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09
“뭐야? 파랑이 형은 왜 이래?” “…얼굴이 엉망이네. 공을 얼마나 맞았으면 이런 거야?”
“다 자업자득이야.”
은하는 돗자리를 깐 잔디밭으로 다가온 서나와 은혁에게 대꾸했다.
진파랑은 나무그늘 아래에 드러누워 있었다.
진이 빠졌다며 점심도 거르고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이 형이 뭘 모른다니까.
은하는 얼굴에 자잘한 생채기가 난 파랑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숙면이 체내 마나를 회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여기서 체내 마나를 회복하는데 더 중요한 역할은 따로 있었다.
하양의 도시락이었다.
“아빠가 너희랑 같이 나눠먹으래! 이거 먹고 남은 시험도 힘내자!”
“우~와! 역시 하양이 너희 아저씨 솜씨는 말이 필요 없다니까!”
은혁은 하양이 뚜껑을 연 찬합에 입을 크게 벌리고 감탄했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런 음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젓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계란말이 정말 맛있다! 집에서는 소금을 넣어 먹는데, 지금 먹으니까 설탕도 괜찮네!”
“나는 샌드위치가 마음에 들어!”
계란말이를 집어먹고 몸부림치는 민지와 커다란 샌드위치를 깨무는 서나.
은하와 은혁도 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모두 해치워버리겠다는 기세로 음식을 삼켰다.
“…이게 힐링이지.”
“치, 그게 뭐야. 얘들아, 차도 같이 마셔. 마나 회복에 도움이 될 거야.”
은하는 체내 마나가 차오르는 감각에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아이들도 그런 모양이었다.
2차 시험에서 제법 체내 마나를 소모해버린 아이들은 보리차를 손에 쥐고 기분 좋은 미소를 흘렸다.
“대장, 나 정말 죽는지 알았다니까. 마나감지망을 전개해야 하는 데다, 몸도 움직여야 하는데, 10분 동안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래도 했잖아. 잘했어.”
“…뭐, 하다 보니 되긴 하더라.”
“너희는 그렇게 했어? 나는 방벽만 전개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
하양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이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리차를 마시는 하양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대장, 너무하는 거 아니야?”
“하양이 마나 많은 건 알았지만, 그래도 부럽네.”
은혁과 민지가 허탈해했다.
그럴 만도 했다.
두 사람은 땀을 흘리며 돌아다녔는데, 그녀는 가만히 선 채로 높은 성적을 받았다고 하니.
“남이 가진 걸로 부러워하지 마. 그럴 시간에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나, 그런 거나 고민하라고.”
은하도 하양이 부럽기는 했다.
하지만 그녀가 장시간 동안 방벽을 유지하기 위해 신경을 쏟아야 했을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지금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것도 그만한 고생을 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나랑 똑같이 방벽을 전개한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도 마나가 많았나 보네?”
“응, 그랬던 것 같아. 나는 은하한테 배운 거지만, 그 아이는 독학으로 배웠을 텐데도 잘하더라.”
하양이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은하는 그녀와 서나가 나누는 이야기를 적당히 흘려들었다.
이 나이에 방벽을 오랫동안 유지했다는 게 신기하기는 했어도, 그저 그뿐이었다.
031기수에도 황금세대의 유망주가 다수 존재했으니까.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뭐야! 이 맛있는 냄새는 대체 어디에서 나는 거야!”
그 순간, 곯아떨어져 있던 파랑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붉은 눈을 크게 뜬 그는 도시락을 보고는 늑대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입 안에 침이 고여 있었다.
“빙구 오빠는 아카데미에서 나눠준 빵이나 먹어. 이건 우리가 다 먹을 거야.”
“파랑 오빠가 잘못한 거야. 이제 남은 것도 없어.” “김민지! 진서나! 너희 그러지 말고 얼른 나한테 젓가락 넘겨!”
파랑이 침을 꼴깍 삼키며 하양에게 손을 뻗었다.
어색하게 웃은 하양이 그에게 젓가락을 건넸다.
“빙구 오빠! 그렇게 막 먹으면 어떡해!”
“맞아, 오빠! 우리 먹을 것도 남겨줘야지!” “파랑이 형이 해치우기 전에 얼른 먹어야 해!”
“비켜! 너희들끼리 이 맛있는 걸 먹고 있었다 이거지? 치사한 놈들! 이건 다 내꺼야!”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아이들은 나무 아래에서 도시락전쟁을 벌였다.
