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07
플레이어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은 성적평가방식으로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를 동시에 적용한다.
응시자들이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정해진 등급을 부여하고, 해당하는 등급 내에서 -, 0, +로 상대평가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는 플레이어 업계 내에서 흔하게 사용되고 있는 평가 방식이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플레이어의 세계는 오로지 재능과 능력 중심이었으니까.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그들에게 재능과 능력만큼 확실하고 믿음직한 요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행이다. 이번에는 수정구가 부서지지 않아서….”
그렇기에 감독관들은 수정구에서 내려오는 하양을 보고 얼굴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조금 전, 수정구 전면부에서 눈부신 빛을 발했으니.
그들은 아직 성장기일 그녀에게서 이만한 마나가 잠들어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경악하고 말았다.
“은하야, 나 잘 한 거 맞지? 왠지 사람들이 계속 날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데….”
“너 잘한 거 맞아. 잘했어. 사람들 시선은 신경 쓰지 마.”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감독관들만이 아니라 수험생들도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로를 경계하고 있던 그들이 부러워하는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격이 비슷하면 몰라도, 격이 다른 그녀와 경쟁할 생각은 아예 사라진 듯했다.
“역시 마나를 조금 소모해두는 편이 좋았던 게 아닐까? 은하 네가 그대로 보여줘도 괜찮다고 하기는 했지만, 사람들 시선이….”
“감춰봤자 뭐해. 어차피 아카데미에 들어가면 다 들통 날 텐데, 뭐.” “하지만….”
“앞으로 이런 시선을 계속 받게 될 거야. 그때마다 부담스럽다고 피할 거야?” “…아니.”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은 그런 게 아니잖아. 견디고 버텨. 쓰러지더라도 내가 지탱해줄 테니까.” “…응, 고마워!”
하양이 그 말을 듣고 얼굴에서 불안을 씻어냈다.
친구들에게 뛰어간 그녀는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정하양이 더 이상 체내 마나를 감출 필요는 없어.
은하는 그동안 하양의 체내 마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주의했다.
괜히 알려졌다가 그녀에게 접근할 사람들을 떼어내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녀는 앨리스그룹의 직계였다.
그녀의 재능이 만천하에 공개된다 하더라도, 그녀에게 손을 댈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시리우스와 앨리스가 든든한 배경이 되어 줄 테니.
그러니 마음껏 날뛰어도 좋다.
은하가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꺼낸 이유도 저희가 무엇을 등에 지고 있는지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C+등급이라니….”
은하는 자신의 체내 마나량이 적힌 검사서에서 눈길을 돌렸다.
회귀 전에는 고등아카데미 입학시험에서 D+를 받았다.
그때에 비하면 적어도 반 등급은 올라간 셈이다.
주머니에 검사서를 꾸겨 넣은 그는 친구들을 데리고 2차 시험이 열리는 대강당으로 향하기로 했다.
☆
감독관은 2차 시험에서는 그룹을 나누어 시험을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대강당에 모인 수험생들은 900명.
이들을 100명씩 한 그룹으로, 총 9개의 그룹으로 나눈다고 한다.
시험은 3개의 시험장에서 동시에 진행될 거라고.
“그럼 지금부터 2차 시험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각 그룹은 시험장 안에서 보조감독관들이 나누어주는 목걸이를 받을 겁니다.
목걸이 중심부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시험장에서 자신이 타격을 받은 숫자가 나타날 겁니다.
그러니 시험장에 들어간 후부터, 시험과 관계없이 타격이 될 만한 여지를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본 감독관은 그러한 일이 발생해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임을 알립니다.”
타격이 될 만한 여지.
감독관의 입에서 그런 말을 찾은 수험생들은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과 거리를 뒀다.
플레이어 아카데미 2차 시험은 그동안 수험생들의 신체능력을 요구하는 시험이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짐작한 수험생들은 감독관의 설명이 끝나는 대로 몸을 풀어둘 생각이었다.
“시험을 보는 순간, 주변에서 고무공이 마구잡이로 날아들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감독관은 시험 내용을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그가 무전기에 신호하자, 그의 뒤에 있던 공간이 반구형 방벽으로 뒤덮였다.
이윽고 배팅센터에서나 볼 법한 기계가 바닥을 제외한 벽면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아이들은 할 말을 잃었다.
기계는 사정을 봐주지 않고 총성을 울리는 소리로 고무공을 발사했다.
반구형 방벽 안에 발사된 고무공이 이리 튀고, 저리 튀었다. 그사이로 새로운 고무공이 지나갔다.
방벽 안에 고무공이 움직이는 선이 가득 찬 건 순식간이었다.
