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90
은아가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3년이 지났다.
가족들 앞에서 플레이어가 되겠다고 소리치던 때가 엊그제 같건만, 그녀는 어느새 중등아카데미를 졸업할 나이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참 빨리 흘렀다.
은하는 은아를 생각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오빠! 플레이어 아카데미야!”
“은애야, 뛰지 마. 넘어질라.”
은아보다 하루 앞서 학년을 마친 은하는 가족들과 함께 그녀의 졸업식을 보러 왔다.
조계사 일대를 허물고 부지를 만든 플레이어 아카데미에는 벌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올해는 쟁쟁한 애들이 많다지?”
“이 녀석들이 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몰라. 027기는 풍년이구만.”
“그래서? 올해 유망주들이 누군지 나도 좀 알려주시지. 내가 오늘 섭섭하지 않게 쏠 테니까.”
중등아카데미의 졸업식을 보러 온 사람들 중에는 유명 클랜의 관계자들도 섞여 있었다.
중등아카데미를 졸업했다고 하더라도 플레이어로서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다른 이들보다 이른 시기에 유망주들과 접촉하기 위해서였다.
“오빠, 저 사람들이 우리 언니 얘기하고 있어.” “누나가 유망주라서 그래.”
“유망주?”
사람들이 워낙에 많았다.
이러다 은애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 은하는 여동생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은아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던 은애는 그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애야, 오빠 손 잘 붙잡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길 잃으면 못 찾으니까.”
“오빠 미아 되지 않게 은애가 잘 잡고 있어야지?”
“알았어! 내가 오빠 손 잘 잡고 있을게!”
팔짱을 낀 부모님이 졸업식이라고 평소와 달리 격식 있는 옷을 입은 은애에게 주의했다.
그러다 부모님은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은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듣고는 혀를 내둘렀다.
“은아 성적이 좋은 건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말하고 다닐 정도로 대단한 성적이었나 봐요.”
“성적도 성적이지만, 로 선정되기까지 해서 그래.
그것도 의 니…. 업계 관계자들이 눈독을 들일만 하지. 당장 시리우스 디바이스만 하더라도 은아를 홍보모델로 쓰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판인데….” “어머, 정말요? 당신, 은아 홍보모델 이야기는 왜 안 했어요?”
“어디까지나 우스갯소리로 오갔던 이야기였으니까. 이 자식들이 은아 프로필을 보고 득달같이 돌변하기는 했지만….
은아가 당신처럼 예쁜 건 알지만, 내 딸을 기업의 이익을 위해 홍보모델로 시킨다니 절대 안 되지.”
“…한 번만 더 말해주면 안 돼요?” “어? 어떤 걸? 내 딸을 기업의….”
“아니, 그거 말고.”
어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초봄에 새싹이 트는 모습과 같은 미소를 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착 달라붙으며 물었다.
“한 번만 더 말해줘요. 예쁘다고.”
“우리 마누라 예쁜 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지. 나는 아직도 당신 누가 뺏어갈까 무서워.”
“어디 안 가요. 당신이랑 은아랑 은하랑 은애랑 같이 살 거예요.”
주변에 사람들의 이목이 있다는 것도 잊고 서로의 세계에 빠진 부모님이었다.
“은애야, 우리 먼저 가자.”
“엄마아빠는?”
“조금 이따가 따라오실 거야.”
은하는 은애의 손을 잡아끌었다.
졸업식이 진행되는 대연회장으로 가는 길은 이미 알고 있다.
그는 사람들을 헤치고 기억 속에 떠오르는 길을 더듬어갔다.
사람들을 지나칠 때마다 간간이 은아에 대한 이야기가 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도 말했지만, 은아는 신서영의 유일한 였다.
“오빠, 가 뭐야?”
“미래가 기대되는 씨앗이라는 뜻이야.”
모든 플레이어에게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차세대 플레이어를 육성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미래에 개화할 가능성을 지닌 씨앗을 지나치지 말라는 뜻이다.
의무이되, 강제력이 없어 의무는 아니되, 언제나 죽음을 곁에 두는 플레이어들이 지나치지 못하는 의무인 셈이지.
플레이어들은 언제나 죽음을 곁에 두고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들이, 죽는 순간에 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자신의 이름일 것이다.
자신이 이 세상에 있었다는 증거.
그것을 남기기 위해 플레이어들은 싹이 보이는 유망주들의 후원자가 된다.
그것이 다.
그중에서도 네임드 플레이어들이 후원해주는 유망주들을 라 부른다.
애초 먹고 살기 바쁜 일반 플레이어들은 누군가를 후원해줄 힘도 없어서 를 만들지 않지만.
사실상 누군가를 후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그만한 힘을 지닌 네임드 플레이어밖에 없었다.