☆
“다들 점심은 맛있게 먹었습니까! 지금부터 3차 시험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플레이어 중등아카데미는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1차 시험 이후, 수험생들을 이틀에 나눠 세 가지 시험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수험생들을 한꺼번에 평가하기로 했다.
또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시험을 하나 더 추가했다.
그리하여 오전에는 체내 마나 검사와 2차 시험이, 오후에는 3차 시험과 4차 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체내 마나를 검사했던 시험장에 모인 아이들은 피곤한 얼굴로 감독관의 설명을 들어야 했다.
“3차 시험에서는 수험생 여러분의 마나제어능력을 평가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제가 발하는 체내 마나를 ‘봐’주기 바랍니다.”
선글라스를 쓴 감독관이 입가를 끌어올렸다.
마치 군가자세를 취하듯 허리에 손을 얹은 그가 체내 마나를 발했다.
아이들은 그의 몸에서 발현되는 마나를 보기 위해 눈에 힘을 주었다.
“보입니까?”
감독관은 목적어를 빼고 물었다.
어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아이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눈살을 찌푸린 아이들은 체내 마나를 다루는데 서툰 아이들이었다.
반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을 눈으로 담아낸 아이들에게는 감독관이 발하는 마나가 색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독관의 체내 마나는 붉은색을 품고 있었다.
“현재 아카데미 부지 곳곳에 저와 같은 감독관들이 마나에 색을 품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곳을 나가는 순간부터, 색을 품은 감독관을 찾으면 됩니다.”
그 말은 체내 마나를 다루는데 서투른 아이들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뜻이었다.
체내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이들을 몰래 따라가면 될 뿐이니.
그러나 감독관은 그들이 떠올린 바를 모를 줄 알았냐는 듯이 곧바로 부정했다.
“감독관들은 매번 다른 색을 띄우고 따라온 사람들에게 한 명씩 질문할 겁니다.”
아이들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기를 써서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담아야 할 판이었다.
그제야 은하는 이 시험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싹수가 있는 애들을 찾겠다는 뜻이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을 눈으로 보는 일은 지금 당장 노력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개인의 감각에 달린 문제였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당장이라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현상에 눈을 뜰 것이다.
필시 감독관은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은 이들이 아니라, 시험을 통해 눈을 뜨는 아이들을 찾을 의도인 것이리라.
“물론, 시험에서 출제하는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감독관들은 자신이 띠운 색을 맞춘 아이들에게, 담당하는 문제를 낼 것입니다.
수험생은 감독관이 제시하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4차 시험에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감독관마다 제각기 부여된 문제가 다르다.
만약 감독관이 제시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시간이 허락되는 동안, 다른 감독관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감독관들이 모두 색을 하나만 품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마다 품고 있는 색의 개수가 다릅니다.
수험생 여러분은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거라 생각합니다.”
저마다 품은 색의 개수가 다르다.
아이들은 많은 색을 볼 줄 알아야 높을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들이 출제할 문제는 다른 감독관들이 출제하는 문제보다 난이도가 높을 것이라고.
“”””…….””””
머리를 잘 굴려야 했다.
마나를 제어하는데 자신이 없으면 한 가지 색을 품은 감독관을 찾아다니는 편이 나을 수 있었다.
하지만 높은 성적을 받으려면 색을 여러 가지 품은 감독관을 찾아다녀야 했다.
“질문 있습니까? 네, 거기 984번.”
“색을 하나도 못 보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손을 번쩍 올린 아이가 질문했다.
감독관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자신을 조용히 바라보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아카데미 학생이었다면 저는 단호하게 말했을 겁니다.
그럴 거면 왜 플레이어가 되기로 결심한 거냐고.”
감독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이들은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린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플레이어 아카데미에서 못하는 건 잘못입니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플레이어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죽음을 거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못 버틸 거면 빠지십시오. 여러분이 차지할 자리,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십시오. 힘이 있어도,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자리를 내주기 위해.”
“”””…….”””” “어디까지나 플레이어 아카데미 교관으로서 말하는 겁니다. 이번 시험을 주관하는 감독관으로서는…, 네, 색을 하나도 못 보는 사람은 여기에 남아 있으면 됩니다.
제가 그들에게 시험을 출제할 겁니다. 물론, 좋은 성적을 받을 거라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아이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
감독관을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더 이상 질문이 없을 거라 판단한 감독관은 손뼉을 치며 주위를 환기했다.
“지금부터 3차 시험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하양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아이들은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4차 시험에서 만나기를 약속하며 제각기 흩어졌다.
