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87
선력 7년의 마지막은 별다른 이변 없이 다가왔다.
도안초등학교 아이들은 도심을 붉게 물들였던 단풍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에 눈이 내려앉을 때쯤에야 방학을 맞이했다.
수업시간에는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던 아이들이 오늘만큼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방학이라고 너무 놀지 말고.
너희는 내년부터 초등학교 6학년이야. 다른 학년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너희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임도훈은 교내에서 반 인원이 제일 적은 아이들을 둘러보며 충고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들떠 있던 아이들은 눈빛을 달리 하며 그가 진지하게 꺼내는 이야기를 경청했다.
“법적으로 성인으로 보장받는 나이는 만 19세이지만, 너희도 알겠지만 사문화된 지가 오래지.
나는 자기 앞가림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성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너희들이라면 너희 앞가림을 할 수 있다고, 아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 중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진학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거야.
이 학교에 다닌다는 의미는 중학교에 입학할 만한 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 테니.
하지만 몇몇은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는 일도 있을 테고, 직업학교를 찾는 일도 있을 거다.”
대한민국은 법적으로 국민들에게 연령에 따른 의무교육을 보장하고 있다.
이조차 멸망한 세상에서 명문화된 제도에 지나지 않았다.
당장 빈민가만 하더라도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정재계의 아이들이 상당수 재학하고 있는 도안초등학교에서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 중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잡역에 투입되거나, 직업전문학교에 들어가 사회진출을 앞당기려 하는 경우도 높았다.
그러다 보니 대학교에 입학하는 경우는 극히 낮았다.
“어쩌면 너희에게 편히 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 수도 있어.
방학 동안 놀 생각만 하지 말고, 조금은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도안초등학교 학생들은 대다수가 중학교로 진학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미래가 안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순간부터 쉼 없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했다.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실력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세워야 했다.
“그러니 방학 잘 보내고. 이중에서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지원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나를 찾아와도 좋아.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을 테니까.”
임도훈은 그 말을 끝으로 방학식을 마쳤다.
짐을 챙기던 아이들 중에서 몇몇이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 위해 교탁으로 다가갔다.
국공립 중에서도 지원정책이 많은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지원하고 싶은 아이들이 상당수 있었다.
“대장, 우리도 집에 가자!”
“드디어 방학이네. 얼른 집에 가서 밀린 드라마나 몰아봐야지. 너희들 오늘 나 부르지 마. 알았지?”
플레이어 아카데미를 지원하기로 결심한 은혁이나 민지는 임도훈에게 조언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두 사람은 지원을 망설일 생각이 없었으니까.
은하가 플레이어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선생님 말대로 정말…,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구나. 초등학생으로 있을 수 있는 게….”
교문을 나서는 길에 하늘에서 눈이 부슬부슬 내렸다.
털장갑을 낀 손을 하늘을 향해 내민 서나는 호를 그리며 떨어지는 눈을 받아냈다.
눈 결정은 금세 온기에 녹아 사라졌다.
“너희는 결정했어?”
앞서 가던 하양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 자리에서 그녀가 말하는 바를 모르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유치원 때부터 결정했던 일인걸. 나는 플레이어가 될 거야! 그러니까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가야지.”
은혁은 언제나 한결 같았다.
플레이어가 되어 누군가를 구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은하에게 은아의 아카데미 생활에 대해 꼬치꼬치 물을 정도였다.
“나도 그래. 플레이어가 될 거야. 플레이어만큼이나 자유로운 삶은…, 거의 없으니까. 내 힘으로 성공하고 싶어.”
여름방학 때 집을 나간 적이 있던 민지는 부모님과 깊은 대화를 통해, 조건부 허락을 받았다.
조건부 허락이란 그녀가 플레이어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치르고 합격을 받았을 경우, 그리고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에도 그 마음이 변치 않을 경우 두 가지였다.
그녀는 입학시험에서 떨어지거나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시기, 이 길이 아니라고 느꼈을 때에는 얌전히 부모님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고 한다.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민지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은하를 쳐다보았다.