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은 누군가의 후원뿐이었지만, 막상 로 일컬어지는 수는 얼마 없었다.
“누나 대단한 사람이야. 이 많은 사람들이 누나 보러 온 거야.”
“언니 정말 대단하다!”
물론 세상은 로 불리는 이들 중에서도 십이좌의 후원을 받는 이들을 으뜸으로 취급했다.
먼 미래에 십이좌가 될 재목이라는 뜻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십이좌들은 를 선발하는데 다른 이들보다 더더욱 신경을 기울였다.
특히 누나는 세간에서 영웅으로 불리는 의 니까.
중등아카데미를 졸업하는 사람들 중에 십이좌의 후원을 받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로 추앙되고 있는 신서영의 로 통하는 은아의 명성을 따라올 이는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027기수면 누가 있었더라….”
대연회장은 졸업생들의 관계자나 플레이어 아카데미에서 허가를 내린 사람들 외에는 입장할 수 없었다.
뒤따라온 부모님과 대연회장에 입장한 은하는 기억 속에서 황금세대로 불리던 이들을 떠올렸다.
황금세대는 은아가 입학한 기수부터 시작이어서 그런지 얼마 없었다.
…류연화랑 한창진이 있었지.
류연화.
한창진.
제3기 십이좌로 선발되는 그들은 십이좌의 이기도 했다.
이 시대에 남궁성운과 백서진의 인 두 사람.
은하는 은아를 포함해서 세 사람이 027기와 27기의 대표주자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아, 그럼 누나가 고생하려나….”
류연화랑 한창진은 사이가 안 좋았으니까.
회귀 전, 두 사람은 2대 선녀 하백련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표했던 이들이었다.
은하가 알기로, 아카데미에서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은아가 두 사람과 나란히 서게 된다면 제법 고생하게 되리라.
그렇게 생각했건만─,
“─왜 누나가 류연화랑 한창진이랑 같이 있는 거야?”
은아의 가족이라는 소리를 들은 아카데미 관계자들이 무대가 잘 보이는 자리를 안내했다.
거기서 은아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 바로 은아였으니까.
문제는 시선이 절로 가는 미모를 자랑하는 그녀 양 옆에 류연화와 한창진이 서 있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과 제법 친한지, 은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몰랐니? 은아가 보내주는 사진에 자주 나오는 친구들인데….”
“…몰랐어. 왜 몰랐지?”
은하는 두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스마트폰이 없는 그로서는 은아가 가족톡방에 올린다는 사진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엄마, 스마트폰 빌려줘!”
“지금?”
은하는 어머니에게 받은 스마트폰으로 은아가 올렸던 사진을 샅샅이 찾았다.
이제 보니 한창진과 류연화와 찍은 사진이 상당히 많았다.
이제야 알아차린 은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나도 스마트폰 사줘!”
“초등학교 졸업하면 사줄게.”
“엄마가 하는 말 들어.”
“엄마아빠! 나도 사줘!”
단칼에 거절당했다.
한숨을 푹 쉰 은하는 어머니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주었다.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도 반짝이는 은아를 보며 깜짝 놀란 심정을 달래기로 했다.
우리 누나 정말 예쁘네.
세상에, 류연화와 나란히 서도 전혀 밀리지 않다니.
체내 마나가 신체에 영향을 미쳐, 푸르른 수국을 연상케 하는 머리칼을 지닌 여성.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나이임에도 여성으로서 윤곽이 드러나는 몸매는 그가 기억하는 그녀와 비슷했다.
잡티 하나 없이 새하얀 피부와 얼음처럼 한결같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은 흡사 잘 만들어진 인형을 보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저 사람이 대한민국 최강으로 손꼽히는 사람이 된다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른다.
그녀가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가녀린 얼음조각처럼 생긴 모습과 달리, 먼 미래에 대한민국에서 최강으로 거론되는 세 명의 플레이어 중 한 명
이 된다는 사실을.
강현철.
이도진.
그리고 류연화.
그중에서도 류연화는 20대의 나이에 최강으로 통했고, 마지막에 남은 최강이기도 했다.
적어도 은하가 에 발을 들이밀기 전까지는.
그 이후에 그녀가 어떻게 됐을지는 알 수 없었다.
“은아 오른쪽에 있는 애가 연화라는 아이구나. 정말 예쁘다.”
“그래도 우리 딸이 더 예쁘지 암!”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은하는 이내 눈을 크게 떴다.
류연화가 웃었다.
은아와 대화를 나누던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사람이 저렇게 웃는 건 처음 봤는데….
류연화는 호위사도 등을 돌린 마당에 하백련의 사람임을 관철했던 사람이었다.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했던 사람.
그녀가 저토록 또래처럼 웃을 줄은 몰랐다.
