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01
모지란은 고등아카데미 3학년에서 성적이 중하위권에 속하는 학생이었다.
어울리는 친구들 모두가 그랬다.
그것이 그를 비롯한 친구들의 심기를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중등아카데미에서부터 재학한 그들은 아카데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단 그들만이 아니다.
중등아카데미에서부터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이라면 고등아카데미부터 입학한 학생들에 대하여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같은 25기라도 중등아카데미를 졸업한 사람을 025기라고, 고등아카데미만 졸업한 사람을 25기라고 구분했다.
“야, 모지란. 아무리 생각해도 올해 3학년으로 편입한 녀석들 자꾸 눈에 밟히지 않냐?”
“근본도 없는 놈들이 설치는 게 영 마음에 안 들기는 해. 게다가 다음 학기부터 클랜에서 사람들이 강사로 파견되니….”
고등아카데미에 입학한 사람들에게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는 모지란과 친구들.
그들은 고등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 재능의 한계를 맞이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토록 아랫것처럼 여기던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강해지고 있으니 심기가 불편하지 않을 리 없었다.
더군다나 3학년이 돼서는 외부에서 편입생들이 들어오기까지 했다.
플레이어에 대한 지식도 전투술도 전혀 배우지 않은 그들이 고작 1년 만에, 정확히 말하면 고작 1학기 만에 무엇을 배우겠는가.
그들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사람들이 뭐 그리 악에 받쳐 싸우냐고! 죽으려고 환장했나, 아주.
몬스터에 대한 증오를 품은 그들은 마치 스펀지처럼 주어진 지식을 흡수하고,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모지란과 친구들은 그들이 들어온 탓으로 아예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국내에서 이름난 클랜에는 들어가야 한다.
중등아카데미를 나왔는데에도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변변찮은 클랜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쪽팔려서라도.
문제는 오늘 겨우겨우 유명 클랜의 임원과 면담할 자리를 마련했건만, 임원은 자신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지란 씨도 성적은 나쁘지 않은데…, 솔직히 말하면 이 정도 성적은 밖에 나가면 차고 넘치도록 많거든요.
그나마 메리트라도 있다고 하면, 모지란 씨랑 친구 분들이 중등아카데미부터 재학했다는 건데….
모지란 씨도 알겠지만 저희 클랜이 사실 성적 좋은 사람을 고르지, 학력 좋은 사람을 고르지 않아서요.
저희 말고 다른 클랜을 알아보는 편이 더 좋을 것 같군요.”
“저, 저희 정말 클랜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열정과 성실함으로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겁니다!”
“…열정과 성실함은 누구한테도 있는 거예요. 그것을 표력하고 싶으면 클랜을 알아볼 게 아니라, 회사 취직자리나 알아보는 게 좋을 거예요.
아카데미에서도 배웠겠지만 플레이어는 실력이 전부입니다.” “…….”
“그래도 뭐, 생각 못해볼 정도는 아니네요. 모지란 씨랑 친구 분들은 성적도 일단 평타는 치니까….”
“…….”
“내년에 졸업하는 025기나 25기 중에 성적이 괜찮은 사람 좀 데려와주세요. 그때는 한 번 생각해볼게요.
만약 모지란 씨가 를 데리고 와준다면, 저희가 클랜에서 좋은 자리 마련해드리겠습니다.” “…….”
“아, 페이 좋은 아르바이트 하나 해보실래요? 저희 클랜에서도 다음 학기부터 아카데미에 강사를 파견하기로 했는데…, 3학년 중에 괜찮은 학생을 미리 알아보고 싶어서요.
성적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항목도 있는 법이니 같은 학생인 모지란 씨의 의견이라면….”
임원의 말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지란은 임원이 바쁜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를 깨달았다.
다음 학기에 있을, 소위 클랜의 눈치싸움에서 더 나은 입지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를 무슨 떨이로 아나….”
“아무리 유력 클랜이라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취급할 수가 있냐?”
무슨 정신으로 면담을 끝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수련동 복도를 무작정 걷고 있었다.
머릿속에 몸이라도 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오늘 왜 이리 사람이 많아! 방학이잖아, 좀!”
“아주 다들 다음 학기가 중요하다고 이제 와서 훈련을 하는 모양이지? 이미 늦었으면서….”
그러던 모지란은 어느 수련장에서 유리벽에 기대고 있던 여학생을 찾았다.
푸르른 머리칼.
아카데미 학생이라면 그것만으로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특징이었다.
류연화.
그녀가 수련장을 하나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인 그녀를 상대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몸을 돌리려고 했는데.
“야, 저것들 뭐냐?” “웬 어린애들이 여기 와 있어?” “여기가 무슨 초등학교야? 외부인은 출입금지인 거 모르나?”
노은아도 아카데미에서 제법 유명한 이름이었다.