은하는 교실에서 임도훈이 미래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꺼냈을 때부터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지금도 가만히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기만 했다.
“서나 너는?”
하양도 은하가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잠깐 그에게 시선이 향했던 그녀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눈을 맞고 있는 서나에게 물었다.
새하얀 눈이 하늘하늘 떨어지는 세상에서 금빛 머리칼이 눈에 띠도록 나부꼈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면 교회를 나와야 해서…, 원래는 마리아 수녀님을 따라 수녀님이 되거나, 그게 안 되면 잡역이라도 할 생각이었어. 근데….”
교회에서 사는 서나는 중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교회를 나와야 했다.
사실 그녀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교회를 나와야 하는 미래를 상정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기 좋아했던 그녀는 마리아의 권유에 따라 수녀가 되어 교회에서 일할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니면 허드렛일이라도 한다거나.
“그거 안 하려고, 나.”
사회에서 천대 받는 아인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었다.
여성 아인에게는 특히.
그래서 서나는 교회에 있을 수 있는 수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꿈이 바뀌었다.
“나도 플레이어가 되고 싶어.”
계기는 예전부터 조금씩 있었다.
완전히 결심하게 된 계기는 올해 1학기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때 서나는 아인에 대한 멸시를 직접적으로 경험했다.
그동안 그녀가 피하고 있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저 시선을 죽을 때까지 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녀가 되어도 변함없을 것이라고.
그럴 바에는 누구도 자신을 천대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플레이어는 아인이 보이지 않는 계급에서 드높이 오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너희들이랑 계속 같이 있고 싶기도 하니까. 하양이 너는?”
살며시 미소를 지은 서나가 화제를 하양에게 넘겼다.
아이들의 시선이 뒤로 걷고 있던 그녀에게 쏠렸다.
“음…, 나도 여러 모로 생각을 해봤는데….”
하양이 발목까지 오는 부츠를 앞으로 툭 내밀며 쑥스러워했다.
그녀는 앨리스그룹의 직계였다.
한 달 전, 앨리스그룹의 정통성을 지닌 남동생이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직계로서의 교양을 갖추기 위해, 경영자로서의 소양을 갖추기 위해 중학교로 진학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달랐다.
“나도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입학할 거야. 플레이어가 될지, 되지 않을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뭐야. 왜? 하양이 네가 플레이어 아카데미에는 왜 가려고?”
민지는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눈을 크게 떴다.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하양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하양은 앨리스그룹의 직계로서 살아갈 것처럼 보였으니까.
“나는 약하니까. 다시는 저번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다른 사람이 너희나 나를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
“근데 그건…, 플레이어 아카데미가 아니어도 되는 거 아니야?”
은혁이 돌담 위에 내려앉은 눈을 뭉치며 말했다.
저번처럼.
그건.
기업체가 서나를 공격하려고 했던 사건은 아이들 사이에서 되도록 언급하려 하지 않던 화제였다.
정작 당사자인 서나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플레이어 아카데미에서 전문적으로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면 누구도 재력으로도, 권력으로도, 무력으로도 날 건드리지 못하지 않을까?
그리고 내 비호를 받는 사람들도.”
“…그러겠지. 하양이 너처럼 그런 생각을 해서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사람도 없지는 않으니까.”
은하는 할 말을 찾으려는 아이들 사이에서 그동안 다물고 있던 입을 뗐다.
눈을 마주친 하양이 추위에 빨개진 볼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나도 이제 누나가 됐어. 내 동생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어.”
정재계의 아이들이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일이 그리 드문 것은 아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카데미에 들어온 그들은 자신이 적을 두고 있는 집안의 힘이 되기 위해 유망한 플레이어들을 찾으려 하고는 했다.
유도준이 그러했다.
후계자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입학했던 그는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줄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하양도 앨리스그룹의 힘이 되어줄 플레이어들을 찾을 생각인 것이다.
“너희들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해도 계~속 같이 있고 싶기도 하고!”
“어? 나도 그 생각 했어.”
하양이 진지해진 분위기를 웃음으로 마무리 지으려하자, 서나가 반가운 기색으로 동의했다.
