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99
여름방학이었다.
재계그룹에서는 플레이어 아카데미를 지원하는 초등학생들에 한하여 장학금 대상자를 모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모집 시기는 모두 동일했다.
중복지원은 불가하다는 뜻이었다.
잘못했다가는 재계그룹의 자존심을 찌르는 일이 될 수 있었으니.
플레이어 아카데미를 지원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역량과 후원 범위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지원해야 했다.
나는 안 그래도 되지만.
은하는 이미 시리우스그룹의 장학금 대상자로서 내정되어 있었다.
아버지와 한서현의 힘이라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다른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있을 때,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여기가 플레이어 아카데미야!?”
“뭐, 나쁘지 않네. 나는 건물외관이 칙칙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학교처럼 세련됐고….”
“안내책자에 보니까 학교 어딘가에 커다란 호수도 있대. 거기 호수에 거북이도 산다는데?” “거북이가 어떻게 호수에 살아? 하양이 네가 자라로 잘못 본 게 아니야?”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은 어느 그룹에 지원을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하양이 앨리스의 직계였으니까.
사실 친구들도 앨리스그룹의 후원 대상자로서 내정되어 있었다.
은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형식적으로라도 시험장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하양은 예외였다.
“그런데 뭔가 잊어버린 게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은하는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들어서자마자 들뜬 기운을 감추지 못하는 친구들을 따라가며 중얼거렸다.
무언가 잊어버린 게 있다.
무언가 하나 빠뜨린 것 같았다.
중요하면서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
“뭐, 중요하지 않은 거니까 까먹은 거겠지. 언젠가 기억이 날 거야, 아마….”
그대로 무시하기로 했다.
어차피 중요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빼먹은 것 같은 찜찜함은 한구석에 치워놓아도 상관없을 것이다.
“노은하! 얼른 안 오고 뭐해!? 길을 아는 네가 앞장서야지, 뭐하고 있어!?”
“대장! 빨리 와!”
“먹민지, 저거, 저거….”
저만치에서 민지가 두 손을 모아 크게 불렀다.
혀를 찬 은하는 커다란 나무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에게 향했다.
“천천히 가도 된다니까. 시간도 아직 여유 있고….”
“약속시간에 빨리 가서 나쁠 것도 없잖아. 우리는 은아 언니랑 언니 친구들한테 부탁하는 입장이고!”
“맞아, 우리를 위해 스터디룸이랑 수련장도 예약해뒀다면서? 늦으면 안 되지.”
허리에 손을 얹고 화를 내는 민지.
그리고 손가락을 내밀며 핀잔을 주는 서나.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 말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약속시간까지 아직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알았어. 가자, 가…. 이 더위에 땀이나 흘리면서 기다리고 있지 뭐.”
은하는 투덜거리며 앞장섰다.
오늘은 은아와 플레이어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날이었다.
같은 류연화와 한창진을 부른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스터디룸과 수련장을 예약했다.
원칙적으로 플레이어 아카데미 학생이 아닌 자에게 시설을 대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은아는 라는 이름과 시리우스그룹의 후원을 통해, 플레이어 아카데미 학생이 같이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시설을 대여했다는 모양이다.
후원이 좋기는 하지.
어떻게 보면 나중에 갚아야 할 빚인 거지만, 언제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말도 없으니….
플레이어 아카데미는 선녀정부와 마나관리기구, 재계그룹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니 재계그룹의 후원을 받는다는 의미는 플레이어 아카데미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상당하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은아는 박혜림과 시리우스그룹의 후원을 동시에 받고 있었다.
명예와 재력 그리고 권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셈이다.
“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면서? 노은하 너, 그 사람들한테 밉보이지 않게 잘해, 알았지?”
“우리 누나가 야, 왜 이래. 그리고 는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 싹수가 보이는….”
“은하야, 싹수라니. 말이 조금 그렇잖아.”
“오늘따라 댕댕이 얘도 왜 이리 나를 못 괴롭혀서 안달인 건지…. 의무는 없는데 혜택은 말도 안 되게 받는 사람들이 야, 됐지?” “그건 더….”
이제는 하양까지 얼굴을 흐렸다.
사실을 말한 그로서는 억울하기만 했다.
플레이어 아카데미 학생들에게도 에 대한 이미지는 별반 다르지 않을 터였다.
다들 공공연하게 말하지 않을 뿐이지, 선망의 대상이면서도 시기의 대상이라는 게.
“어? 저기 은아 누나다!”
그때였다.
은혁이 수련관 앞에서 손을 흔드는 은아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은아 옆에는 연화와 창진도 있었다. 두 사람도 그녀를 따라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은아 언니가 더 먼저 왔잖아.”
“우리 누나…, 뭐 이리 빨리 나왔대.”
은하는 겸연쩍은 얼굴로 민지의 도끼눈을 피했다.
자신이 아는 은아는 이렇게 빠른 시간에 나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은하야! 보고 싶었어!”
“누나, 아침에 집에서 봤잖아.”