류연화의 옆에 찰싹 붙어, 그녀와 버금가는 미모를 지닌 것으로 유명했다.
반대로 두 사람의 실력에 대해서는 그리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런데 노은아가 유리벽 바깥에서 얼굴을 들이밀며 내부를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 옆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고.
게다가 수련장에 류연화 말고도 어린애가 한 명 더 있는 걸 발견했다.
“여기 아주 놀러왔나?”
“누구는 라고 미래가 보장되어서 좋겠어. 애들이랑 놀 수 있는 시간도 있어서….”
“저러다 나중에 한계에 부딪치면 어쩌려고…. 미래가 보인다, 정말.”
두 사람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리벽에서 얼굴을 뗀 그녀가 노려보았을 때에는 순간 넋이 나갔지만, 모지란은 울분을 풀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나갔다.
노은아와 아이들이 쳐다보면서도 눈길조차 주지 않고, 친구들을 끌고 수련장으로 들어갔다.
“…어디 본때를 보여줘야지.”
너희들 모두 잘못 걸렸다.
자신이 아무리 3학년 중에서 성적이 중간밖에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1학년들을 혼내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했다.
비록 류연화가 라 해도.
는 명망 있는 플레이어의 후원을 받고 있는 것뿐이지, 그들이 꼭 강하기 때문에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라 불리는 이들은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춘 존재였으나.
그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다.
☆
뭐야, 그 놈이었어?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은하는 수련장 한가운데에 쓰러진 남자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플레이어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경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의뢰를 받지 못했던 그는 고속도로를 정비하는 일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나한테 가진 거 탈탈 털려서…, 디바이스만은 가져가지 말아달라고 콧물 질질 짜며 빌었던 놈이었네.”
고속도로에 나타나는 몬스터를 정비하는 일은 굉장히 무료한 법이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유흥거리가 필요했고, 그는 쓰러져 있는 남자와 한 판 붙게 되었다.
승자독식.
그때 그는 남자로부터 팬티만 남기고, 남자가 가지고 있던 것들을 모조리 털어버렸다.
이제 보니 남자가 데려온 사람들 얼굴도 기억이 나는 것 같았다.
결국 재능의 한계에 직면해서, 어디에서도 알아주지 못하고 고속도로나 전전했던 놈들이었지.
플레이어 업계는 무엇보다 재능이 중요시되는 세계였다.
성실함도, 노력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업계에서는 제대로 취급해주지 않았다.
체내 마나가 적었던 은하가 네임드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센스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으면 도태된다.
지금 눈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도 머지않은 미래에 재능이 없어서 도태될 이들이었다.
“다음.”
“다음.”
“이제 그…!”
“다음.”
“안 일어나요?”
그런 이들이 먼 미래에 대한민국 최강자로 거듭나는 류연화에게 덤벼들었으니, 눈물이 나올 정도로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고작 일격으로.
그녀가 창을 휘두른 것만으로 놈들은 바닥에 쓰러졌고, 떼로 덤벼도 어림없었다.
풍차를 돌 듯 회전하는 류연화는 저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대련을 벌이고 있었다.
“그, 그만…!” “우리가 잘못…!”
“다음.”
“제, 제발…!”
“다음.”
류연화는 힘겹게 일어나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상처가 생기더라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그가 맞았을 때와 달리 상반된 반응이었다.
“나는 피해야겠다. 괜히 여기 있다 잘못 맞고 말지.”
연화무쌍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혀를 내두른 은하는 벽에 달라붙어 입구 쪽으로 돌아나갔다.
입구를 나가자마자 은아와 친구들이 반겨주었다.
“대장! 저 누나 진짜 멋지다! 창이 저렇게 멋진 건지 몰랐어!”
“저 누나가 창을 잘 다뤄서 그런 거야. 너는 하던 대로 검이나 배워.”
“…나도 저런 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포기해, 너한테는 무리야.”
민지가 도끼눈을 떴다.
은하는 그녀를 무시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류연화는 재능덩어리다.
그런 사람이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러니 회귀 전에도 어느 누구도 그녀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강현철과 이도진마저 그녀의 연습량에 기겁했을 정도였다.
민지한테는 무리다.
그에게도 무리고.
“…선이 너무 예뻐. 이도진 오빠도 그랬지만, 연화 언니도 동작이 너무 깔끔해.”
“눈이 좋네.”
“태어났을 때부터 남들 눈치 보고 살면 이렇게 돼.”
서나가 당연하다는 투로 답했다.
은하는 할 말을 잃었다.
작년에 일어났던 사건 이후로 세간의 시선에도 꿋꿋해진 그녀였다.
“진서나, 많이 컸다.”
“내가 아직은 너보다 커.”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나도 알아. 너희가 있으니까 하는 말이야.”
서나가 에헴 하며 꼬리를 흔들었다.