은혁과 민지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며 감독관을 찾아 나섰고, 서나는 높은 곳에서 관찰하겠다며, 파랑은 제일 먼저 찾고야말겠다고 뛰어나갔다.
어느덧 시험장 앞에는 하양과 은하밖에 없었다.
“나는…, 계열사 아이들을 도와주려고. 걔네들 중에 색을 보지 못하는 애들도 있을 거야. 걔네들한테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 생각이야.” “그러다 좋은 성적 못 받아도?”
하양의 능력이라면 3차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괜찮아. 할 만큼 충분히 했으니까. 4차 시험도 남아 있고…, 그러니까 계열사 애들부터 챙겨야지.”
“내가 아침에 한 말 잊었어? 이기적으로….”
“이게 내가 이기적으로 사는 방식이야.” “…….”
하양은 망설이지 않았다.
미소를 지으며 은하의 말을 자른 그녀는 감지망을 전개해 아카데미 어딘가에 있을 계열사 아이들의 기척을 더듬었다.
“걔네들한테 빚을 만들어두려고. 아카데미에서도 내 말을 잘 따르게, 우리를 지켜주는 힘이 될 수 있게.”
“…그래. 그러네.”
재능과 실력을 인정받는다고 해도 아카데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카데미는 사람이 모이는 장소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 인간관계는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다.
재능과 실력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그녀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번 시험을 우선순위에서 미뤄두려는 것이다.
“많이 컸네.”
“치, 나 내년이면 14살이야. 그리고 은하 너랑 같은 나이인걸.”
“나한테 넌 아직도 어린애야.” “…두고 봐. 나 어리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해줄 테니까.”
정하양이 볼을 부풀렸다.
은하는 피식 웃었다.
그녀가 3차 시험도 무사히 치르고 넘어가기를 바랐다.
“그럼 힘내. 나도 가볼게.”
“응, 너도 힘내.”
체내 마나를 끌어올렸다.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옥상으로 뛰었다.
거센 바람이 그를 맞이했다.
머리칼이 뒤로 밀려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난간에 몸을 기댔다.
어디에 있으려나.
저마다 색을 품고 있을 감독관들.
조금 전에 감독관이 시범으로 보여주었던 크기를 생각하면, 옥상에서 내려다보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서 색을 품은 마나가 아지랑이처럼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은하는 한 가지 색을 품은 마나로부터 미련 없이 눈길을 돌렸다.
그가 찾는 것은 가장 많은 색을 내포한 마나였다.
“…찾았다.”
드디어 찾았다.
그는 교수회관 근처에서 올라오는 형형색색의 마나를 찾았다.
참으로 많은 색을 품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지랑이에 섞인 색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천보
난간을 밟았다.
옥상에서 뛰어내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곧바로 현관 지붕에 착지해서, 교수회관이 위치한 방향으로 뛰었다.
중간에 수험생들을 지나쳤지만, 수험생들은 나무 위를 뛰어다니는 그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움직였어.
상대가 자신의 기척을 파악했다.
필시 문제를 출제하기 위한 장소로 안내할 생각인 것이다.
그는 화려한 아지랑이가 넘실거리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아지랑이는 한참을 뛰어가더니, 교수회관 뒤편에 존재하는 호숫가에서 이동을 멈췄다.
“─여기까지 온 거라면 실력은 확실하다는 거겠지.”
호숫가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는 수면을 밟고 있는 감독관을 발견했다.
“…어?”
감독관이 당황했다.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귀걸이를 단 그녀는 눈을 깜빡거렸다.
당황한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내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하긴…. 이만한 난이도인데 은하 네가 안 올 리가 없지.” “누나야말로 이게 뭐예요. 이거는 찾으라고 낸 문제가 아니잖아요.”
은하는 오랜만에 만난 신서영에게 투덜거렸다.
어깨에 가죽재킷을 걸친 그녀가 반가운 기색으로 대꾸했다.
“누나라니, 지금은 감독관이란다. 그러니 수험번호 759번 노은하 학생. 제가 품은 색이 뭔지나 대답해보세요.”
“빨, 주, 노, 초, 파, 남, 보, 검정, 회색, 분홍, 갈색에 또…. 누나 아주 색연필 종합세트네요.”
은하는 10가지가 넘어가는 색을 주절거렸다.
신서영이 정답이라고 외쳤다.
“잘했어. 그러면 이제부터 문제를 출제하도록 할게. 은하 네 실력이 어떤지, 예전부터 궁금했었는데 마침 잘됐네
.”
신서영이 공명접선을 꺼내들었다.
은하는 그녀가 발하는 기운을 따라 체내 마나를 발현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210