“그래서 나 안 보고 싶었어?” “…엄청 보고 싶었지.”
“내 동생이지만 너무 귀여워!”
수련관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던 은아가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왔다.
주변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은 그녀가 은하를 덥석 안아버렸다.
피식 웃은 은하는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때마침 류연화와 한창진도 수련관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누나…, 너무 빨리 온 거 아니야?”
“연습이 끝난 다음에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기도 했고…, 글쎄 연화가 약속시간에는 늦는 거 아니라면서 기다리자고 했거든.”
“적어도 10분은 일찍 나와야지.”
볼을 부풀리며 투덜거리는 은아.
바로 앞까지 다가온 연화는 창대를 어깨에 짊어진 채 자신을 변호했다.
“…미안, 화났어?”
“손 안 잡아주면 화낼지도….”
“자.”
회귀 전, 라고도 불렸던 연화가 미소를 지으며 은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난 은아가 그녀의 팔을 껴안았다.
이제는 익숙한지 연화는 한쪽에는 창대를 짊어지고, 한쪽에는 은아를 팔에 둘렀다.
하긴, 류연화 이 사람이 시간을 워낙 칼 같이 지키기는 했지.
류연화.
은하가 아는 그녀는 도무지 빈틈이 없던 사람이었다.
하백련을 꼭두각시나 다름없게 만들어버린 세력이 그녀의 명예를 훼손시키려 해도, 그녀는 털어도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청정구역이 따로 없었다.
당시 류연화에게 날아드는 공격을 방어했던 유도준은 두 손을 들고 고개를 저었을 정도였다.
‘세상에 털어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 사람이 있다니…. 이 자리까지 올라왔으면 청렴결백한 사람이 있을 수가 없는데…, 뭔가 내가 인생을 잘못 산 느낌이야.’
‘너하고는 상극이군.’
‘노은하.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너랑 내가 관계가 달라지기는 했다지만, 내 후원을 받는 건 변하지 않았을 텐데….’
‘먼저 반말하라고 한 건 너였다.’
‘아무리 그래도 영원그룹 회장에 대한 경의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류연화는 그야말로 유도준과 상극인 사람이었다.
음지에서 후계자들을 공격하고, 별 해괴한 술수를 쓰면서 회장이 된 그는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한 사람을 좋아했다.
그러니 류연화에 대한 공격을 막는 동시에 그녀를 휘하로 삼을 만한 건수를 찾으려던 그가 토악질을 하는 시늉을 하며 포기했을 수밖에.
반대로 이쪽도 다른 의미로 대단했는데….
“은하야, 안녕? 잘 지냈지?”
“네, 뭐….”
“오늘 날씨 좋지?”
“엄청 더운데요.”
“어? 그, 그러네….”
연화는 눈인사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창진은 긴장한 얼굴로 다가와서 일부러 말을 걸기까지 했다.
그 의도가 빤히 보였다.
은하는 철벽을 사용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온갖 비리에 관련되어 있었는지….”
그는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척 보기에도 소심해 보이는 한창진이 어떻게 회귀 전에는 지하시장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는지.
회귀 전, 그는 선녀정부와 정재계의 온갖 비리에 연루된 사람이었다.
회귀 전, 그는 하백련의 발언력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그에 대해 탈탈 털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자신의 계획을 폐기해야 했다.
‘류연화는 청정구역이고…, 한창진 이놈은 털어도, 털어도 끝이 안 나. 안 됐지만 이놈은 털지 않는 게 좋겠어.’
유도준은 말했다.
온갖 비리에 연루된 한창진을 공격하는 순간, 대한민국 전체가 비리로 들썩이고 말 것이라고.
고구마 줄기가 아주 길다고.
자칫하다가는 아직까지 선녀정부에 호의를 보이는 그룹들마저도 적으로 돌리는 수가 있다고.
그것은 영원그룹도 마찬가지였다.
영원그룹 또한 한창진과 줄이 닿아 있었던 것이다.
아주 놀랄 노야.
노은하의 노라고.
이 사람한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음지에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된 건지….
백서진 선생님이 얼마나 기겁을 하셨을지, 원….
은하는 미간을 모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시선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한창진이 목에 두르고 있던 두건을 입가로 끌어올리며 시선을 피했다.
“으, 은하야, 내 얼굴에 뭐 묻어서 그래?” “아니요, 전혀. 얼굴도 의외로 예쁘장하네…, 내가 아는 사람은 손에 피를 묻히는 걸 주저하지 않던 냉혈한이었는데….”
“어, 어어…?”
은하는 한창진의 의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를 휙 지나쳐 은아의 손을 붙잡았을 뿐이다.
“그럼 이제 스터디룸으로 가자!”
은하와 연화, 두 사람의 손을 잡은 그녀는 기분이 덩달아 좋아졌다.
그렇게 아이들을 스터디룸으로 안내했다.
“공부 얼른 끝내고, 아카데미 구경하러 가자!”
“”””네!!!!””””