의견이 일치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손을 맞잡고 폴짝폴짝 뛰었다.
민지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거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던 은하에게 화제를 던졌다.
“그래서. 노은하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뭐가?” “뭐기는. 초등학교 졸업한 다음에 뭐가 되고 싶냐고. 왜 들었으면서 못 들은 척해?”
아이들의 시선이 전부 그에게로 몰렸다.
은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쉬고 뱉는 숨이 하얀 입김이 되어 하늘 위로 올라갈 뿐.
결국 기다리다 못한 아이들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장이니까 뭐…. 우리랑 같이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들어간다고 하겠지.”
“나도 사실 궁금하지 않아. 어차피 너는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들어가겠다고 할 테니까.”
“그러게. 은하 네가 플레이어 아카데미 말고 다른 데 들어가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아.” “그럼 우리 다 같이 같은 데로 들어가는 거겠네!”
은하는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재잘재잘 떠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그럴수록 가슴 한 편이 무거웠다.
“…아직 잘 모르겠어.”
“뭐?”
“아직 잘 모르겠다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뭘 해야 할지….”
친구들도, 가족들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플레이어가 될 거라는 의심을 조금도 품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기대하고 있기까지 했다.
그 기대가 무거웠다.
기대에 보답할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지난 삶과 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지.
부담이 되고, 걱정이 되었다.
홀로 도달하기에는 너무나 험하고 먼 길을 떠올릴수록.
“뭘 그렇게 고민하고 그래? 너답지 않게…. 고민할 게 뭐 있어. 네가 늘 말하는 것처럼 한 번 뿐인 삶, 하고 싶은 대로 즐기면 되는 거지. 막 살아, 막. 나한테는 그렇게 말해놓고선….”
“막 살라고 말하지는 않았어. 그리고 이건 내 삶이지, 네 삶이 아니니까 진지하게 생각해야지.” “와…, 너 진짜 극혐이다.”
우웩 하며 토하는 시늉을 보이는 민지.
굳이 그녀를 상대하지 않은 은하는 아직 발자국이 새겨지지 않은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아이들이 우르르 따라왔다.
눈이 소복이 쌓인 길가에 발자국 하나가 생길 때마다, 주변에 여러 개의 발자국이 연이어 생겼다.
“어차피 대장은 플레이어가 될 거야! 내가 대장을 모를 줄 알고!?”
“맞아. 클리셰 비꼬려다 괜히 자빠지지 말고.”
“맞아. 은하 네가 플레이어가 되는 데에 내 용돈 전부 걸 수 있어.”
“나도 그래. 은하 네가 플레이어가 아닌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는걸.”
홀로 묵묵히 나아가는 발자국.
그리고 크기도, 보폭도 제각기 다른 발자국들이 한시도 떠나는 일 없이 주변을 맴돌았다.
“뭐야! 너 왜 말도 없이 가!”
“대장 같이 가!”
“좀 천천히 가. 왜 이리 급해?”
“얘들아, 우리 오늘은 멀리 돌아가지 않을래? 조금만 더 대화하자!”
이리하여 한 해의 끝이 저물고, 초등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해가 떠오른다.
☆
선력 8년.
대한민국 10대 중앙 종합일간지는 신년을 맞이하여 새로이 갱신된 국가지표를 발표했다.
국가지표로 반영되는 항목 중에는 예년과 달리 크게 변동한 항목이 몇몇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항목은 그룹 재계순위와 클랜등급이었다.
선력 8년
번호
기업명
동일인
01
갤럭시
최윤한
02
시리우스
한도영
03
영원
유선경
04
YH
최윤혜
05
파인
장석영
06
앨리스
민준식
07
단군
홍준일
08
루미너스
이정인
09
KK
김건
10
동해
정지만
선력 8년
─클랜 종합등급 S─
번호
클랜명
종합등급
01
제니스
S+
02
명왕
S+
03
레귤러스
S+
04
신라
S
05
단군
S
06
블레이즈
S
07
템페스트
S-
08
KK
S-
리라이프 플레이어 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