘가 원래 이런 식으로 능청스러운 애가 아니었는데….
우리 정하양이 달라졌다.
시기는 짐작이 갔다.
계열사 아이들과 교류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어쩌면 한서현과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는 이후부터인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아니야.”
“치.”
생각해보면 은하가 잡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붙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하양이 입술을 삐죽였지만, 창가로 시선을 향했다.
“…….”
전투는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체구를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지기 일쑤인 만티코어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몸을 일으켰다.
낮게 으르렁거린 소리가 들리고, 녀석의 주위에 흉흉한 기운이 몰아쳤다.
마지막 발악이었다.
흉포한 소리를 내지른 번개가 이도진에게 떨어졌다.
“꺄아─!!” “야! 노은하!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그 광경을 목격한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창밖에서 고개를 돌린 민지가 다급하게 은하를 찾았다.
“괜찮아.”
은하는 창밖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이도진이 여기에서 쓰러질 리가 없었다.
그의 기프트는 .
체외로 발현하는 모든 마나가 전류가 되는 힘을 지닌 그가 고작 몇 줄기밖에 되지 않는 번개에 쓰러질 리가 없었다.
역시나….
오히려 이도진은 자신을 공격한 번개를 제 힘으로 만들었다.
크르응!
마지막 발악조차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만티코어가 재빨리 몸을 틀었다.
이도진의 반격을 가까스로 피해낸 녀석이 부러진 날개를 움직여 솟구쳐 올랐다.
“야야야야! 지금 여기 바라보고 있는데!?”
“괜찮다니까.”
민지가 호들갑을 떨었다.
은하는 이도진의 발목을 붙잡으려 학교를 공격하려는 만티코어를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도진 혼자 여기에 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실제로 그 역시 공중으로 치솟은 만티코어가 입안에 머금은 마법을 보고도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녀석이 불길과도 같은 힘을 토해내는 순간─.
─필름 디스포설(Fil
m Disposal)
교사 전면부까지 들이닥친 마법은 마치 투명한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넘어오지 못했다.
녀석이 마법을 발동한 순간을 앞뒤로 잘라버린 것이다.
은하는 시간대를 분리시킨 마녀를 찾기 위해 감지망을 전개했다.
옥상 위에 가 있었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크르어어억!
마치 마법이 무산된 녀석이 등을 돌리는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감지망 바깥에서 날아든 탄환이 한 치의 오차 없이 만티코어의 미간을 노렸다.
마나가 응집된 탄환이 뼈를 부수는 소리를 내면서 내부에서부터 터져나갔다.
“…어? 뭐야! 누가 총을 쏜 거야!”
탄환은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크기였다.
은혁은 탄환이 대형 몬스터의 두개골을 부수는 것을 목격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감지망 바깥에서 쏜 거야. 그렇게 샅샅이 찾아도 스나이퍼는 보이지 않을 거야.”
누군지는 몰라도 방아쇠를 한 번 당긴 것만으로 만티코어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아무리 녀석이 숨이 다하고 있던 때라고 하더라도, 원거리에서 녀석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은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은하는 올해 초에 십이좌로 선발된 스나이퍼를 떠올렸지만, 이내 아이들이 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오빠! 사랑해요!”””
“””제발 날 가져가요!”””
학교에 있던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얼굴을 내밀고 환호성을 토했다.
만티코어의 소멸을 확인한 이도진은 아이들의 새된 환호에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우! 유! 빛! 깔! 이! 도! 진!”
“은혁아, 도진 오빠 정말 멋지지 않니? 어떻게 저렇게 멋진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거지?”
“…대장. 나 진짜 오늘부터 이도진 플레이어 같은 사람이 될 거야.”
정신이 없을 정도로 떠들썩했다.
친구들에게 이도진의 전투를 지켜보라고 조언했던 은하는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쉬었다.
눈이 하트로 변한 민지는 팬클럽을 창단하겠다는 기세였고, 서나는 연신 감탄하고만 있었다.
은혁은 동경심과 경쟁심이 섞인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고.
“하양이 넌 뭐 느낀 거 없어?” “느낀 거? 음….”
은하로부터 예고도 없이 기습 질문을 받은 하양.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댄 그녀는 잠깐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이내 할 말을 떠올렸는지 손뼉을 쳤다.
“은하 너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저렇게 멋진 사람이 되는 거겠지?”
“…미안하다. 그건 죽었다 깨도 무리야.”
해맑은 미소로 비수를 꽂는 하양이었다.
☆
“오빠, 이것도 먹어보세요! 이게 학교식당에서 가장 맛있는 반찬이에요!”
“너는 이제 좀 비켜! 도진 오빠, 아직 이거 안 먹어봤죠?” “형! 형! 형 같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혹시 강현철 플레이어하고도 친해요!?”
“하하…, 얘들아…, 한 명씩 말해주지 않을래?”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이도진은 제대로 점심을 먹지도 못했다.
그가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이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만티코어를 물리친 그를 보고 흥분한 아이들은 수저를 움직일 시간도 주지 않았다.
“진서나 네가 웬일이야? 네가 저기에 끼지를 않고….”