“맞아도 안 죽습니다.”
과연 죽지 않을 수 있을까.
몇몇 아이들은 죽상이 됐다.
저 공간으로 들어갈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이 시험은 제한된 시간 동안 고무공을 피하면 되는 겁니다.
당연히, 고무공을 가장 적게 맞은 응시생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게 될 겁니다.”
고무공을 맞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
감독관은 죽상이 된 아이들을 향해 입가를 끌어올렸다.
아이들에게는 악마의 미소가 따로 없었다.
“시험을 포기할 사람들은 여기서 나가면 됩니다. 시험을 응시할 사람들은 수험번호대에 따라 모여주기 바랍니다.”
시험장을 나가는 수험생들은 얼마 없었다.
어느 정도 나갔다고 판단한 그는 수험번호에 따라 그룹을 나누었다.
“그럼 시험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호명하는 그룹은 보조감독관의 지시를 받고 시험장을 이동해주기 바랍니다.
A 시험장에서는 1, 4, 7 그룹이 시험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B 시험장에서는 2, 5, 8 그룹이….
C 시험장에서는 3, 6, 9 그룹이 시험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2차 시험이 시작되었다.
☆
은하는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은 모조리 밟아버리라고.
그거 좋지, 마음에 들어.
오랜만에 깽판 치고 얼마나 좋아.
진파랑은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는 은하, 민지와 A 시험장으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그동안 그는 시험장에 입장한 순간부터 자신을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었다.
밟아버리기 위해서.
그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그는 700번대에 속하는 수험생들 중에서 자신이 밟아야 할 얼굴을 찾았다.
“그냥 아주 다 죽었어.”
“빙구 오빠, 왜 빙구 같이 쪼개고 그래?”
그때 민지가 눈살을 찌푸리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애써 목청을 가다듬은 진파랑은 아무 일도 아니라며 그녀를 지나쳤다.
김민지 쟤도 참 마음에 안 드는데 말이야.
진파랑은 마음 같아서는 김민지도 이참에 격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수험번호는 121번이었다.
그녀가 시험을 치르는 모습은 볼 수는 있어도, 그녀와 시험을 치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빙구 오빠,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어, 얼른 시험 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왜, 뭐!”
“이상하게 내 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빙구 오빠, 솔직히 말해봐. 지금 내 욕 한 거 아니야?” “내, 내가 왜 네 욕을 하냐!”
자신을 욕하는 것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민지였다.
속으로 깜짝 놀란 진파랑은 목소리를 높이며 부정했다.
“거기 두 사람! 조용히 하세요.”
“”죄송합니다.””
A 시험장으로 안내하던 보조감독관이 두 사람을 꾸짖었다.
수험생들이 보는 앞에서 고개를 숙인 두 사람은 흥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젖혔다.
그래, 1살 많은 내가 참아야지.
김민지 저거, 정말 두고 보라고.
내가 벼르고 있다가 나중에 가만 안 둘 거니까.
진파랑은 의기양양하게 늑대 꼬리를 흔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생각해보니 보조감독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감독관님! 질문 있습니다!” “네, 뭔가요?”
진파랑이 큰 목소리로 응시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보조감독관을 불렀다.
그가 늑대 귀를 바짝 세우며 손을 드는 모습에 웃음이 터진 보조감독관이 물었다.
“고무공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해도 되는 거죠?” “…원칙적으로는 범법행위만 아니면 됩니다. 다만 감독관들이 모니터실에서 시험장을 감시하고 있으니, 문제가 될 만한 소지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보조감독관은 눈살을 찌푸렸다.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누구보다 이기적으로.
재능과 능력주의를 내세우는 플레이어 아카데미는 범죄에 저촉되는 행동만 하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무엇을 해도 된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입학시험에서도 적용되는 사항이었다.
그래서 감독관들은 시험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충고를 주었다.
감독관들로서는 수험생들이 시험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어떠한 자세로 임하는지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방패로 삼고 공을 받아도 된다는 말이죠!?”
다만 도를 지나친 행위는 문제가 된다.
보조감독관의 다년간 쌓아온 감이 그를 주의해야 한다 말하고 있었다.
이제 보니 얼굴도 장난기가 많은, 악동의 얼굴이었다.
“네, 됩니다.”
보조감독관은 그가 몸에 달고 있는 수험번호 787를 기억해두기로 했다.
그가 과연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하기도 하며.
조금 전에 내뱉은 말로 그는 모든수험생을 적으로 돌린 셈이다.
“…무슨 짓을 해도 된다고?” “…방패?” “정말?”