은하는 피식 웃었다.
그녀는 동체시력이 뛰어났다. 아인으로서 신체능력도 남들보다 뛰어난 편이었다.
텔레파시스트와 네비게이터로 적절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정하양도.
“손이 왜 이리 빨개?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하양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그녀 역시 네비게이터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정보를 기민하게 파악하는 능력과 무수한 정보를 읽어내면서도 정신이 붕괴하지 않는 자질을 갖춘 그녀.
체내 마나가 워낙에 방대했으니, 캐스터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얘네들이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시기에도 내 기대를 충족한다면야.
당장 단언하기는 힘들다.
은하는 괜찮다고 말하며 그녀가 붙잡은 손을 치우려 했다.
치우려 했는데.
“이거 연화가 그랬지?” “…아닌데.”
“거짓말.” “잠깐 대련 좀 하다 다친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손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버리면 어떡해! 류연화 정말….”
은아가 홱 잡아챘다.
빨갛게 부어오른 손을 샅샅이 살핀 그녀는 입술을 부루퉁 내밀었다.
연유가 어찌됐든, 그에게 상처를 입힌 일이 싫은 것 같았다.
“내가 이따가 연화 혼내줄게.”
“안 그래도 되는데….”
“내 말 듣고. 이대로 내 손 붙잡고 있어.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올해 박혜림의 로 바뀐 그녀는 치유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동상을 치유하는 마법은 완벽하게 터득한 뒤였다.
연화에게 시비를 걸어서 마법에 당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다 보니, 제일 먼저 익히게 되었다.
그는 뜨겁게 데워진 손길이 손등을 쓰다듬는 기분을 가만히 느꼈다.
“조금씩 움직여봐. 어디 몸에 이상은 없는 거지?”
“괜찮아. 잘 움직여. 고마워, 누나.”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녹았다.
그녀가 손을 거두었을 때에는 부어올랐던 상태가 사라져 있었다.
“연화야?” “…어, 은아…야….”
때마침 대련을 빙자한 훈계를 마친 류연화가 수련장에서 나왔다.
연화는 처음에는 자신을 반기는 은아를 보고 미소를 지으려다, 그녀가 입술을 부루퉁 내미는 모습을 보고 멈칫했다.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니?” “잘못한 거 있지. 우리 은하 손을 얼려버리면 어떻게 해.”
“아, 그건…, 미안. 정말로.”
“은하한테도 사과했어?”
“…응. 그래도 한 번 더 할게.”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는 연화와 까치발을 들고 화를 내는 은아.
은하는 두 사람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하백련 외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던 그녀가 은아 앞에서는 이리도 얌전히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은하야, 미안해.”
“아, 아니에요.”
…우리 누나가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거야?
다시금 인정해야 했다.
두 번째 삶에서 류연화는 더 이상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그녀에 대한 기대가 크기는 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응? 잘 부탁해.”
은하가 손을 내밀었다.
고개를 갸웃거린 연화가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악수했다.
“왜 갑자기 연화랑 악수하고 그래? 은하 혹시 너….”
“누나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정말 아니지?”
“정말 아니야.” “그래도…, 연화가 너랑 잘 되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그럴 일은 없어.”
두 번째 삶에서 바뀐 게 있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은 것도 있다.
언젠가 이 세상에 두 번째 선녀가 나타나리라는 사실.
그리고 류연화는 이전 삶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지키기 위한 창이 될 거라는 사실.
그래서 은하는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백련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그녀에게.
“얘들아, 미안! 많이 늦었지?”
“창진이 너는 아이스크림 사러 어디까지 다녀온 거야?”
“그게 좀…, 구하기 어려운 아이스크림이 있어서….”
“아이스크림 녹은 건 아니지?”
“안 녹았어. 그리고 은아 네 꺼는 제일 마지막에 꺼냈어.” “응, 그래?”
은아는 창진이 겸연쩍어하는 말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투로 봉지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아이들도 봉지로 몰려들었다.
“자, 은하 네가 부탁한 거 사왔어. 이거 맞지?”
“…네, 맞아요. 고맙습니다.”
땀이 흘러내리는 얼굴로 그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한창진.
은하는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어? 나도 잘 부탁해.”
이전 삶에서는 만났기라도 하면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며 으르렁거렸던 두 사람.
미래는 바뀌었다.
두 번째 삶에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과연 그를 신용할 수 있을지.
다만 믿을 뿐이다.
“밖에 더웠지? 내 손수건 써.”
“어? 정말 고마워. 깨끗하게 세탁해서 내가….”
“그건 돌려주지 않아도 돼요.” “내가 얼음 만들어줄까?”
“…저번처럼 나를 얼려버리려고?”
그에게 손을 내민 은아를.
그를 받아들인 연화를.
리라이프 플레이어 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