“애들이 저리 많이 모여 있는데, 내가 저기에 어떻게 끼니? 나 빈대떡 되고 싶지 않아.”
이도진은 학생식당 정중앙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변두리는 한산했다.
소란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은하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점심을 먹는 서나에게 말을 걸었다.
민지와 은혁은 학생식당에 이도진이 들어섰다는 소문을 주워 듣고는 종이 울리자마자 제일 먼저 복도를 뛰쳐나갔다.
지금은 그의 좌우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말을 거는 중이었다.
반면에 서나는 이도진에게 그다지 관심을 주지 않는 것 같았다.
“도진 오빠가 정말 멋있기는 해도, 나는 너희랑 같이 밥 먹는 게 좋아.
그런데 최은혁 쟤는….”
입에 숟가락을 문 서나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시선에는 이도진이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는 은혁이 있었다.
“뭐 어때. 은혁이한테 제대로 된 목표가 생겼는데. 강현철보다 낫지 뭘.”
“음…, 그건 그래.”
그녀도 은하의 생각에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걸핏하면 시가지에 방화를 지르고 다니는 강현철보다는 신사적이고 성실한 이도진이 괜찮은 사람이기는 했다.
“다 먹었으면 교실로 돌아가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여기에 더 못 있겠다.”
“은하야, 서나야. 우리 매점이라도 다녀올래? 나 따뜻한 코코아 먹고 싶어!”
“찬성.”
아이들은 학생식당을 뒤로 하기로 했다.
은하는 식당을 나오면서 이도진이 어쩌지도 못하고 난감해하는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먼 미래에 국내 최강의 플레이어라 불릴 이도진도 초등학생 아이들을 상대하기란 버거운 모양이었다.
이거 가지고 쩔쩔매면 어떡해.
앞으로가 더 고생길일 텐데….
은하는 속으로 민지와 은혁에게 시달리는 그에게 건투를 빌었다.
자고로 영웅이란 밥을 먹을 때에도 쉬는 날이 없는 법이다.
“응? 저 언니도 플레이어인가?”
학생식당을 나와 매점으로 향하던 때였다.
하양은 매점 앞에서 오도카니 서 있는 여성을 발견했다.
헤드밴드형 청력보호구를 목에 걸친 여성은 유리문 너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라이플처럼 생긴 총기를 등에 맨 그녀는 어디를 보나 플레이어였다.
“저 사람은….”
“아는 사람이야?”
“아는 사람이라면 아는 사람이지. 너희도 한 번 본 적 있을 거야.”
은하는 유리문에 비친 여성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이들은 붙임성 없는 얼굴을 보고 그녀의 근처에는 접근도 하지 않았지만, 은하는 두 사람을 끌고 다가갔다.
“안 들어갈 거예요?”
유리문 앞에 서 있던 여성에게 말을 붙였다.
매점 내부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여성이 시선을 살며시 아래로 내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동자가 그를 응시했다.
“…나, 여기 학생 아닌데?”
“누나 여기 학생 아닌 거 모르는 사람 없거든요? 매점 이용해도 뭐라 그러는 사람 없어요.” “…….”
스나이퍼는 침묵했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은하가 붙잡고 있던 문을 지나 매점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렴, 얘들아. 뭐 먹을래?” “핫초코 세 개 주세요!”
“아주머니, 따뜻한 걸로요.”
카운터로 쪼르르 달려간 하양이 손가락 세 개를 내밀며 주문했다.
서나가 옆에서 조그마한 목소리로 첨언했다.
두 사람을 알고 있던 매점 주인은 주문한 음료를 주면서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메뉴를 찬찬히 훑고 있던 여성에게 물었다.
“아가씨는? …아가씨?”
매점 주인이 여성을 불렀다.
여성은 여전히 메뉴를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이 사람이 원래 다른 사람 말을 잘 안 들어요.
핫초코를 한 모금 들이킨 은하는 속으로 그녀를 두둔했다.
그녀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스나이퍼로 활동할 때를 제외하고, 평상시에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플레이어.
그럼에도 그녀의 실력은 스나이퍼 중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
그렇기에 사람들은 조롱과 경의를 섞어 그녀를 라고 불렀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는 조롱으로.
무음으로 저격한다는 경의를 담아.
“…주문할게.”
십이좌 유수진.
십이좌 중에서도 최연소로 선발된 그녀는 조롱과 경의를 받으면서도 시종일관 흔들리지 않는─.
“─고구마 피자빵 하나, 핫바 두 개, 슈넬치킨이랑 아마치킨 하나, 치즈햄버거랑 불고기햄버거 하나, 프링글스 종류별로 하나씩, 매운 새우깡이랑 웨하스 그리고 오감자랑….”
“…아가씨, 혼자서 다 먹을 수 있어?”
처음으로 매점 주인과 눈을 마주한 스나이퍼는 덤덤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피크닉 다섯 개.”
“””…….”””
“이럴 리가 없는데….”
그녀가 이리도 긴 말을 할 줄은 몰랐던 은하는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기억 속에서 제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하던 스나이퍼의 이미지가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