수험생들이 수군거렸다.
그와 같이 시험을 보는 아이들은 그에게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야, 뭘 봐.”
진파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적의에는 적의로 받아칠 뿐.
바로 옆에서 자신을 노려보던 아이를 기선제압한 그는 룰루랄라 걸음을 내딛었다.
“저 형, 저거저거….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내뱉은 거지? 가만히 있어도 될 걸, 굳이 적을 만들 필요가 있나….”
은하는 혀를 쯧쯧 찼다.
그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밟아도 된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밟기 위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만들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은하는 진파랑에게서 관심을 떼기로 했다.
그가 아이들의 어그로를 끌게 되면 자신은 시험에 집중할 수 있으니.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네.”
“그런 방법? 뭐가?” “아까 빙구 오빠가 말한 방법 말이야.” “너, 설마….”
“왜? 네가 이기적인 사람이 되라면서.”
민지는 만면의 미소로 대꾸했다.
은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가 언제 자신의 말을 이렇게 잘 들었나 싶었다.
“나, 아까 D등급 받았어. 그러니까 다음 시험에서 만회해야 해.”
“D등급이면 무난한 수준이야. 감점은 없을 테니 걱정 안 해도….”
“그래도 너희는 가산점 받았을 거 아니야.”
민지는 친구들 중에서 체내 마나가 제일 적었다.
평균에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달리 말하자면 재능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내심 불안했다.
가산점 없이 입학할 수 있을지.
“네 실력이라면 충분하다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혹시 모르는 일이다.
어려운 문제가 나올지도 모르고, 수험생들의 수준이 높을지 몰랐다.
그녀는 앨리스그룹의 공부방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자질을 가진 아이들을 여럿 만났다.
그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정정당당하게 승부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알려줘.”
“뭐를?”
“너라면 대충이나마 알 수 있을 거 아니야. 여기서 주의해야 할 애들이 누구인지.
나랑 같이 시험을 보는 애들 중에 주의해야 하는 애들은 누구야? 걔네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하게.”
“…알았어. 이따가 알려줄게.”
은하는 그녀가 옷을 붙잡은 손길에 간절한 마음을 엿봤다.
그녀가 평소 실력으로 시험을 쳐도 합격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불안을 해소해주기 위해서라도 도와주기로 했다.
“…쟤랑, 쟤. 2명만 조심하면 돼.”
“알았어, 고마워.”
A 시험장에 도착한 은하는 수험번호 100번대 아이들을 주시했다.
대충이나마 보았을 때에는 주의를 요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었다.
그는 100번대 그룹에 들어가려는 그녀에게 귀띔했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사람 좋은 얼굴로 100번대 그룹에 들어갔다.
“─1 그룹부터 시작하겠습니다.”
A 시험장의 준비가 끝났다.
보조 감독관이 무전기에 지시하자, 1 그룹을 중심으로 반구형 방벽이 생성되었다.
순식간에 아이들을 덮치는 고무공.
시험 시작 전부터 체내 마나를 끌어올리고 있던 민지는 기민한 움직임으로 공을 피해냈다.
피할 수 없는 것은 그냥 맞았다.
고무공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친구들이라면 공이 때리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방벽을 만들어냈겠지만, 그녀는 전신을 마나로 코팅했다.
“…어? 어, 아아악…!”
민지는 혀를 찼다.
무더기로 날아오는 공을 본 그녀는 피할 수 없으리라 직감했다.
피하지 못하면 맞으면 된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을 잡아채서, 그들을 방패로 공을 막아냈다.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눈을 질끈 감고 감지망을 전개한 그녀는 기계가 다른 곳으로 향한 사이에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미안.”
그녀는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을 뒤로 하며 시험을 계속했다.
잠시 후, 시험이 끝났다.
10분이라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야, 먹민지! 이리 와.”
“…응.”
이럴 때는 은하가 고맙다.
뒤에 있는 아이들을 돌아보기가 무서웠다.
민지는 방벽이 해제되자마자 손짓하는 은하에게 뛰어갔다.
도중에 보조감독관에게 반환한 목걸이에는 43이라는 숫자가 기록되어 있었다.
“…나, 잘 했으려나?” “네가 제일 적게 맞았어.”
“그래?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다 보고 있었다니까.”
민지는 그가 일부러 능청을 떠는 모습에 피식 웃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A등급.
그녀는 전광판에 실시간으로 떠오르는 기록을 보며 다짐했다.
재능이 없더라도, 실력이 없더라도 이런 식으로 헤쳐 나가면 된다고.
그와, 친구들과 나란히 서기 위해.
리라이프 플레이어 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