오늘의 목적은 입학시험을 준비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카데미를 구경하는 일이었다.
겸사겸사 류연화와 한창진과 친분을 다지는 일이기도 했다.
앨리스그룹과 시리우스그룹의 족보를 교환하고 있는 아이들은 구태여 이론공부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스터디룸에서 이루어진 수업은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은아, 창진, 연화 세 사람이 정해진 시간마다 화이트보드 앞으로 나오며 입학시험을 치렀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부만 하던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가 없었다.
아, 졸려.
물론 은하는 중간에 연화의 강의를 듣다가 졸았다.
연화가 아이들을 위해서 분석한 기출문제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류연화는 이런 사람이었다.
한없이 진지한 사람.
그래서 은하는 문제풀이를 듣다가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누나도 졸려?
응, 나도 졸려. 오늘 아침부터 아카데미에 나와서 연습했거든.
책상에 얼굴을 맞대니 시원했다.
바로 옆에서 은아도 같은 식으로 얼굴을 대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본 두 사람은 미소를 지었다.
류연화가 나긋나긋 설명하는 목소리는 눈꺼풀이 스르륵 감기게 했다.
연화 목소리, 자장가 같아.
그러게 그거 같아.
그거? 그게 뭔데? 푸린.
꿈나라로 빠지려던 은아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든 웃음을 참으려고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책상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푸, 푸르르, 푸, 푸린….”
“으, 은하야, 그만…!”
고개를 반대편으로 젖힌 그녀가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두드렸다.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노은아, 노은하. 수업 중에 그러면 다른 애들한테 방해잖아.”
“미, 미안해.”
수업을 중단한 연화가 한숨을 쉬며 혼냈다.
은아가 간신히 얼굴을 바로하며, 연화에게 사과했다.
푸르른 수국을 연상케 하는 머리를 홱 돌린 연화가 한숨을 쉬었다.
“다시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은아도, 은하도 졸면 안 돼.” “맞아, 누나. 이번에 졸았다가는….”
“졸았다가는?”
“…연화 누나가 얼굴에 낙서할지도 몰라.”
“……!”
은아의 얼굴이 빨개졌다.
이번에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은아야….”
연화가 미간을 모았다.
수업이 끝난 뒤, 은아는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러 갖은 노력을 다해야 했다.
☆
“잠깐 휴식 좀 취하자. 그러고 나서 수련장에서 마나제어연습을 해볼 거야.”
길고 긴 이론 수업이 끝났다.
은아가 분위기를 환기시키러 손뼉을 쳤다.
휴식시간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풀어진 자세로 책상에 엎드렸다.
연화의 수업이 워낙에 진지해서 꽤나 지친 모양이었다.
“얘들아, 많이 덥지? 내가 아이스크림 사올게. 먹고 싶은 거 없어?”
휴식을 취하는 데에는 달콤한 것을 먹는 게 제격이었다.
한창진은 책상에 엎드린 아이들을 보고 물었다.
그런데 대답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창진아! 나는 메로나! 메로나 먹을래!” “…알았어. 메로나 사올게.”
은아가 해맑게 웃으며 말을 거니, 그의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갔다.
은하는 어쩐지 심통이 났다.
“창진이 형.”
“어, 은하야. 말만 해. 내가 너 먹고 싶은 거 사올 테니까.”
“그래요?”
한창진은 말했다.
먹고 싶은 걸로 사오겠다고.
분명히.
은하가 속으로 악마의 웃음을 짓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빠삐코 밀크쉐이크 먹을래요.” “어? 밀크쉐이크? 그게 요새도 팔아?”
“뭐, 팔겠죠. 집 근처에서 본 것도 같은데….”
에둘러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한창진은 난처한 얼굴을 했다.
“없으면 설레임으로 사와도 될까?” “안 돼요.”
은하는 단호박이었다.
한창진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얼굴이 굳은 모습은 그가 아는 한창진과 조금 닮아 있었다.
“아, 알았어. 내가 아카데미 주변 편의점은 모조리 찾아서라도…, 네가 먹고 싶어 하는 걸로 사올게.”
“네, 잘 다녀오세요. 행여나 아이스크림 녹이지나 말고요.”
한창진의 행동은 재빨랐다.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주문받은 그가 스터디룸을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체내 마나를 끌어올리지 않았다면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였다.
“와, 진짜 빠르다! 대장! 저래서 가 대단하다는 건가 봐? 나도 하고 싶다.”
“아무나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 이유는….”
사랑에 눈이 멀었다는 거지.
은하는 뒷말을 삼켰다.
아이들과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은아를 쳐다보았다.
“우리 누나가 너무 인기야. 주변에 해충이 왜 이리 많은지….”
이강혁도 그렇고, 한창진도 그렇고.
그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로 눈에 차는 사람이 없었다.
“세상에 좋은 남자가 없으니, 내가 우리 누나 데리고 살아야지 어떡하겠어. 은애도 같이.”
민지가 들었다면 깬다는 얼굴로 말하리라.
시스콤도 그 정도면 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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