“그나저나 은아 친구가 십이좌의 라니…. 류연화도 그렇고, 한창진도 그렇고…. 대단하네.”
“아빠도 두 사람 알아?” “당연히 알지. 내가 지금은 아니어도 시리우스 디바이스에 있던 사람이라고.”
은하는 은아 옆에 서 있는 장신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는 목에 검은색 두건을 두르고 있었다.
한창진.
은하는 그에 대해 별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세 사람이 친밀해 보이는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다.
내가 아는 한창진은…, 저런 녀석이 아니었는데.
그가 아는 한창진은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회귀 전, 창해클랜에 입단한 그는 2대 선녀 하백련에 대한 예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지키는 십이좌가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은하와 사사건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백서진 선생님 때문이기도 했으니.
한창진을 후원했던 백서진은 십이좌를 은퇴하기 전까지 선녀를 지지하던 사람이었다.
필시 백서진은 한창진에게도 선녀를 지키는 검이 되기를 바랐을 터.
하지만 한창진은 백서진의 기대를 배신하고 말았다.
백서진을 스승과도 같은 사람으로 삼았던 은하로서는 한창진의 행보가 마음에 들 수가 없었다.
‘네까짓 게 선생님의 뜻을 어떻게 안다는 거지? 결국 선생님에게 버림받은 주제에.’
제3기 십이좌 중에서 은하와 가장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이 바로 한창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은아 옆에 있는 그에게서 기억 속에 있는 녀석의 얼굴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앳돼 보이기도 했고, 삶에 회의적인 느낌을 들게 하던 분위기도 풍기지 않았다.
“누나야…, 친구는 가려가면서 사귀어야지.”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류연화는 괜찮다.
하지만 한창진은 안 된다.
한창진이 남자라서가 아니라.
은하는 졸업식이 끝나는 대로 한창진의 내면을 까발리기로 했다.
☆
“은하야! 은애야! 나 어땠어!?”
“멋졌어.”
“언니 짱이야!”
졸업식이 끝났다.
졸업생 대표로 화려한 마법을 선보인 은아는 다가오려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동생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은아의 등을 토닥인 은하는 그녀를 따라온 류연화를 올려다보았다.
그녀 역시 무대에서 마법을 선보인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누나 마법도 멋졌어요.” “…고마워.”
연화는 그가 말을 걸 줄은 몰랐던 눈치였다.
살며시 미소를 지은 그녀가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원래 이렇게 잘 웃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은하는 그녀가 미소를 짓는 모습이 영 익숙지 않았다.
“언니 진짜 예쁘다!”
그때 은애가 은아에게 매달린 채로 눈을 빛냈다.
이번에도 연화는 고맙다며 미소를 지었다.
“은아 네가 말했던 동생들이야?”
“어때? 은하는 멋지고 귀엽고, 은애는 예쁘고 귀엽지!”
“…응. 근데 네가 더 예뻐.”
“아니야! 은하은애가 얼마나 더 예쁜데! 그리고 연화 너도 예뻐!”
“…….”
은하는 은아와 살갑게 대화를 나누는 연화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가 아는 류연화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슨 일이 있었기에 류연화 저 사람이 저런 식으로 웃고,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거냐고.
류연화는 기억과 다르지 않게 차분한 성격이기는 했다.
그런데 은아를 대할 때에는 이토록 정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누나, 대단해.”
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은아는 대단했다.
우스갯소리로 라 불리던 류연화의 마음을 녹였으니까.
무엇보다도─.
“─안녕. 네가 은하니?”
“…….”
“나는…, 한창진이야. 잘 부탁해.”
이전 삶에서 백련이 무슨 말을 했다 하면, 코웃음을 치며 비웃기 바빴던 한창진이 이번 삶에서는 쑥스러워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두건을 입가까지 끌어올리고, 시선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모습은 척 보기에도 소심했다.
은하가 아는 한창진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정말 한창진 맞아?”
“응? 뭐라고?”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한창진의 속내를 까발리겠다는 생각이었던 은하는 그의 태도를 보고 얼떨떨했다.
이렇게 순해 보이는 남자가 지하시장을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백련을 공격하는 세력이 되었다는 것도.
그래도 방심할 수 없어.
이 녀석 특기가 도둑놈 같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한창진도 바뀌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은하는 그에 대한 경계심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얘들아! 우리 반 졸업사진 찍는대! 얼른 가자!”
“응, 갈게.” “한창진! 거기 가만히 서서 뭐해! 은하야, 은애야, 이따 봐!”
허 참, 저거 봐라?
저거 정말 정이 안 가는 놈이네.
그에 대한 경계심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손을 붙들려 멀어지는 그는 은아의 뒷모습을 쫓으며 봄을 맞이한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해충 퇴치가 시급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191(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